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58 - 1958. 화끈하게
국가 비상사태.
그건 과언이 아니었다. 테러리트스가 일본의 섬 중 하나를 무단으로 점거하고 느닷없이 독립을 선언했다. 가하시마의 주민 3만 명은 그 인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섬이라서 함부로 군대를 움직여 침입하기도 까다로웠다. 일본 정부나 헌터 협회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거기다 현재 일본 고위 관료들은 불안했다. 가하시마의 독립이 다른 국민들에게 전파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은 불만이 많았다. 30년이 되도록 경제 성장은 멈춰있는 반면에 물가는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민들의 불만이 조금씩, 조금씩 쌓이고 있었다.
백림을 지지하는 국민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백림이 가하시마를 시작으로 일본이 분단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하루빨리 가하시마 사태를 해결하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설령 적지 않은 사망자가 나오더라도 지방 도시의 독립은 절대로 인정할 수 없고 막아야 했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는 백림이 가하시마를 점거했다는 말을 듣자마자 일본의 S급 헌터들을 불렀다.
그러나 일본의 S급 헌터들은 비협조적이었다.
“백림이 일반시민들을 학살하는 것도 아니고… 신 일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결국 일본인데 뭐가 문제입니까? 제가 나서야 할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군요.”
일본 S급 헌터들의 반응은 대부분 비슷했다. 자신이 나설 정도로 심각한 일이 아니라고 치부했다.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과거, 정부에서 S급 헌터를 강제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약점을 잡고 멋대로 휘두르려고 했던 것. 그리고 그 S급 헌터는 백림으로 넘어가 테러리스트가 되었다. S급 헌터를 함부로 다루려고 했다가 역으로 좆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정부는 아마츠카 코요리에게도 찾아갔다. 일본의 S급 헌터이자, 후카 신사의 무녀이며 풍신 길드의 마스터.
그녀 또한 최근에 S급이 된 젊은 헌터였다. 그런 만큼 제법 일본 정부나 헌터 협회에 제법 협조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다른 S급 헌터들에 비하면 말이다. S급 헌터가 된 그녀는 한아영과 달리 무녀라는 신분을 이용해 후카 신사에 콕 박혀 있었으니까.
“일본의 모든 일은 풍신께서 정하십니다. 풍신께선 제게 어떠한 뜻도 내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언젠간 내려올 풍신님의 뜻을 받들기 위해 수련해야합니다.”
“아마츠카 님! 이러다가 정말로 가하시마가 독립하게 됐습니다! 최악의 경우 일본이 나눠질 수 있습니다! 일본의 위기를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일본이 나눠진다면 그것 또한 풍신님께서 의도하신 바입니다.”
“풍신이 일본의 멸망을 원한다면! 아마츠카 님께선 그대로 받아들이실 겁니까?!”
“당연합니다. 그게 운명이니까요. 당신에게선 풍신님에 대한 경외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군요. 당장 신사에서 나가십시오. 앞으로 후카 신사에 발이라도 들이민다면 가만히 있지 않을 테니 그렇게 아시고요.”
코요리가 기세를 일으키며 말했다. S급 헌터의 기세에 질린 고위 관료는 창백한 얼굴로 후카 신사를 떠나야 했다.
“빌어먹을. 한국의 S급 헌터들은 비교적 협력적일다ᅟᅥᆫ데… 일본의 S급 헌터들은 이게 뭐야? 하나같이 애국심이 없잖아! 한아영의 반만 닮았어도….”
분통을 터트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아마츠카 코요리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떨렸다. 누군가가 메시지를 보냈다. 발신자 불명의 메시지.
-풍신이다. 한아영 자매를 도와라. 그들이 죽지 않도록 해라.
아마츠카 코요리는 미간을 좁혔다.
“어처구니가 없군요. 감히 풍신님을 사칭을 해?”
풍신은 그녀의 몸을 통해 나타나 뜻을 전한다. 지금처럼 메시지로 뜻을 전하는 일은 없었다. 평소 화를 내지 않던 아마츠카 코요리는 격노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이런 짓을 할 범인으로 가장 의심스러운 건 일본 정부였다. 방금 무례한 고위 관료가 신사를 떠난 지 5분도 안 됐던지라 더 그랬다.
