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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32화 (1,712/2,000)

Chapter 1932 - 1932. 다크 문

시험 당일이 되었다.

유리아가 속한 1조와 리디아가 속한 5조가 함께 시험을 치르게 됐다.

우선 5조가 귀족역으로, 1조가 고용인 역으로 만찬회를 진행한다.

주어진 준비 시간은 1시간. 그 안에 만찬회 식당을 정리하고 테이블을 세팅하며 요리까지 내와야 했다. 가장 까다로운 건 역시 요리였다.

원래는 메이드를 역할을 나눈다. 청소 메이드는 청소를. 요리 메이드는 요리를. 그게 효율적이니까. 하지만 지금은 평가 때문에 10명 일을 해야 했다.

“1조. 무대 위로 올라가 만찬회 파티 준비 시작하세요. 준비 시간은 정확히 1시간입니다.”

평가 교관은 5명. 그리고 구경하는 다른 동기들까지 수십 명. 많은 시선이 모인다. 조원들은 예상치 못한 주목에 딱딱히 긴장했다.

짝짝!

유리아가 가볍게 박수를 쳤다. 시선이 그녀에게 모인다.

“시작하죠. 우선 식당부터 정리하고 꾸미도록 하겠습니다. 20분 내로 끝내며, 나머지 40분은 요리에 집중하겠습니다.”

유리아의 지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로 했다. 청소기를 손에 쥔 유리아는 하얀 테이블보와 바닥 곳곳에 있는 얼룩을 발견했다. 여긴 준비된 무대다. 얼룩이 있다면 그것 또한 준비된 것들이다.

“줄리엣. 과탄산나트륨을 가져다주세요. 레이첼. 마법으로 온수를 만들어주세요.”

10분 동안 꼼꼼하게 청소했다. 단시간에 청소가 안 된다고 판단한 물건은 무대 뒤로 빼버렸다.

“컨셉은 봄입니다.”

식당 꾸미기는 청소 이상으로 빠르게 끝났다. 미리 준비한 것들을 가져와 전시하는 게 전부였으니까.

나머지 40분. 그녀들은 바로 옆에 붙어 있는 주방으로 향했다. 미리 역할 분담을 정해놓았기에 각자 자신이 맡은 요리를 진행했다. 가장 힘든 건 유리아였다. 주방에는 신경 써야 할게 많았다. 한 명이 실수라도 하면 바로 개입해야 했다. 물론 유리아 또한 요리해야 했다. 그녀가 맡은 건 메인인 스테이크.

“준비 시간이 끝났군요. 5조. 만찬회에 입장하세요.”

교관이 말했다. 메이드복이 아닌 귀족들이 주로 입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들이 식당에 입장했다. 메이드인 1조는 그녀들을 모셔야 했다. 

5명의 교관들은 매의 눈으로 그들을 지켜보며 서로 의견을 나눴다.

“줄리엣 양은 조금 덤벙대는군요. 아까도 스테이크 소스를 흘리뻔 하지 않았나요?”

“긴장한 모양이네요. 그래도 큰 실수는 없었고 제 몫은 해내고 있어요.”

“리디아 양은 역시 귀족이네요. 행동에서 우아함과 품위가 느껴집니다.”

“티네 양은 실망스럽군요. 귀족 옷을 입어도 귀족이란 느낌이 들지 않아요. 메이드로서 품위를 갖추는 게 당연한 일인데…. 흐음.”

“출신이 출신이니까요.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테죠.”

이어 교관들은 리디아의 시중을 들고 있는 유리아에게 향했다.

“목소리, 말투, 자세. 완벽하네요.”

“에티켓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어요. 허리를 숙이고 손가락을 드는 디테일…. 무엇보다 시선을 살짝 내리는 게 완벽하네요. 손님을 완전히 모시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메이드를 통솔할 때도 익숙해 보였어요. 제가 아카데미에 오기 전에 일했던 곳의 메이드장을 떠올리게 하는군요.”

“단점이 없는 건 아니에요. 너무 눈에 띄어요.”

“확실히 귀족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문제가 있군요.”

“타고난 미모는 어쩔 수 없다 쳐도 분위기부터 귀족을 압도하고 있으니….”

