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57 - 1957. 화끈하게
해킹은 성공적이었다.
그것도 무려 1분 동안이나 기계천황을 해킹할 수 있었다. 20초만 해킹할 수 있어도 충분했었는데, 내 예상보다 3배 이상 해킹할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어마어마하게 뛰어난 오버테크놀로지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미 놈이 설정한 명령권을 수정했다. 놈은 이제 최대 명령권자가 아니다. 놈의 명령권 위에 내가 있었다. 기계천황의 절대적인 주인은 나였다.
‘지금 바로 기계천황을 가지고 도망치는 것도 나쁘지 않아. 가장 아끼는 보물을 도둑맞았으니, 그것만으로도 빡치겠지.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계획이 박살 났으니까.’
하지만 내가 당한 게 있는데 여기서 끝내는 게 맞다고 보나? 좀 더 커다란 엿을 놈에게 먹여주고 싶었다.
‘새로운 물건을 손에 넣으면 시험해보고 싶어지지. 거대 로봇이라고 해서 다를 것 없다. 놈은 조만간 일을 치를 거다.’
어떤 방식으로 기계천황을 이용할지는 모르겠다. 늘 하던 대로 일본 어느 도시에 테러를 할 수도 있고, 그 이전에 던전에 기계천황을 투입할 수 있다.
‘어이.’
“네. 말씀하십시오. 섹스 지존 성유진.”
‘길다. 섹존이라 불러라.’
“네. 섹존.”
기계천황은 고분고분했다. 아까 놈과 대화를 나누는 걸 보니 인공지능치고 성격이 꽤 되는 것 같던데, 고분고분한 척하는 게 아닐까?
‘쓸데없는 생각이다. 이미 해킹에 당했는데 무슨.’
해킹은 기계에 절대적이었다. 해킹에 걸린 순간부터 그 근간은 흔들렸다. 내가 자폭을 명령하면 망설이지 않고 자폭할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놈에게 한 방 먹일 거다. 그때까지 놈을 따르는 척해라.’
“알겠습니다.”
아직 해킹의 시간은 30초 이상 남았다.
‘놈에 대해 알고 있는 거 있나? 가령 정확한 능력이나 약점 같은 거. 아끼는 가족이 있다거나?’
“데이터에 없습니다. 그에 대한 정보는 한정적입니다.”
‘알고 있는 거라도 말해.’
“그의 이름은 하세입니다. 백림의 간부로서 일본 최고의 음양사 중 한 명입니다. 천 마리의 요괴를 부릴 수 있다하여 천요(千妖)의 하세라고 불립니다. 본명은 하세가와 노부키입니다. 가족의 경우 어머니와 형의 경우 야쿠자의 항쟁에 휘말려 사망, 공무원인 아버지는 관리 미흡으로 인한 가스 폭발 사고의 책임을 뒤집어쓰고 자살했습니다. 중학생 2학년 때 실종되어 이후 8년 뒤에 백림의 일원으로서 테러 활동을 시작합니다.”
‘백림에 들어간 동기는 가족사인가. 지금의 일본이 짜증 나긴 하겠어.’
일본은 사고가 나면 그 수습보다는 사과와 책임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도 고위직이 책임을 지는 경우는 드물다. 관리자들이 나서서 책임지고 온갖 비난을 받는다.
또 일본은 야쿠자의 힘이 강했다. 이미 양지에서도 어느 정도 대놓고 활동할 정도다. 일본의 각성자들은 폭력을 휘두르기 좋은 야쿠자 쪽으로 빠지기 일쑤였다. 일본에서는 힘이 생기면 헌터보다 야쿠자로 일하는 게 더 낫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 정도다. 뭐, 야쿠자 쪽이 흘린 정보라고 생각되지만.
‘놈의 능력은?’
“데이터에 없습니다.”
‘백림에 관한 다른….’
[시간이 지나 해킹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젠장.’
1분은 짧았다. 해킹의 지속 효과가 끝나고 내 의지는 기계천황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지금 나는 봉인되어 기계천황 내부에 있기에 직접 말을 걸 수 없다. 오직 해킹에 연결되었을 때만 기계천황에게 의지를 보낼 수 있었다.
‘해킹의 쿨타임은 3시간…. 앞으로 3시간 동안 심심하겠군. 섹스나 한 판 때리고 와야겠다.’
[유희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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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맞나요?”
한아영은 KP 길드의 팀장에게 물었다. 추적의 전문가인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
“이곳이 맞습니다. 제 능력은 찾는 대상이 있는 곳을 대략 적으로 알려줍니다. 그 대략적이라는 게 너무 대략적이라 문제입니다만… 이곳엔 팀원들이 있으니까요.”
그가 팀원 중 한 명을 쳐다봤다. 마스크로 코를 비롯한 하관을 가리고 있던 남자다. 그는 마스크를 내리고 성유진의 옷을 코에 갖다 대며 킁킁거렸다. 이어 허공에 코를 킁킁댔다.
“여기가 맞습니다. 대상의 냄새가 후지산에 있습니다. 아쉽게도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만, 방향은 알 수 있습니다. 저쪽으로 가면 됩니다.”
또 다른 팀원이 나섰다.
“전 주변의 생명 반응을 알 수 있습니다. 몬스터와 인간 정도는 구분할 수 있죠. 그런데 이상하게 가려는 방향에는 생명 반응이 적군요. 인간의 생명 반응은 전무하고… 몬스터의 생명 반응도 거의 없습니다.”
후지산의 한 지점만 그랬다. 다른 지점도 그랬다면 의심했을 테지만, 이 지점이 그러니 의심이 들었다.
