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1967화 (1,747/2,000)

Chapter 1967 - 1967. 신의 아틀란티스

신의 대장간.

이 험한 아틀란티스에서는 개인적인 힘뿐만이 아니라 가진 무기의 힘도 중요하게 취급된다. 그런 의미에서 신의 대장간이란 이름을 듣고 흥미를 보이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웠지. 정말 느닷없이 그 소문이 돌았으니까.”

“그냥 소문으로만 치부하진 않은 모양이야.”

“그럴 수야 없지. 이 아틀란티스에는 신들이 넘쳐나지 않나. 신의 대장간이 나타났다? 의심스러워도 납득할 수밖에 없다. 여긴 아틀란티스니까.”

“그 소문은 확인했고?”

“못했다. 누가 뒤에서 손을 쓴 건지 몰라도 소문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졌다. 나는 그 당시에 가문을 수습하느라 소문을 확인할 생각도 못 했지. 솔직히 별 흥미도 없었다.”

“그거뿐이야? 실질적으로 내게 도움이 되는 정보가 아니잖아.”

“이 자리에 있으면 정보가 알아서 굴러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희귀한 정보는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으니. 내게 잘 보이고 싶어 하는 자들이 줄지어서 정보를 제공하지.”

그 말도 맞겠지만, 발데르트가 따로 운영하는 정보집단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엘레나가 뒤에서 무슨 짓을 꾸며도 이상하지 않았다.

“소문은 사실이었다. 정말로 신의 대장간이 나타났다. 다만, 신의 대장간이 있는 구역과 그 구역에 들어갈 방법을 몰라 잊혀진 거다.”

“그 구역이 어딘데?”

“올림푸스. 대장장이의 신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이 있다면 거기 말고 다른 곳이 달리 있겠나?”

“…….”

올림푸스.

무수히 많은 신들이 존재하는 아틀란티스에서 그 이름은 절대 가볍지 않았다. 올림푸스는 그리스 신들의 본거지 같은 곳이니까. 당장 나와 계약한 천공의 주인이 이 올림푸스의 주인이 아닌가.

“…신의 대장간이 있는 곳은 올림푸스의 어느 구역이야?”

올림푸스도 지옥처럼 여러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올림푸스 구역에 들어갈 생각인가? 무모하다는 수준이 아니다만.”

“지옥에도 갔다 왔는데 올림푸스라고 다를까.”

“제 4,016 구역, 흐르는 강철. 제 4,000 구역, 올림푸스 산 안쪽에 있다. 그곳으로 가려면 올림푸스 산을 지나야 하지. 그리고 너도 알고 있겠지만, 올림푸스는 미공략 지역이다. 출입 조건이 뭔지도 알려지지 않았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도한 레기온은 있잖아. 올림푸스라는 이름 그 자체만으로도 어마어마함이 느껴지니까.”

“그렇지. 허나 올림푸스에 들어간 자 중 그 누구도 돌아오지 못했다. 지옥 같은 곳이다. 정말로 그곳으로 갈 테냐.”

“당연하지.”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니 올림푸스의 공략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군.”

원작 중후반에 올림푸스가 나왔다. 그때는 모종의 방법으로 올림푸스의 입장 방법이 아틀란티스 전체에 까발려지게 된다. 그로 인해 대형 레기온에서부터 중소형 레기온까지 올림푸스 공략을 시도하게 된다.

꽤 중요하게 다뤄진 에피소드였던 만큼 내가 알고 있는 올림푸스 구역에 대한 정보도 많았다.

“엘레나.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올림푸스 따윈 아무것도 아니야.”

“미안하지만 나는 널 도와줄 수 없다. 왜냐하면… 바쁘거든.”

엘레나가 상체를 일으켜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출렁이는 그녀의 가슴과 군살 하나 없는 허리에 시선이 갔다.

‘대체 바쁨이 어디에 있는 거지?’

아무리 봐도 여유로움 그 자체였다.

“이 한가함도 지금뿐이다. 가문의 일도 일이지만, 보스가 날 불렀다. 유물을 발견했는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더군.”

