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44 - 1944. 다크 문
“다음에 또 보자. 그때는 지금 같은 쓰레기들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공양물을 준비해.”
아스타로트는 일부러 카메라에 손을 흔들어준 뒤 사라졌다. 무거워진 공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없어진 압박감에 몸이 시원할 정도였다. 대신, 167명분의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후.’
속으로 한숨을 내쉰다.
72악마를 소환하고 조용히 끝났다.
이건 역사에 남을 업적이라 봐도 무방했다. 아마 당분간 뒷세계는 이 일로 시끌시끌할 거다.
‘시청자는 몇 명이지?’
약 1,200만 명.
그 수치를 보자마자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굳이 참지 않았다.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후원금도 확인했다. ‘검은 뱀’이 쏜 후원금을 제외하고도 총 170억 크레딧. 5억 이상 쏜 VIP가 20명이 넘었다. 하나같이 비밀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언골렘 님께서 5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악마 소환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72악마 중 하나를 소환하려고 합니다. 스폰서까지 3명까지 붙었습니다. 제물 착실하게 준비되고 있습니다. 함께하시지 않겠습니까?」
「SOFT 님께서 5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간접 광고를 하고 싶습니다. 대놓고 광고하면 안 되고, 은근히 노출되어야 합니다.」
「콜드블루 님께서 10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방송 아주 마음에 들어.」
「무기회사 님께서 10억 크레딧을 후원하셨습니다!」
「배틀 로얄 때 저희 회사 무기를 사용해주시겠습니까? 저희가 지정해주는 무기를 사용해주시면 보수를 더 드리겠습니다.」
‘일단 악마 소환 관련은 전부 무시한다.’
이번에 운이 좋았다. 아스타로트는 내가 소환한 게 아니라, 직접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내게 호의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72악마가 아스타로트 같다고 확신할 수 없다.
‘아스타로트도 언제 다시 변덕을 부릴지도 모른다.’
광고 관련 일들은 모두 받기로 했다. 약간만 신경 쓰면 떼돈을 벌 수 있다.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역시 좋군.’
-와! 아스타로트!
-악마 눈나!
-보자마자 발기했다.
-여잔데 바로 젖어버림.
-근데 갑자기 오색 번개 떨어진 거 뭐임? 진짜 아스타로트가 장난친거임? 연기라고 하기엔 너무 리얼하던데.
-72악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네. 72악마는 말만 악마지 사실상 신이나 다를 바 없음.
-어쨌든 씨발. 진짜 아스타로트가 나왔다! 대박이다!
-제물만 각 잡고 준비했으면 왕국 하나 멸망했을 수도 있었는데.
-주인장 대체 정체가 뭐냐? 아까 보니 아스타로트가 엉기더라. 나도 엉겨줬으면….
-흑마법사보다 더 악마에게 사랑받는 원소 마법사가 있다?
-다음 방송은 언제인가요?
-이 방송은 레전드가 될 것이다.
아마 지금 시청자 수는 절반 이상으로 뚝 떨어질 것이다. 다음 방송에서는 아스타로트가 나오지 않으니까. 악마 소환도 할 생각 없다.
‘두 번째 방송부터는 내가 모습을 비추지 않아야겠군.’
VIP나 시청자들이 악마 소환을 해달라고 부탁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상관없겠지. 어차피 죄수들이야 마나 제거 시술을 받은 상태로 이곳에 보내질 테니. 그리고 시청자들은 나를 7급 마법사로 인식하고 있다. 거기에 아스타로트가 노골적으로 내게 호의를 보였다.’
이 쇼가 탐나거나, 내게 원한을 가진 놈들도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을 거다. 72 악마에 대해 조금이라도 자세히 알고 있는 놈들은 더욱더.
‘지속적으로 죄수 수급만 해주면 되겠군.’
근데 그것도 내가 직접 나설 필요는 없다.
‘돈이 모였으니까.’
돈이 모였으니 하청을 하면 된다.
‘용병들에게 의뢰를 줘서 범죄자를 포획하면 된다.’
그렇게 시스템이 완성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돈만 쪽쪽 빨아먹을 수 있겠지.’
나는 진행자와 스태프들에게 마무리를 명령하고 월드 도어를 사용해 네오 런던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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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 런던 저택의 지하 공방.
나는 그 중심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자기 관조를 시작했다.
아스타로트에게 떨어졌던 오색 번개. 그 번개는 내 아스트랄을 강제로 확장했다. 그 확장 방식은 하필이면 폭탄을 터트려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과 같았다. 원래는 공을 들여서 천천히 확장해야 한다. 아스트랄이 무너지지 않도록, 내 육체가 아스트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자기 관조를 시작한다.
확장된 아스트랄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아무 문제 없다.
‘강제로 확장 당한 아스트랄이라고 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안정적이군. 음?’
뭔가 거슬린다. 이질적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그 부분에 집중했다.
그러자 머릿속에 지식이 떠올랐다.
내겐 없는 마법적 지식이다. 전생의 원작 기억에서도 이런 지식은 없었다.
‘강제로 새겨진 지식.’
그 지식을 천천히 탐미하다가 경악했다.
‘이건 아스트랄 비전?!’
마법사 중에는 극히 드물게 특이한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를 가진 자들이 있다. 선천적인 자들과 후천적인 자들. 후천적인 자들은 아스트랄 비전이라고 고대로부터 은밀하게 내려져 오는 방식으로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를 단련한 자들이다.
