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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59화 (1,739/2,000)

Chapter 1959 - 1959. 화끈하게

시간이 지날수록 가하시마의 분위기는 흉흉해졌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해 보였으나 주민들 사이의 관계가 삭막해지고 있었다. 아주 사소한 불법도 저지르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언행이 조심스러워진 것이다. 말실수를 했다가 모욕 혹은 언어폭력으로 벌금을 내야 할 수도 있으니까.

인터넷도 마찬가지였다.

기게천황은 뛰어난 인공지능이다. 가하시마란 한정된 지역의 인터넷을 관리하고 주민들의 개인 컴퓨터를 감시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인터넷에 욕을 쓰거나 불법 사이트에 접속하면 바로 기계 사무라이가 들이닥쳐서 벌금을 물게 한다.

가하시마의 치안은 안전해졌다. 밤을 돌아다녀도 범죄를 보긴 어려웠고, 사람들은 벌금이 두려워 쓰레기조차 함부로 땅에 버리지 못했으며,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는 없다시피 했다.

가하시마는 안전하고 이상적이었으나, 주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졌다.

주민들은 하루 24시간 내내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다. 집안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항상 통제받는 느낌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못 참겠다.”

“이게 뭐야. 새장 속에 갇힌 삶 같잖아.”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야. 기계 독재 국가지.”

가하시마를 떠나려는 자들이 있었다. 어두운 밤에 배를 타고 일본 본토로 나가는 계획이었다. 이미 바다와 선박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는 기계천황이었기에 그들의 야반도주는 허무하리만치 쉽게 막혔다.

“신일본은 일본에게서 독립한 국가입니다. 신일본인이 일본으로 들어가거나, 일본인이 신일본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여권과 입국허가가 필요합니다. 밀입국은 징역 3년입니다.”

무관용!

야반도주자들은 급하게 지어진 감옥에 갇혀 징역살이를 해야했다.

주민들은 방식을 바꿔야 했다. 가하시마는 섬이라 육로가 막혀 있다. 공항도 없어서 섬을 벗어나려면 배를 타는 수밖에 없다. 즉, 섬에서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대부분은 포기하고 이 답답한 삶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일부는 포기하지 않았다.

“도망갈 수 없다면 바꿔야 한다.”

“기계천황이 우리 말을 듣게 해야 한다.”

방법은 있었다. 기계천황은 겉으로나마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시위하면 막을 명분이 없었다.

일본인들은 적법한 절차를 밟은 뒤 가고시마의 시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처음에는 10명 안팎이었다.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점점 많아져 300명이 넘어갔다. 시위대는 자신감이 붙었다.

“기계천황은 인간의 인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우리는 기계의 노예가 아니다!”

“아니다!”

“우리는 평화의 일본인이다! 독재는 있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다!”

“한 번의 실수로 벌을 받아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안 된다!”

기계천황은 일단 침묵했다.

시위대의 요구는 중구난방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억울한 일을 내뱉었고, 저마다 보상을 받으려고 했다.

그리고 하루 뒤, 기계천황은 직접 움직여 시청 앞에 섰다. 10m가 넘는 거대한 인간형 기계가 서 있자 시위대는 주춤했다. 순간적으로 겁에 질린 것이다.

“신일본 국민 여러분의 불만을 듣고 이해했습니다. 저는 신일본의 지도자로서 국민 한 분, 한 분의 말을 귀담아듣겠습니다. 다만, 그에 앞서 여러분의 오해를 바로잡으려고 합니다.”

“오해? 무슨 오해 말이냐? 내 친구는 기침하다 침이 튀었을 뿐인데 벌금 5천 엔을 내야 했다!”

시위대 리더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확성기를 입에 대고 있었기에 그 목소리는 쩌렁쩌렁 울렸다.

“정말 그게 실수였다면, 곧바로 뱉은 침을 치워야겠지요. 허나 그는 침을 뱉고 치울 생각도 하지 않으며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노상방뇨나 다를 바 없습니다.”

“침이 어떻게 오줌과 같냐!”

“사소하다고 해서 넘어가선 안 됩니다. 모든 일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범죄도 같습니다. 만약, 지나가는 행인이 당신의 집에 침을 뱉고 실수라고 말한 뒤 그냥 지나간다면 납득하시겠습니까?”

“그, 그건….”

시위대 리더가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기계천황은 말을 쏟아냈다. 하나 같이 반박하기 어려운 옳은 말들. 기계천황의 말은 모두 정도였다.

“…….”

시위대는 침묵했다.

반박하고 싶어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계천황이 오고 나서 생활이 답답해지긴 했으나, 도시가 안전해진 건 사실이었다. 부정부패가 사라졌다. 벌금으로 인해 예산이 쌓이니 도시의 낙후된 시설을 고치거나 복지정책이 좀 더 좋아졌다.

통제가 불편해지긴 했으나, 실질적인 삶은 조금 더 좋아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시위대는 이를 악물었다.

“우리의 인권을 무시하지 마라!”

“무시한 적 없습니다. 저는 법을 수호하며 신일본을 보다 발전된 방향으로 이끌 뿐입니다.”

“닥쳐라! 기계 따위가 인간의 뭘 안다는 거냐! 기계천황은 인권을 보장하라!”

“보장하라!!”

“…….”

기계천황은 입을 다물었다.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들은 시위를 하는게 아니다. 그저 어린아이처럼 자기가 원하는 걸 손에 넣으려고 떼를 쓰는 거였다.

기계천황은 이들을 무시하기로 했다.

• • •

하세는 시청에 앉아서 기계천황의 가하시마 통치를 지켜보고 있었다.

“일이 술술 풀리는군.”

