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41 - 1941. 다크 문
“인신 공양을 비롯한 의식 마법은 제대로 된 준비가 필요합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요청이라 아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보니 30분 정도는 기다려주셔야 합니다.”
나는 차분하게 말했다.
-30분? 좀 많이 걸리긴 하네.
-난 당연히 기다린다. 이미 성공한다에 돈을 걸었다고!
-악마 소환 인신 공양? 돈 주고도 못 봄. 당연히 봐야지.
-저 대학교에서 인신 공양에 관해 논문 쓰고 있는데 잘됐네요.
-30분이면 간식도 준비하지.
-그래도 심심한데 범죄자 가지고 놀지? 제물로 쓸 걸 죽이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ㄴㄴ 인신 공양에서 정확한 의식 다음으로 제물 상태가 중요함. 제물이 끝내주면 의식이 부족해도 부름에 응하는 경우가 있음.
-그래서 인신 공양에 성공하면 악마가 무슨 소원이든 도와주나?
-어떤 악마냐에 따라 다르겠지. 72 악마 중 하나만 소환되면 진짜 초대박임.
-씨발ㅋㅋ 도적단 167명으로 72 악마 중 하나를 소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기껏해야 중하급 악마가 나오겠지. 그것도 성공했을 경우임. 주인장은 7급 마법사니 성공할 거임.
-7급 마법사라고 전부 잘할 줄 아나? 7급 마법사라도 주인장은 원소계 마법사다. 의식 마법을 해본 적이나 있겠음? 난 실패에 걸었다.
채팅창은 시끄러웠다. 자칭 전문가라는 자들이 대거 나타나 악마 소환과 인신 공양에 관한 지식을 뽐내기 시작했다. 전부 개소리라고 치부하기엔 꽤 자세히 알고 있는 자들이 보였다.
나는 스태프를 불러 모았다.
“제단을 만들어야 한다.”
“…마스터. 30분 내로 만드는 건 힘듭니다.”
“엉성하게 만들어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제단이라는 상징 그 자체니까. 기존에 있던 재료로 제단을 그럴싸하게 꾸민다. 그리고 적당한 바위를 찾아 기둥으로 깎아 제단 근처에 박아둬라. 신전과 비슷하게 보이도록. 제물들은 깨끗이 씻기고 옷을 입히지 마라.”
“신전. 혹시 신을 대상으로 의식을 진행합니까?”
“아니, 소환 대상은 악마다. 신이나 악마나 차이는 크게 없다. 가장 중요한 마법진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작업을 시작해라.”
스태프들이 사라졌다.
나는 제단을 세울 장소로 갔다. 가장 중요한 건 의식 마법진이다. 마법진만 제대로 그린다면 제단이 없어도 상관없었다. 제단은 의식의 보조 같은 거다. 대상의 시선을 끌어 성공 확률을 조금 더 높여주는 것.
‘악마가 대상이면 마법진은 피로 그리는 게 낫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냥 피도 안 된다. 인간의 피보다 유니콘 같은 특수한 생물의 피가 의식용으로 좋다.
‘당장 유니콘의 피를 구할 순 없고, 평범한 인간의 피는 오히려 역효과만 난다. 수준 낮은 놈들의 피도 마찬가지.’
가장 좋은 피는 역시 마나 친화력이 높은 자의 피였다.
‘지금 여기선 내 피가 최고의 재료군.’
기왕 하는 거, 성공해야 면도 살고 돈도 벌 수 있다. 난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기꺼이 피를 뽑기로 했다.
‘너무 많이는 필요 없겠지.’
작은 칼로 손바닥을 찢고 양동이에 피를 받았다. 그 상태에서 조금 기다렸다. 스태프들이 제단을 꾸미기 시작했다. 나는 제단의 뒤편, 보이지 않는 곳에 마법진을 그린다. 시정차는 물론이고 스태프들에게 마법진을 보여줄 생각은 없다.
‘완성된 마법진 자체가 기술이고 재산이다. 내가 뭐 하러 공짜로 베풀어야 하지?’
의식에 성공하면 검은 뱀은 무척 궁금해할 것이다.