교관들 앞으로 요리가 나왔다. 메이드들이 직접 만든 요리들. 교관들은 딱 한 입씩만 먹었다. 다른 학생들도 평가해야 했기에 최대한 적게 먹어야 했다. 그녀들은 스테이크를 한 입 먹고 두 눈을 부릅떴다.

“세상에. 무슨 이런 완벽한 스테이크가….”

“굽기와 소스까지 완벽하네요. 제가 먹은 스테이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뛰어납니다.”

“스테이크는 유리아 양이 담당했죠? 왕실 주방장의 스테이크를 먹은 적 있는데… 그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요.”

교관들은 경악스러운 눈으로 유리아를 쳐다봤다.

억지로 찾아낸 흠은 너무 완벽하다는 것뿐. 그 외에는 흠을 잡고 싶어도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솔직히 이곳에 있는 교관들도 유리아와 비교하면 조금 떨어졌다. 특히 요리 교관인 안나는 스테이크를 먹자마자 얼굴이 심각해질 정도였다.

“이, 이걸 내가 평가하라고?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래도 평가는 한다. 점수는 당연히 만점이었다.

이어서 무도회 평가로 넘어갔다. 무도회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었다. 손님 응대와 서빙 모두 훌륭했다.

“이제 역할을 바꾸죠. 5조가 고용인 역할, 1조가 귀족 역할입니다.”

역할이 바뀌었다.

교관들은 1조를 기대했던 만큼이나 5조를 기대했다. 정확히는 5조에 있는 리디아를 기대한 것이다. 리디아 또한 교관들이 인정하는 인재였다.

“리더십은 흠잡을 곳이 없군요.”

“네. 다만 강압적이군요. 같은 고용인이 아니라, 고용주가 고용인을 부리는 것처럼요.”

모두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일 처리는 마음에 듭니다. 크리스마스 컨셉도 마음에 드는군요.”

“예. 따뜻함이 느껴집니다. 청소도 깨끗했고요. 본인 자체가 마법사라 그런지 마법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군요. 좋군요. 결국 어떤 힘이든 사용하기 나름이니까요.”

하지만 이어진 음식은 실망스러웠다.

“리디아 양도 메인인 스테이크를 맡았군요.”

“음. 뛰어납니다. 뛰어나긴 한데….”

“방금 먹은 유리아 양의 스테이크가 너무 완벽한 것이었죠.”

스테이크는 한 입만 먹었다. 교관들은 무대 위, 귀족 차림을 한 유리아에게 향했다. 귀족 드레스를 입은 유리아가 우아하게 식사 중이었다. 젊은 그녀인데 어째서인지 관록이 느껴졌다. 귀족 영애라기보다는 귀족 부인 같은 느낌이다.

“…에티켓도 완벽합니다. 식기를 사용하는 순서까지 틀리는 법이 없군요.”

“아까 눈이 마주쳤을 때, 하마터면 고개를 숙일 뻔했습니다. 순간적으로 귀족 부인인 줄 알고….”

“잠깐. 저기 지금 뭐 하는 거죠?”

유리아의 시중을 드는 건 티네였다. 티네는 실수를 가장한 채 유리아의 하얀 드레스에 와인을 끼얹었다. 제 나름 연기를 한 모양이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교관들의 눈까지 속일 수 없었다.

“일단 지켜보죠.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유리아 양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보고 싶군요.”

교관 중 누군가가 말했다.

• • •

와인이 떨어졌다.

유리아의 드레스가 피를 머금은 것처럼 더러워진다. 옆구리에서 치맛자락까지.

“죄, 죄송합니다!”

티네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유리아가 볼 수 있도록 비웃음을 짓는다. 너한테는 이게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었다. 망신을 주기 위해 시험 도중에 이런 일을 벌인다? 생각이 짧아도 너무 짧았다. 또 교관들을 너무 무시하고 있다.

‘교관들이 나서지 않는군요.’

메이드가 실수하는 상황.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만큼 이것도 평가에 들어가리라.

그렇다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할까.

‘역할에 충실해야겠죠. 전 지금 귀족이니.’

[백환] 세계였다면 어땠을까.

