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1화 > 1921. 다크 문
기름과 함께 수감실 내부의 불길이 활활 타오른다.
깜짝 놀란 수감자들은 어떻게든 수감실의 불길을 끄려고 했다. 발로 밟고, 죄수복을 펄럭이며 공기를 차단해 불을 끄려고 한다.
평범하게 타오르는 불이었다면 그대로 불이 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기름에 붙은 불이었다.
“아아아아악!”
“불이 안 꺼져!”
“씨발! 살려줘! 살려줘!!”
“뭘 보고만 있는 거냐!! 간수! 간수! 여기 와서 불 끄라고!”
죄수들은 감옥과 함께 산채로 불타오른다. 나는 무표정하게 그 광경을 지켜봤다.
“후, 후후후. 후후후후후….”
낮은 웃음소리는 안체의 것이었다. 그녀가 웃고 있었다. 양손으로 자기 몸을 구속하듯 붙잡으며 황홀하다는 듯이 웃는다. 몸까지 덜덜 떨고 있었는데 팔 사이로 툭 튀어나온 풍만한 젖가슴에 자꾸만 시선이 향했다. 나는 애써 그녀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했다.
“아이… 젖어… 버렸네요.”
“…….”
불을 보고 젖을 게 있었던가. 뭐가 젖었냐고 질문하려는 것을 꾹 참고 카브라힘의 보스를 쳐다봤다.
방금까지 무게를 잡고 비아냥거리던 놈은 어디에도 없다. 지금은 살기 위해 어떻게든 불을 끄려 하고 있다. 이불로 공기를 차단하려 하거나, 변기물을 이용해 불을 끄려 하거나. 모두 소용없는 짓이었다.
‘마나를 쓸 수 있었다면 모를까.’
르멘 교도소의 죄수는 마나를 쓰지 못한다.
죄수는 기본적으로 교도소에 오기 전에 마나 제거 시술을 받는다. 간에 마나 제거 마법진을 새기는 것이다.
다급하게 땀을 흘리던 그는 나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당장 멈추시오! 네가 원하는 게 있을 것 아니오?! 이러다가 교도소 안에 모든 죄수가 불타 죽소! 그걸 원하는 거요?!”
“죽는 건 너희뿐이다. 르멘 교도소의 감옥은 특수하다. 불을 지른다고 해서 쉽게 타지도 않고, 옮겨붙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불을 끄는 스프링클러도 없었다.
“큭. 말하시오! 원하는 게 뭐요?!”
“죄수는 벌을 받아야 한다.”
“맞아요. 백번 옳으신 말이죠.”
옆에서 안체가 맞장구쳤다.
털썩. 털썩. 수감실 내의 죄수들이 한 명씩 쓰러진다. 불타서 죽은 게 아니라 질식해서 죽은 것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버티고 있는 카브라힘의 보스를 지켜봤다.
“이 새끼가…!”
쿵!
그가 불로 달궈진 쇠창살을 양손으로 붙잡았다. 치이이익! 양손이 화상을 입든 말든 쇠창살을 흔들며 죽일 듯이 날 노려본다.
“이런 짓을 벌이고도 네가 감히 무사할 줄 아느냐?!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죽더라도 카브라힘은 영원하다! 카브라힘이 네 목을 물어뜯을 것이다!”
살의와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와 내게 쏟아진다. 나는 무덤덤하게 그를 쳐다봤다.
익숙하다면 익숙했다. 군대에 있을 시절, 온갖 더러운 임무를 수행했었다. 그중에는 당연히 상대를 고문하는 일도 있었다. 고문당하고 처분당하기 직전의 상대는 날 향해 온갖 저주를 내뱉었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또 저주가 늘었군. 그런데 그거 아나? 그 많은 저주 중에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더군.”
내 동기 중에는 악에 받친 그 저주의 말들을 듣고 괴로워하던 이도 있었다. 꿈에서 나온 다라? 그러나 내 꿈에서 뒈진 놈들이 나오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몽정을 꾸는 경우는 제법 있었지만.
“이 개자식이!! 카브라힘이 두렵지 않으냐?!!”
“반대로 묻고 싶군. 너는 내가 두렵지 않나?”