‘검은 뱀. 카고론이 확실하겠지.’
8급 흑마법사 카고론. 대륙 남쪽에서 주로 활동하는 흑마법사 조직인 ‘독니’의 수장. 카고론이 가진 별명 중 하나가 검은 뱀이었다.
‘기화가 되면 죽이고 싶은 놈이다.’
날 이용하려는 건 괘씸하지만, 그 이상으로 카고론이 가지고 있는 아티팩트가 탐났다. 하지만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존재다.
“제물들은?”
“단체로 씻기고 있습니다.”
태블릿을 들어 화면과 채팅창을 확인했다. 화면에는 나체의 죄수들이 강제로 쏟아지는 물 폭탄을 맞고 있었다. 채팅창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ㅋㅋㅋ단체 샤워 개꿀.
-와 씨발. 저 여자 빨통 봐라. 쥑이네.
-저기 오른쪽에 있는 빨간 머리는 아깝지 않나? 팔면 내가 산다. 1,000만 크레딧까지 낼 수 있음.
-저 여자가 1,000만 크레딧? 돌았나. 10만 크레딧이라 해도 안 삼ㅋ.
-미녀는 없네.
-미녀가 있었으면 여기에 쓰겠냐고. 창녀로 굴러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을 텐데. 주인장은 돈미새라 100% 미녀 빼돌렸음.
-근데 왜 씻기는 거임? 어차피 죽을 놈들 아님?
-제물이니까. 너도 과일이나 고기 같은 건 씻어 먹을 거 아니야.
-고기 씻으면 육즙 날아감.
-아, 예. 더러운 고기 많이 드세요.
물에 홀딱 젖은 제물들이 들어온다. 도살장에 끌려오는 가축 같은 꼬라지였다.
딱!
손가락을 튕겼다.
염력에 의해 미리 준비해두었던 작은 칼들이 위로 치솟는다. 칼은 제물들에게 날아가 그 목을 조금씩 그었다. 피가 나오나 위험하지 않을 정도로만.
-??? 지금 뭐 하는 거임?
-제물 지정하는 거다. 악마가 저기에 있는 다른 인간들과 헷갈리지 않도록.
-알몸이라 헷갈리고 싶어도 안 헷갈리지 않나?
-악마 같은 존재는 우리 같은 인간이랑은 보는 관점이 달라요, 병신아.
-왜 욕하고 지랄이냐. 씹새끼가.
-비효율의 극치인 염력 마법을 저렇게 쓴다고? 역시 7급 마법사….
-존나 기괴하네ㅋㅋ 아ㅋㅋ 존나 기대된다. 시모녀 악마가 나오겠지?
-빨리 시작해라!!
-마법진은 왜 안 보여줌? 제단에 가려져서 잘 안 보이네.
-그래서 어떤 악마를 소환하는 거임? 누구 아는 사람?
-저건 바엘의 마법진입니다. 바엘이 누구냐고요? 72 악마 중 최고위에 존재한 악마입니다. 쉽게 말해서 마왕입니다.
-헛소리 ㄴ. 72 악마의 마법진은 기본적으로 금지된 지식임. 그중에서도 바엘은 최고 기밀임. 국가 지도자 정도는 되야 알 수 있을걸? 당연히 나머지 72 악마의 마법진도 기밀이다.
-ㅋㅋ그거 관리되는 마법진이 20개도 안 된다며?
-검은 뱀이면 72 악마의 마법진 몇 개는 당연히 알고 있을 듯.
마지막으로 시청자의 반응을 확인했다.
나는 옷매무새를 다잡고 입을 열었다.
“인신 공양 악마 의식을 시작합니다. 만약, 의식에 성공한다면 악마가 소환되어 제물을 바친 만큼 소원을 들어줄 겁니다. 다만, 소환된 악마의 능력에 따라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제한됩니다. 어떻게 보면 거래에 가깝습니다.”
태블릿을 치우고 집중력을 끌어올린다.
악마는 괜히 악마가 아니다. 소환자와 거래하는 경우보다 소환자를 공격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하급 악마가 나와라.’
