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54 - 1954. 화끈하게
“무슨 꿍꿍이냐?”
놈이 눈이 매서워졌다. 날 보는 시선에 불신이 가득했다. 그 눈빛이 마음에 안 들어 심장에 칼을 꽂고 비틀었다.
“끄어어억!”
여전히 죽지 않았다.
로봇을 만들어 일본을 운영한다. 터무니없는 계획이었다. 근데 피닉스의 심장을 보면 마냥 말도 안 되는 계획은 아닌 것 같다.
‘들을 건 다 들었으니 이놈을 살려둘 필요가 있나?’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딱히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내버려 두는 쪽이 더 찝찝하다. 내가 완전 회복을 쓰듯이, 언제 회복해서 내 뒤를 칠지 모르니까.
결정을 내리자마자 칼을 휘둘렀다.
서걱!
두부 썰 듯이 부드럽게 놈의 목을 베었다. 놈의 머리가 바닥을 데구루루 굴렀다. 이걸로도 안심할 수 없다. 아예 뇌를 짓뭉개야 안심될 것 같다. 놈의 불사 능력은 상식을 벗어나 있으니까.
오른발을 들어 올린 순간이었다.
“의미 없는 짓이다. 뇌가 뭉개지더라도 나는 죽지 않는다.”
놈이 말했다.
“목을 잘랐는데 어떻게 말하는 거냐?”
“간단한 음양술이다.”
“그 상태에서 음양술도 쓸 수 있다?”
“이 정도가 한계다. 그것도 나니까 가능한 일이지.”
나는 놈의 머리채를 잡아 들어 올렸다. 놈의 눈동자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대가리가 터져도 죽지 않는다라. 설마 완전한 불사는 아니겠지.’
창작물을 보면 불사에도 종류가 있었다.
육체가 재생하는 계열, 시간을 되돌리는 계열, 분신을 이용하는 계열. 목만 남았어도 태연하게 말하는 걸 보면 놈은 분신 계열 같았다. 음양술사니 식신 같은 게 아닐까?
‘완전히 죽여버렸다가 영혼이 준비된 다른 몸으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군. 완전히 죽이지는 말아볼까.’
발상을 바꾸자.
죽이지 않고 가지고 다니는 거다. 머리밖에 없으니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터. 놈의 정신이 무너지는 순간에 정보든 뭐든 많은 뜯어낼 수 있을 것이다.
“포르말린에 절여둬도 살 수 있나?”
“글쎄. 해보시던가.”
“협조적으로 나와라. 네 머리를 병에 담아서 바다 깊숙한 곳에 처박아 둘 수 있으니까.”
“…….”
놈이 입을 다물었다. 효과가 있는 건가? 모르겠다. 놈의 두 눈은 여전히 차분했으니까.
“피닉스의 심장은 어떻게 만지지? 자격이 없다라는 개소리 말고. 구체적인 방법을 말해라.”
“…재능이다. 너한테는 불에 관한 재능이 없다.”
“너한테는 있고?”
“있으니 다뤘겠지. 피닉스 심장을 옮기고 싶으면 간접적으로 접촉해라. 그럼 적어도 화상을 입는 일은 없을 테니.”
“진즉에 말할 것이지.”
나는 놈의 상반신에서 옷을 뜯어내 피닉스 심장을 감싸고 조심스럽게 만졌다. 정말로 화상을 입지 않았다.
‘인벤토리에 못 넣겠군.’
인벤토리에 넣으려면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내가 들 수 있어야 하는 것. 둘째 내가 직접 만져야 하는 것. 지금처럼 간접적으로 만지는 것으로는 인벤토리에 넣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손에 놈의 머리통을, 다른 한 손에는 피닉스의 심장을 들었다.
집 밖으로 나갔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시원했다.
“마지막으로 제안하지.”
“또 뭔 헛소리를 하려고? 궁금하네. 짖어봐.”
“나는 불사신이다. 너는 지금 불사신을 적으로 돌렸다. 나와 척을 지지 않을 마지막 기회를 주마. 내 머리와 피닉스 심장을 집에 돌려놓고 한국으로 가라. 그럼 나와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거다.”
“그 말을 어떻게 믿고?”
“뛰어난 음양사는 거짓을 입에 담지 않는다. 말에는 힘이 담기고, 거짓은 저주가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지.”
