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28 - 1928. 다크 문
망령이 눈에 보였다. 그게 나를 당혹케 했다. 내 근처로 날아오는 망령은 흑마나로 실체화되지 않은 망령이라 더 그렇다. 니클라스의 영안처럼 특별한 능력이 없는 이상 망령을 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니까.
‘망령을 한 번 봤기 때문인가.’
아예 몰랐다면 모를까. 이미 망령을 관측했기에 보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어도 다른 가능성도 있었고.
어쨌든 망령은 무시했다. 실체화하지 않은 망령은 별다른 위협이 되지 않는다. 기껏해야 내 몸에 달라붙어 피로감을 유발하는 것이 전부다.
후우우우웅.
마나를 일으킨다.
주머니에서 텅스텐 탄환을 꺼내고 정면에 마법진을 그렸다. 마법진의 중심으로 텅스텐 탄환을 던지듯 넣었다.
[레일건]
마법진의 깔아둔 전력의 레일을 타고 탄환이 발사된다. 단번에 음속을 돌파해 데스나이트를 향해 일직선으로 떨어진다. 데스나이트가 검을 휘둘러 탄환을 쳐냈다. 그 여파로 데스나이트의 몸이 뒤로 날아가 처박혔다.
‘검술이 뛰어나군. 데스나이트는 생전의 뛰어난 전사였던 영혼을 베이스로 만든다는 말이 진짜였나.’
하지만 멀쩡하진 않았다. 데스나이트의 검이 박살 났고, 오른쪽 팔이 사라졌다. 언데드답게 고통을 느끼지 않는 듯 날 향해 달려온다.
나는 염력으로 몸을 띄웠다. 사령술사 니클라스가 손가락으로 날 겨눴다. 사방에 퍼져 있던 스켈레톤들이 내게 달려온다. 그러면서 스켈레톤은 하나 뭉치며 그 크기를 키워갔다.
순식간에 10m가 넘는 거대 스켈레톤으로 변한다. 이어서 사방에서 망자들이 나타나며 내게 저주를 퍼붓는다.
몸이 무거워졌다.
마나 로드가 불안정해졌다.
시야가 흐릿하다.
이게 게임이었다면 디버프 4~5개가 한 번에 들어온 상태였을 거다.
하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무거워진 몸? 어차피 염력으로 몸을 움직이면 그만이다.
불안정한 마나 로드? 딱히 파괴된 것도 아니다. 흐르는 마나를 좀 더 신경 써서 컨트롤하면 된다.
흐린 시야? 감각은 이미 날 서 있었다. 가장 중요한 시각이 흐릿하더라도 주변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아스트랄이 확장되며 몸안의 마나가 내 의도대로 움직인다. 몸 밖으로 튀어나온 마나는 보이지 않는 술식이 되어 하늘 위로 올라갔다. 술식과 마나가 공명하며 청백색 빛을 내는 선을 그리며 마법진 형성한다.
마법진이 완벽하게 그려졌을 때, 방아쇠를 당기듯 영창한다.
[아이스 스트라이크]
거대한 얼음덩어리가 마법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며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향해 떨어진다. 그 커다란 몸뚱이만큼 둔한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피할 수 없었다.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양손을 펼쳐 빙하를 받아내려고 했다.
그러나 마법진에 나오는 거대 얼음은 아직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게 아니다.
직경은 10m가 넘고 높이는 50m가 넘는, 빙하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얼음은 자이언트 스켈레톤을 무게로 짓눌렀다.
콰직!
자이언트 스켈레톤의 거대한 뼈다귀 몸이 무너진다. 무릎부터 시작해서 종아리뼈, 어깨뼈, 갈비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버티는군. 이것도 버티나?”
[그래비티]
중력 증폭.
적당히 사용한 1급 마법이라 늘어난 중력은 30% 정도지만, 빙하의 무게가 30% 더 늘어난다는 뜻이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했다. 자이언트 스켈레톤은 빙하에 짓눌러 부서졌다.
지상으로 내려섰다. 서늘한 냉기가 느껴졌다. 달아올랐던 몸이 식는 느낌이라 나쁘지 않았다.
