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6화 > 1916. 다크 문
“이런 미친 씨발놈이!!! 진짜 돌아버린 거냐, 마법쟁이!!!”
진이 바락바락 외친다. 나는 허공에서 그를 내려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나를 신경 쓸 여유가 있나?”
분노해서 소리치른 건 멍청한 짓이었다. 소리쳐서 기분은 나아졌을지 몰라도 레드 드래곤의 시선을 끄는 꼴이 되었으니까.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하물며 저 레드 드래곤은 성격 나쁜 대바법사에 의해 준비된 파수꾼이다. 인간을 눈앞에 두고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입을 벌린 레드 드래곤이 진을 향해 돌진한다. 레드 드래곤의 다리는 짧은 것에 비해 굉장히 빨랐다.
“망할 도마뱀 새끼가!”
드래곤의 머리를 향해 거검을 휘두른다.
까앙!
거검은 튕겨 나갔다. 드래곤이 머리를 비틀어 머리에 돋아난 검은색 뿔로 검을 받아친 것이다. 진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검에 마나가 실리니 위력이 강해졌다. 레드 드래곤의 비늘을 뚫고 상처를 줄 정도로.
‘해츨링이니 그나마 상대하는 거지. 성체 드래곤이었다면 볼 것도 없이 끝장났겠지.’
드래곤은 지능이 높다. 마법까지 사용한다. 허나 눈앞에 있는 드래곤은 무식한 몬스터처럼 싸우고 있었다. 진이 드래곤을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이유였다.
“마법쟁이!! 끝까지 보고만 있을 거냐?!”
“뻔뻔한 놈이군. 날 죽이려고 했던 주제에 이제와서 도와달라고? 얼굴에 철판을 깔아도 너무 깔았군.”
“닥쳐! 내가 이놈에게 죽으면! 이놈이 네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할까? 절대 아니지! 이 포악함을 봐라! 이놈은 여기에 있는 인간을 모조리 죽일 거다! 그러기 위해 나타난 놈이다!”
“아아. 그래. 네 말이 맞군. 죽기 싫으니 도와주마. 라이트닝.”
손을 앞으로 뻗으며 술식을 전개한다. 손바닥 아래로 동그란 마법진이 펼쳐졌다가 사라진다.
파지지지직!
허공에 녹아있던 전자기가 반응하며 번개가 되어 아래로 내려쳤다. 공격 대상은 드래곤뿐만이 아니라 진 또한 포함되었다. 진은 위에서 떨어지는 번개에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굴렀다.
“축구공처럼 바닥을 구르는군. 전생에 축구공이었나?”
“이 개새끼가 진짜!!”
진이 포효한다.
그의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반짝인다. 그의 존재감이 강렬해진다.
‘솔리드인가.’
원작에서는 육체 계열 클래스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각성기다. 일시적으로 모든 능력치를 상승하고 선택한 속성을 부여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게임이 현실이 된 지금은 잠재력과 가능성을 일부 개방하는 각성 능력이었다.
솔리드는 개인마다 차이가 심해서 똑같은 능력은 하나도 없다고 보면 된다.
‘일종의 비장의 수단이기도 하니 쉽게 볼 수 있는 건 아니지.’
솔리드를 사용한다는 건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것과 같으니까.
진의 몸이 변한다. 피부는 새까맣게 변하고, 두 눈에는 새빨간 빛이 줄줄 새어 나온다.
‘부정적인 마나, 흑마나가 느껴진다.’
솔리드의 근본은 잠재력이다. 다시 말해 진은 흑마법에 적성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 흑마법으로 신체를 개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거다.
“이 빌어먹을 도마뱀을 죽이고, 너도 죽여주마.”
“어, 그래. 라이트닝.”
파지지직!
번개가 지상으로 떨어진다. 진은 이를 빠득빠득 갈며 번개를 쳐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드래곤을 향해 거검을 휘두른다.
위험을 느낀 것일까. 드래곤은 날개를 펼쳐 위로 날아올라 거검을 피하며, 입을 벌린 뒤 숨을 잔뜩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드래곤하면 가장 유명한 브레스다. 레드 드래곤의 숨결은 화염이 되어 지상을 휩쓸었다.
“아아아아아악!”
진이 비명을 지른다. 온몸에 흑마나를 둘러도 레드 드래곤의 화염에서 멀쩡할 수는 없었다. 드레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는 모든 걸 녹이고 태운다고 알려져 있으니.
‘그런데도 버틴다라.’
딱히 진이 특출나거나 한 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저 레드 드래곤은 가짜니까.
“내가, 내가 이렇게 죽을 것 같나!!”
진이 불을 뿜고 있는 레드 드래곤을 향해 솟구쳤다. 그대로 레드 드래곤의 머리를 후려치려고 했으나, 레드 드래곤이 급발진하며 역으로 진의 몸통을 입에 물었다.
까득!
드래곤의 이빨이 그의 몸에 박히고, 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아아아아아아악!”
‘끝났군.’
진의 솔리드가 해제됐다. 근육도 줄어들었다. 몸에서는 피와 내장이 줄줄 흐른다. 그의 생명력이 꺼져가는 게 실시간으로 눈에 보였다.
레드 드래곤의 눈동자는 내게 향했다. 드래곤은 공중을 돌면서 진을 씹다가 그 시체를 내뱉었다. 그리고 내게 입을 쩍 벌린다. 브레스를 쓰려는 것이다. 나는 준비하고 있던 마법을 사용했다.
[아이스 포그]
냉기를 사방에 흩뿌린다. 냉기에 닿은 것들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폭포가 얼어붙고 지하수는 빙판이 되었다. 공기를 빨아들이던 레드 드래곤은 켁켁 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뜨거움의 상징인 레드 드래곤은 아이러니하게도 냉기에 약했다.
