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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26화 (1,706/2,000)

Chapter 1926 - 1926. 다크 문

그는 가방을 든 군인이었다. 반사적으로 계급을 확인했다. 오망성 하나. 나랑 같은 소령이었다. 소속을 뜻하는 마크도 있었다. 6군단 소속이다. 같은 계급이라도 저쪽이 급이 더 높았다.

나는 이상함을 느꼈다.

‘혼자서 왔다고?’

군대에서 일했기에 안다. 군대의 기밀 물건을 빼돌리는 일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특히 2억 크레딧이나 하는 물건이면 더욱더.

‘거래 장소에 무슨 일이 생길지 알고 혼자 오는 거지?’

탐색 마법을 사용하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지금 사용하면 거래 자체가 틀어질 수 있었다. 적어도 물건을 손에 넣어야 한다. 그게 가짜라도 진짜일 확률은 무시할 수 없으니까.

‘이럴 때는 적이 숨어 있다고 가정한다.’

언제든지 배리어와 찰나를 사용할 준비를 끝마쳤다.

“물건을 볼 수 있나?”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군인에게 물었다.

“이쪽부터 확인해야겠다. 2억 크레딧은 준비됐나?”

나는 가방을 허공에 던졌다. 염력으로 가방을 허공에 띄우고 잠금을 풀었다. 가방이 열리고 가득 담긴 현금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마법처리가 되어 있는 가방을 열었다. 냉기와 함께 물약병 하나가 떨어졌다.

“기억 복구 마법 약인 플라쉬다. 온도가 높아지면 변질의 위험이 커지는 마법 약인지라 영하의 온도를 유지해줘야 한다.”

약병에는 주황색 액체가 들어있었다. 영하의 온도인데도 얼지 않는 모양이다.

‘진짜인가? 처음 보는 거라 육안으로 진짜인지 구분하기 어렵군.’

설마 함정이 아니라 진짜 거래였나?

‘그래도 케빈은 죽인다. 케빈은 살아 있는 것보다 죽어 있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케빈과의 관계는 이미 틀어졌다. 이번 거래가 무난하게 잘 끝나더라도 케빈과의 관계를 개선할 생각은 없다. 안체에게 부교도소장 자리를 약속하기도 했고.

‘플라쉬를 손에 넣자마자 눈앞의 남자와 케빈을 죽인다.’

염력으로 돈 가방을 건네주며 플라쉬로 손을 뻗었다. 차가운 냉기가 손을 타고 스며든다. 이내 손가락이 물약 병에 닿았다.

찌이이이잉!

“……!”

무언가가 손가락을 통해 스며드는 감각.

‘흑마나?’

이변을 느끼자마자 플라쉬를 움켜쥐고 뒤로 물러났다.

“이때를 기다렸다! 죽어라, 레온 슈나이더!!!”

케빈이 소리치며 내 등을 향해 권총을 겨누며 방아쇠를 당긴다.

[배리어]

방어막이 내 몸을 감싸며 총알로부터 나를 보호한다. 미리 준비하고 있던 5급 배리어.

콰직!

원래라면 총알 따위에는 흠집도 안 나야 정상인 방어막에 금이 간다.

‘배리어의 술식을 흩트리고 있군. 디스펠 효과가 있는 마탄인가.’

5급 배이러가 아니었다면 분명 뚫렸을 것이다.

오른발을 들어 땅을 강하게 밟는다. 바닥에 마법진이 번쩍이며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스파이크]

내 주위 땅에서 가시가 치솟아 케빈과 남자를 동시에 노린다.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뒤로 피했고, 케빈 또한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부교도소장 자리에 오른 만큼 기본적인 실력은 있군.’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1]

찰나로 사고속도가 가속된다. 적의 위치를 다시금 확인하고 술식을 계산한다. 전투를 질질 끌 이유는 없었다.

가장 자신 있는 5급 전격계 공격 마법인 썬더 볼트로 끝장낸다.

술식의 계산이 끝나고 마나를 움직인다. 52개의 마나 로드를 동시에 이용하며 캐스팅한다.

