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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51화 (1,731/2,000)

Chapter 1951 - 1951. 화끈하게

다우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갔다.

다행히 바다 너머에 있지 않았다. 다우징이 가리키는 방향은 대구의 팔공산 어딘가였다. 팔공산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았으니 확실할 것이다.

보물의 정확한 위치로 가려면 차에서 내려 직접 움직여야 했다. 슈퍼카를 끌고 팔공산 근처를 돌아다니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그리고 현재 다우징이 가리키는 곳은 통제되고 있었다.

다우징이 가리키는 쪽으로 가려는 곳에는 경찰들이 막아섰다.

“죄송합니다. 현재 여긴 통제 중입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통제하는 이유가 뭡니까? 몬스터라도 나왔습니까?”

“예. 근처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고 하더군요. 현재 협회 소속 헌터들이 정리 중입니다. 아마 내일 오후까지 통제될 겁니다.”

“저도 헌터입니다만.”

“그렇습니까. 성함을 말씀해주시면 협회 쪽에 연락드려 확인해보겠습니다.”

“놀러 온 헌터요.”

“…….”

갑질을 하거나, 무시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여긴 현실이었고, 나는 평범한 헌터였으니까. 슈퍼카를 뒤로 뺀다. 근처에 있는 적당한 모텔에 자리 잡았다.

“하린아. 어떻게 생각해?”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한하린에게 물었다. 내 감이 말하고 있었다. 이건 명백히 이상했다.

“인터넷에 검색해 봤어. 팔공산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다는 기사가 2개 있어.”

던전 브레이크가 터지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거기다 여긴 대구였다. 수도권인 서울과 비교할 수는 없으나, 광역시다. 인구 200만이 넘는 도시. 그런 도시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났는데도 기사가 2개 밖에 없다?

“뭔가 있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백지은에게 톡을 보냈다. 그녀는 한국 헌터 협회 간부다. 뭔가 알고 있지 않을까. 대답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백지은: 팔공산? 글쎄. 지금 처음 듣는걸.

성유진: 진짜 몰라?

백지은: 협회 간부라고 해서 대한민국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알고 있는 건 아니야. 하물며 난 경상도 담당도 아니니까.

성유진: 알았어.

백지은: 지금 팔공산이야? 언제 올라와?

성유진: 나중에 연락할게.

나는 스마트폰을 집어넣었다.

“가장 가능성 높은 건 협회의 블랙 길드 소탕이야.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협회가 통제할 이유가 없으니까.”

“점점 더 궁금해지네.”

“…지금 사태가?”

“아니. 보물이.”

어쩌면 지금 일어나는 일들이 보물과 관련된 걸지도 몰랐다. 보물에 대한 호기심이 더 커졌다.

한하린은 날 빤히 쳐다봤다. 어딘가 불만스러운 시선이었다.

“몰래 안으로 들어갈 생각이지?”

“여기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돌아갈 순 없잖아. 하린아, 넌 여기에 있어.”

“너 혼자 보내라고? 네가 무슨 사고를 칠 줄 알고? 같이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산속 데이트라니. 나쁘지 않네.”

그렇게 팔공산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찰들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는 건 쉬웠다. 아무리 그래도 산 전체를 포위해서 통제하진 못하니까.

다우징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머릿속으로는 보물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하고 있었다.

‘일단 손에만 넣으면 공간 이동 주문서로 돌아가면 돼.’

한하린에게도 공간 이동 주문서를 주면 된다. 그녀의 입이 무거운 건 알고 있으니 어디가 말할 리도 없다.

“……!!”

거침없이 전진하던 우리의 다리가 멈췄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느껴졌다. 공기, 온도, 습도는 변하지 않았다. 변한 건 하나. 마나 농도.

슬쩍 옆을 보니 한하린의 표정도 굳어 있었다. 나와 달리 그녀는 바로 답을 내뱉었다.

“침식형 던전.”

개방형, 오픈형. 그리고 최근 몇 년 전에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가장 골치 아픈 던전.

나는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하기로 했다. 던전을 탐사하는 것처럼. 여러 경험상 방심했다가는 훅 갈 테니까.

우우웅.

공기 흐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린다. 자연스럽지 않은 공기의 흐름에 미간을 좁혔다.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진다. 마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 같다.

‘이 느낌은 공간 이동 주문서를 사용할 때와 비슷하잖아.’

바로 옆에 있는 한하린을 끌어안았다. 갑작스러운 행동에 한하린의 두 눈이 커지며 당황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녀를 꽉 안았다.

우우우우우우웅!

공간이 일그러짐은 나와 한하린을 휩쓸었다.

나와 한하린은 전혀 다른 곳에 나타났다.

텐트.

캠핑용의 작은 텐트가 아니라 막사용으로 쓰는 대형 텐트 아니었다. 그 중심에 나는 한하린을 꽉 끌어안고 있었다.

“씨발. 갑자기 뭐야?”

컵라면을 먹고 있던 남자가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그의 행색을 위아래로 살폈다. 경장갑을 입었고 허리춤에는 칼을 찼다. 헌터다.

“눈치 없는 새끼. 지금 분위기 안 보여? 꼭 그렇게 초를 쳐야겠어?”

“갑자기 나타나서 뭐래 이 미친 새끼가!”

남자는 컵라면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가 허리춤 칼에 손을 가져가고, 나는 허공에 손을 뻗어 칼을 소환했다.

콰직!

갑자기 남자의 몸이 바닥에 처박힌다. 탁자와 컵라면도 부서져 남자의 몸을 더럽혔다.

중력. 한하린의 힘이었다.

