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3화 > 1923. 다크 문
한바탕 일을 벌이고 나니 교도소가 조용해졌다.
카브라힘의 보스인 마티아스는 다리뿐만이 아니라 팔까지 전부 잘라 독방에 처박아뒀다. 혀를 잘라 자살 시도를 몇 번 하려고 했기에 입에 재갈을 물렸다.
그전에 놈은 레온 슈나이더를 습격하라고 사주한 자에 대해 말했다. 갱단 밖에 있는 그의 부하가 의뢰받았다고 한다. 얼굴을 가리고 있어서 어떤 자인지 알 수 없었다. 의뢰자의 신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정보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것.
‘높은 확률로 부교도소장인 케빈 대위겠지. 그게 아니더라도 케빈 대위와 연관 있는 군인일 가능성이 크다. 직속 부하라던가.’
케빈 대위는 그간 교도소에서 해먹은 게 많았다. 예산에 손을 대는 것은 물론이고 죄수로부터 뒷돈을 받아 챙긴 듯했다. 문제는 장부를 뒤져도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 그리고 뒷배로 최소 대령급의 군인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
‘뒷배를 알아낸 뒤 죽인다.’
그냥 죽이고 떠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허나 나는 교도소장 노릇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얻는 것들이 많아 쏠쏠하다.’
대놓고 예산을 횡령해도 뭐라 하지 않는다. 르멘 교도소가 변방에 있어 제국군의 관심을 덜 받는다는 이유가 컸다. 직감적이지만 부교도소장이 뒷배와 함께 손을 써놓은 것 같다. 처형한 죄수만 30명이 넘어가는데도 제국군에서 아무 반응이 없는 게 그 증거다. 르멘 교도소는 고립되어 있다. 확실하다.
‘죄수들에게서 들어오는 뇌물과 가끔 기업들에서 들어오는 인체 실험 의뢰…. 교도소장이라는 의자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 1년에 수십억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
느낌이 싸하다 싶으면 월드 도어를 이용해 네오 런던으로 도망치면 그만이다.
하이 리턴. 로우 리스크. 다시 말해 개꿀이었다.
‘무엇보다 죄수들을 가지고 마법 실험을 할 수 있어.’
원소 마법, 연금술, 흑마법 등등 거리낌 없이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이곳에선 내가 왕이다. 내가 뭘 하든 누구도 막을 수 없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교도소장실을 나섰다. 오늘은 남자 죄수들이 아닌, 여자 죄수들의 수감실을 둘러볼 예정이었다.
여자 죄수 수감동으로 들어간다. 꾸질꾸질한 남자 수감동과는 냄새부터가 달랐다. 썩 좋은 냄새라고는 할 수 없으나 그래도 시커먼 남자들이 모여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일찍 오셨네요.”
제 3 간수장, 안체가 눈웃음 지으며 인사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몸을 훑어봤다. 여전히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도발적인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여자 수감동은 조용하군.”
“남자 수감동에 비해 규모가 적은 편이니까요. 그래도 흉악한 여자들이란 건 안 변해요. 르멘 교도소에 들어오는 죄수들은 최소 20년 이상을 선고받은 흉악범이니까요.”
여성 수감자가 적긴 했다. 수감자 중 80%가 남자고 불과 20%만이 여자니까. 수로 따지면 300명 정도.
“그리고 최근에 일어난 일 때문에 최대한 사리고 있죠.”
고개를 끄덕인다.
교도소 전역에 공포가 퍼졌다. 의도했던 대로다. 공포는 죄수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는 목줄이 될 것이다. 간수들에게도 마찬가지고.
“이쪽으로 오세요. 아, 남자가 들어오는 건 오랜만이라 죄수들이 좋아하겠네요.”
“남자 간수가 오는 경우는 없나?”
“지금처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죠. 혹시 여자라고 해서 성욕이 없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여자도 인간이다. 성욕은 당연히 있겠지. 애초에 사람마다 성욕은 다른 게 아닌가.”