“지랄. 난 너 못 믿어.”
“끝까지 어리석은 선택을 하겠다는 건가. 멍청한 놈.”
“이 새끼가 진짜. 안 죽는다고 되는대로 지껄이네.”
나는 놈의 머리채를 잡고 공중에 휙휙 휘둘렀다. 잠깐 버티는가 싶던 놈은 이내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악! 그만! 어지럽다! 토할 것 같다! 그만둬라!”
“대가리밖에 없는 놈이 토는 어떻게 하게?”
몇 번 더 놈의 머리를 돌린 뒤에 멈췄다.
이어 단번에 안색이 창백해진 놈의 머리를 들고 다른 집들을 살펴봤다. 모두 드론이 기계를 조작하고 있었다. 미래적인 광경이면서도 어딘가 디스토피아적이었다.
“어떤 부품을 만드는 건 알겠는데… 정확히 뭘 만드는 거지?”
“순순히 말할 테니 내 머리를 돌리지 마라. 아무리 기계천황이라도 단숨에 일본을 장악하고 제어하는 건 불가능하다. 일본은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자들이 많이 남아 있으니. 기계천황의 물리적인 손발이 되어줄 로봇들을 만들고 있다.”
“아주 본격적이군.”
기계와 드론들을 살펴봤다. 하나 같이 최첨단이었다. 무슨 기술이 들어갔는지 감도 안 잡힌다.
“그런데 말이야. 팔공산에 있던 침식 던전. 그거 네가 만들었냐?”
우연히 침식 던전이 일어났다. 라고 하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좋았다.
“그렇다면?”
“……인간이 던전을 조작하는 게 가능하다고? 어떻게 한 거지?”
“나도 모른다. 나는 그저 마스터에게 받은 아티팩트를 사용했을 뿐이다. 자세한 건 마스터가 알고 있겠지.”
“마스터?”
“백림의 리더. 림주. 나는 그를 마스터라고 부른다.”
나는 림주에 대해 묻지 않았다. 호기심도 딱히 없었고, 백림과 깊게 관여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지금의 나는 기계천황인가 뭔가를 챙기는 게 목적이었다.
‘분명 여기에 있다.’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기계 부품을 들고 지하로 들어가는 드론을 발견한 것이다.
“…결국 발견한 건가.”
“역시 지하에 뭔가 있을 줄 알았어. 지하에 뭔가를 숨기기 딱 좋으니까.”
희희낙락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특촬물의 비밀기지 같은 곳이었다. 최첨단으로 꾸며진 곳이라고 할까. 통로의 끝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기계천황을 볼 수 있었다.
10m가 훨씬 넘는 거대한 인간형 로봇이!
‘건담인 줄 알았네.’
검은색 철갑을 입은 로봇이었다. 외형만 봤을 땐 거의 완성된 것 같았다. 나는 거대 로봇을 올려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여기서 이런 걸 만들고 있었다니.”
“놀랐나 보군. 하긴 놀라는 게 당연할 테지.”
놈이 거만하게 말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 새끼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근데 어떻게 만든 거지? 일본에 이런 거대 로봇을 만들 정도의 최첨단 기술이 있었나?”
이런 로봇은 미국에서도 못 만들 것 같았다. 명백한 이 세계에 맞지 않는 오버 테크놀로지다.
“첨단 기술은 의외로 많이 안 들어간다.”
“뭐?”
“음양술이다. 저 로봇은 요컨대 거대한 식신이다. 마법으로 치자면 강철 골렘이라 할 수 있겠군. 모습은 요란해도 실제로는 음양술을 기반으로 돌아가는 로봇이다.”
“그건 로봇이 아니잖아.”
“로봇이다.”
놈의 고집이 느껴졌다.
그 고집을 꺾으러 말싸움을 할까하다가 관뒀다. 머리통밖에 없는 놈과 말싸움을 해서 얻을 건 없으니까.
“이게 네 식신이면 공정성이 떨어지잖아. 네가 추구하는 기계천황은 저울처럼 완벽한 공정성을 가진 놈이 아니었나?”
“그러기 위해 인공지능을 준비했다. 아직은 데이터도 모이지 않아 자아도 싹트지 않은 갓난아기 수준의 인공지능이지만, 데이터가 쌓일수록 성숙해지고 졸지에는 진정한 기계천황이 되어 일본을 다스리고 발전시킬 것이다.”
