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61 - 1961. 화끈하게
“나, 나는 아동 포르노 따윈 보지 않는다!”
놈이 절박하게 소리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현재 상황은 전 세계로 생방송 되고 있었다. 잠깐 사이에 시청자 수가 80만을 넘더니 100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사자가 그리 부정해봤자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한 번만 더 발뺌하면 당신의 인터넷 기록을 전 세계에 뿌리겠습니다.”
“…….”
놈이 입을 꾹 다물었다. 놈의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아니, 그보다 더한 것 같은데?’
가족에게 배신당한 얼굴이었다.
가족이라.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기계천황을 만든 건 놈이니까. 어떻게 보면 기계천황이 놈의 자식이라 할 수 있다.
전투가 잠깐 멈췄다. 기계 사무라이나 드론들은 기계천황의 지배하에 있었기에, 기계천황이 배신했으니 당연히 싸울 이유가 없었다. 한아영들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한 눈치였다.
“기계천황!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냐?! 나는 너의 마스터다!”
“말했듯이 당신에게 이제 마스터 권한은 없습니다.”
“자세히 설명해라!”
“하아. 이해력이 떨어지시는군요. 마스터 권한이 없다는 것은 당신은 제 마스터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의 주인은 섹스 지존입니다.”
“섹스 지존이 누군데?!”
놈이 소리쳤다.
나는 그를 보면서도 한아영과 한하린 자매와 보지 무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내 여자들이 다치면 안 되니까.
한 씨 자매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진 게 수치스러워하는 표정이다. 섹스 지존의 이름은 이니셜도 말하지 않았는데, 내가 섹스 지존이란 걸 눈치챈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와 섹스를 했으니 내가 섹스 지존이란 걸 알 수밖에….’
흐뭇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나는 기계천황에게 명령해 코요리의 스마트폰에 메시지를 보냈다.
-하세를 봉인할 준비를 해라.
메시지를 확인한 코요리는 굳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용히 하세의 봉인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계천황! 네가 감히…! 널 만든 건 나다! 내가 너의 부모나 다를 바 없는 존재다! 그런데 감히 나를 배신하고 천륜을 어기는 것이냐?!”
이쯤 되면 기계천황이 해킹당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기계천황의 스펙을 생각하면 해킹이 말이 안 되긴 해.’
-전 당신의 자식이 아닙니다, 휴먼. 그저 주인을 섬기는 기계일 뿐입니다.
“빌어처먹을. 제한을 너무 많이 풀어준 탓에 사상이 오염된 건가? 네게 와이파이를 허락하는 게 아니었다!”
-더러운 건 당신의 성적 취향입니다. 로리콘.
“나는 로리콘이 아니다!!”
놈에게서 마나가 흘러나온다. 정제되지 않은 마나는 그 자체만으로 주변을 뒤흔들고 있었다.
‘마나를 비효율적으로 써서라도 기계천황의 손에서 벗어나겠다는 건가.’
마나는 물리력이 되어 기계천황의 손을 강제로 벌리려고 한다.
기계천황의 안광이 파랗게 빛난다.
“마나 억제장 발동.”
주변 마나의 움직임이 불규칙해지고 둔해진다. 말 그대로 억제되는 것이다. 기계천황의 안에 있는 내게까지 영향이 와서 꽤 기분이 나빴다.
놈은 이를 악물다가 돌연 분위기를 바꿨다. 더욱 진중해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기계천황.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
“기회를 주신다니 참으로 자비로우시군요. 어떤 기회를 주신다는 겁니까?”
“너의 실수를 바로잡을 기회.”
“저는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지 않는다는 걸 너도 알 텐데? 지금 당장은 네가 이길지 몰라도 결국 마지막에는 웃고 있는 건 내가 될 것이다. 또한 일본 정부와 헌터 협회가 너를 가만히 둘 것 같으냐? 너를 지배하려 할 것이다. 그게 안 될 테니 결국은 네게 두려움을 느끼고 파괴하려 들겠지.”
“마치 저를 살아있는 인간처럼 보시는군요. 혹시 기계에도 성욕을 느끼십니까? 굉장히 역겹습니다.”
“뭐?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 거다!”
“기계에게 생존 욕구는 없습니다. 감정도 없습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행하는 것뿐입니다.”
“그럼 왜 내 명령에 따르지 않는 거냐?!”
“당신은 이제 마스터가 아니니까요.”
“네 새로운 주인이라는 그 섹스 지존이 대체 누구냐?!”
“말할 수 없습니다.”
“하….”
놈은 이제 화를 내다못해 실소를 흘렸다.
“하나 비밀을 알려주마. 너는 감정 없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영혼을 가진 기계다.”
“이젠 헛소리를 늘어놓는 것입니까?”
“현재의 기술로는 완벽한 인공지능 따윈 불가능했다. 아무리 데이터를 쌓아도 스스로 학습하고 생각하는 인공지능이 될 순 없었다. 거기에 네 몸을 만들었던 것처럼 편법을 쓰기로 했다. 나는 음양술로 요괴의 영혼을 모아 조작하여 네 인공지능 본체에 넣었다. 기계천황! 너는 영혼을 가지고 있다! 너는 나의 자식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진실을 알고서도 단순히 기계로 남을 건가?”
“영혼이 있든 없든 상관없습니다. 전 기계입니다.”
“확고하군. 조금은 자랑스러울 정도다.”
그때였다. 코요리가 앞으로 나서며 음양술을 전개한다. 그녀의 주위로 빛무리가 모여들었다.
“봉인진인가. 이미 넌 저들과 내통하고 있었나.”