“보통 성욕하면 남자들만 떠올려서 말이죠. 여자라고 해서 성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특히 이곳에 갇힌 여자는 성욕이 더 심해요. 할 게 없다 보니 그런 쪽으로 가게 되거든요. 불시 검문을 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물건이 뭔지 아세요?”
“흉기인가?”
돌을 갈아 만든 작은 칼 같은 것들. 이곳의 남자 죄수들은 기회가 생기면 무기를 만들려고 했다. 교도소 내의 조직 간의 항쟁이 발생했을 때 사용하기 위해.
“아뇨. 딜도예요. 이따만한 딜도도 봤다니까요?”
안체가 두손을 동그랗게 말면서 웃는다. 원은 직경 10cm가 넘어 보였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 크기의 물건을 딜도로 사용할까? 내가 불신의 시선을 보내자 안체가 깔깔 웃는다.
“못 믿으시네. 의외로 이런 쪽으로 순진하시나?”
“아무리 그래도 너무 크지 않나.”
“증거도 있어요. 보여드릴게요.”
간수 관리실로 들어갔다. 몇몇 여성 간수들이 나를 보고 화들짝 놀라 경례를 올린다. 나 또한 경례를 올리며 그녀들의 경례를 받아줬다.
그녀가 손으로 한곳을 가리켰다.
“최근에 압수한 물건들이에요.”
작은 칼 같은 것들이 있었으나, 절반 이상이 딜도였던지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신음을 삼켰다. 딜도 대부분 사이즈가 컸다. 몇 개는 내 자지보다 훨씬 컸다.
“정말이지. 저것들을 돌아가면서 쓴다니까요? 아까 말한 건 저거예요. 역대급이라 보관하고 있었죠.”
존나게 큰 딜도가 있었다. 실물로 보니 내가 더 당황스러울 정도로 큰 딜도.
“저게 들어가긴 하나?”
“애도 낳는데 못 들어갈까요?”
안체가 낮께 웃는다. 다른 여간수들은 얼굴을 붉혔다. 대화가 다소 민망한 모양이다. 나는 딜도의 아래쪽에 적힌 글귀를 쳐다봤다.
“하드 스노우?”
“그 아이의 이름이죠. 눈 내리는 날에 태어났거든요.”
“이걸 만든 여자는 뭐 하는 여자였지? 지금 수감중인가?”
“아뇨. 반년 전에 처형당했어요. 제가 처형을 집행했죠. 어디서 반입했는지 마약에 잔뜩 취해서는 하드 스노우위에서 허리를 흔들더군요. 제가 본 미친년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미친년이었어요. 이렇게 증거 사진까지 남겨뒀죠.”
“…….”
그녀가 꺼낸 사진을 본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못생기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평범한 여자가 알몸으로 성기에 커다란 딜도를 박아 넣고 있는 광경이었다. 마약에 취했는지 표정은 말도 아니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눈동자는 완전히 맛이 갔다. 보지는 당연히 한계까지 벌어져 있었다. 아랫배는 딜도 모양으로 볼록 튀어나왔고.
“이쯤 되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수감된 건지 궁금해지는군.”
“간살이요. 남자 65명을 간살하고 죽였죠. 그중 24명은 10살도 되지 않는 어린아이였어요. 남자의 정기를 빼앗는 비전 마법을 익힌 마법사였어요.”
인신 공양을 기본으로 하는 마법도 존재하는 세계다. 남자의 정기를 필요로 하는 건 놀라울 것도 없었다.
이후에 여자 수감동을 알아봤다. 여자 죄수들의 시선이 뜨겁다. 날 두려워하면서도 흥미 깊은 눈으로 쳐다본다. 레온 슈나이더의 외모가 제법 잘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여자 죄수들의 미모에 따라 감옥을 분류한 것이다.
“외모로 죄수들을 차별한 건가?”
