< 1915화 > 1915. 다크 문
해밍턴 교수와 클리프가 탐사대와 진을 끌어모은다.
문에 적힌 고대어를 해석했다고 하니 탐사대원들은 의심 대신에 호기심을 품으며 모여들었다. 호위인 진은 경계하면서도 그들 근처로 다가갔다. 호위 일을 하는 게 그의 임무였으니까.
해밍턴 교수는 나와 클리프에게 눈짓한 뒤 입을 열었다.
“저 문을 열려면 다섯이 필요하네.”
“다섯이요? 일종의 비유인가요? 무슨 비유일까요?”
“비유가 아니네. 말 그대로 다섯일세. 자네들 다섯 말이야.”
클리프가 마도 공학 폭탄을 그들 사이로 던진다. 나는 아스트랄을 개방하며 미리 준비하고 있던 배리어 마법을 사용해 해밍턴 교수와 클리프를 감쌌다.
탐사대원들은 폭탄을 쳐다봤다. 그들의 표정에는 경악 대신에 호기심이 있었다. 마도 공학 폭탄의 정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반응한 것은 진이었다. 그는 폭탄이 나오자마자 급히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피하려고 했다.
콰아아아아앙!
폭탄이 터진다. 일반적인 수류탄 따위보다 그 화력이 몇 배나 더 강했다. 일반인은 몸 자체가 갈려 나가 고깃덩어리로 전락했고, 거친 생활을 해온 용병 또한 치명상을 입은 채로 바닥에 쓰러졌다.
‘죽지 않았나. 마무리를….’
쓰러진 진을 마법으로 끝장내려는 순간이었다. 감각에 무언가가 잡힌다. 염력을 사용해 그것을 쳐냈다. 총알이었다. 슬쩍 뒤를 보니 조쉬가 내 머리에 권총 하나를 겨누고 있었다. 이어 그는 권총을 거두고 등 뒤의 기다란 라이플을 꺼낸다. 기습이 통하지 않았으니 아쉬울 거다.
‘상황 파악이 빠르군.’
솔직히 말해 조쉬를 얕보고 있었다. 육체 강화와 마법이 공존하는 이 세계에서 총기의 한계는 명확하니까.
조쉬는 허리와 무릎을 굽혀 반쯤 앉은 자세에서 라이플 방아쇠를 당긴다.
탕! 탕! 탕!
묵직한 총성과 함께 총알이 날아온다. 총알에서 마나가 느껴졌다. 마탄이다.
[마그네틱]
3급 전격계 응용 마법을 시전한다. 자력을 이용해 금속인 총알의 방향을 자연스럽게 바꾼다. 공중에서 한 차례 선회한 총알이 조쉬에게 돌아간다.
조쉬는 바로 땅을 굴려 총알을 피하면서 권총으로 반격했다.
‘헛수고를 하는군. 마그네틱이 있는 이상 총알로 나를 죽일 순 없다.’
마그네틱을 사용하려다가 멈칫했다. 날아오는 총알은 금속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허공을 가르는 건 은빛의 무언가였다.
‘…마나 탄환? 아니, 바람을 압축해 총알로 쏜 거군.’
아무리 그래도 바람을 자력으로 조종할 수는 없는 법. 나는 배리어를 사용했다.
콰앙! 쾅! 쾅!
총알이 배리어에 닿는 순간 폭발했다. 배리어가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이어서 마탄과 바람 총알이 섞여 날아온다.
‘찰나를 이용하면 배리어의 술식을 연산하고 펼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방어에 집중하게 되면 계속 두들겨 맞게 될 것이다. 거너의 장점은 총알이 있는 한, 쉬지 않고 공격할 수 있는 점이니까.
‘해밍턴 교수와 클리프도 신경 쓰이니 최대한 빨리 조쉬를 죽여야 한다.’
[아이스 월]
배리어 대신 얼음의 벽을 세운다. 쾅! 쾅! 쾅! 얼음벽은 배리어와 마찬가지로 빠른 속도로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는 염력을 이용해 허공으로 몸을 띄우며 검지로 조쉬를 가리켰다.