속으로 기도하면서 아스트랄을 개방한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제물 중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다. 이미 떨고 있던 제물들은 좋은 기회라도 된 것마냥 다 같이 몸을 날려 도망치려 한다.
나는 혀를 찼다.
“제압해.”
스태프들이 일제히 제물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비살상탄이 제물들에게 쏟아졌다.
나는 가장 먼저 비명을 지른 놈에게 다가가 그 머리를 발로 찼다.
“네놈은 어차피 죽은 목숨이다. 도망치면 살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나?”
“아, 아무리 그래도 악마는 아니잖아! 악마에게 영혼이 빼앗기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는다고! 제발 그냥 죽여주세요! 죽어서도 고통받긴 싫습니다! 제발!!”
“그딴 개소리를 믿나? 악마가 뭐 하러 너희 같은 버러지들의 영혼을 괴롭히지?”
“저, 정말 헛소문입니까?”
“…악마마다 차이가 있겠지. 어차피 네놈의 운명은 정해졌으니 가만히 있어라. 한 번 더 개짓거리를 한다면… 네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지옥은 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려주지.”
이대로 의식을 진행하면 문제가 생길 것 같았기에 어수선해진 분위기가 가라앉을 때까지 잠시 기다리며 반응을 살폈다.
-이럴 줄 알았지. 그나마 바로 제압해서 다행이네.
-진짜 악마에게 바쳐지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음?
-주인장의 말대로 악마에 따라 다름. 인간의 고통을 원하는 악마도 있고, 영혼 자체를 흡수하는 악마도 있음.
-아씨 흐름 끊겼잖아.
-주인장 채팅창 보고 있지? 소통 좀 하지?
-소통하고 싶으면 후원 메시지 보내셈. 후원 메시지는 최소 1억임ㅋㅋ.
-주인장은 후원 메시지에만 대답한다.
「동굴 속 검은 뱀 님께서 1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의식 마법진이 잘 안 보이는군.」
“검은 뱀 님. 후원 감사합니다. 마법진은 일부러 가렸습니다. 검은 뱀 님의 귀중한 지식을 만천하에 공개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검은 뱀의 추가 후원은 오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일일이 간섭하려 했으면 일이 더 귀찮았을 테니까.
멈췄던 의식을 진행한다. 제단으로 걸어가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우우우웅.
내 마나와 내 피로 그려진 의식 마법진이 공명한다. 미완성인 마법진이었다면 여기서 삐걱거리며 불안정했을 것이다.
‘내가 그린 건 완성된 마법진이다. 적어도 마법진 문제로 실패할 일은 없다.’
마법진을 중심으로 아스트랄이 이어진다. 마법진에서 영적인 기운이 뻗어나가 제물들에게 이어진다. 총 167명의 육신과 영혼이 마법진에 이어졌다.
마법진이 암울한 붉은 빛을 내기 시작했고, 사악하면서도 끔찍한 기운이 제단 기둥 사이로 모여들어 문을 형성한다.
의식을 주도하는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지금 이곳은 마계와 이어졌다. 마계의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다. 스태프 중에는 자리에 주저앉아 몸을 덜덜 떠는 놈들이 있었다. 제물들은 반대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그들은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바닥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린다. 악마에게 바쳐진 순간부터 그들은 악마의 노예였으며, 악마의 식량이었고, 악마의 장난감이었다.
카카카카카카카칵!
공간이 비틀리고 찢어진다. 이건 내 힘이 아니다. 나는 그저 신호를 보냈을 뿐이다. 마계의 문을 여는 건 전적으로 악마의 몫이었다.
악마는 부름에 응했다.
찢어진 공간으로부터 악마가 모습을 드러낸다. 1m의 작달만한 몸. 고블린과 비슷한 얼굴. 최하급 악마인 임프였다.
‘됐다!’
임프는 4급 수준의 악마였다. 일이 틀어지더라도 내가 죽일 수 있다.
“킥킥… 킥…?”
푹!
섬뜩한 소리와 함께 임프의 몸에서 길쭉한 무언가가 튀어나와 꿰뚫었다.
“감히 내 앞을 막다니, 제정신이 아니구나?”
조롱 섞인 여성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