적어도 냉기로 가득 찬 이곳에선 화염 브레스를 쓰진 못할 것이다. 이제 드래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육탄전.
“크아아아아아아아!”
드래곤이 피와 살점이 묻어 있는 입을 벌리며 날아온다.
최근에 연금술을 수련하며 알게 된 게 있다.
내가 가진 이능은 뇌전, 찰나, 성감 고조가 전부인 게 아니란 거다.
‘유성검.’
저 허공에서 검 하나가 만들어지더니 그대로 드래곤을 향해 낙하한다.
‘속성부여, 냉기.’
유성검이 얼어붙는다. 새파란 냉기를 줄기차게 내뿜는다. 보기만 해도 몸이 얼어붙을 것처럼 차갑다.
위험을 감지한 드래곤은 방향을 확 비틀었다. 그 움직임은 굉장히 날렵했다.
나는 염력을 사용해 유성검을 조종했다. 내 의지에 따라 유성검이 드래곤의 뒤를 쫓는다. 유성검이 워낙 크다 보니 염력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았다. 정신력은 괜찮은 마나가 빠른 속도로 소모되고 있었다.
‘그거나 해볼까.’
유성검이란 이능을 각성한 날. 나는 새로운 이능을 각성했다. 아니, 이게 이능인지는 좀 애매했다. 그건 일종의 무술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본능적으로 그것의 이름을 떠올렸다.
‘뇌천류(雷天流).’
뇌천류는 무술이었으며, 기공이었다. 기공은 어떻게든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술은 영 아니었다. 나는 몸을 움직이는 것에 아예 재능이 없었다. 그리고 뇌천류는 검을 이용한 무술이었다.
‘처음에는 당황했지. 뇌천류를 알고 있어도 직접 써보면 영 아니었으니까.’
육체가 머릿속의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소프트웨어는 최신인데, 하드웨어는 30년 전의 것이라 호환 자체가 안 된다고 할까.
‘육체가 아닌 염력을 이용하면 이야기는 다르지.’
염력을 이용하면 검을 내 뜻대로 다룰 수 있었다.
‘조작한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유성검이 드래곤에게 다다른 순간, 나는 염력으로 유성검을 휘둘렀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검날이 번개처럼 번뜩이고 드래곤을 반으로… 가르지 못했다.
‘음.’
뇌천류는 육체에 기반을 둔 무술. 염력으로 조종한다고 해서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근육의 기묘한 움직임과 자세를 통해 뻗어 나오는 힘을 염력으로 100% 재현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실패했군. 연습 부족이라 해야 하나.’
당장 급하지 않으니 상관없었다.
공격을 피한 드래곤은 의기양양하며 내게 일직선으로 날아온다. 뇌천류에는 검술뿐만이 아니라 기공도 있었다.
염력을 이용해 허공에 뇌전으로 꽃을 그린다. 총 12개의 꽃봉오리는 회전하며 피어났다.
뇌천류(雷天流) 만뢰개화(卍雷開花).
사방에 번개의 꽃이 피어난다. 번개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드래곤의 몸을 얽어맸다. 내가 가볍게 손을 흔들자 번개의 꽃이 펑펑 터졌다.
12개의 충격파를 고스란히 맞아야 했던 드래곤은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쿵 떨어졌다.
“크르르르….”
상처투성이의 드래곤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결착은 났다. 나는 느긋하게 마법을 준비했다.
[썬더 볼트]
단두대가 떨어지듯, 거대한 벼락이 드래곤에게 떨어졌다.
나는 시체가 된 드래곤의 앞으로 내려왔다. 가까이서 보니 감탄이 나왔다. 과연 드래곤. 멋들어지게 생겼다.
“수고했네, 유진 마이어.”
등 뒤에서 해밍턴 교수가 내게 말했다.
“휩쓸려 죽은 줄 알았는데 살아 있었나?”
“이것저것 준비해둬서 말일세.”
그녀는 손바닥을 펼쳐 내게 겨누었다. 손바닥에는 기괴한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게 궁금한가 보군. 이건 3년 전 고대 유적에서 얻은.”
“악마의 손. 정확하게는 악마의 힘이 담긴 손이지. 일회용이지만, 공격용으로 쓴다면 6급 공격 마법에도 필적한 위력을 보여주지.”
“…설명할 시간을 줄였군. 죽기 싫으면 거기서 비키게.”
“반대로 말하는군. 죽여야 하니 비키길 원하는 거겠지. 드래곤의 시체가 손상 입으면 안 되니까.”
“마법사라 눈치가 빠르구만. 지금 난 조금 후회하고 있네. 자네를 먼저 죽였어야하지 않나 하고 말일세.”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소용없다.”
“그건 그렇지. 어서 비키게. 그게 아니면 손해도 감수하고 자네를 죽여야 하니. 아, 배리어 마법을 쓸 시간을 버는 겐가? 소용없다고 말해주고 싶군. 이 악마의 손은 마법을 무시하는 힘이 있으니 말일세!”
“교수. 끝까지 모르는 것 같으니 가르쳐주지. 이건 드래곤이 아니다.”
“뭐?”
나는 드래곤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어느 성격 고약한 마법사가 도굴꾼들에게 골탕먹이기 위해 손을 써둔 물건이지.”
그 몸체에 흐르는 술식과 마나의 흐름을 강제로 해제한다. 드래곤의 묵직한 몸이 연기처럼 사라지고, 내 손에는 고급스러운 흑청색 케이프 코트 한 벌이 들려 있었다.
“그건 설마…?!”
“멀린의 넘버즈 아티팩트. 이건 그 여섯 번째다.”
No.6 환몽.
전설의 대마법사 멀린의 아티팩트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