[라이트닝 스피어]
허공에서 생성된 길쭉한 번개의 창이 조쉬에게 날아간다. 조쉬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며 견제하면서 신속하게 자리를 피한다. 그 반사신경과 판단력 하나는 칭찬해 줄만 했다.
‘내 라이트닝 스피어는 좀 특별하지.’
번개의 창은 바닥에 내려꽂히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다. 사방으로 전류가 퍼져나가고, 조쉬의 발끝에 전류가 닿았다. 감전당한 조쉬는 볼품없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일반인이라면 감전당하는 순간 즉사했겠지만, 조쉬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가 다시 움직이기 전에 끝을 내야 했다.
“언제까지 뻗어 있을 거지?”
조쉬가 말했다. 내게 말하는 게 아니었따. 나는 반사적으로 치명상을 입은 진을 힐끔거렸다.
“쓰읍. 나에 대해 알고 있었나?”
치명상을 입은 진이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난다. 왼팔은 덜렁거렸고, 찢긴 복부에선 내장이 흐르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당장 죽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처들이다.
“좀비 용병 진 엑스텀. 그 이름을 한 번 들어본 적 있다.”
“좀비 용병이라 부르지 마라. 난 엄연히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진은 순식간에 회복했다.
‘회복계열 아티팩트를 사용했나? 마법의 기척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능 계열인가? 아니면 다른 비밀이 있나?’
마법사로서 호기심이 일이 났으나, 꾹 눌러 참았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상대해야 할 용병이 늘어났다. 한 명이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저 마법 쟁이보다 먼저 처리해야 할 놈이 있지.”
양손에 거검을 움켜쥔 진은 클리프와 해밍턴 교수에게 휘둘렀다. 거리가 있던 해밍턴 교수는 가까스로 그 공격을 피했지만, 클리프는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어졌다.
“끄아아악! 교, 교수님! 도와주십시오!”
클리프가 해밍턴 교수에게 손을 뻗었으나, 그녀는 냉정하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다.
“유진 마이어! 뭐하는 겐가! 빠, 빨리 나를 도와주게! 이놈들을 막으란 말이야!”
진은 해밍턴 교수를 죽이기 위해 다가가려는 순간이었다. 조쉬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외쳤다.
“멈춰라! 해밍턴 교수를 죽이면 고대 유적의 유산을 얻을 수 없다! 빈손으로 돌아갈 생각이냐?!”
“아, 맞다.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지. 그럼 우리 마법쟁이부터 처리해볼까.”
진의 살기가 내게 향한다. 나는 그의 복부를 쳐다봤다. 내장 사이로 언뜻 비친 검은색 빛과 익숙한 성질의 마나.
“…알겠다. 흑마법 시술을 받았군.”
흑마법식의 인체 개조. 장담할 수 있다. 놈의 내장과 뼈에는 흑마법이 새겨져 있을 거다.
“오, 뭐야. 이렇게 바로 눈치를 깐다고? 흑마법사도 잘 못 알아보던데.”
흑마법에 대해 연구하지 않았다면 못 알아봤을 거다.
‘인간을 저렇게 개조하려면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하는 거지?’
적어도 달인급이라는 건 확실했다.
진을 생포해 해부해보고 싶은 욕구가 치밀어 오른다. 정교한 마법과 그 부산물은 자세히 관찰해보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도움이 될 테니까.
“자, 자네들도 보물을 원하는가? 조, 좋네. 보물은 삼등분으로 나누지. 빨리 저 마법사를 죽이게!”
해밍턴 교수의 반응은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시끄러워, 교수. 팔 하나 잘라버리기 전에 아가리 닥치고 있으라고.”
진이 매섭게 노려보자 해밍턴 교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가 거검을 허공에 붕붕 휘두르며 내게 다가온다.
“너 이 새끼, 마법쟁이. 넌 처음 볼 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상도덕도 없는 새끼가 재물에 눈이 멀어 같은 용병의 뒤를 쳐? 이게 알려지면 네 평판은 끝이야. 뭐, 그 전에 뒈지겠지만. 뒈진 뒤에도 네 명성은 깎아 내려주마.”
