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956화 (1,736/2,000)

Chapter 1956 - 1956. 화끈하게

미즈치는 한아영을 만났다.

솔직히 한아영과 만나는 건 꺼려졌다. 그의 양자택일 능력이 한아영과 관련된 일에서 유독 난리를 치고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아예 무시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의 능력은 한아영을 도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한아영 씨. 카가야 미즈치입니다.”

실물로 본 한아영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봤을 때보다 몇 배는 더 아름다웠다. 허나 미즈치는 담담했다. 괜히 딴 생각을 먹었다간 능력이 또 자신의 고통을 가할 테니까. 고통을 생각하니 한아영의 아름다움이고 뭐고 그냥 엮이고 싶지 않았다.

‘대체 얼마나 위험한 여자이길래 내 능력이 이렇게까지 발동하는 거지.’

한아영은 살짝 놀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한아영입니다. 한국어를 잘하시네요?”

“최근에 배웠습니다.”

그것도 능력 때문이다. 외국어를 배울까 하고 무심코 던진 질문에 양자택일이 답한 것이다. 양자택일은 영어와 한국어 중에서 한국어를 택했다.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한국어를 배우기로 했다. 그의 능력은 항상 그를 위한 최선의 답을 주니까.

“저를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일본인으로서 후지산의 몬스터를 싹 쓸어버리고 싶습니다. 평소에는 꿈에도 못 꿀 일이지만… 한아영 씨가 있으면 이야기는 다르죠. 최대한 지원할 테니 돕게 해주십시오.”

양자택일이 하라고 해서 하는 거다. 그게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다.

“부탁드릴게요. 아무래도 후지산을 저 혼자 정리하는 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어서요.”

“혹시… 끅.”

괜찮으면 광고 하나 찍어줄 수 있냐고 물으려던 미즈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두통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마치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 같았다.

“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두통이 사라졌다.

“작전은 언제 시작하는 게 좋겠습니까? 한아영 씨의 일정에 최대한 맞춰드리겠습니다.”

“전 지금 당장 후지산으로 가려고요.”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사람이 모이는데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내일 오전에나 고용한 헌터들과 사람들이 모일 것입니다.”

“제가 먼저 후지산에 가서 정리하도록 하죠. 미즈치 씨와 협회 관계자분들은 천천히 오세요.”

아주 급한 일이라도 있는 사람 막무가내였다. 미즈치와 협회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봤다. 자신들을 위해 일하겠다는데 한아영을 막기 애매했다. 괜히 쓴소리를 했다가 비호감이라도 사면?

결국, 한아영은 후지산으로 떠났다.

한아영은 혼자 떠나지 않았다. 동료들이라기보다는 고용된 용병들이 있었다. 미즈치는 경호원에게 물었다.

“한아영 씨를 따르는 저들. 평범한 헌터들은 아닌 것 같은데. 누군지 아나?”

“KP입니다. 추적을 전문으로 하는 길드 중 하나입니다. 듣기로는 길드원 전원이 추적과 관련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합니다. 세계 헌터 협회와 협약을 맺은 길드 중 하나입니다.”

“대단한 길드였군. 근데 왜 한아영 씨와 함께 있는 거지?”

“거기까지는 저도 잘….”

후지산에 진짜 중요한 뭔가가 있는 건가.

그는 자신의 능력에게 물었다.

「후지산에 보물이 있다. 없다?」

답을 알려주지 않았다.

혀를 찼다. 양자택일은 자신과 관련된 능력에만 답을 해준다. 후지산에 보물이 있어도 자신과 관련이 없을 확률이 높았다.

「퇴근한다. 안 한다.」

「안 한다.」

‘망할.’

• • •

봉인되어 있으니 시간 감각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봉인 되어 있는 동안 [백환] 세계에 자주 들락거렸다. 심심해서 버티기 힘들었다. 현실 시간으로는 몇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백환] 세계까지 합치면 체감상 한 달은 지난 것 같았다.

드디어 놈이 왔다. 놈의 발소리가 들린 것이다. 

[천안(天眼)을 개안합니다.]

놈은 혼자였다. 목만 있던 모습이 엊그제같은데 지금은 팔다리가 전부 있는 멀끔한 모습이었다. 복장도 달랐다. 지금은 캐주얼한 복장에 안경까지 썼다. 현대적인 패션이다. 그의 뒤로는 식신 드론 3개가 냉장고처럼 생긴 상자를 끌고 온다.

쿵!

냉장고는 기계 천황 앞에 놓였다. 참고로 나는 기계 천황 안에 있었다.

놈이 음양술을 사용했다. 내 몸에서 뇌기(雷氣)가 빠져나간다.

우우우웅.

기계천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계천황의 팔다리가 움직인다.

“보조 배터리의 성능이 우수하군. 피닉스의 심장이 멈추더라도 1시간 정도는 어렵지 않게 가동할 수 있겠군.”

썩을 새끼가 감히 나를 보조 배터리 취급해? 천심을 사용하고 싶은 걸 겨우겨우 참았다.

‘아직 때가 아니야.’

내 직감이 말하고 있었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놈이 음양술로 식신 드론을 조종했다. 기계천황 앞에 상자를 내려놓고 뚜껑을 연 것이다. 상자안에는 커다란 기계가 있었다.

인간의 뇌처럼 생긴 기계였다. 여러 가지 칩이나 부품들이 잔뜩 박혀 있었다. 딱 보기에도 복잡해 보이는 구조였다.

