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927화 (1,707/2,000)

Chapter 1927 - 1927. 다크 문

지면으로 탄착한 총알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다. 고폭탄이었다. 그것도 지면이 움푹 파일 정도의 위력을 가진 탄환.

‘폭발의 흔적을 보면 화력이 한점으로 집중됐군. 대전차용이 확실하다.’

마법과 과학이 발전한 이 세계는 전차 장갑이 어마어마하게 단단하다. 그런 만큼 대전차용 탄약도 특수하다.

‘배리어만 믿고 가만히 있기에는 위험한 게 너무 많다. 판단을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훅 간다.’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계산해 저격수의 위치를 확인한다. 치소 1km 이상은 떨어져 있을 거다.

‘혼자가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이 이렇게 되면 귀찮아지겠군.’

타앙! 탕!

두 개의 총성이 거의 동시에 들렸다. 각각 다른 곳에서 날아온다. 저격수는 두 명이다. 날카롭게 감각을 벼리고 있던 나는 염력을 사용해 몸을 뒤로 끌면서 총알을 피했다.

‘저격수는 최소 2명. 아까와 달리 동시에 날아왔다. 아까는 니클라스의 엄호를 위해 급하게 쏜 거로군. 총성을 없애는 부품이나 마법이 있을 텐데 일부러 총성을 낸 이유는… 견제가 목적인가?’

생각이 깊어 진다.

안 좋았다. 지금은 전투 중이었다. 너무 깊게 생각하는 건 안 좋은 버릇이었다. 바로 생각을 끊었다. 지금 불리한 건 나다. 일단 눈앞에 있는 적부터 죽여야 한다.

[스모크]

연막을 터트린다. 일시적으로 저격이 무력화됐다.

탕! 타앙! 탕!

저격수들은 명중을 포기하고 견제만을 위해 방아쇠를 당기고 있다. 탄착지점은 내 뒤쪽이었다. 나는 스모크를 사용하자마자 앞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설마하니 마법사인 내가 직접 거리를 좁힐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다.

스모크를 뚫고 나왔다. 정면에 있던 니클라스의 눈이 커진다. 

[라이트닝 그랩]

대량의 전류가 모인 손아귀를 니클라스를 향해 뻗었다.

“늦었다.”

내 손이 그 몸에 닿기 직전, 니클라스가 말했다. 수인이 완성되고 근처에 있던 망자들이 충격파를 일으켜 나를 튕겨낸다. 이어서 망자들이 하나로 뭉치며 한 존재로 변한다.

검은색 갑주와 검은색 검을 든 기사. 그 창백한 눈길이 내게 향한다.

“…데스나이트를 지금 이 자리에서 만들어냈다고?”

5급 언데드 데스나이트. 자연적으로 발생하기도 힘든 괴물을 고작 망자 수백으로 만들어냈다. 효율적이었다. 가성비가 좋다고 해야 할까.

“보통은 불가능한 일이다. 허나 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니클라스가 말했다. 파직! 그의 소매에 감춰져 있던 팔찌가 부서져 떨어진다.

‘아티팩트를 소모한 건가. 그나저나 저격이 멈췄군.’

이놈들은 나를 죽이는 게 아닌 생포가 목적이다.

“날 살려서 데려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나?”

“원래는 널 죽이는 단순한 임무였다. 그를 위해 직접 네 정보를 수집했지. 멸망한 동양 쪽에는 나는 알고 적을 알면 백번 싸워도 백번 모두 이긴다지? 그러다 하나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지. 네놈에게 달라붙은 망자 중 한 명은 너를 레온 슈나이더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레온 슈나이더가 아닌 걸 간파했나? 그건 아닐 것이다. 간파했다면 그걸 이용해 날 뒤흔들려고 했겠지. 내 정체를 모르기에 날 생포하려는 것이다.

“갑자기 사령술에 관심이 생기는군. 망자를 통해 정보를 알아낼 수 있다면 떼돈을 벌 테니.”