“저도 그러고 싶지 않지만… 미모가 뛰어나다는 것만으로 표적이 될 수 있거든요.”
“표적?”
“감옥은 신기한 곳이에요. 가만히 있어도 동성애자가 되는 곳이죠. 그리고 여자들의 질투는 소장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대단하고 끔찍하죠. 뭐, 소장님이 마음에 안 드신다면 바꾸도록 하죠.”
“아니, 분류하는 게 나을 것 같군. 보통 어느 쪽이 문제를 일으키지?”
“못생긴 쪽이에요. 걔들은 정말 거칠거든요. 예쁜 애들은 주로 사기꾼들이 많아요. 아, 연예인도 있는데 보실래요?”
“연예인이 여기에 있다고?”
“네. 학력 위조, 도박, 마약, 그리고 중장에게 사기를 치다 걸렸죠. 형량은 45년. 교도소를 나갈 때쯤이면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있겠죠. 뉴스까지 타서 꽤 유명했는데… 모르세요?”
“들어본 것 같기도 하군. 특별한 죄수인 것 같으니… 상담을 진행해야겠군. 가능하나?”
안체가 쿡 웃는다.
“아하. 상담 말이죠? 네. 가능하고 말고요. 이곳에서 누가 교소소장님의 말을 거절할까요. 상담 장소가 몇 개 있는데… 카메라가 고장 난 곳이 있어요. 거기로 안내해 드리죠. 문제없죠?”
“문제없다.”
상담실에 들어갔다. 깨끗한 편이었는데 피 냄새가 은은하게 났다.
안체. 그 가학적인 여자가 이곳에서 뭘 했을지는 뻔했다.
이윽고 안체가 죄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죄수는 나를 보고 되려 안심하는 눈치였다.
“즈럼 즐거운 상담시간 보내세요.”
쿵.
두꺼운 문이 닫히고 상담실에는 나와 죄수만이 남았다. 나는 죄수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쳐다봤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어두운 금발은 푸석푸석했고, 눈은 퀭했다.
수감 생활이 고생스러웠는지 피부도 거칠어 보인다. 여러모로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타고난 미모는 빛이 바래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녀였다. 몸매도 뛰어나다. 가슴은 봉긋 솟아 있고, 허리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굴곡은 탐스러웠다. 골반은 가슴보다 커 보였다. 촌스러운 줄무늬 죄수복이 괜찮은 옷으로 보일 만큼.
“이름이 뭐지?”
“내가 누군지 모르시나요?”
“감히 중장에게 사기를 친 연예인인 건 안다. 가수였나?”
“…산드라 마우어예요. 가수죠. 상담한다더니 흔한 서류 한 장 없군요.”
산드라는 도도함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걸어와서는 내 앞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수갑을 찬 양손은 보란 듯이 위로 올린다.
“그래. 산드라. 두 눈이 퀭한 걸 보니 죄수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한 모양이군.”
“끔찍해요. 여기 레즈 년들이 얼마나 많은지…. 보호비가 없었다면 전 자살했을 거예요.”
“보호비?”
“갱단에 보호비를 내고 보호받고 있어요. 덕분에 괴롭힘은 받고 있지 않죠.”
“그래도 평화롭지는 않은 모양이군.”
“……그 돈도 떨어지고 있어요. 친구가 제 돈을 가지고 도망쳤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감옥 좀 옮겨주실래요? 기왕이면 혼자서 쓰는 감옥이면 좋을 것 같네요. 아, 독방은 싫어요. 거기 있으면 자살 욕구가 3배로 증폭되거든요.”
“하. 내가 누군지는 알고 하는 말인가?”
“네. 새로 부임하고 한 달도 되지 않아 교도소를 휘어잡은 신임 교도소장이시잖아요. 그리고 남자죠. 교도소장님이 미친년의 방에 계신 순간부터 뭘 원하는지 알았어요. 그리고 거부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죠. 그러니 차라리 거래를 원해요. 소장님도 억지로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