“카브라힘이 너를 죽일 것이다!”
“그 전에 네가 먼저 죽을 것 같다만.”
“너의 친구와 가족을 찾아내 죽일 것이다! 카브라힘의 보복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카브라힘은 들어라!!”
그가 소리 질렀다. 교도소 내에 있는 모든 죄수들이 들을 수 있도록. 죄수들 사이에 섞여 있는 갱단원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이놈은 감히 카브라힘을 무시하고 얕봤다! 카브라힘은 그 누구에게도 굴복하지 않는다! 어금니와 발톱으로 카브라힘의 적을 찢어발겨라!!”
“아. 무섭군.”
내가 말했다. 일부러 몸까지 덜덜 떨어줬다. 놈이 나를 쳐다봤다. 조롱이라 생각했는지 얼굴이 확 구겨진다.
“무서워서 못 죽이겠군.”
[물질 변환]
기름을 소화기 분말로 바꾼다. 수감실 내부의 불꽃이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불이 꺼지자 놈이 당황했다. 나는 한 번 웃어주며 감옥 문에 열쇠를 꽂아 돌렸다. 철컥! 감옥 문이 열린다.
그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혹스러운 듯 주춤거렸으나, 이내 괴성을 내지르며 내게 달려들었다.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건 아니군. 뭔지 모르겠지만 무술을 배웠나.’
배틀메이지로서 당연히 무술도 배웠다. 몸을 쓰는데 영 재능이 없는지라 실전에서 효과를 보긴 어렵지만, 육체를 단련한다는 의미에서 꾸준히 연마했다.
‘갱단의 보스라고 해도 마나도 쓸 수 없고, 이미 뒤지기 일보 직전인 놈. 피할 이유가 없다.’
뻗어오는 주먹을 잡아 아래로 끌어당긴다. 동시에 놈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놈은 지푸라기처럼 손쉽게 바닥에 쓰러졌다.
“역시 갱단의 보스라는 건가. 무섭군. 정말 무서우니 안 무섭게 만들어야지.”
[물질 변환]
아직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길쭉한 칼날로 만들었다. 손바닥을 휘두른다. 칼날이 놈의 허벅지를 벴다. 두 다리를 잃은 놈이 비명을 질렀다.
“끄아아아악!”
메아리치는 비명.
“시끄럽다. 다른 죄수들에게 민폐잖냐.”
퍽!
군화로 놈의 머리를 밟았다.
퍽퍽퍽퍽!
적당히 힘을 줘서 연속으로 밟았다. 밟은 상태에서 발을 비틀었다. 놈의 머리가 짓이겨진다.
“중위.”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 놈을 지켜보고 있던 중위를 불렀다.
“네. 소장님. 명령하실 거라도?”
기분 탓일까. 그녀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느껴졌다.
“…의사를 불러와라. 상급 포션도 가져오도록. 그게 아니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죽겠군.”
“아. 정말 안 죽이려고요? 이놈은 이래 보여도 카브라힘의 보스에요. 개인적으로 죽이는 편이 깔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르멘 교도소의 새로운 마스코트가 될 몸인데… 죽이면 안 되지. 아, 참. 교도소 내에 있는 카브라힘 갱단원의 심문을 중위에게 맡기고 싶군.”
“심문이요?”
“싫나?”
“그럴 리가요. 심문은 제 전문이죠. 맡겨만 주세요. 근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글쎄. 그건 생각 안 해봤군.”
“아하하하하하하!”
그녀가 허리를 젖히며 웃는다. 풍만한 가슴이 푸릉푸릉 흔들렸다.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은 그 자극적인 광경에도 침묵했다. 그저 두려움이 섞인 눈으로 이쪽을 쳐다볼 뿐이다.
***
르멘 교도소.
원래부터 평판이 좋지 않은 곳이다.
갱단, 마피아, 반역자, 밀수꾼 등등 온갖 악질적인 범죄자가 수감되는 곳이니까.
르멘 교도소는 제국의 쓰레기 처리장이었다. 재활용도 불가능한 온갖 쓰레기들을 이 교도소에 밀어 넣는다. 그리고 관심을 끈다. 그러다 가끔 생각나면 쓰레기를 소각한다. 그것의 반복. 꿈도 희망도 없는 제국 최악의 교도소.