“…넌 누구냐?! 레온 슈나이더는 이 정도의 원소계 마법을 쓰지 못한다! 진짜 레온 슈나이더는 어디에 있지?! 다른 나라의 스파이냐?!”
니클라스의 긴장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니클라스의 긴장이 느껴진다. 놈은 이미 밑천을 까발렸다. 망령을 이용한 저주, 데스나이트, 자이언트 스켈레톤.
흑마나는 이미 떨어졌을 거다.
“내가 스파이면 뭐 달라지나? 어차피 넌 여기서 죽는다.”
“내 소속이 어딘지 아직 모르나? 내가 죽더라도 6군단은 사라지지 않는다. 6군단은 조사를 시작할 테고, 결국 네놈을 찾아낼 거다.”
“요컨대 살려달라는 말인가?”
“……거래를 하자는 거다.”
“필요 없다.”
[아이스 스피어]
얼음의 창을 손에 쥐고 놈의 앞으로 걸어갔다.
“데스나이트!!”
니클라스가 소리쳤다. 팔과 검이 없는 너덜너덜한 데스나이트가 뛰어온다.
얼음의 창을 던졌다.
콰아아아앙!
얼음의 창은 데스나이트의 가슴팍에 꽂히며 폭발했다. 순식간에 부피를 키워 눈꽃처럼 변해 데스나이트를 산산이 조각낸 것이다.
“너덜너덜한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데스나이트를 상대하는 건 어렵지 않지.”
니클라스는 각오를 굳힌 얼굴로 날 쳐다봤다.
“…나는 사령술사다. 망자가 되어 네놈을 저주해주마. 앞으로 마음 놓고 편히 잘 수 없을 거다.”
“글쎄. 편히 잘 것 같은데.”
[앱솔루트 폴리모프]
오른손을 핸드 캐논으로 바꾸고 니클라스를 겨눴다.
콰앙!
핸드 캐논이 불을 뿜었다. 연기가 솟았다가 사라졌을 때, 니클라스의 상체는 사라져 있었다.
앱솔루트 폴리모프는 굳이 생명체로만 변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생명체가 아닌 기계로도 변할 수 있다. 그렇게 할 경우 정신에 어떤 문제를 끼칠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다시 손을 원래대로 돌린 나는 염력으로 몸을 띄우며 마무리를 위해 허공을 날았다. 황무지 중앙에 꽂혀 있는 빙하를 지나니 헐레벌떡 도망치고 있는 케빈이 보였다.
파지지직!
손가락 끝에서 치솟은 번개가 손바닥 중심으로 모였다. 케빈을 향해 뇌전을 던졌다.
명중했다. 시퍼런 뇌전이 놈의 몸을 훑고는 바닥으로 흡수되어 사라졌다. 나는 감전된 놈을 향해 걸어갔다.
죽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모를까, 케빈도 대위 직함의 군인이었다.
“재밌는 짓을 해주셨군.”
케빈은 호흡에 집중하며 마나를 움직였다. 마나를 전신에 퍼뜨리며 감전당해 마비되었던 전신을 일깨운다.
“소, 소장님…!”
“뭐지.”
“살려주십시오! 제 뒤에 누가 있는지 말하겠습니다!”
“곱게 죽고 싶으면 지금 말해라. 10초 내로 말하지 않으면 르멘 교도소의 마스코트는 네가 될 거다.”
케빈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렀다.
교도소 운동장 십자가에 묶여 있는 마티아스. 팔다리가 잘린 채로 그저 메말라가고 있었다. 심지어 죽지도 못한다. 죽지 않도록 매일 간수들을 붙여서 관리하고 있으니까.
가족이 모두 눈앞에서 처형당하고, 죽지도 못하는 꼴이 되어 수십 년을 보내게 된 마티아스 꼴이 되고 싶지 않을 거다.
케빈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항심이 아예 사라졌다. 그는 힘없이 말했다.
“…6군단 참모부 소속의 베르그만 대령입니다.”
“참모부라. 생각보다 더 골치 아프군. 그 정도면 엘리트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왜 르멘 교도소 따위에 관심을 가지는 거지?”
“겉으로 보기에는 돈 때문입니다. 예산을 횡령하면 짭짤하니까요.”
“겉으로 보기에는? 속내가 있다는 건가.”