보스라면 헬텐의 보스를 말하는 거다.

“유물? 새로운 구역이라도 공략하나?”

“영전(靈戰) 레기온의 것을 훔치는 일이다.”

나쁜 짓을 하는 모양이었다.

헬텐이 원래 범죄조직이니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최근에 너무 조용해서 슬슬 사고 칠 때가 되긴 했다.

“차라리 조금 기다리고 헬텐에 도움을 청하는 건 어떠냐? 그 올림푸스이니 헬텐도 관심 있을 거다.”

“됐어. 올림푸스는 위험한 만큼 먹을 게 많거든. 그걸 남들과 나눌 수 없지.”

“나랑은 나눌 수 있고?”

“물론!”

엘레나는 피식 웃으며 내게 와인잔을 건넸다. 그녀가 반쯤 마신 와인이었지만, 꺼릴 건 없었다.

와인은 천상의 맛이었다.

• • •

신들의 놀이터, 아틀란티스.

그 위명에 걸맞게 아틀란티스 곳곳에는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었다. 물론 모든 신들의 신전이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의 추앙을 받는 일부 신들만이 그 신전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신들 대부분이 아주 유명하거나, 추방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신들이다.

제 32 구역, 망치의 도시 햄스트.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는 이 도시에는 헤파이스토스를 비롯한 대장장이 신들의 신전이 있었다. 대장장이 신들은 대장장이들에게 존경과 신앙을 받을 뿐만이 아니라, 다른 직종의 사람들에게도 경외를 받는다. 농부부터 전사까지. 철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깡! 깡! 깡!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망치 소리를 배경음 삼아 도시 중심으로 향했다. 여러 개의 신전 중 헤파이스토스의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신전을 관리하고 있는 건 우락부락한 몸을 가진 중년 대장장이였다. 대장장이들이 날마다 돌아가면서 신전을 관리하는 거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외지인인 것 같은데…. 혹시 헤파이스토스 님께 직접 무구를 의뢰하러 왔다면 썩 꺼지시오. 당신을 위한 일이오. 신께 무례하게 굴면 신벌을 받을 수 있소.”

“내가 신벌을 받든, 말든 너랑 무슨 상관이지?”

“……이거 영 싸가지가 없는 놈이구만. 걱정해줘서 말 좀 해줬더니… 쯧. 입장비를 내고 안으로 들어가라. 헤파이스토스 님께서 오늘 시체 하나 만드시겠군.”

“게이처럼 생겨서는 함부로 내게 말 걸지 마라. 사람들이 날 게이로 보면 네가 책임질 거냐?”

“이놈! 지금 나를 모욕한 것이냐?!”

“모욕이 아니라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

그가 허리춤에서 망치를 꺼내 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신전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는 내게 망치를 휘두르지 못했다. 여긴 신전이었으니까. 신성한 신전에서 싸움을 일으킨다? 신의 분노를 사게 될 이유로 충분했다. 똑같은 이유로 나도 그를 죽일 수 없었지만.

“멈춰라! 입장비를 내고 들어가라!”

“신전이 언제부터 네놈 것이었나? 입장비를 내도 신께 내는 게 맞다. 신을 이용해 돈을 벌다니… 타락한 새끼. 내가 신이었다면 네놈에게 천벌을 내렸을 거다.”

“신전 입장비는 최소한의 관리비다!”

그에게 중지를 세워주고 신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나를 쫓아 신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함부로 신전에 들어왔다가 신의 분노를 살 수 있으니까.

가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망치를 든 절름발이 중년 남자의 조각상이 있었다. 헤파이스토스를 표현한 신상이다. 신상 앞에는 공물을 바치는 제단이 있었다.

“헤파이스토스 님. 제가 왔습니다.”

원래는 공물을 바치더라도 신이 반응하는 경우는 없다. 어지간히 특별한 공물이 아니고서야.

근데 지금의 나는 헤파이스토스의 미션을 받고 있었다. 그의 관심을 받고 있는 중이라는 거다.

‘그리고 내 계약 신좌는 제우스다.’