“갑자기 끌어안지 좀 마.”

한하린이 작게 투덜거리며 내 품에서 벗어났다. 그녀는 괜히 머리카락을 정리하면서 중력에 깔려 옴짝달싹 못 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나는 주변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가해진 중력은 딱 남자 주위에만 적용되는 듯했다.

‘천장이나 다른 가구들은 무너지지 않았군. 하린이도 많이 발전했네.’

남자에게 다가가 심문하기 전에 다우징을 꺼내 확인했다. 다우징은 오른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보물이 있는 방향은 확인했다.

“내가 궁금한 게 많아. 뭐 하는 놈이냐, 너?”

“…저 여자한테 이거부터 풀고 말하면 안 되겠나?”

“저 여자가 아니라 내 여자다.”

남자는 어쩌라는 듯이 이쪽을 올려다봤다. 눈앞에서 칼을 흔들어주니 바로 시선을 내리깔았다.

“우선 질문에 대답해라. 여긴 어디지?”

누구의 짓인지, 아니면 침식 던전의 현상인지 몰라도 강제로 공간 이동됐다. 남자가 한국말을 하는 걸 봐선 한국인 건 확실하다. 

“역시 공간 뒤틀림에 휘말린 거냐? 빌어먹을. 하필이면 막사 안에 나타날 게 뭐야.”

콱!

손등에 칼을 찔러 넣었다.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꿰뚫린 오른손을 쳐다봤다.

“지금 너랑 장난하는 거 아니다.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내 질문에 대답해라. 다음에는 손으로 안 끝난다.”

“……여긴 대구 팔공산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막사 중 하나지.”

남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지금 자신의 대답에 목숨이 걸린 사실을 깨달은 모양이다.

나는 남자에게 이것저것 물었다.

남자의 이름은 서태오. 블랙 길드 오팔의 일원이었다. 블랙 길드 오팔은 나도 들어 알고 있다. 더러운 일을 전문으로 하는 용병 길드였다.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우린 의뢰 받은 대로 여기서 머무르고 있을 뿐이다. 협회의 움직임이 격해지는 걸 확인했기에 철수를 준비 중이었다.”

“단순히 머무르기만 했던 건 아니잖아.”

“머무르면서 이곳을 지키라는 게 의뢰 내용이었다. 협회가 온 이상 그 의뢰도 끝났다. 보아하니 협회 소속은 아닌 것 같은데… 이쯤하고 끝내지. 너희 둘을 모르는 척해줄 테니 살려줘. 그럼 여기서 무사히 나가는 방법도 알려주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했나? 지금 목숨이 위험한 건 네 쪽이다.”

“막사를 둘러봐라. 침대가 6개다. 이 막사에만 6명이 머무르고 생활하지. 여기에 있는 내  둉료들만 전부 50명이 넘는다. 너희 둘이 상대할 수 있을까? 느껴지는 힘을 보아하니 너는 A급인 것 같고… 네 여자는 A급이라 하기엔 부족하고 B급인가? 내 동료 중 절반은 A급 이상이다. 둘이 감당할 수 있겠나?”

힐끗. 한하린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놈에게 동정심이라도 가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 눈빛은 평소보다 훨씬 차가웠다. 남자를 향한 일말의 자비도 느껴지지 않는다.

서걱!

칼을 휘둘러 남자의 팔을 벴다.

“끄으으읍!”

남자가 필사적으로 비명을 참았다. 여기서 소리치면 동료들이 달려올지 몰라도, 자신의 목숨이 끝난다는 건 이해하고 있었다.

“의뢰주가 누구인지, 이 침식형 던전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오는지… 자세히 말해봐라. 자세히.”

15분 동안 서태오를 족치며 궁금한 것들을 알아냈다.

“…내가 아는 건 전부 말했다.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도 내가 알려주마. 그러니.”

푹.

놈의 말을 들을 것도 없이 목에 칼을 꽂아 넣었다. 처음부터 놈을 죽일 생각이었다. 빠져나갈 방법? 공간 이동 주문서가 있으니 괜찮다. 이참에 굳은 표정의 한하린에게 공간 이동 주문서를 건넸다.

“위험할 때 주문서를 찢어.”

군말 없이 공간 이동 주문서를 받은 한하린은 잠깐의 침묵 후에 말했다.

“사태는 훨씬 심각해. 조금이라도 빨리 여기서 벗어나는 게 좋을 거야.”

“보물은 얻어야지.”

“의뢰주가 백림(白林)이라는 말은 못 들었어? 이 사태의 뒤에는 백림이 있어. 설마 백림이 뭔지 몰라?”

“설마 백림을 모를 리가.”

일본에서 활동하는 최악의 범죄 조직. 일본 길드 헌터 습격하고, 정치가를 암살하는 등의 과격한 범죄를 대놓고 저지르는 놈들이다. 현재의 썩어빠진 일본을 바꾼다는 대의를 내걸며 활동하는 일본의 골칫거리들.

예전에 일본에 갔을 때 놈들의 테러에 휘말린 적도 있었다. 

그런 놈들이 갑자기 한반도에서 활동한다?

‘십중팔구 보물 때문이겠지. 서태오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백림의 간부가 있다. 간부가 직접 움직일 정도면….’

보물은 보통 보물이 아닐 것이다.

차오르는 탐욕을 느끼던 나는 한하린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걸 봤다.

유희 생활 어플 덕분에 이런 상황이 익숙한 나와 달리 그녀는 경험 자체가 없었다.

머리를 긁적였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어설프게 조언해봤자 그녀의 자존심만 건드리는 꼴이 될 테지.

‘익숙해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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