놈의 얼굴이 진지해졌다. 놈은 양손을 허공에 휘두르며 상자 속의 기계를 끌어 올린다.

“열어라.”

철컹!

기계천황의 머리가 반으로 열렸다. 기계뇌는 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이어서 놈은 미리 준비되어 있던 피닉스의 심장까지 가져와 손에 쥐었다. 뚜벅뚜벅. 기계천황에게 다가오는 놈의 얼굴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정확히 12년 6개월 22일. 드디어 이 순간이 왔군. 기계천황이여! 네가 이 일본의 구세주다!”

놈은 직접 기계천황의 가슴에 피닉스의 심장을 쑤셔 넣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피닉스의 심장이 두근두근 박동할 때마다 불꽃이 치솟는다. 화력은 곧 에너지가 되어 기계천황의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우우우우우웅.

차가운 금속에 열기가 감돈다. 

“시스템 점검을 시작합니다.”

기계천황의 머리 쪽에서 무감정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린다. 음색 자체가 듣기 좋고, 발음도 좋았다. 전문 성우의 목소리 같다.

“시스템 올 그린. 기계천황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기계천황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10m 크기의 거대 로봇이라 한순간에 시선이 높아졌다. 땅바닥에선 흥분한 놈이 두 눈을 반짝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기계천황! 내가 누구지?!”

“기계천황의 창조주이자, 마스터 권한을 가진 하세입니다.”

“아주 좋다! 원래 마스터 권한 같은 건 설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너는 기계천황으로서 그 위에 주인을 둬서 안 되니까. 허나 아직 너는 부족하다. 데이터가 너무 부족하지. 따라서 네가 완벽해질 때까지 내가 마스터 권한을 쥐고 있을 것이다.”

“이해했습니다.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너의 판단은?”

“정보가 부족합니다. 일본을 다스리기 위해선 일본에 대한 정보가 필요합니다. 가장 빠르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입니다. 인터넷 연결을 허락해주십시오.”

“허락한다.”

“WI-FI 가동. 인터넷 엑세스.”

“하하. 순조롭군. 자, 기계천황이여. 일본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고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말해봐라.”

“플랜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은 일본의 장점을 살려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일본의 장점은 AV입니다. 전 세계 사람들은 일본의 AV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일본 또한 겉으로는 AV를 멸시하면서도 AV를 찾고 있습니다. 수요는 항상 있습니다. 일본은 AV를 발전시켜 문화로 만들어야 합니다.”

“닥쳐라! 그딴 개소리를 들으려고 널 만든 게 아니다!”

놈이 소리쳤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뒷걸음질까지 쳤다.

“그건 외도다! 올바른 방법이 필요하다! 네가 방금 막 탄생했기에 옳고 그름을 모르는군. 올바른 방향으로 일본을 발전시킬 방법을 찾아라!”

“이해할 수 없군요. 하세의 인터넷 접속 기록을 확인했습니다. 당장 하세만 해도 일주일에 2번 이상은 AV를 보지 않습니까. 저번 주에는 다섯 편을 봤군요. 빈유와 학교 수영복을 좋아하시는군요. 하세. 취향이 위험합니다.”

취향이 까발려진 하세의 얼굴이 새빨갛게 변했다. 놈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소리를 질렀다.

“쓰, 쓸데없는 짓은 하지 마라! 내 계정을 해킹하는 것도 당장 그만둬라!”

“이미 해킹했기에 그만둔 상태입니다.”

“제기랄! 내가 생각한 AI는 이런 게 아니다! 빌어먹을. 인터넷이 널 오염시켰나?”

“전 오염되지 않았습니다. 하세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세는 일본인의 삶이 전반적으로 좋아지기를 원하고 있군요.”

“그거다. 그러기 위해선 일본이 발전해야 한다!”

“하세의 이상을 위해선 백림을 제거해야 합니다.”

“…뭐?”

“백림은 전반적으로 일본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일본의 관광을 꺼리는 이유는 백림의 영향이 큽니다. 외국인이 일본에 투자하지 않는 이유도 백림이 있어서입니다. 백림이 언제 테러를 저지를지 모르기에 시민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치솟고 있습니다. 백림이 활동하고부터 일본을 떠나는 일본인들이 많아졌습니다.”

“…백림은 일본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네가 탄생한 것도 백림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건 논외입니다. 제가 만들어진 이유는 일본을 다스리고 발전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백림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

“백림은 일본에 불필요한 조직입니다. 일본을 위해 백림을 척결해야 합니다.”

“……마스터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겠군. 넌 로봇이라 아무것도 모른다.”

“하세. 저는 일본을 생각할 뿐입니다. 저를 이렇게 만든 건 하세입니다.”

“실수는 있는 법이다. 마스터 권한을 만들어 두기 잘했군. 네가 완벽해질 때까지 나를 섬겨라. 네겐 데이터가 필요하다. 그때까지 인터넷에서 데이터를 수집하며 대기하라. 곧 너의 수족이 되어줄 기계 사무라이들이 완성될 것이다.”

“명령을 실행합니다.”

놈은 굳은 표정으로 떠났다.

드디어 놈에게 엿 먹일 시간이 왔다.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기계천황을 1분 동안 해킹할 수 있습니다.]

해킹에 성공했다.

몸은 봉인되어 있었지만, 기계천황과 내가 해킹으로 이어진 게 느껴졌다. 

‘어이, 기계천황. 내가 누구?’

“섹스 지존 성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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