“이건 절대 넘어갈 수 없군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만들겠습니다!”
그녀가 일본 정부로 쳐들어갈 각오를 다질 때였다. 추가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아마츠카 코요리의 눈동자가 삽시간에 커졌다.
-하라면 해라. 보지 무녀.
“풍신님이 맞군요!”
귀찮음이 묻어 있는 폭언에 가까운 말투. 풍신의 말투가 확실했다.
부르르르!
이어서 온 세 번째 메시지.
-똥구멍에서 염주 빼도 된다.
“알겠습니다, 풍신님! 모든 것은 풍신님의 뜻대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바로 똥구멍에 들어간 염주를 빼냈다.
“하으으으응!”
• • •
전 세계의 시선과 우려를 받는 가하시마는 호들갑 떠는 외부와 달리 내부는 나름 평화로웠다.
가하시마는 백림이 아주 오래전부터 작업을 하고 있던 작은 지역이었다. 인구 3만에 불과한 섬이지만 작은 도시라 불릴 정도로 인프라가 잘 구축되어 있었고, 그 발전에 백림이 제법 깊숙이 관여한 것이다. 이미 가하시마의 주민 중 알사람은 다 아는 정보였다.
가하시마에서 백림이 대놓고 활동해도 뭐라하지 않았다.
“일본 정부보다 백림이 더 믿을 만하지.”
“정부에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뭐지? 세금만 걷어가는 주제에 아무것도 안 해주잖아. 저번 태풍 때 우리 동네가 무려 2달이나 정전됐다고!”
“불만을 표해도 뉴스에서 잠깐 나오고 말았지. 심지어 지원으로 온 건 종이학 쓰레기들뿐이고.”
일본인들의 마음. 종이학. 재해 당시에 그게 트럭 한가득 실려 온 것을 본 주민들은 절망까지 했었다.
“차라리 잘 됐어. 무능한 정치인보다 뛰어나고 공명정대한 인공지능이 더 믿을만 하지.”
“이제 차별을 받는 일은 없는 건가?”
“내 세금으로 장난치는 공무원들은 다 감옥으로 처벌받았으면 좋겠군.”
하세와 기계천황이 정착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일주일은 평화로웠다. 일본 본토에서 가하시마에 들어와 기계천황을 없애고 하세를 죽일 계획을 짜고 있었지만, 주민들에겐 아무래도 좋았다. 일본 본토와의 교역이 끊긴 것도 아니니까. 평소와 같은 삶을 살아가면 됐다. 다만 주민들 안에서 조금씩 불안이 싹트고 있었다.
철컥철컥!
기계 사무라이가 순찰을 돌 듯 도시 곳곳을 돌아다닌다. 주민들은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일반인 따윈 수십 명을 단숨에 학살하는 수 있는 로봇이었다. 그 자체만으로 꺼려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때였다. 기계 사무라이의 안광이 빨갛게 변하더니 갑자기 뛰어가더니 골목길을 막 튀어나온 한 남자를 쫓아가 붙잡았다.
“으아아아악! 이, 이거 놔!”
“코에치 이쿠미. 쓰레기 무단 투기 혐의로 당신을 체포합니다.”
“버린 게 아니라고! 주머니에서 영수증이 떨어졌을 뿐이야!”
“그럼 왜 바로 줍지 않았습니까?”
“몰랐어! 떨어진 줄 몰랐다고!!”
“아뇨.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다. 신일본의 법에 따라 쓰레기 무단 투기는 벌금 1만엔입니다. 일주일 내로 납부해 주십시오.”
“1, 1만엔?! 주머니에서 영수증을 흘렀을 뿐인데 1만엔이라고?! 웃기지 마!!”
“흘린 게 아니라 버린 겁니다.”
“증거 있어? 증거 있냐고?!”
“있습니다. 근처 카메라에 녹화되었습니다.”
“내 삼촌이 누군지 알아? 변호사야! 이딴 말도 안 되는 짓에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것 같아?!”
“신일본에 변호사는 없습니다. 당신은 법을 어겼고, 그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아무리 사소한 범죄라도 범죄는 범죄입니다. 신일본에는 어떠한 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빌어먹을 깡통 새끼가!”
