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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63화 (1,743/2,000)

Chapter 1963 - 1963. 화끈하게

‘막아야 한다.’

하세는 이를 악물며 지상에서 피닉스의 심장을 터트려 자폭하려는 성유진을 노려봤다.

반드시 막아야 했다. 저 완성된 피닉스의 심장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말 그대로 약간의 조건만 갖추면 영원히 에너지를 뽑아낼 수 있는 영구 기관. 단순히 피닉스의 심장이 특별한 게 아니다. 저 상태의 심장을 만들기 위해 자그마치 5년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손에 넣을 수 없는 물건이기도 했다.

그러니 반드시 박아야 했다. 막아야 하는데, 막을 수가 없었다.

‘이 멍청한 요괴놈들…!’

하세는 요괴들을 억제하고 있었다. 그와 백림의 목표는 일본의 발전이었다. 지금 이놈들의 억제를 풀어버린다? 아무리 S급 헌터인 코요리와 한아영이 세운 결계와 빙벽이라도 순식간에 파괴될 것이고 요괴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듯 일본 각지로 퍼질 것이다. 그리고 몬스터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문제를 일으키겠지.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감당 안 되는 요괴들을 놈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다면.

‘그래도 피닉스의 심장은 너무 아깝군.’

요괴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도망치려고 시도하거나, 역으로 성유진을 죽이려고 달려들거나. 허나 요괴들은 성유진 근처로 가까이 가지 못했다. 피닉스의 심장 열기와 줄기차게 뻗어 나오는 번개. 어지간한 요괴는 가까이 가는 것만으로도 절명했다.

-이거 안 되겠군.

-이대로 있으면 위험하다. 놈을 제압한다.

상황을 파악하듯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두 마리의 요괴. S급 헌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대요괴들이 앞으로 나서자 요괴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대요괴들이 순식간에 요기를 끌어올린다. 그것만으로 주변 일대에 강력한 압력이 가해졌다.

하세는 그들을 비웃었다.

“이미 늦었다.”

그의 눈에는 피닉스의 심장이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폭이라. 저런 식으로 죽음을 겪는 것도 나쁘지 않군.”

하세는 죽지 않는 불사신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놈은? 자신처럼 불사신도 아닌데 자폭을 한다.

‘한국인이 일본을 위해서 자폭하는 건가? 성가시고 미친놈이었지만, 여러모로 대단한 놈이군.’

하세가 속으로 감탄했고, 대요괴들이 손을 쓰기도 전에 피닉스의 심장이 터졌다.

하세는 몸에 음양술을 두르며 일단 버텼다. 요괴들 일부가 살아남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고자 마지막까지 살아남으려고 했다.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화염이 치솟았다. 시뻘건 화염은 폭발을 견딘 요괴들을 단숨에 불태우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하세는 화염에 대한 저항력 있었기에 바로 재로 변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그는 지금의 피닉스의 심장을 만든 음양사였다.

‘대요괴들도 버티지 못했군. 조금이라도 버티기엔 거리가 너무 가까웠지.’

화염은 하늘로 치솟았다. 코요리의 결계는 순식간에 깨졌다. 하세의 몸도 타오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한아영이 세운 빙벽이 화염이 사방으로 퍼지는 걸 막았다는 탓이다. 빙벽은 질질 녹고 있었지만, 불꽃도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었다.

‘상성이라 운이 좋았군. 이거면 가하시마가 불타는 일은 없겠어.’

곧이어 하세 또한 불타서 사라졌다.

• • •

“음.”

해외 어딘가. 백림의 간부만이 알고 있는 장소에서 하세가 침음을 흘렸다. 그의 옆에 있던 림주가 하세에게 물었다.

“일이 어떻게 됐지? 실패했나?”

“실패했다. 그놈은 피닉스의 심장을 터트려 자폭했다. 대요괴를 포함해 요괴들이 모두 소멸한 걸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귀찮은 일이 줄어서 다행이군.”

“…기계천황의 인공지능 핵은 저들이 가져갔다. 어떻게 쓸지는 잘 모르겠군.”