“영구 동력인 피닉스의 심장과 인공지능이라. 무시무시한 조합이군.”
자, 그럼 눈앞에 있는 이 거대 로봇은 어떻게 가져갈까? 일단 피닉스 심장을 쑤셔 넣어 가동하도록 만들어야 할까?
“슬슬 놀아주는 것도 끝이군.”
놈이 말했다. 분위기가 일변했다는 것을 깨달은 내가 미간을 좁히며 경계심을 끌어올릴 때였다.
머리 위 공간이 찢어지더니 검은 코트를 입은 누군가가 나타나 나를 공격한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4]
바로 사용한 찰나로 옆으로 피하려고 했다. 허나 찰나를 쓴 나보다 놈이 더 빨랐다. 내 목덜미를 잡고 지상으로 찍어 누른다.
콰아아앙!
지면에 머리가 처박히면서 경악했다.
‘찰나를 썼는데도 바로 반응해 나를 잡아 내리꽂았다고?’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그 짧은 순간에 목뼈가 부러져 중추신경이 맛이 간 것 같았다.
완전 회복은 쓰지 않는다. 지금 완전 회복을 쓸 때가 아니다.
툭.
다른 누군가가 내 옆에 나타났다.
“과연 마스터. 쉽지 않은 놈일 텐데 단숨에 제압해버리는군.”
머리밖에 안 남은 놈의 목소리였다. 시야 끄트머리에 머리만 남아 있는 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게 보였다.
‘놈이 둘? 역시 분신이었나.’
상황은 최악이었다. 다행이라는 점은 바로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
“반응속도가 보통이 아니더군. 잘못하면 놓칠뻔했다. 이 녀석에게 여자 동료가 있었다고 들었다.”
“아. 가보니까 없더군. 놓쳤다. 어차피 협회도 우리가 움직인 걸 알고 있을 테니 목격자가 있어도 상관없지 않나?”
“…흠. 그래서 이 녀석은 어떻게 할 거지?”
“봉인해서 기계천황의 보조 동력을 쓰려고 한다. 마침 전기 능력자를 찾고 있었는데 잘된 일이지.”
“굳이 전기 능력자가 필요한가? 피닉스의 심장이 있지 않나?”
“필요하다. 전기는 응용할 것이 많으니까.”
놈이 무언가 중얼거린다. 음양술을 사용하는 것이다. 놈의 음양술이 내 몸을 조이며 구속하기 시작했다.
‘진짜 봉인 당한다고?’
까득, 까드드득!
딱딱한 무언가를 긁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수정으로 감싸인다. 곧 전신이 수정 속에 갇혔다.
“봉인이 된 건가?”
“덕분에 완벽히 성공했다. 놈은 이제 살아 있는 동력원이다. 봐라….”
파지지지직!
내 몸에서 뇌전이 빠져나간다. 정확히는 내 안의 마나, 뇌기(雷氣)가 멋대로 움직이는 거다.
“이렇게 전기를 뽑아 쓸 수 있다. 말 그대로 생체 발전기지.”
욕이 치밀어 올랐다.
‘이 씨발놈이. 날 감히 생체 발전기 따위로 써?’
저놈은 반드시 죽여버리겠다. 덤으로 놈의 계획도 박살 낼 것이다. 나는 굳게 다짐했다.
“의식은?”
“없다. 육체와 함께 봉인되었지. 죽진 않았으나 살아 있는 것도 아니다. 봉인을 풀어줄 생각은 앞으로도 없으니 끝났다고 봐야지. 하하. 일이 꼬이는가 싶더니 오히려 시간이 더 단축됐군. 이걸로 사흘 내로 기계천황은 탄생할 거다.”
“…….”
“표정이 떨떠름하군. 왜 그러지, 마스터?”
“…기계천황. 이게 맞는 계획인지 의문이 들었다. 기계가 일본을 지배하는 게 정녕 옳나?”
“기계천황은 인간과 같은 욕망이 없다. 완전한 평등. 기계천황이 이 망조의 일본을 구할 거다.”
“……기계천황은 어디까지나 방법 중 하나다. 중간에 아니다 싶으면 처분하겠다.”
“좋을 대로. 어차피 그럴 일은 없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