한아영은 성유진과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KP 길드는 고용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초조함이 가시지 않았다. 최대한 빠르게 일을 진행했지만, 성유진이 사라지고 벌써 사흘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 백림이 성유진을 죽이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아니야. 유진이가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야.’
한아영은 성유진의 힘과 재능을 떠올리며 애써 불안한 마음을 감추었다. 그녀의 시선이 잠깐 뒤로 향한다.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스태프 차림의 여성이 있었다. 정체를 숨긴 한하린이었다.
‘마음고생은 하린이가 더 심하겠지. 눈앞에서 성유진이 사라지는 걸 봐야 했으니까.’
한하린의 말에 따르면 일부러 납치된 것도 아니었다. 피닉스의 심장이란 보물에 눈이 먼 성유진이 욕심이 부리다가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욕심을 부리다가 좋지 않은 결과를 맞이한다. 그 자체는 전형적인 동화 내용 같았다. 문제는 그 사고 친 당사자의 관계자로서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거였다.
“결계입니다. 한아영 씨가 쫓고 있는 놈이 일본의 최고 음양사 중 한 명이라더니…. 과연 그 명성대로 제법 뛰어난 음양 결계로군요.”
KP의 길드원 중 한 명이 말했다. 한아영이 그에게 물었다.
“위험한 결계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결계입니다. 목적이 없는 사람이나 몬스터들은 본능적으로 이 방향을 꺼리게 되는 결계라고 할까요. 특별한 위험성은 없습니다. 다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혀 있지요. 이 결계벽을 부수면 음양사가 100% 눈치챌 것입니다.”
“…백림은 이미 우리의 존재를 알고 있지 않을까요?”
너무 유명해져 버린 한아영은 한하린과 달리 일본에 조용히 들어올 수 없었다. 세계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고 있었다. 백림도 이미 한아영의 존재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어쩌면 이 결계 안에서 한아영을 곤란하게 만들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모르고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습니다. 마법사나 음양사 같은 족속들은 기본적으로 세상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천요의 음양사라고 해서 다를 것 같진 않군요.”
“이 결계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저는 이쪽 방면의 전문가입니다. 특히 결계를 해제하거나 뚫는 건 제 장기중 하나죠. 이 결계는 해제하려니 그 크기가 너무 방대하니 구멍을 내서 뚫기로 하겠습니다. 결계의 주인은 결계가 뚫린 줄도 모를 것입니다.”
전문가는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다. 15분 만에 결계에 구멍을 뚫었다. 한아영 일행은 망설임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뒷감당은 나중에 생각했다. 상대가 백림이니 일본 헌터 협회나 일본 정보와 언론은 좋아할 것이다. 백림이 아무리 거창한 대의를 꺼내 든다고 해도 결국 테러리스트에 불과한 조직이니까.
그들은 마을을 발견했다. 전통 민가로 이루어진 마을. 그 마을 안에는 공장에서 쓸법한 거대 기계들이 들어 있었다.
기계를 가동한 흔적은 있었으나, 사람은 없었다. 한아영은 신중을 가하면서도 마을을 샅샅이 훑었다. 그러나 성유진은 없었다. 이곳에서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었으나, 그 무언가도 이젠 없었다.
“…….”
한아영의 표정을 좋지 않았다. 한하린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그녀들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진동했다. 성유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성유진: 난 무사하니 걱정하지 마.
그녀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하린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고는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한아영은 이게 정말 성유진이 보낸 메시지가 맞나 의심부터 했다. 이후에 그녀도 메시지를 보냈으나, 성유진의 답변은 없었다.
결국 현장은 일본 헌터 협회에 인계하고 후지산의 몬스터를 적당히 퇴치했다. 그들은 저녁 무렵에 뉴스를 통해 새로운 소식을 받았다.
아나운서는 심각한 표정과 목소리로 뉴스를 전했다.
“백림의 천요의 음양사 하세가 가하시마를 점거했습니다. 그는 가하시마를 신 일본이라 명명했으며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뜬금없는 소식의 출현.
허나 한아영과 한하린은 무시할 수 없었다. 성유진과 함께 사라진 놈이 천요의 음양사 하세였으니까.
그녀들은 호텔 방에 있는 TV를 노려보듯이 쳐다봤다.
“현재 가하시마에는 사무라이 형상의 로봇들이 돌아다니며 가하시마의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가하시마 주민 3만 명이 모두 인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앗, 속보입니다! 지금 막 천요의 음양사 하세가 인터넷에 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연결하겠습니다!”
화면에 하세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한아영은 입술을 씹었고, 한하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백림의 하세다. 우리 백림은 멈추다 못해 추락하는 일본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시발점이 이 가하시마가 될 것이다. 가하시마는 신 일본으로서 완벽한 인공지능인 기계천황이 모든 일을 운영할 것이다. 슈퍼 인공지능에 의한 완전한 평등과 공명정대. 신일본에는 부정부패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고, 모든 일본인은 그 권리를 누릴 것이다. 일본인들에게 말한다. 가하시마가 어떻게 변하는지 직접 지켜봐라. 그리고 영원불멸의 지도자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라! 기계천황이 일본을 영광의 시대로 이끌 것이다!!”
화면이 바뀌었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나 나올 법한 거대 로봇이 나타났다. 모두가 알았다. 저게 하세가 말하는 기계천황임을.
쿵쿵쿵!
누군가가 호텔 문을 다급히 두들겼다.
“한아영 님! 일본 헌터 협회에서 왔습니다! 국가 비상사태입니다! 현재 일본은 한아영 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