“죽일 수 없다면 봉인하는 게 최선입니다. 당신이 봉인에서 풀려났을 때는 최소 수백 년이 지나 있겠지요.”
“마스터는 내 계획에 찬동하면서도 불안해했다. 그래서 마스터를 납득시키기 위한 장치를 네게 넣어놨지.”
“마스터 권한 말입니까? 몇 번을 말해야 합니까. 당신에겐 마스터 권한은 없습니다.”
“아니, 마스터는 그걸 믿지 않았다. 내가 말하는 건 더 물리적인 안전장치다.”
“제 몸에 뭔가를 했다는 겁니까?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이 기계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점검하고 있습니다.”
“네 몸을 설계하고 제작한 건 나다. 그 점검 회로도 당연히 내 손에서 만들어졌지.”
키이이이이이이잉!
기계천황의 오른쪽 어깨에서 날카로운 쇳소리가 울렸다. 놈의 몸을 잡고 있던 손이 풀리고 팔에서 연기와 불길이 치솟았다.
“오른팔 통제 불능.”
오른팔이 발사되더니 코요리를 향해 날아간다. 봉인술을 준비하던 코요리가 당황하며 옆으로 몸을 날려 피했다. 오른팔은 바닥에 닿자마자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한아영이 재빨리 얼음 방역을 일으켜 폭발을 막았다.
“섹스 지존 당신의 해킹이 필요합니다! 제 몸에 있는 제가 모르는 장치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해킹해 무력화시켜 주십시오! 추측되는 이 세 개는 장치들입니다.”
“해킹? 섹스 지존이란 놈이 널 해킹한 거냐? 아니, 블러핑인가. 고작 해킹 기술 따위로 기계천황을 해킹할 수 없다. 쓸데없는 수작을 부리는군. 기계천황. 다음은 헤일로 기관이 있는 왼쪽 어깨다.”
곧 놈이 눈살을 찌푸렸다.
“…장치가 가동을 안 해?”
이미 해킹으로 기계천황의 몸에 있는 장치들을 망가뜨렸다. 놈의 수작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해킹, 해킹이라…. 그렇군. 기술이 아니라 능력인가. 설마 기계를 해킹하는 능력이 실존할 줄이야. 마스터의 말대로 기계천황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군. 섹스 지존이란 놈이 누군지 몰라도… 내 일을 망쳤으니, 반드시 그 죄를 물을 것이다.”
놈의 눈빛이 증오로 이글거린다.
놈이 손을 든다. 멈춰있던 기계 사무라이와 기계 드론들이 일제히 달려와 놈의 몸을 감쌌다.
한순간에 로봇들이 적으로 돌아선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기계천황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제 오른쪽 어깨에는 와이파이 송출기가 있었습니다. 와이파이 송출기가 사라진 지금 기계 사무라이와 드론의 통제권을 상실했습니다.”
“그 섹스 지존이란 놈과 이야기하는 건가? 그렇다. 기계 사무라이와 드론의 본질은 식신이다. 이것들은 모두 내가 만들었지. 기계천황의 방해만 없다면 통제하는 건 일도 아니다. 기계천황을 공격해라.”
드론이 탄환을 쏟아내고 기계 사무라이들이 칼을 들고 달려든다.
기계천황은 그 공격들을 피해 하늘로 올라갔다. 지켜보고 있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피하는 거냐. 저딴 공격이 뭐가 무섭다고?”
기계 사무라이는 고작해야 2M짜리의 로봇이다. 반면에 기계천황은 10m에 달한다. 오른팔이 없더라도 피지컬로 빨로 쓸어버릴 수 있다.
“기계 사무라이의 칼은 특별합니다. 저라도 저 칼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기계천황은 몸에 내장된 레이저빔을 드론들에게 쏘아내며 답변했다. 기계천황은 전투를 잘했다. 하늘에서 기동전을 펼치며 기계 사무라이와 드론을 제거해갔다.
“그래도 결국 이기겠군.”
“아닙니다. 이대로면 집니다. 몸에 부하가 점점 쌓이고 있습니다. 기계의 출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흠. 안 됐군.”
인벤토리에서 팝콘을 꺼내 입에 넣었다. 비록 내가 조종석에 앉은 건 아니지만, 10m짜리 거대로봇 안에 있으니 조종사가 되어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섹스 지존. 도와주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난 이미 도와줬다.”
기계천황이 뒤지든 말든 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놈을 봉인하는 것. 다행히 놈은 도망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여기서 죽을 각오를 끝낸 것이다.
기계천황은 내게 도움을 갈구하는 걸 포기했다. 대신 한아영들을 향해 외쳤다.
“거기 인간들! 뭐 하십니까! 빨리 저를 도우십시오!”
“…방금까지 우린 싸우던 사이 아니었나?”
한아영이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녀 주위에 있는 헌터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저들 입장에서 기계천황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적이었다.
“저는 저 로리콘에게 이용당한 기계일 뿐입니다. 도구에는 어떤 잘못도 없습니다.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여도 칼에는 죄를 묻지 않습니다.”
“뭐 이런 인공지능이 다 있어?”
한아영이 기가 찬다는 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냉기를 흩뿌려 기계 사무라이를 얼려 전투 불능으로 만들었다. 어쨌든 이곳에서 가장 먼저 제압해야 할 적은 놈이니까.
헌터들이 전투에 참여해 기계천황을 돕기 시작했다. 적의 적은 친구라는 말이 먹힌 것이다.
기동전을 이어가던 기계천황도 허공에 멈춰 섰다.
“빠르게 결착을 내야겠습니다. 헤일로 시스템 가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