“네놈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가 지금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했나? 마법사에게 시간을 주는 건 죽여 달라는 것과 마찬가지지. 좀비 용병이라 했나? 이걸 맞고도 살아남는지 한 번 보지. 죽어라, 진 엑스텀!”
머리 위, 가장 높은 곳에 푸른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직경 수십 미터에 달하는 마법진에서는 강렬한 스파크가 튀었다. 마법진의 중심, 압축된 번개가 천둥소리를 내며 으르렁거렸다.
나는 진을 쳐다보며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진이 얼굴을 구기며 거검을 들어 방어하려 했다.
[썬더 볼트]
거대한 벼락은 진이 아니라 조쉬에게 떨어졌다.
페이크는 제대로 먹혔다. 라이플을 내게 겨누며 빈틈을 노리고 있던 조쉬는 아무런 대비 없이 썬더 볼트를 맞아야 했다.
충격음이 공간을 뒤덮고, 전자기가 허공을 가득 채운다. 숨을 들이마시면 폐가 짜릿해진다.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내겐 힘이 되어주고 있다. 내가 전격계 마법사라서? 그것도 있지만, 내 이능이 뇌전이라 그렇다.
‘게다가 폭포수까지 흐르고 있지. 전격계 마법사로서. 아니, 썬콜로서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조건이 맞춰졌다.
이다음에 쓸 썬더 볼트는 더 강력하리라.
“오, 오오! 마법사! 난 자네를 믿고 있었다네!”
해밍턴 교수가 호들갑을 떨었다. 무시했다. 마지막에는 저 여자를 죽일 테니까.
“이 자식이…!”
진의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조쉬가 죽었으니 전황이 불리하다는 걸 알고 숨겨 놓은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흑마법의 일종이군. 일시적으로 신체를 강화하는 쪽인가.’
빠르게 결판을 내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사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쿠구구구구구구궁!
고대 유적 전체가 진동한다. 나는 염력으로 허공에 몸을 띄웠다.
“도망가는 거냐?!”
“멍청한 놈. 뒤를 봐라. 문이 열리고 있다.”
조쉬가 죽음으로써 제물 다섯이 바쳐졌다. 어느 대마법사의 악질적인 장난은 어느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드, 드디어 보물이 모습을 드러내는가!”
5개의 문이 동시에 열린다. 문 안은 새까만 공간이었다. 해밍턴 교수가 품에서 꺼낸 손전등으로 문 안쪽을 비췄으나,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다. 되려 빛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열린 문 속에서 붉은 드래곤이 모습을 드러냈다.
“드래곤?!”
진이 경악했으나, 곧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야, 어린놈이잖아. 게다가 정상인 상태도 아니군.”
붉은 드래곤은 작았다. 인간을 기준으로 하면 2~3배 정도 크긴 해도, 드래곤 기준에서는 어리디어린 해츨링이다. 게다가 몸 곳곳에 상처가 있었다. 날개는 찌어졌고, 다리와 꼬리는 썩었으며, 눈과 입에는 피와 고름이 흐르고 있었다.
“씨발. 대박을 치니 욕이 나오는군. 상태가 좋지 않아도 드래곤은 드래곤. 그 시체만 팔아도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고! 하하하하!”
진이 웃는다. 드래곤의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지껄일 수 있는 소리였다. 옆에 있는 해밍턴 교수도 두 눈을 빛낸다. 드래곤의 가슴팍을 보는 것으로 보아 드래곤 심장을 노리고 있는 게 확실했다.
나는 황금 팔찌를 낀 손을 드래곤을 향해 뻗었다.
“리커버리.”
황금 팔찌가 부서져 황금빛가루로 변한다. 황금빛가루는 드래곤에게 스며들었다. 드래곤의 찢어진 날개가 복구되고, 썩은 살점은 원래대로 돌아온다. 죽어가던 두 눈에 생기가 생긴다.
“크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이 적의 섞인 포효를 내질렀다.
“이런 미친 씨발놈이!!! 진짜 돌아버린 거냐, 마법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