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33 - 1933. 다크 문
티네는 복도 바닥을 꾹꾹 밟으면서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교관으로부터 평가에 관한 경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티네 양. 이번 일로 당신의 성적은 아슬아슬합니다. 조금만 실수해도 퇴학이니 행동거지를 조심하고 오직 수업에만 집중하세요.
오늘 시험 도중 유리아에게 와인을 흘린 것은 실수가 아니라 고의였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충동적으로 저지른 짓이었다.
귀족 드레스가 너무도 잘 어울려서 질투심이 들었다.
‘같은 평민에, 같은 고아 출신인데 이 차이는 뭐야.’
듣자 하니 자신처럼 고아라고 했다. 운 좋게 기사수련원에 들어갔다가 메이드가 되었다고 한다.
자신은 도시 하층민으로서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 했는데, 누구는 운 좋게 기사수련원에 들어갔을 뿐만이 아니라 그 복을 걷어차고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해서 어느 귀족의 후원을 받으며 두각을 뽐내고 있다.
‘왜 걔만 잘나가는 거야?’
티네는 입술을 깨물었다.
퇴학의 위기.
아직 퇴학이 정해진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 그녀는 수업을 따라가기 벅찼다.
‘메이드 따위 싸움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본 메이드나 집사들은 대부분 고용주를 호위하는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싸움만 잘하면 메이드 자격증 정도는 어렵지 않게 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게 실수였다. 실제로는 경제니, 에티켓이니, 요리니 온갖 잡일을 다 배우고 있지 않나.
티네는 어렵지 않게 미래를 예상했다. 자신은 결국 퇴학당할 것이다. 여기까지 버티긴 했으나 그게 한계였다. 자신을 보는 교관이나 다른 메이드 학생들의 눈초리는 곱지 않아 도움을 받기도 글렀다.
‘어차피 퇴학당할 거라면….’
자신이 당한 수모를 갚아야 했다. 그게 도시 부랑아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유리아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그 예쁘장한 얼굴에 칼자국이라도 내주고 싶었다. 그게 아니면 팔다리 중 하나를 불구로 만들던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싶었다. 질투로 빚어진 악의가 그녀의 안에서 꿈틀거렸다.
‘싸우면 내가 이겨. 그러니 어떻게든 싸우기만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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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학생들이 배우는 것 중에는 전투도 있었다.
여차할 때 앞에 나서서 고용주를 지키는 것. 그것 또한 메이드가 할 일이었다.
실제로 경호원으로서 메이드를 고용하는 경우가 많기에 전투 실습은 상당히 중요했다.
메이드 아카데미의 전투 실습은 결투 위주다. 메이드 학생들의 전투 방식이 제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교관들은 실전 전투의 조언을 해줄 뿐이지, 실제 훈련 방향까지 일일이 간섭하지 않는다.
유리아는 검을 들었다.
무난한 선택이었다. 네오 런던은 기사에 대한 경외심이 있었기에 검을 선호했다. 검술을 할 줄 알면 은근히 존경받는다.
“유리아 양. 제 상대가 되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티네가 다가와 정중히 말했다. 평소와 다른 태도와 말투였다. 반면에 유리아를 보는 두 눈은 이글거렸다. 명백히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지고 결투를 신청한다.
유리아의 옆에 있던 줄리엣이 혀를 차며 티네를 노려봤다.
“또 무슨 꿍꿍이야?”
“하, 난 너한테 말한 적 없어. 찌꺼기는 뒤로 빠지지?”
“…찌꺼기? 지금 말 다 했어?”
줄리엣이 소리치기 전에 유리아가 앞으로 나섰다. 티네가 어떤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는 뻔했다. 저 눈을 보면 사고를 칠 작정이겠지.
“줄리엣 양. 전 괜찮아요. 티네 양, 어떤 방식의 훈련을 원하시나요?”
“실전과 같은 결투 방식. 설마 역대 최고로 성적이 우수하신 분께서 빼진 않겠지?”
티네의 말투가 다시 시건방지게 변했다. 유리아가 도망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한 것이다.
“실전 결투라. 그럼 교관님에게 말해 중앙 훈련장을 사용해야겠군요.”
“진짜 나랑 하겠다고? 내가 어디 출신인지는 알고 있지?”
“네오 런던의 부랑아 출신이라고 직접 말씀하셨지요.”
티네는 자신의 출신을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녔다. 부랑아 출신이라고 하면 일반인들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하층민 쪽은 치안이 좋지 않으니까.
“거긴 싸움이 일상이야. 골목길에는 시체가 나뒹굴지. 나도 사람을 몇 번 죽여본 적 있어.”
“그렇게 당당히 할 말은 아닌 것 같군요.”
주위를 보면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학생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티네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메이드 아카데미를 포기했다.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제가 겁을 먹어 위축되기를 바라시는군요.”
뜨끔한 티네는 혀를 차고는 몸을 돌렸다.
“따라오기나 해. 이제 와서 내빼지는 않겠지?”
유리아는 그녀의 뒤를 따라 중앙 훈련장으로 향했다.
교관이 결투 심판을 맡았고, 유리아와 티네는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실전 결투라고 해도 여러분은 실제로 결투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실전과 같은 결투일 뿐이니, 그 점을 잊지 마시고 서로를 존중하십시오.”
교관이 말했다.