그리스 신화의 최고신이자, 헤파이스토스의 아비가 제우스였다.

‘또 헤파이스토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도 몇 없는 사고 안 치는 신이지.’

신상이 은은하게 빛난다. 그 빛은 이어 신상의 두 눈으로 모여들었다.

-안하무인이더군. 꼭 젊었을 적의 아버지를 보는 것 같았다.

신상으로부터 헤파이스토스의 목소리가 울린다.

원래는 신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거처야 하지만, 여긴 헤파이스토스의 신전이라 예외였다.

“더럽게 생겨서 저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혹시 아끼는 자였습니까?”

-나를 따르는 아이 중 하나일 뿐이다.

헤파이스토스가 무심히 말했다. 아마 내가 그를 죽이더라도 헤파이스토스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을 것이다. 신에게 있어 특별한 인간 몇몇을 제외하고 다 거기서 거기니까. 아무리 온화한 편인 헤파이스토스라도 예외는 아니다. 그도 신이니까.

-내 신전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은 건 잘했다. 아무리 너라도 감히 내 신전에서 소란을 피웠다면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조용히 움직였습니다.”

나가면서 그 게이 같은 새끼를 죽일까 했는데… 참기로 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대놓고 경고하는데 무시할 수 없었다.

-무슨 일로 왔지? 용광로를 찾은 것도 아닐 텐데.

“절 계속 지켜보고 계셨습니까?”

-많은 신들이 너를 주목하고 있다. 너를 보며 누군가는 흥미를, 누군가는 우려를, 누군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있지.

“헤파이스토스 님은 어느 쪽입니까?”

-흥미로군. 너 같은 인간은 처음이다. 지켜보는 맛이 제법 있더군. 그걸 질문하러 여기에 온 건 아닐 터. 이제 용건을 말해라. 미션과 관련하여 도움이나 조언을 얻으러 왔다면 몸을 돌려 신전을 나가라.

“아닙니다. 두 번째 미션 조건인 드래곤의 부산물을 우연히 구해서 말입니다. 이걸 재료로 쓸 수 있는지 확인받으러 왔습니다.”

다른 세계의 드래곤.

이 세게와 다르다면? 나중에 자신만만하게 재료를 내밀었다가 퇴짜라도 받으면 일이 더 귀찮아진다. 그러니 헤파이스토스에게 확인받기 위해 이곳에 왔다. 공간 이동 주문서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니까.

인벤토리에서 드래곤 부산물을 꺼낸다. 커다란 고기 조각들. 겉보기와 달리 보존은 신경 써서 한지라 상태는 괜찮았다.

-이게 드래곤이라고? 흠. 드래곤과 비슷한 힘이 느껴지긴 하는군.

“재료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사용할 수는 있다. 허나 대장장이 신으로써 내 무구를 만들 때는 사용하고 싶지 않군.

“그 정도로 저질입니까?”

-그래.

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드래곤 부산물을 다시 인벤토리에 챙겼다.

드래곤 부산물을 새롭게 구해야 한다는 귀찮음이 몰려왔으나, 내 애도인 화련비도를 수리하고 강화하는 일이다. 대충 할 수는 없었다.

-세 번째 조건의 준비는 끝났나?

“꼭 하나만 골라야 합니까?”

-과한 건 모자란 것보다 못하다. 궁금하니 몇 개 꺼내봐라. 뭘 가져왔을지 궁금하군.

“여기 혹시 다른 신들도 보고 계십니까?”

-여긴 내 신전이다. 누가 감히 신의 신전을 엿보겠는가. 다만, 네 계약 신좌는 예외다. 아틀란티스에서 계약 신좌는 계약자와 관련된 일에서 어느 정도 우대를 받지. 지금도 그분은 널 지켜보고 계시군.

마천의 왕을 그분이라 할 리 없으니 천공의 주인이 나를 보고 있다는 뜻이었다.

뭐, 천공의 주인이나 헤파이스토스나 입 싼 신은 아니니 상관없겠지.

나는 인벤토리에서 준비한 물건들을 꺼냈다. 아니, 쏟아냈다.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