“사령술이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망자의 기억과 흔적을 엿보는 건 내가 영안을 타고나서 가능한 일이지. 네놈이 사령술을 배운다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잡설이 길어졌군. 네놈은 죄수의 팔다리를 자르는 게 특기라지? 팔다리를 자른 채로 데려가 주마.”

당혹스러움은 최대한 숨긴다.

설마하니 이런 식으로 정체가 들킬 줄 몰랐다. 아니, 아직 확신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말로 내가 다른 사람이라 확신했다면 겨우 이 정도 인원만 나왔을 리 없다.

철컥!

데스나이트가 한 발 앞으로 내디딘다.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다. 나는 준비한 마법을 사용했다.

[프로스트]

쩡!

데스나이트의 몸이 순식간에 얼어붙는다. 

“데스나이트를 얕보는군. 겨우 그 정도로 막을 수 있을 것 같나. 그리고 넌 정말로 레온 슈나이더가 아닌 다른 인물인 것 같군. 레온 슈나이더는 연금술사다. 원소계 마법을 즐겨 쓰지도 않고 잘 쓰지도 못한다. 정체가 뭘지 정말 궁금해지는군.”

얼음이 깨지고 데스나이트가 움직인다. 특별한 방법이나, 니클라스의 도움을 받아 벗어난게 아니다. 데스나이트 본인의 힘만으로 부숴버린 것이다. 데스나이트가 성큼 다가와 검을 휘두른다.

정수리에서부터 사타구니까지. 내 몸은 정확히 양단되어 흩어졌다.

“할루시네이션?!”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던 니클라스가 소리친다. 다급히 주위를 둘러보며 나를 찾는다.

“계속 보고 있었는데 대체 언제부터?! 설마 스모크 마법을 썼을 때부터인가! 이 빌어먹을 놈이!”

사령술사의 단점은 언데드를 완벽히 통제한다는 점이다. 언데드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다는 건 술사만 속이면 언데드 전체를 속일 수 있다는 거다.

‘솔직히 이 정도로 쉽게 속일 수 있을지 몰랐다만.’

영안을 타고났다던가. 뭔가 지껄이지 않았던가.

‘사령술 분야 외에는 그리 대단한 눈은 아닌 모양이군.’

니클라스가 다급히 디텍션 마법을 사용했다. 나는 딱히 대응하지 않았다. 어차피 지금 나는 인간의 모습이 아니니까.

사슴벌레. 멀린의 아티팩트인 환몽의 [앱솔루트 폴리모프]를 사용해 사슴벌레로 변해서 황무지를 내달리고 있었다.

‘벌레로 변하는 건 기분 나쁘지만… 놈의 눈에서 확실히 피할 수 있다.’

다만, 소모되는 마나가 좀 많았다. 드래곤으로 변했을 때보다 빠르게 피곤해지는 느낌이다. 게다가 온몸의 감각이 뭉텅이로 잘려 나간 느낌이라고 할까.

‘정신은 육체를 따라간다고 하지. 인간과 너무 다른 모습이라 오래 유지하는 건 안 좋다.’

뒤에서 흑마나가 느껴진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마구잡이로 하급 언데드인 스켈레톤 수십 마리를 소환해 수색을 벌이고 있었다.

“어디냐?! 어디에 있는 거냐?!”

‘그렇게 말하면 말해줄 것 같나. 멍청한 놈.’

정면에서 싸우는 건 내가 불리하다. 사령술사, 데스나이트, 저격수 2명.

‘아마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겠지. 놈들의 플랜대로 끌려다닐 이유는 없다.’

사슴벌레로 변한 나는 날아서 저격수 한 놈의 뒤로 날아갔다. 염력을 쓰고 싶은 걸 꾹 참았다. 염력도 마법이다. 쓰는 순간 들킬 것이다. 그러니 사슴벌레의 육체 스펙만으로 움직여야 했다.