“쿨럭!”

피를 토했다. 마나 로드 7개가 역류하며 내상을 입은 탓이다. 나는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마나 로드 7개를 다시 조정하려면 3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즉, 기껏 짜놓은 썬더 볼트의 술식을 다시 짜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연금술사가 원소계 공격 마법을 쓰려고 했던 것도 놀라운데… 마나 역류를 10초도 안 돼서 제압하다니…. 마나 조작력만으로는 말이 안 된다. 마나 친화력이 어느 정도인 거냐?”

나 자신도 마나 친화력이 정확히 어느 정도인지 모른다. 점점 성장하고 있는 느낌인지라. 그리고 설령 알고 있더라도 순순히 대답해줄 의향은 없었다.

“약병에 어떤 저주를 건 거지?”

“그거까지 눈치챘나. 허나 틀렸다. 저주는 일주일 전부터 걸었다. 몸이 불편했을 거다. 그렇지 않나?”

저주.

최근 컨디션이 안 좋았던 건 놈의 저주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경악스러운 건 그게 아니었다.

“…이 내가 저주에 걸린 걸 몰랐다고?”

저주는 원래 은밀하다. 종류에 따라 대상은 죽을 때까지 저주를 눈치채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떻게 보면 암살에 최적인 능력이다.

“네가 뛰어난 마법사인 건 인정한다. 허나 그뿐이다. 너 정도의 마법사는 얼마든지 있다. 자만하지 마라.”

놈이 흑마법사인 건 확실하다. 대놓고 흑마나를 풀풀 풍기고 있으니 모를 수가 없다. 중요한 건 어느 계열이냐는 거다.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을 알 필요가 있나?”

“내 감각을 무시하고 저주를 건 게 인상 깊었다. 나도 널 인정해주마. 이름이 뭐냐?”

“니클라스 쿠스터다.”

“그래. 니클라스. 대체 어떤 저주를 건 거냐? 마나 역류 저주 말고. 그건 이미 역산해서 해주했다. 궁금한 건 지금도 피로를 유발하고 있는 이 저주다. 덕분에 요 일주일 동안 피곤하게 지냈다.”

저주에 대해 정말 궁금했다. 일단 알아야 다음에는 안 당할 테니까.

‘저주에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그건 내 머리카락을 썼겠지. 케빈이 내 머리카락을 구해다 갖다 바쳤을 테니까.’

궁금한 건 저주의 종류였다.

“하. 허세 하나는 굉장하군. 피곤하게 지냈다? 이미 네 정신이 마모되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아나?”

“뭔 소리지? 정신계 저주도 내게 걸었었나?”

“헛소리를. 그곳은 교도소다. 널 향한 증오와 원한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수많은 원혼이 네놈의 꿈에 나타나 괴롭혔을 터. 네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다.”

원혼.

알아차렸다.

“사령술사였나. 원혼을 이용해 내게 저주를 걸었군. 근데 나는 악몽 따윈 한 번도 꾼 적 없다.”

“끝까지 발뺌인가. 과연 네가, 네 몸에 들러붙은 원혼을 보고도 그딴 말을 지껄일 수 있을까?”

니클라스의 몸에서 새까만 흑마나가 사방으로 퍼진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성불하지 못한 영혼, 망령이다. 그 원혼들은 인간에 가까우면서도 인간이 아닌 끔찍한 모습으로 일제히 나를 쳐다봤다.

“너를 원망하는 자들이다. 네게 죽임을 당하고 그 원한이 사무쳐 성불하지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자들. 너를 죽음을 원하며 기꺼이 내게 영혼을 바치기로 한 자들이다!”

“……과연. 익숙한 얼굴들이 제법 있군.”

어린아이와 여자가 내 몸을 끈덕지게 붙잡고 있었다. 그 얼굴은 본 적 있었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그야 죽인지 한달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여자와 아이는 마티아스의 망령들이었다. 그 외에도 내게 처형당한 죄수들이 나를 증오하고 있었다.

“자.”