“기계천황은 포기한다.”

하세는 아쉬움을 느꼈다. 인공지능에도 얼마나 많은 투자를 했던가. 하지만 림주가 단호하게 말했다.

“기계천황은 널 배신했다. 이번 일로 기계의 문제점은 너도 알았을 거다. 일본은 역시 사람의 힘으로 발전해야 한다. 네 일은 실패했으니 나를 도와라.”

“…림주. 기계천황의 인공지능 핵만 있어도 일본은 아날로그의 일본이라는 불명예 가득한 이름을 빠르게 내던질 수 있을 거다.”

“모든 일본인이 기계에 익숙해지게 만들려면 정책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 일본이 아날로그를 고집하고 있는 건 기성세대가 옛 향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을 밀어내고 혁신해야 한다.”

“림주의 계획은 총리가 되는 거였지. 현실적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보나?”

“힘들다고 포기할 거였다면 처음부터 시작도 하지 않았다. 지금 네 상태는 어떻지? 분신 넷이 한 번에 당한 건 처음 있는 일 아닌가?”

하세는 한숨을 쉬었다.

“셋은 봉인 당했다. 네 번째는 폭발에 휘말려 죽은 덕분에 다시 분신을 만들 수 있다. 영혼이 돌아왔으니까.”

하세의 능력은 영혼 분신이었다. 영혼을 다섯 개로 나누어 분신을 만드는 능력이다. 말이 분신이지 실제로는 5개의 분신 전체가 본신이나 같았다. 분신들은 모두 생각을 공유하고 행동하니까. 하세는 이 능력 덕분에 남들보다 5배는 효율 좋게 일하거나 수련할 수 있었다.

원래 분신이 죽으면 남은 쪽으로 그 영혼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시간을 들여서 분신을 만들 수 있다. 이 정보는 오직 하세 본인과 림주만 알고 있다.

“봉인당했다면 다시 분신을 만들 수 없는 건가? 영혼만 부를 수는 없나? 네 분신의 본질은 영혼이라 목이 잘리거나 심장이 파괴되도 죽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나.”

“봉인을 진행한 자가 아마츠카 코요리다. 현 일본 최고의 음양사이자, 후카 신사의 무녀. 그 봉인의 견고함은 말할 것도 없다. 나는 지금 그 영혼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츠카 코요리가 봉인했다면 후카 신사에 있겠군.”

“아마츠카 코요리는 이미 우리에게 후카 신사의 보물인 천요옥을 강탈당한 적 있다. 내가 아마츠카 코요리라면 후카 신사가 아닌 다른 은밀한 곳에  숨겨뒀을 가능성이 크다. 나라면 그랬을 거다.”

림주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봉인된 분신은 3개이지 않나. 한곳에 모아두기보다는 다른 곳곳에 각각 숨겨뒀을 것이다.

실상은 심해 속에 처박혀 있었다. 성유진이 귀찮아서 태평양 어딘가에 갖다 버린 것이다. 그리고 신경을 꺼버렸다. 봉인된 분신 3개가 심해 어디에 있는지 성유진도 모른다.

“네 분신의 경우 정보를 얻는데 집중하겠다.”

“그럼 이제 내가 뭘 하면 되지?”

기계천황 프로젝트가 실패하고 하세는 할 게 없었다. 몇 년간 기계천황 프로젝트를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목표가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음. 일단 자중해라.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여기서 수련에 집중하는 게 낫겠군.”

“수련으로 성장하는 시기는 지났다.”

“수련과 연구에는 끝이 없다. 더 발전하기 위해선 네가 성실해야 한다.”

“…….”

옳은 말이라 반박할 수 없었다. 림주는 가끔 너무 보수적으로 나올 때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네가 대외적으로 활동하면 백림이 곤란해진다.”

“…내가 활동하는 거랑 백림이 곤란해지는 건 무슨 연관이 있지?”