제국 군인들에게 유명한 좌천지역이었고, 달리 지옥 같은 곳이라고 말한다. 갱단 간의 암투에 간수가 휘말리는 건 당연하고, 오늘만 사는 죄수들은 횡포를 부려 관리하기가 힘들었다. 이곳에 부임 된 교도소장은 대부분 죽어서 밖으로 나온다.
죄수들은 온갖 이유로 교도소장을 죽인다. 갱단의 영향력, 죄수들의 권리, 단순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 등등으로.
르멘 교도소의 간수들은 바짝 긴장하고 죄수들을 대했다. 얕보이지 않으려 하면서도 죄수들의 요구를 적당히 들어주며 공존을 택했다. 그게 죄수와 간수간의 평화를 위한 방법이었으니까.
하지만 새로운 교도소장이 르멘 교도소에 부임하고 모든 것이 바뀌었다.
지옥 같은 곳이 지옥이 되었다.
특히 죄수들은 천국에서 지옥 가장 깊은 곳으로 떨어졌다.
새벽 5시. 교도소 내에 방송이 울린다.
-기상.
새로 부임한 교도소장, 레온 슈나이더의 목소리가 교도소 전체에 울린다.
죄수들은 감옥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은 천장에 걸린 CCTV를 두려움 섞인 눈으로 바라보고는 수감실 정리를 시작했다.
일주일 전과 비교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르멘 교도소의 죄수들은 자기가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났다.
-아침 점호 실시.
감옥 밖, 복도에 선 간수들이 점호를 실시했다.
“1번 방.”
“1번 방 총원 여섯! 이상 무!”
“2번 방 총원 일곱! 이상 무!”
“3번 방 총원 여섯! 이상 무!”
아침 점호는 무탈하게 이어졌다. 흔히 말하는 방에서 가장 높은 죄수, 방장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아침 점호에 임했다. 아침 점호에서 조금이라도 실수하는 순간 발가락이 잘리기 때문이다. 발가락이 없으면 손가락이 잘린다.
“몸이 아픈 사람 있나?”
“없습니다.”
있어도 없어야 했다.
저번에 감기에 걸려 열이 난 죄수가 있었다. 새로 온 미친 교도소장은 열이 나면 식혀야 한다고 얼음물에 죄수를 쑤셔 넣었다. 그렇게 죄수 하나가 한여름에 얼어 죽은 것이다.
당시 교도소장의 말이 가관이었다.
‘이런. 감기가 심해 죽었군.’
상식적으로 감기에 걸렸으면 감기약을 처방해야 하지 않나? 학교 교문을 넘어본 적 없는 죄수들도 알고 있는 상식을 교도소장만 몰랐다.
몇몇 죄수와 간수들은 그 행동의 이유를 알고 있었다. 죄수에게 감기약을 쓰는 게 아까운 것이다.
“오늘도 이상 없습니다. 아침 배식을 실시하겠습니다.”
간수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곧 간수가 아침 식사를 배식했다. 수감실 하나에 통 하나. 통이 들어오자마자 끔찍한 냄새가 감옥을 가득 채운다. 그건 분명 생선 비린내였다.
뚜껑을 열자 끔찍한 스프가 드러났다. 대충 토막 난 생선, 말라비틀어진 야채, 진흙처럼 끈적거리는 국물.
오늘도 최악의 식사였다. 심지어 저녁 식사도 비슷할 것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점심은 없었다.
‘빌어먹을. 이전에는 그래도 먹을만한 빵과 스프가 나왔었는데….’
‘내 형기가 20년… 15년하고도 7개월이 더 남았는데 앞으로 이딴 음식을 매일 두 번씩 먹어야 한다고?’
‘누가…. 누가 교도소장 좀 죽여줘. 제발…!’
죄수들은 억지로 식사를 해야 했다. 맛없다고 남길 수는 없었다. 남기면 구더기 낀 썩은 음식을 먹어야 하니까.
-식사에 불만이 많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예산이 부족해서 어쩔 수 없다. 음식을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먹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