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945화 (1,725/2,000)

Chapter 1945 - 1945. 다크 문

메이드 아카데미의 면회 날.

입학식 때는 메이드 아카데미 앞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절반도 되지 않아 한산했다.

‘절반 이상이 첫 면회까지 버티지 못하고 퇴학당한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메이드 아카데미의 악명… 이라고 하기엔 뭐했다. 메이드 아카데미는 그저 엄격한 기준을 들이밀 뿐이니까. 메이드 아카데미 출신이 환영받는 이유가 그 말도 안 되게 빡센 기준 때문이기도 하니까.

도로 쪽을 쳐다본다. 입학식에는 없었던 고급스러운 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마차에 새겨져 있는 문양과 로고는 기업 혹은 귀족의 것이었다. 집사 또는 직원으로 보이는 자들이 마차 앞에 서서 메이드 아카데미 정문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면회 자격이 없기에 그런 것이다.

‘입학식에 없었떤 자들이다. 스카웃하러 왔나?’

메이드 아카데미의 졸업까지 아직 한참 멀었다고 생각하면 상당히 의외인 동시에 납득이 갔다. 그만큼 메이드 아카데미의 학생들이 뛰어난 인재들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뚜벅뚜벅.

앞으로 걷는다. 평소와 같이 걷는데, 메이드 아카데미 근처는 유독 조용해서 발소리가 크게 들렸다.

“이, 이거 마이어 님 아니십니까.”

누군가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고개를 치켜들며 그를 바라봤다.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건장한 체격에 8대2 가르마를 타고 있던 남자였다.

기억에 있었다.

마릭 과장.

네오 런던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전문으로 하는 허그라운드라는 회사의 과장이다. 내게 공장을 중개해 팔았던 자였다.

“오래만이군요. 여기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내 기억 속의 그는 꽤 건방졌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내 눈치를 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내가 준남작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 그리고 내게 원하는 것도 있는 모양이다.

“행하시는 사업이 잘 되신다고 들었습니다.”

유유 치킨을 말하는 거다. 아스타로트가 세계 최고로 맛있는 치킨이라고 인증해준 덕분에 가게를 오픈했을 때보다 더 잘 팔리고 있었다.

“운이 좋았습니다. 뜻밖에 찾아온 행운이었죠.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메이드 아카데미와 집사 아카데미는 인재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지금처럼 여러 기업에서 데려가기 위해 미리 모여듭니다. 다만,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공식적으로 저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지만요.”

“그렇군요.”

“그, 저번에 함께 있으셨던 메이드 분의 이름이 유리아 그레이스 씨였죠.”

“예.”

“한 번 만나 볼 수 없겠습니까? 아, 사적인 일이 아니라 공적인 일입니다. 이번 기수 중에서 수석이란 말이 자자해서 말입니다.”

마릭이 쩔쩔매며 말했다. 이런 쪽 일에 익숙하지 않다는 느낌이 팍팍 느껴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감이 잡혔다.

‘유리아와 안면을 튼 적 있으니, 그것 때문에 회사에서 억지로 보냈군.’

마릭 혼자만 보낸 걸 보니 각 잡고 영입하려는 건 아닌 모양이다.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느낌이랄까.

‘혹시 여기 있는 기업과 귀족들 전부 유리아를 영입하려고?’

가능성은 꽤 있었다.

“죄송합니다만, 불가능합니다.”

“예? 그, 이유가…?”

“제가 왜 당신에게 유리아를 소개해야 합니까?”

“…그건. 유리아 씨에게 좋은 기회가 될 거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그럼 유리아에 본인에게 말하십시오. 절 이용하려 하지 마시고요.”

“…….”

“마릭 씨에겐 이번 일로 꽤 실망했습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매너가 없었습니다.”

마릭이 바로 허리 숙여 사과했다. 과연 과장급 인물이라고 할까. 그의 사과 인사는 각이 살아 있었다.

나는 그의 인사를 무시하고 메이드 아카데미로 걸어갔다.

중절모를 푹 눌러 쓴다. 유리아가 목적이라면 당연히 그 후원자인 내 정보도 퍼졌을 가능성이 크니까.

눈치 빠른 몇몇은 내 앞으로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혹시 유진 마이어 준남작 님 이십니까? 도르락 자작가에서 온 집사입니다.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유진 마이어 준남작 님. 유리아 그레이스 씨에 관해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만.”

“쯧.”

나는 들으란 듯이 혀를 차며 아스트랄을 개방했다. 마나가 움직이자 내게 접근하던 그들이 움찔 멈춘다. 나는 그들을 한 번 노려봐주고는 아카데미 입구로 걸어갔다.

‘딱 봐도 어중이떠중이들이다. 진짜는 이런 식으로 접근 안 하지.’

메이드 아카데미 입구에는 깔끔한 인상의 메이드가 서 있었다. 나이는 꽤 들어 보이는 걸로 보아 교관으로 보였다.

나는 코트 안쪽에서 초대장이자 확인증인 편지를 꺼내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마법으로 편지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편지를 돌려주며 말했다.

“유진 마이어 준남작 님. 메이드 아카데미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앞에서 고생하시는 걸 봤습니다. 안쪽에서는 그럴 일이 없으니 안심하시지요.”