결투가 격렬해지거나, 위험해 보이면 바로 개입할 것이다. 하지만 교관이 개입한다고 해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
티네가 노리는 건 단 한 순간뿐이었다.
“결투 시작.”
교관의 말과 함께 양손에 각각 칼을 쥔 티네가 유리아에게 대뜸 달려들어 칼을 휘둘렀다. 두 개의 칼을 각각 다른 방향으로 휘둘러 유리아의 시선을 현혹한다. 그러나 티네의 일격은 어이없을 정도로 손쉽게 막혔다.
까앙.
유리아에 검에 공격이 막힌 티네는 입술을 씹으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 기습은 은퇴한 암살자에게 배운 기술이었다. 신속한 움직임, 각각 다르게 움직이는 두 개의 칼. 기습. 그 세 개의 장점을 가진 공격이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혔다.
티네는 이어서 어깨너머로 배운 칼춤을 췄다. 심장이 빚어내는 리듬을 따라 공격을 이어간다. 두 개의 칼이 쉬지 않고 유리아를 몰아세운다.
겉으로 볼 때 유리아는 다소 버겁게 티네의 공격을 막고 있었다. 뒷걸음질 치는 발과 흔들리는 검, 딱딱하게 굳은 표정까지.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가 감돈다.
허나 실제로는 여유로웠다. 티네의 움직임이 전부 보였다. 지금 당장에라도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 그 목을 따버릴 수 있었다.
‘보는 눈이 너무 많군요.’
죽이고 싶어도 참아야 했다. 여기서 티네를 죽여봤자 얻을 것보다 잃을 게 더 많았다. 살인자라는 타이틀을 얻는 순간 평판이 떨어지는 건 자명하다.
한동안 합을 맞춘다.
점점 초조해진 티네의 발이 살짝 꼬였다. 아주 작은 실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리아가 반격했다.
까아아아앙!
두 개의 칼이 튕겨 나갔고, 티네는 주춤거리다 뒤로 넘어져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만! 결투는 여기까지입니다! 승자는 유리아 양 입니다!”
교관이 끼어들어 결투를 정리한다. 두 사람이 다친 곳이 없는 확인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
티네는 멍하니 교관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지금 그녀는 굉장히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내가 졌다고? 내가? 싸움마저 져버리면 저 여자보다 나은 게 뭐가 있는 거야?’
인정할 수 없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기숙사로 돌아온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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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히 문이 열렸다.
침대에 누워있던 유리아는 두 눈을 천천히 뜨며 살금살금 다가오는 티네와 눈이 마주쳤다. 티네는 깜짝 놀라 칼을 휘둘렀다.
유리아는 고개를 숙여 가볍게 피하며 침대에서 내렸다.
“예상은 했습니다만, 설마 정말로 암습을 시도할 줄이야. 그렇게 제가 싫었나요?”
“너, 너만 아니었어도 일이 이렇게 꼬이진 않았어!”
유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처럼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자들이 있었다. 경험상 죄다 변변찮은 이유로 움직였다.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될 것을. 그게 그리도 어려웠습니까?”
티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후회의 감정이 치솟았다. 자신이 왜 이러고 있나 싶었다. 그러나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티네가 이를 악물며 칼을 휘두른다. 유리아는 몸을 휘청이듯 공격을 피하며 티네의 품으로 파고들어 주먹을 휘둘렀다. 정확히 그녀의 복부에 박혔다. 이어서 칼을 쥔 손목을 꺾어 무기를 빼앗아 마무리를 지으려다가 멈췄다.
“조금 이상하네요.”
시선이며, 호흡이며 모두가 불안정했다. 아무리 흥분했다고 해도 이렇게 불안정한 건 말이 안 된다.
‘세뇌군요.’
마법에 의한 것인지, 반복적인 학습에 의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 유리아에게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편이니까. 하물며 유리아는 마법도 쓸 수 없었다.
유리아는 죽이는 것을 관두고 주먹으로 티네의 얼굴을 후려쳤다. 티네는 뒤로 날아가 문과 부딪쳤다. 문이 부서지고 티네가 쓰러져 기절한다.
커다란 소리에 기숙실에서 자고 있던 학생들이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뭐, 뭐야?! 습격?!”
“티네잖아! 티네가 유리아를 죽이려고 한 거야?!”
순식간에 상황이 소란스러워졌다. 유리아는 피곤한 표정을 연기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다시 생각해도 티네는 세뇌당한 게 확실하다. 즉, 누군가가 티네를 이용해 자신을 노리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딱히 다른 사람의 원한을 산 일은 없었으니까.
‘…곤란하네요.’
유리아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자기 자신을 노리는 건 둘째 치고, 그 여파가 유진에게까지 향한다면? 유리아의 눈빛이 한순간 서늘해졌다.
교관들이 기숙사로 들어오고 수습을 시작했다.
티네는 퇴학당하는 동시에 런던 가드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 100% 실형을 받을 것이다.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일인 만큼 못해도 최소 10년 이상의 실형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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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장인 마리아와 교관들이 회의실에 모였다.
“티네 양에게서 세뇌의 흔적이 발견됐습니다. 마법은 아니고 이능으로 판단됩니다.”
교관 중 한 명이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인 만큼 조사에 전력을 다했고,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마리아는 차분히 교관들에게 물었다.
“티네 양이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의 행적은 파악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