“네. 저도 미심쩍어서 따로 조사해봤습니다. 베르그만 대령의 가문이 인공 장기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인공 장기를 배양해서 판매하는 회사. 단순히 평범한 장기를 배양하는 건 아닐 거다. 그래서야 경쟁력이 없으니까.
“그렇군. 교도소를 손에 넣으면 인체 실험을 할 목적이었나.”
르멘 교도소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인체 실험을 진행하기에 최적이었다. 당장 나만 해도 막장으로 교도소를 운영하는데 별다른 태클이 들어오지 않고 있지 않나.
“…살려주시면 안 됩니까? 지금부터 진심으로 충성하겠습니다. 소장님이 부임하시기 전까지 교도소는 제가 운영해왔습니다! 저는 쓸만합니다!”
“곱게 죽여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도록.”
마음 같아서는 곱게 죽이기 싫었다. 내 뒤통수를 친 놈이니까. 그러나 케빈은 부교도소장이었다. 갱단 두목인 마티아스와 똑같이 취급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서 깔끔하게 죽여버리는 편이 낫다. 그래야 뒤처리는 전부 베르그만 대령이 할 테니까.
“씨발…. 좀 잘살아 보려고 했는데 결과가 이딴 거라니….”
시시한 유언을 들으며 마법을 사용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마른하늘에 벼락 한 줄기가 떨어져 케빈의 목숨을 앗아갔다. 나는 그 시체를 넘어서 자동차를 향했다. 내 주머니에는 플라쉬가 들려 있었다.
• • •
사흘이 지났다.
나는 기억을 복구하는 마법약 플라쉬는 연구하고 있었다. 한번 사용하고 끝내기에는 너무 아깝다. 될 수 있으면 레시피를 알아내서 양산하고 싶었다.
‘사흘 내내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하나도 모르겠다.’
마법이라면 모를까. 이건 마법약이었다. 마법으로 제조하는 방식보다 재료나 배합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재료를 알아내려면 기업에서 쓰는 분석기가 필요하다. 그런 물건들은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다는 게 문제인데….’
지금으로선 딱히 방법이 없었다. 일단 일부를 따로 챙기고 사용하는 수밖에.
똑똑똑!
“소장님! 큰일입니다!”
간수하나가 다급하게 문을 두들긴다. 나는 플라쉬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에 말했다.
“시끄럽군. 천천히 말해라. 죄수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켰나?”
요즘 내가 죄수들을 너무 풀어줬나.
문이 열리고 간수가 들어온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6군단장께서 교도소로 직접 방문하신다고 합니다!”
“군단장이? 왜?”
나 또한 당황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군단장.
군사주의 국가인 하이스트 제국에서 손꼽히는 권력자다. 제국에선 고위 귀족도 군단장 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세우지 못한다. 게다가 6군단장은 황족이었다.
권력으로 따지면 제국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인물.
그런 괴물 같은 존재가 변방 교도소에 찾아온다? 갑자기 핵폭탄이 떨어진다는 소리나 다를 바 없었다.
‘젠장. 베르그만 대령이 손을 쓴 건가?’
혀를 차며 간수를 쳐다봤다.
“정확히 며칠 뒤에 오는 거지?”
“그, 그게 지금 바로 수송기를 타고 오시는 중이랍니다! 30분 뒤에 교도소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왜 그걸 지금 보고하나?”
“저도 지금 막 6군단 사령부에서 들었습니다!”
30분.
교도소 내부를 정리하고, 죄수들의 입을 막고, 장부를 위조하고…. 할 일이 더럽게 많았다. 당연히 30분으로는 턱도 없다. 최소 이틀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며 식은땀을 흐리는 간수에게 차분히 말했다.
“평소대로 해라. 군단장이 온다고 호들갑 떨 것 없다.”
“과, 과연 소장님이십니다.”
진심으로 탄복했다는 듯이 말한 간수는 내게 경례하고는 밖으로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한결 가벼워 보이는 걸음걸이였다.
‘씨발. 어쩌지? 아직 제대로 뽑아 먹지도 못했는데.’
나는 초조함을 느끼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투박한 모양의 열쇠, 월드 도어가 느껴지니 좀 진정된다.
‘그냥 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