“아동 포르노 하세. 언론에서 널 부르는 별명이다. 인터넷은… 더 심하더군. 이미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다른 백림의 동료들도 널 욕하는 지경이지.”

하세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그는 창피함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아동 포르노 따윈 보지 않는다! 전부 누명이다!”

항상 차분하고 냉정하던 그 하세가 지금은 이성을 잃을 듯이 소리치며 격렬히 부정했다. 그 반응이 너무 격해서 의심이 들었다.

“진실은 아무래도 좋다. 저들은 그저 우리와 너를 헐뜯고 싶을 뿐이다. …근데 반응이 너무 거세군. 정말 아동 포르노를 보는 건 아니겠지?”

“절대 아니다!!”

“그런가. 아무튼 지금 네가 할 일은 없다. 일이 생기면 부르도록 하지. 아동 포르노의 음양사 하세라는 별명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거다. 사람들의 냄비 근성이야 다 거기서 거기이니.”

림주는 떠났다.

비밀 안가에 홀로 남은 하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는 인터넷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자신을 욕하고 있을 게 분명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여기서 할 게 너무 없었으니까. 기계천황 계획이 실패해서 그런지 수련이나 연구할 의욕도 나지 않았다.

“이 빌어먹을 자식들이…. 난 아동 포르노 따윈 안 본다고…!”

인터넷은 그의 예상대로였다.

허나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명예훼손으로 신고? 백림을 보는 시선은 테러리스트 조직이었다. 실제로 현상금도 걸려 있었다. 신고했다가 역으로 잡힌다.

하세는 기계천황을 검색했다.

하세와는 반대로 기계천황의 평가는 의외로 좋았다. 하세는 괜히 뿌듯해졌다. 자신이 만든 역작을 사람들도 인정하는 것이니.

-솔직히 기계천황 엄청 멋짐.

-기계천황 피규어 만든 거 인증한다.

-가하시마 주민인데 기계천황이 다스릴 때 나쁘지 않았음. 그때 우리 학교에서 이지메 싹 사라졌거든. 조금이라도 이지메 하면 잡혀감.

-지금은 어떰?

-당연히 이지메도 부활함! 잡혀간 범죄자놈들도 풀려나고 있음. 지금 가하시마 개판임. 진짜 기계천황이 그립다.

“역시 기계천황의 진가를 알아보는 깨우친 일본인들도 있군.”

그러나 당연히 기계천황에 대한 칭찬만 있는 게 아니었다. 기계천황을 비난하는 놈들을 볼 때는 이가 갈렸다. 기계천황은 몇 년을 갈아 만든 최고의 역작.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자식이었다.

-그래봤자 살인기계. 기계 따위가 감히 사람 위에 서려고 해? 이건 선 넘었지.

-기계천황은 결국 아동 포르노의 음양사 하세를 배신했잖아. 뭐가 옳은 일인지 알고 있다는 거지.

-섹스 지존 어쩌고 하지 않았던가?

-그 섹스 지존이 누군데? 혹시 나?

-속보!!! 기계천황 지금 아마츠카 코요리랑 방송 진행 중!!!

“뭐라고?!”

하세는 다급히 링크를 타고 방송 사이트로 들어갔다.

방송에는 웬 여자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무표정한 얼굴에 여자. 3D라기보다는 2D에 가깝다. 그 옆에는 아마츠카 코요리의 사진이 대충 찍혀 있었다.

방송 제목은 ‘기계천황 마도카의 첫 방송! 특별 손님은 아마츠카 코요리!’

“요즘 유행한다는 버튜버? 감히 기계천황을 사칭해?”

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아바타가 입을 열었다.

“많은 분들이 의심하시는군요. 전 기계천황이 맞습니다. 마도카는 새로운 이름입니다.”

“그녀는 기계천황이 맞습니다. 저, 아마츠카 코요리가 보증하겠습니다.”

하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떤 미친놈이 일본에서 아마츠카 코요리를 사칭하겠는가. 아마츠카 코요리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신뢰도가 확 상승했다. 채팅창 반응도 마찬가지다.

“진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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