니클라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망자들이 일제히 반응한다.

“망령들이여, 원한을 쏟아내라! 죄인에게 죗값을!”

수백에 달하는 망령들이 내게 달려든다. 나는 차분히 배리어를 펼쳤다. 소용없었다. 실체가 없는 놈들은 배리어를 뚫고 내 몸에 달라붙었다.

“…….”

몸이 무겁다.

단지 그것뿐이었다.

니클라스는 당황했다. 그가 식은땀을 흘리며 손가락질했다.

“마, 망령들이 왜 네놈의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냐?!”

“그걸 왜 나한테 묻지. 전문가는 너 잖냐.”

“…네놈, 설마. 죽인 자들에게 어떤 죄의식도…. 일말의 관심도 없는 거냐?”

“이미 죽은 놈들이다. 왜 내가 관심을 가져야지?”

“네가 죽인 자들 중에는 어떤 죄도 짓지 않은 자들도 있다!”

“나는 이유 없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뭐? 여기 있는 망령들이 보이지 않느냐?! 네 죄의 증거가 바로 이들이다! 이들 중에는 네놈에게 억울하게 죽임당한 자들이 많다! 저 남자를 봐라! 저 남자는 카브라힘 갱단원으로 착각 당해 네게 죽임당했다!”

카브라힘 갱단과 전투. 기억에 있다. 그 잔당이 거슬려서 직접 나서서 죽였다. 그놈들의 가족들 또한 찾아내 죽였다.

“아, 기억나는군. 저 남자가 갱단원이 아닌 건 알고 있었다.”

“이제야 솔직히 말하는군. 저 남자야 말로 네가 이유없이 죽인 무고한 자다!”

“죽인 이유는 있다.”

“어떤 별명을 지껄일지 궁금해지는군. 그 이유가 뭐냐?”

“눈에 거슬렀다.”

내 대답에 그가 눈살을 확 찌푸렸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쳐다본다.

“…고작 그딴 이유로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고?”

“발치에 개미가 지나가고 있다. 움직이는 꼴이 보기 싫어서 밟아 죽였다. 그것과 마찬가지다. 거슬려서 죽였다. 아, 물론 뒤탈이 없을 거라고 확신하고 죽었다. 대외적으로는 갱단을 진압하는 과정에 휘말려 죽는 불쌍한 시민이지.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지.”

“…네놈이 상상 이상의 쓰레기라는 걸 알았다.”

“사령술사에게 그딴 말을 들으니 새롭군.”

나는 주머니에서 3급 다크홀을 꺼냈다. 흑마법사의 몸속에서 끄집어낸 장기. 저장된 흑마나를 모조리 꺼내 사용해 마법을 사용한다.

[다크 플레임]

검은 불꽃이 일어나 망자들에게 달라붙는다.

“끼아아아아아아악!”

망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내 몸에서 떨어진다. 그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소멸했다.

‘생각대로 같은 흑마법에 당하는군.’

니클라스가 다급히 망자들을 자기 근처로 불러모았다. 그는 경악한 눈으로 날 쳐다봤다.

“연금술, 원소 마법에 이어서 흑마법까지…! 대체 어떻게 사용하는 거냐?!”

“조금 연습하니 되더군. 연금술도 흑마법도 결국은 마법이란 카테고리에 속해 있으니 말이다.”

“…….”

니클라스가 인상을 팍 쓴다.

그가 양손으로 수인을 맺는다. 수인을 하나, 하나 맺을 때마다 주변의 망령들이 형체가 일그러진다.

처음 보는 사령술.

호기심을 느꼈지만, 느긋하게 감상할 정도로 여유 넘치는 상황이 아니었다.

파지직!

전격계 마법을 캐스팅하려는 순간이었다.

타아앙!

멀리서 총성을 듣자마자 반사적으로 찰나를 사용했다. 총알이 날아온다. 탄착지는 내 미간이다. 배리어를 믿고 무시하기에는 총알이 컸다. 대전차용. 그것도 마탄이다. 나는 몸을 옆으로 던져 저격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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