돈 주고도 못 구하고, 설령 운 좋게 구하더라도 체질 등 조건이 맞지 않으면 익히지 못한다.
‘이 아스트랄 비전은 내게 딱 맞다. 마치 나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은 비전이군.’
그래서 좀 수상했다. 아스타로트의 수작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 이 아스트랄 비전을 익히지 않기에는 너무 매력적이었다. 당장 이것만 익혀도 동급 마법사와 1대1 전투는 절대 패배하지 않을 것이다.
‘그야 7급과 비슷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테니까.’
이걸 익혔을 때와 익히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을 따진다. 몇 번을 생각해도 정체 모르는 출처의 지식이란 불안점을 감수하고서도 익히는 게 더 이득이었다.
‘위험한 일은 수도 없이 해왔다. 앞으로 위험한 일은 더 많겠지. 그때마다 위험하다고 포기할 것 같나.’
아스트랄 새겨진 아스트랄 비전의 이름은 페이즈 아스트랄(위상 정신).
가상의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를 만들어 동시에 운용하는 것.
만도 안 되는 일이다. 아스트랄은 곧 정신이다. 그런 아스트랄을 하나 더 만든다? 정신을 하나 더 만드는 것과 똑같다.
‘정신을 절반으로 나누는 게 아니다. 하나의 정신으로 두 개의 몸을 각각 다르게 운용하겠다는 거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인간의 정신은 약하다. 너무 건드려서 조금만 건드려도 붕괴하거나 박살 나는 게 상식이다. 페이즈 아스트랄은 정신에 사정없이 부하를 가한다. 정신이 부서지든 말든 알 바 없다는 듯이 혹사 시켜 강제로 위상 아스트랄을 만든다.
나는 성공한다고 확신했다. 왜냐고? 이미 페이즈 아스트랄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내 정신은 멀쩡했다. 너무 멀쩡해서 이게 꿈인가 싶을 정도로.
‘이제 위상 마나로드를 만든다.’
눈을 감고 있었으나, 내겐 위상 아스트랄이 선명하게 보였다.
그것은 작은 우주를 닮았다. 우주를 내 머리 크기와 비슷하게 압축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스트랄의 형상은 마법사 나름이다. 아스트랄은 일종의 심상이기도 하니까. 내가 아스트랄을 우주로 형상하는 건 원작 게임에서 마법사로 플레이하면 아스트랄이 우주 이미지로 보였기 때문이다.
위상 아스트랄에서 곧 작은 별빛들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별빛은 정해진 자리에 도착했고 빛을 이어 길을 이룬다.
성공했다.
단 한 번의 거슬림이나 실수도 없이. 너무 쉬워서 이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페이즈 시프트]
기존의 아스트랄과 위상 아스트랄을 변경한다. 원래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에 쌓이는 부하에 대한 걱정을 접어둘 수 있다.
‘6급 보조 마법인 메모라이즈를 활용하면 단숨에 마법을 난사할 수 있겠군.’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아스트랄이 강제로 확장되며 6급에 올랐으나, 마나 로드는 그대로였기 때문에 메모라이즈 활용이 다른 마법사에 비해 불리했다. 메모라이즈는 마나 로드에 술식을 저장하니까.
‘마법마다 저장을 위해 필요한 마나 로드가 다르지. 고위 마법일수록 저장에 필요한 마나 로드가 많아진다. 마나 로드의 수가 적은 내가 활용하기 껄끄럽지.’
위상 아스트랄과 마나 로드가 있으면 이야기가 다르다. 게임으로 치자면 순식간에 스킬 세트를 바꾼다고 할까. 그것도 쿨타임 관계 없이.
[페이즈 오버랩].
아스트랄과 위상 아스트랄을 겹친다. 집중력이 순식간에 확 오르고 마나 로드의 출력이 높아진다.
‘육체에 부담이 빠르게 쌓인다. 오래 유지하기는 힘들 것 같군.’
나는 눈을 떴다. 간단한 마법을 사용할 생각이었는데, 책상에 놓인 나이프에 비친 내 얼굴에 깜짝 놀랐다.
두 눈동자에 별빛이 박혀 반짝이고 있었다.
오색 번개에게 강제로 끌려가 맞닥뜨린 또 다른 나처럼.
‘…그렇군.’
아스타로트의 태도와 내게 지나칠 정도로 알맞은 아스트랄 비전.
어렴풋이 추측하고 있었던 것을 확신하게 됐다.
‘아스타로트는 미래의 나를 봤고, 미래의 나는 어떻게 한 건지 몰라도 아스타로트를 이용해 나를 불렀다.’
아스트랄 비전인 페이즈 아스트랄을 내게 주기 위해서.
‘……그게 가능한가? 아스타로트가 본 미래는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한 불안정한 미래일 텐데?’
이 세계에서 평행 세계 개념은 가상으로만 존재한다. 실제 평행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래인 평행 세계 같은 건 없다는 거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모르겠군. 어쨌든 이 힘은 내 거라는 거다.’
페이즈 아스트랄에는 또 다른 능력이 있었다. 지금 당장은 시도하기 힘들었다. 숙련도 등의 문제가 있으니까.
‘그보다 중요한 건 미래의 나군. 미래의 나는 분명 메타트론의 시체 위에 있었다.’
즉, 내가 초월적인 존재를 죽였다는 것이다.
‘미래의 나는 초월을 이루는 건가? 끝내주는군.’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어서 빨리 추가로 마나 로드를 만들어야 하는 데 영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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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메이드 아카데미 면회 날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