하세가 만족스럽게 웃는다. 일이 잘 풀리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가하시마의 상황은 좋아지고 있었다. 크고 작은 부정부패를 막은 것만으로도 예산은 충분히 확보되었다.

주민들의 만족도와는 별개로 가하시마의 모든 요소는 우상향 그래프를 보여주었다.

“가하시마의 지주들이 엄청나게 착복해대고 있었군. 설마 그걸 막은 것만으로도 경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줄이야.”

당장 체감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상승은 아니다. 허나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돌아보면 깨닫게 될 것이다. 기계천황의 통치는 옳았다고.

‘본토의 일본인들도 신일본의 대단함을 깨닫고 알아서 굴복할 것이다.’

그게 아니어도 백림은 마냥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일본의 변화를 위해 조금씩, 조금씩 손을 쓰고 있었다. 기계천황은 백림이 일본의 변화를 위해 준비한 계획 중 하나일 뿐이다.

“마스터.”

하세의 스마트폰에서 기계천황의 목소리가 울렸다.

“무슨 일이지?”

“일본 본토 쪽에서 확인되지 않은 선박이 가하시마로 접근 중입니다.”

하세의 컴퓨터 모니터에 영상 화면이 떴다. 유람선으로 보이는 커다란 배가 대놓고 접근 중이었다.

가하시마는 독립했으나 경제 활동은 독립하기 전과 똑같았다. 일본은 신일본을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에 아무런 대책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겉으로는 말이다.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가 움직일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마 최대한 은밀하게 나를 죽이고 가하시마의 독립은 없던 일로 만들려는 거겠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신일본의 통치자는 너다. 네가 판단하고 조치해라.”

“이것은 신일본을 향한 공격입니다. 신일본을 보호하기 위해 선제 타격을 실시합니다. 미사일 발사!”

기계천황의 갑작스러운 급발진에 하세가 당황했다.

“아니, 일단 대화부터 시도해야 하지 않나?”

저쪽 선박이 먼저 무단으로 침입하려고는 하나 아직 거리는 제법 있었다. 적어도 30분 이상의 여유는 있다. 대화를 못 나눌 정도는 아니다. 명분을 챙기려면 쓸데없는 대화라도 나눠보는 게 맞았다.

“대화는 무용지물입니다. 그들에게 대화가 필요했다면, 통신을 연결했을 겁니다. 은밀히 접근하고 있다는 것부터가 그 목적은 분명합니다.”

“…맞는 말이군. 하지만 나는 그래도 대화를 해봐야 한다고 본다. 챙길 수 있는 명분은 챙겨야지.”

“제게 일을 맡긴다고 해놓고 정작 중요할 때는 제 판단을 의심하시는군요.”

“……너는 아직 불완전하다. 신일본을 완벽히 다스리기 위해선 더 많은 데이터를 쌓아야 한다. 내가 저들과 대화를 나눠보겠다. 통신을 연결해라.”

“죄송합니다만, 이미 판단을 내렸고 명령은 수행되었습니다.”

“뭐?”

“아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미사일 발사라고.”

화면 영상에 이변이 일어났다. 하늘에서 선박을 향해 미사일 10개가 날아간 것이다.

“이런 미친! 다짜고짜 미사일을 쐈다고?!”

“다짜고짜가 아닙니다. 이건 정당한 방어행위입니다.”

미사일이 유람선에 닿기 직전에 갑자기 폭발을 일으켰다. 영상을 유심히 보고 있던 하세는 요격당한 게 아니라 투명한 방어벽에 막혔다는 걸 알았다.

‘마법인가? 유람선 자체를 감쌀 정도면 뛰어난 마법사로군. 방어계열 능력을 가진 헌터일 수도 있겠어.’

미사일을 방어할 정도의 능력이면 최소 A급이다.

하세의 얼굴이 싹 굳어졌다. 저 유람선 안에 A급 헌터가 몇 명이나 있을까? 일본 헌터 협회가 헌터들을 대우해주지 않기로 유명하더라도 협회는 협회였다. 최소 30명 이상의 A급 헌터는 아무렇지 않게 모을 것이다.

‘A급이라고 해도 그 안에서 격이 나눠지니… 다 같다곤 할 순 없지만 30명 이상이 A급 헌터면… 쉽겠군.’

기계천황의 전력을 계산한다.

기계 사무라이 200기, 기계 드론 1,500기, 미사일과 지뢰 등의 현대 무기는 수 천개다. 하세가 백림의 도움을 받아 오랫동안 준비해온 것들.

A급 헌터가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초인들이라고 하더라도 한계는 있었다. 그들은 만화 속 슈퍼 히어로가 아니니까.

‘흠. 오히려 잘된 일이군. 기계천황이 전투 경험을 쌓을 수 있겠어.’

최악의 경우도 상정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저 유람선에 S급 헌터가 타고 있다면? 그래도 아직은 해볼 만 했다.

“미사일 발사!”

기계천황이 외쳤다.

당황한 하세가 두 눈을 부릅떴으나, 기계천황을 말릴 수 없었다. 수백 발의 미사일이 유람선을 향해 떨어졌다.

“이런 미친…!”

저 미사일 한 발, 한 발이 얼마인가. 저걸 구하기 위해 온갖 일을 했어야 했던 옛 기억이 떠오른다.

“기계천황! 이 무슨 어리석은 짓….”

말을 잇던 하세가 멈췄다.

수백 발의 미사일이 퍼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유람선을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저것은 방어벽 같은 게 아니다.

공간 왜곡.

미사일의 폭발을 공간 왜곡으로 흡수하고 흩트리고 무시한 것이다. 그가 알기로 이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건 일본에서 몇 명 없었다. 그중에서 저 유람선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자는 딱 한 명이다.

“바람의 무녀, 아마츠카 코요리…! S급이 온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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