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40 - 1940. 다크 문
범죄자들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나이프 하나 손에 쥔 그들은 처절하게 싸웠다. 경기장이 피투성이가 될 정도였다.
전투는 30초가 남기고 결판이 났다.
역배.
테러리스트가 아닌 군인 출신의 패륜아가 승리했다.
물론 이것도 나는 예상하고 있었다.
테러리스트가 수백 명의 사람을 죽였을지 몰라도, 전투력만 따지면 군인이 더 높다. 전투 기술을 전문적으로 배웠으니까. 테러리스트와 같은 조건이라면 당연히 군인 쪽이 유리하다.
-응~ 역배 터졌죠?
-씨발. 이게 뭐야. 조작 아님?
-병신들인가. 테러리스트보다 군인이 더 강한 건 팩트다.
-수백 명을 죽인 놈이 단검은 더럽게 못 쓰네.
-뭐해. 나머지도 죽여야지.
첫 번째 베팅은 끝났으나, 첫 번째 쇼는 끝나지 않았다.
테러리스트 크라임의 고아 친구들이 남아 있었다.
승리한 로버트는 가족과 함께 스태프들에게 끌려갔다. 경기장에 남은 크라임의 고아 친구들은 죽음을 앞두고 벌벌 떨 뿐이었다. 그중에는 바지를 샛노랗게 적시는 놈도 있었다.
-저새끼 오줌 지림ㅋㅋㅋㅋㅋㅋ
-나 같아도 지렸을 듯.
-처형! 처형! 처형!
-빨리 진행하라고!! 근데 총으로 그냥 죽이는 건 아니지? 그건 너무 시시한데.
-난 처형이 제일 기대 됨.
-저 사람들은 죄가 없지 않나?
진행자가 움직였다. 성큼성큼 걸어간 그의 앞에는 커다란 룰렛 하나가 있었다.
“저희가 누굽니까! 레인보우 쇼 아닙니까! 당연히 처형도 그냥 하지 않습니다! 여기 이 무지개 룰렛이 보이십니까? 처형 룰렛입니다! 앞으로 탈락자들은 룰렛을 돌려 처형방식이 결정됩니다! 룰렛을 돌리는 건 저고요!”
-빨리 돌려!
-진자 알록달록하네.
-개인적으로 찢어 죽이는 거 선호함.
“돌아라아아아아!”
진행자가 양손으로 룰렛을 잡고 있는 힘껏 돌렸다. 룰렛이 빠르게 돌아가다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한다.
룰렛이 가리킨 칸은 번개 마크가 그려진 칸이었다.
“자, 처형 방식이 정해졌군요! 영광스러운 첫 번째 쇼인 만큼, 오늘 쇼의 처형은 쇼 마스터께서 직접 맡아주실 예정입니다! 쇼 마스터! 나와 주세요!”
카메라가 내 쪽으로 향한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처형장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당연한 말이지만, 저 룰렛은 조작이 가능했다. 그리고 첫 번째만큼은 반드시 번개 마크가 나오도록 조작했다. 필요한 일이었다.
내가 처형장 앞에 서자, 죄인들이 무릎 꿇고 양손을 빌었다.
“사, 살려 주세요. 저흰 테러리스트가 아니에요!”
“크라임이 테러리스트인지 몰랐어요! 정말이에요!”
“저흰 범죄자가 아니에요!”
자신들은 무고하다. 죄가 없다고 소리친다. 실제로 죄가 없긴 했다. 근데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입을 막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소리치는 그 모습은 오히려 시청자들을 흥분시킬 테니까.
우우우우우우우웅.
아스트랄을 개방하고 마나를 술식으로 전환한다. 카메라에 담기진 않았지만, 무대 곳곳에 설치해둔 일회용 마나 증폭기와 발전기들이 가동하기 시작했다. 조건은 이미 갖춰져 있었다.
손을 들었다. 그에 따라 카메라가 하늘을 비춘다. 구름이 두둥실 떠다니는 평화로운 하늘에 푸른 마법진이 그려진다.