그녀의 주인인 유진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을 것이다. 그는 미녀 메이드에게 관대하니. 이 정도 실수쯤이야 그 자리에서 옷을 벗으며 낄낄 웃겠지.

하지만 다른 귀족들은 달랐다. 그 자리에서 뺨을 치고 내쫓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여긴 신분 사회가 있어도 엄격하진 않아요. 함부로 대할 수 없죠.’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녀는 귀족이었으니까.

“불쾌하군요.”

유리아가 입을 열었다. 차가운 목소리에 안 그래도 좋지 않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는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말만 하지 말고 책임을 지셔야죠. 당신의 행동을 보니 주인의 수준이 보이는군요. 정말이지 실망합니다.”

유리아는 의자에서 일어나 그대로 장소를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야 실수만 저지르고 수습도 하지 못한 메이드라는 평가가 티네에게 떨어질 테니까. 유리아가 생각하기에 이 평가로 티네는 퇴학당할 것이다.

“죄송합니다, 유리아 영애님.”

리디아가 유리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허리를 숙이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넨다. 특수한 상황이긴 하나 진짜 백작가의 영애가 일개 평민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일단 저를 따라와 주십시오.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그 상태로 돌아가실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또한 저희 주인님께서 영애에게 직접 인사하고 싶어 합니다. 메이드의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죠.”

이미 분위기는 리디아 휘어잡았다. 여기서 억지를 부려봤자 갑질만 될 뿐이다. 유리아는 리디아를 따라 무대 뒤로 나갔다.

“미안해요.”

무대 뒤로 나오자마자 리디아가 다시 사과했다.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

“저희 조원이 당신을 향한 질투심으로 일을 저질렀어요.”

“…그녀와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당신이 이렇게 고개를 숙일 정도로.”

“그건 아니에요. 대화를 나눈 적도 별로 없어요.”

“그런데 왜 리디아 양이 대신 사과하는 거죠?”

“제가 조장이니까요. 조원의 실수를 조장이 책임지는 건 당연한 일이죠.”

“…….”

“아직 무도회 평가가 남았네요. 그 드레스로는 평가가 좋지 않을 테니, 제 드레스를 빌려드리죠.”

“아니요, 괜찮습니다.”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어요.”

“그게 아니라 저랑 사이즈가 맞지 않을 것 같아서요.”

유리아는 리디아의 가슴을 바라봤다. 잘해줘야 B컵. 반대로 유리아의 가슴은 풍만했다. 가슴 한쪽의 무게만 해도 2kg은 나갈 정도로.

리디아는 유리아의 가슴팍을 보고 잠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설마 그 더러워진 드레스를 입고 무도회 무대에 오를 건가요?”

“메이드복이 있으니 괜찮습니다. 메이드에게 있어 메이드복은 정복이자 예복이니까요.”

유리아는 리디아를 지나쳤다.

이어서 무도회장. 유리아는 정말로 메이드복을 입고 무대에 섰다. 유리아의 앞으로 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줄리엣이 다가왔다.

“유리아 양. 저와 한 곡 추시겠어요?”

“기꺼이.”

교관들은 유리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도회의 귀족이 메이드복을 입은 건 감점 사유군요.”

“어쩔 수 없지요. 한 벌밖에 없는 드레스가 더러워졌으니…. 그래도 외출용 드레스라 잘 어울리지 않나요?”

“옛날 생각이 나네요. 무도회 한구석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음악을 배경으로 신사분과 춤을 춘 적 있었는데.”

“유리아 양은 오늘도 완벽했습니다. 중간에 실수가 있었긴 하나, 유리아 양으로부터 비롯된 실수는 아니지요.”

“티네 양은 많이 실망스럽네요.”

“정말 실수였다면 모를까. 티네 양은 가증스럽게도 실수를 가장했어요.”

“뒷수습도 제대로 하지 못했죠.”

“모두 평가하신 모양이군요. 음. 티네 양은 낙제점인가요?”

“아슬아슬하게 낙제점은 면했습니다. 그 실수를 제외하면 전부 우수한 편이었으니까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군요. 앞으로 한 번만 실수해도 바로 퇴학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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