그 광경을 본 일본 주민들은 외면했다.
저 남자가 먼저 법을 어겼다지 않은가. 버린 게 아니라 영수증이 주머니에서 나왔다고? 증거 영상까지 있다는데? 법을 어긴 저놈의 잘못이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웅!
그때였다.
근처에서 트럭 하나가 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었다. 그 트럭 위에 기계 사무라이 2기가 달라붙어 기계를 멈추려고 고군분투했다.
“니시시바 쥬시로! 당장 멈추십시오! 지금도 당신의 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5초 내로 트럭의 속도를 줄이지 않으면 집행에 들어가겠습니다!”
“닥쳐!! 과속 좀 했다고 면허 정지가 말이 돼?! 면허가 정지되면 먹고 살길이 없어진다고! 난 이 빌어먹을 섬을 나갈 거야! 비켜!!”
“니시시바 쥬시로. 당신은 과속이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지금 술에 취해 있습니다.”
“맥주 한 캔도 아니야, 한 모금이다! 한 모금도 안 되냐?!”
“안 됩니다. 신일본 법에 따라 음주운전은 그 즉시 면허정지이며 2년 징역입니다.”
“똥이나 먹어라!!!”
기계 사무라이의 담담한 말에 운전자는 더욱 분노했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제압하겠습니다.”
기계 사무라이들이 트럭을 박살 낸다. 그 강철 주먹에 단단한 트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부서졌다. 빠른 속도로 달리는 트럭을 붙잡아 강제로 멈춰 세우고 문을 뜯어내 운전자를 강제로 끄집어냈다. 그 과정에서 운전자의 오른팔이 찢겨나갔지만, 기계 사무라이들이 감정 없이 할말을 내뱉었다.
“기계천황이 신일본법에 따라 판결합니다. 인명피해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여 징억 40년을 선고합니다.”
“내, 내 나이에 40년이면 죽으란 거잖아….”
“법은 지엄합니다.”
이어 구급차가 달려와 운전자를 태우고 떠났다.
이런 일은 도시 곳곳에서 일어났다. 기계천황은 아무리 사소한 불법도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길에서 담배를 피면 벌금을 때렸고, 불복하면 구속했다. 기존에 있던 공무원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더 심했다.
“2년 전, 하나상인회의 상인에게 뇌물을 받으셨군요.”
“고, 고등어 좀 받았을 뿐이라고!”
“그 대가로 순번을 무시하고 상인의 일을 빠르게 처리했습니다. 제 말이 틀렸습니까?”
“그건… 그 일을 먼저 하고 싶어서 그랬을 뿐이야! 2년 전의 일이잖아! 그딴 일로 징역 5년이란 게 말이 돼?!”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죄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젠장! 내 친구의 아버지였다고! 편의 좀 봐 드린 것뿐인데 이러기냐?!”
“양심을 판 대가는 달콤하셨습니까?”
“짭짤했다, 개새끼야!”
• • •
나는 기계천황에게 명령해 봉인된 내 앞에 모니터를 하나 설치했다. 덕분에 천안을 사용해 기게천황이 하는 짓거리를 볼 수 있었다.
‘그놈이 바라는 신일본이 이건가? 법대로의 나라? 굉장하군.’
공명정대함을 위해서는 그 기준이 될 것이 필요했다. 놈은 그 기준을 법으로 정했다. 그게 너무도 심해서 사람들의 불만이 속출했으나 놈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법을 어기지 않으면 될 일이다. 사소한 것에도 관용을 베풀어선 안 된다. 그게 바로 평등의 시작이다. 언젠간 사람들도 깨달을 것이다.”
놈은 기계천황에게 잘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나는 놈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저 지켜보면서 기회를 틈탔다. 나름 계획도 세웠다.
‘놈이 기계천황의 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통수를 친다. 원래는 약점을 찾아내 죽이려고 했지만… 생각이 바뀌었다. 놈을 봉인한다.’
난 봉인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래서 전문가를 불렀다. 아마츠카 코요리. 일본의 S급 헌터 무녀이자, 일본 최고의 음양사. 그녀에게 한아영을 도우라고 한 건, 한아영이 내 메시지에도 조용히 떠날 리 없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함무바라 법전에 적혀 있지. 법대로 하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