‘우선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
시청자 중에는 이상한 짓을 벌이는 놈들이 있을 거다. 그런 놈들에게 내가 약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의 운영이 편해진다.
파지지직.
손에서 전류가 번뜩인다. 그에 공명하듯 마법진이 회전하며 전격이 모여든다.
[썬더 브레이크]
7급 전격계 공격 마법이 펼쳐졌다.
거대한 벼락이 지상을 향해 떨어진다. 빛무리가 테러리스트의 고아 친구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벼락이 내려친 곳에는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겨나 있었다. 시체로 보이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말 그대로 소멸한 것이다.
‘조금 지치는군.’
하지만 내색하진 않고 몸을 돌려 자리로 향했다. 채팅창을 본다. 당연히 난리 나 있었다. 그 내용은 대부분 마법에 관한 것이었다.
-7급 마법 썬더 브레이크다!
-쇼 마스터 7급임?
-당연히 초인이니까 이런 방송을 하지.
-7급 전격계 마법사라… 떠오르는 인물은 셋인데.
-기존에 알려진 7급 전격계 마법사들은 아닐 듯. 그놈들은 이런 쇼를 할 놈들이 아니야.
-최근에 하이스트 제국 도시에서 썬더 브레이크로 기업 건물 하나가 날아갔잖아. 혹시 그 마법사 아님?
-7급 마법사가 왜 이딴 쇼를 운영하는 거임?
-돈 때문이지.
내 의도는 정확히 먹혔다. 사람들은 나를 7급 초인 마법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야 쓸데없는 간섭이 줄어들지.’
채팅창에는 날 향한 질문이 쏟아졌다. 나는 모조리 무시했다. 진행자는 두 번째 쇼로 넘어갔다.
“준비된 두 번째 쇼는 달리기 경주입니다! 총 5명이 1km 달리기 시합을 벌입니다! 1등을 제외한 탈락자는 모두 탈락입니다! 탈락자들에게 기다리는 건 모두 처형뿐이죠! 자, 선수를 소개한 뒤 베팅을 시작하겠습니다!”
준비한 쇼는 총 8개.
쇼는 큰 문제 없이 진행되어 마지막을 앞두었다.
“드디어 마지막 쇼까지 왔군요! 마지막 쇼는 어느 한 마을을 지배했었던 도적단의 배틀로얄입니다! 도적단과 그 가족들까지 합쳐서 총 167명이 벌이는 배틀로얄! 마찬가지로 생존자는 오직 1명입니다! 가족끼리 마지막에 남으면 어떻게 되냐고요? 당연히 가족을 죽여야죠! 배틀 로얄 규칙에 예외는 없습니다!”
물론 마지막 쇼에도 베팅이 있었다. 그래야 돈이 되니까.
“여러분은 167명 중 한 명을 정해 베팅할 수 있습니다! 참가자들을 일일이 설명하기엔 시간이 걸리니 영상 아래 링크를 참고해주십시오! 참가자들의 정보가 모두 적혀 있습니다! 대규모인 만큼 베팅 시간은 15분입니다! 저는 잠시 쉬고 오겠습니다!”
화면은 경기장 내에 빼곡히 선 범죄자들을 담았다.
나는 베팅 현황을 살펴봤다. 의외로 베팅 금액은 저조했다. 167분의 1. 확률이 너무 낮으니 섣불리 베팅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이다.
‘배당액을 두 배 정도 더 올려야겠군.’
스태프에게 지시하려는 순간이었다.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최소 1억 크레딧을 후원해야만 뜨는 알림창이 떴다. 그리고 후원한 자는 화면에 메시지를 띄울 수 있었다. 미리 설정된 기계음이 메시지를 읽는다.
「제안 하나 하지.」
삘이 왔다. 그는 큰손이었다. 원래라면 무시했을 테지만… 돈 냄새가 풀풀 나니 참을 수가 없었다. 앞으로의 쇼에서 큰손은 중요했다.