“면회 날에는 아카데미 밖으로 나갈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래서야 나가기도 힘들 것 같군요.”

“저들이 모르는 길이 있습니다. 다른 교관들이 자세히 셜명 해드릴 겁니다.”

“저 앞에 보이는 건물로 가시면 됩니다.”

메이드 아카데미를 길을 걷는다.

정원이 있었다.

‘듣기로는 정원을 관리하는 법도 배운다지.’

정원을 쭉 훑어봤다. 지금까지 내가 본 어떤 정원들보다 뛰어났다. 화려하면서도 깔끔했다. 규모도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컸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메이드 아카데미의 부지는 웬만한 대학교 이상이니까.

‘메이드 아카데미는 수녀원 뺨치는 규율을 가진 교육장소라지. 일종의 금남의 구역에 들어온 것 같아 왠지 모르게 긴장되는군.’

슥 둘러본다. 정원을 거니는 학생들이 보였다. 대부분 가족으로 보이는 자들과 함께 움직인다. 가족이 아닐 경우엔 귀족으로 보이는 후원자들이다.

나는 면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입학식 때 사용했던 그 건물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었다. 허나 그들은 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한 명만이 내 시선을 끌었다.

의자 위에 바른 자세로 차분히 앉아 있는 청은발의 메이드.

유리아와 눈이 마주쳤다. 무표정하던 유리아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진다. 마치 꽃이 피어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한 발작, 한 발작 걸어갈 때마다 그녀와의 추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내 자지를 입에 물고 빨아대던 그녀, 집안일을 하면서도 은근히 유혹하던 그녀, 평소에는 무표정하다가도 침대에서는 화끈하게 앙앙거리던 그녀.

‘음. 죄다 그쪽 추억밖에 없군.’

어절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녀와 함께 지내는 동안 발정 난 짐승처럼 지냈었으니까.

유리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건강해 보이셔서 다행이에요. 주인님.”

시선이 이쪽으로 확 몰린다. 주인님이란 소리 때문에? 이 세계에서 고용주가 그렇게 불리는 건 흔했다.

‘이건 유리아에 관한 관심인가.’

교관, 학생 할 것 없이 유리아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그것도 호의를 담은 쪽. 덕분에 그들은 내게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밖에 사람이 많더라. 널 영입하려는 사람들 같았어.”

“그렇습니까? 교관들에게 듣긴 했는데… 그 정도일 줄은 몰랐네요. 봉변은 당하지 않으셨나요?”

“내가 겨우 이런 일로 놀라거나 당황할 사람은 아니잖아.”

원래 계획은 유리아와 함께 당당히 밖으로 나가 데이트를 즐기는 것이었다. 메이드 아카데미에 갇혀 있었을 테니 그 답답함은 말할 수 없을 정도일 테니까.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나가면 즐기기는커녕 사람들에게 시달리기만 할 것이다. 그 사실을 말하자 유리아는 곤란한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주인님과 함께 밖에 나가는 일만 기대했었는데…. 타이밍이 안 좋았네요.”

“그래도 교관의 말로는 몰래 밖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있다더라. 밖을 돌아다니진 못해도 괜찮은 식당에서 식사를 해도 될 거야. 호텔을 잡아 놨어. 어쩔래?”

유리아가 눈을 반짝였다.

“당연히 주인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0시. 면회는 오후 8시까지 돌아와야 하니 10시간 정도 남았다.

“명성이 자자한 메이드 아카데미를 소개해줄 수 있을까? 꽤 궁금하네.”

오늘처럼 특별한 날에는 메이드 아카데미의 일부 시설을 면회 손님에게도 개방된다고 들었다.

“물론이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유리아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섰다. 시설을 확인해본 결과 감탄이 나왔다. 오래된 건물과 달리 필요한 기계들의 경우 죄다 최신식이었다.

메이드 아카데미에서 뭘 배우는지 물었다가 입을 벌렸다.

청소하는 방법 같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네오 런던의 역사, 귀족의 전통까지. 배우는 것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었다.

“배우는 게 너무 많잖아. 배운다고 전부 익힐 순 있긴 해?”

“기본적으로 메이드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들은 천재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으니까요. 평범해 보여도 특별한 재능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더군요.”

“유리아. 너는 어때? 할만해?”

“으음. 보통 때라면 겸손히 대답하겠지만… 무엇이든 주인님을 속일 수는 없는 법이죠.”

유리아가 내 옆으로 성큼 다가왔다. 내 어깨를 잡은 그녀가 까치발을 들고서 접근했다. 반사적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행히 이곳엔 아무도 없었다.

“제겐 아카데미의 교육이 쉬웠어요. 조금 따분할 정도로.”

귀와 목에 그녀의 숨결이 닿으니 몸이 달아오른다. 내가 목이 민감하다는 걸 그녀가 알고 있으니까.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에 둘렀다. 그리고 그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응.”

유리아가 신음을 흘렸다. 고작 이 정도로? 너무 의외라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뺨은 살짝 상기되어 있었고, 날 올려다보는 두 눈은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처럼 반짝인다.

순간적으로 압도당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꽈악! 한 손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 커다란 가슴을 더 강하게 움켜쥐었다. 손가락 끝에 딱딱한 무언가가 걸렸다. 브래지어라고 하기엔 그 형태가 조금 다르다. 발기한 젖꼭지였다.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