‘더럽게 힘들군.’

성공적으로 저격수의 뒤를 점했다. 장비를 보니 죄다 최신 기계다. 팔면 돈이 될 것 같다.

[앱솔루트 폴리모프]

레온 슈나이더로 돌아왔다.

저격수가 흠칫 놀랐다. 적어도 니클라스보다 직감과 반응이 좋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앱솔루트 폴리모프]

부분 변화.

오른손을 칼로 만들고.

[샤프니스]

2급 보조 마법으로 칼날을 더 날카롭게 만들어 저격수의 목을 찌른다.

“……!”

나는 그의 뒤에 있었기에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대신 그가 팔을 움직이는 게 보였다. 품속에서 폭탄 하나를 꺼낸다. 자폭할 셈이다.

“AX 폭탄인가.”

군대에 있을 시절 애용하던 폭탄 중 하나라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딸칵!

나는 뇌전을 일으켰다. 작은 전류가 AX 폭탄에 스며들었고, 폭탄은 그대로 먹통이 되었다.

“기계식 폭탄은 정교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EMP나 전류 조작에 취약하지. 하필이면 내가 상대라니. 운이 없었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저격수는 이미 죽었다.

나는 죽은 저격수의 손에서 총을 강탈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저격총이었다. 크기만 거의 2m에 가까웠다.

‘개인 커스텀 총기?’

큰 문제는 아니었다. 총의 메커니즘이야 대개 거기서 거기니까.

-세르팅! 놈은 어쩌면 공간 이동계열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쉽게 얻을 수 없는 보물이지만, 가능성은 열어둬야 한다! 위험한 건 우리다. 주변 경계를 게을리하지 말도록! 세르팅! 내 말 들리나?!

무전기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무시하고 자세를 잡는다. 목표는 반대편 언덕 위에 있는 또 다른 저격수. 놈은 황무지를 둘러보며 나를 찾고 있었다.

‘사슴벌레나 새로 변해서 날아가면 너무 늦다. 아직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지금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텔레스코프]

2급 신체 강화계 마법. 시력을 강화한다. 눈알이 스코프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덕 위에 엎드려 있는 저격수가 보인다. 물론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맞출 수 있는 건 아니다. 저격에는 온도와 습도, 바람, 탄환의 낙폭까지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으니까.

하지만 한때 사격의 천재라 불린 몸이 나다. 5km 밖의 표적도 어렵지 않게 저격할 수 있었다. 어떻게 쏴야 대상을 맞힐 수 있을지 감각이 알려주니까.

‘5km 내의 움직이지 않는 대상을 목표로 했을 경우, 내 초탄 명중률은… 100%.’

방아쇠를 당겼다.

총성이 울린다.

총알은 황무지의 공중을 꿰뚫으며 날아가, 저격수의 미간을 깔끔하게 꿰뚫는다. 고폭탄의 폭발이 일어나 저격수의 머리뿐만이 아니라 상체까지 완전히 터트린다.

‘죽였다.’

바로 총구를 돌린다. 목표는 사령술사 니클라스. 놈의 머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긴다.

탕!

데스나이트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검은색 검을 세워 총알을 막는다.

‘벌써 알아차렸군. 감이 좋아.’

데스나이트에 의해 니클라스의 몸이 완전히 가려졌다. 틈이 안 보인다. 이러면 저격으로 해치울 방법이 없다.

‘데스나이트라도 죽여주마.’

연신 방아쇠를 당긴다. 총알은 데스나이트의 전신을 두들겼다. 대전차용 고폭탄인데도 불구하고 데스나이트를 처리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갑옷 일부를 부수는 게 전부. 데스나이트의 명성이 거짓이 아닌 거다.

철컥.

방아쇠를 당겼으나 총알이 나가지 않았다.

‘조금만 더 갈기면 깨부술 수 있을 것 같은데.’

시체에서 추가 탄창을 꺼내려는 순간이었다.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날아온다. 망령이었다.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