“어떤 제안입니까?”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배틀 로얄따윈 지겹다. 167명. 저것들을 모두 인신 공양해라.」
“제가 왜 그래야 합니까?”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인신 공양을 시도하면 10억. 인신 공양에 성공하면 추가로 10억. 총 20억.」
거절하기에는 너무 많은 돈이었다. 그러나 많은 돈이 걸린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인신 공양 자체가 실패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저주를 받을 수도 있었다. 성공하더라도 결과가 좋다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전 인신 공양을 해본 적 없습니다. 어떻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인신 공양 방법은 내가 알려주지.」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마침 VIP가 되면 개인 메시지를 보낼 수 있더군.」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총 5억 크레딧을 후원하며 최초로 VIP에 등극합니다.」
-시발. 뭔 또라이가 이렇게 많아.
-와 5억을 이렇게 태운다고? 돈이 얼마나 많은 거야.
-10억이면 인신 공양 정도는 당연히 하지.
-근데 인신 공양은 누구한테 하는 거임? 신?
-악마지. 악마가 인신 공양 비교적 잘 받아주고 효율이 좋음.
-나 동굴 속 검은 뱀이 누군지 짐작 간다.
-쉿. 말하지 마. 말하면 널 죽이러 갈지도 모름.
-악마에게 인신 공양하면 악마를 볼 수 있는 거임?
-오오오오! 악마! 보고 싶다!!
-주인장 뭐해! 빨리 받아들여! 10억이라고! 성공하면 20억!!
채팅창은 이미 배틀 로얄 따위에는 관심이 사라졌다. 인신 공양과 악마에 대한 호기심이 채팅창을 지배한 것이다.
“좋습니다. 미션을 받아들이죠. 그런데 이런 미션을 거는 이유가 뭡니까?”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내가 보고 싶으니까.」
“아, 그러시군요.”
그가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비밀 메시지를 확인하기 전에 베팅 내용을 바꿨다.
「7급 마법사의 인신 공양 성공 여부.」
시청자들은 빠른 속도로 베팅하기 시작했다. 배틀로얄보다 훨씬 많은 금액이 베팅되고 있었다.
-7급 마법사잖아. 당연히 성공하지.
-아님. 주인장은 딱 봐도 원소계 마법사임. 인신 공양은 대부분 의식계 마법임. 실패할 확률이 높음.
-7급 초인 마법사가 인신 공양도 못 하겠냐ㅋㅋ
-됐고 빨리 악마 보고 싶다.
-악마는 다크문때만 가끔 출몰하는 존재들 아님? 토벌당했다고 하던데.
-그건 하급 악마. 인신 공양을 할 정도면 최소 이름 알려진 악마가 나오겠지.
-실패하면 도시 멸망각ㅋㅋ
-응. 내가 사는 도시 아니야~
성공이 6. 실패가 4. 의외로 비슷하게 나뉘어졌다. 나는 베팅액이 계속 늘어나는 것을 봤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소문이라도 돌았는지 시청자 수가 갑자기 늘어나더니 200만을 넘었다.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나는 검은 뱀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하고 속으로 혀를 찼다. 놈이 보내온 의식 마법진은 원작 게임 지식 속에 있는 것이었다.
‘이 새끼. 나로 실험할 생각이군.’
아스타로트의 마법진.
그것도 미완성의 마법진이다. ‘검은 뱀’의 정체가 뭔지 짐작되기 시작했다.
‘완성된 마법진이 내 기억 속에 있어서 다행이군. 문제는 그래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건데….’
악마는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재미없다는 이유만으로 소환자를 죽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제물은 특별할 것 없는 인간 167명. 의식에 성공하더라도 아스타로트가 직접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분명 아스타로트의 부하가 악마가 나올 테지.’
아스타로트는 72 악마 중 하나였다. 인간 수천, 수만 명을 바쳐도 만나기 어려운 최고위 악마다.
‘그 휘하의 악마가 나와서 싸운다면… 해볼만 하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