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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69화 (1,749/2,000)

Chapter 1969 - 1969. 신의 아틀란티스

신의 아틀란티스의 구역에는 구역마다 특색이 있었다.

제 1 구역인 시작의 교당은 튜토리얼이고, 제 2 구역인 오늘의 도시는 평화가 컨셉이다. 이처럼 구역마다 특색 혹은 컨셉 같은 것이 존재했다. 구역 지배자들은 그 특색을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다. 구역에 사람을 모으려면 그래야 했다. 구역을 찾는 사람이 많을수록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으니까. 대부분의 구역 지배자들이 구역을 개방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내가 향하는 제 99 구역도 그 특색이 뚜렷한 곳이다.

제 99 구역, 용병의 도시 로푸아.

로푸아는 그 이름답게 용병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온갖 용병들이 모이고, 용병들이 필요한 자들이 모이는 곳. 

로푸아에 온 나는 도시를 한 차례 둘러봤다.

대부분 건물이 숙소와 결합된 주점이었다. 나는 주점을 둘러보다가 가장 큰 곳을 찾아 움직였다. 길을 걷다 보면 용병들이 나를 힐끔 쳐다본다.

내가 혼자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시비라도 걸면 그대로 칼을 뽑아줄 생각도 있었다. 심심하기도 했기에 내심 누군가가 먼저 시비를 걸어주기를 원했다. 허나 내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용병의 도시라 해서 막장의 도시를 생각했었는데, 상당히 치안이 잘 잡혀 있었다. 치안 수준은 평균 이상이라 봐도 무방했다.

도시에서 가장 큰 주점, ‘헤르메스의 쉼터’라는 주점에 들어섰다. 내가 들어섰음에도 주점 안은 소란스러웠다. 자기들 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브끼 짝이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니 여자 점원이 한 명이 성큼 다가온다. 제법 예쁘장하게 생겼으나, 그녀의 발걸음과 굳은 살이 박힌 손을 통해 평범한 여점원이 아닌 걸 알 수 있었다.

‘은퇴한 용병이라 하기엔 지금도 육체 단련을 하는 것 같군. 쉬는 기간에 주점에서 알바를 하는 건가.’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용병은 아니시죠?”

“용병일 수도 있지 않나.”

“에이. 딱 봐도 용병 분위기가 아니에요. 기사 쪽 분위기라고 할까?”

“내가 한 명예 하지.”

“거들먹거리는 깡패 새끼들 같다고요.”

“…….”

입이 꽤 거칠었다. 설마 이런 식으로 내게 시비를 걸 줄이야. 하지만 봐주기로 했다. 제법 예쁘장했으니까. 남자 새끼가 이딴 소리를 지껄였다면 팔부터 자르고 시작했을 거다.

“좀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제가 사람 보는 눈은 있어서요. 이 정도는 농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죠? 당신은 기사처럼 생겼어도 진짜 기사는 아니잖아요. 진자 위험할 것 같았으면 여기로 접근하지도 않았어요.”

“사람 보는 눈에 자신 있나 보군.”

“이것도 능력이라서요. 제 계약 신좌가 그런 쪽이라. 사람의 성향을 대충 알 수 있어요. 당신은 제가 다소 무례하게 굴어도 해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고요.”

신좌가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 신좌로부터 힘을 받아 사용하니 저런 힘을 가지고 있다 해서 놀라울 건 없었다.

‘신기하긴 하네.’

“용병으로 오신 건 아닐 테고, 의뢰주로서 오신 거죠?”

“그래. 용병이 필요하다.”

“예산은요?”

“용병단 하나를 고용할 정도는 있다.”

“와우. 생각보다 거물이셨네요. 3층으로 안내해드릴게요. 3층은 큰손만 모시는 곳이거든요.”

그녀의 뒤를 따라 계단 위로 올라간다. 내게 관심도 없던 용병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시선이 뜨겁군.”

“위로 올라가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뜻이거든요.”

3층에 도착하니, 한 남자가 정장을 빼입은 채로 집무실에 앉아 있었다. 남자는 내가 들어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용병 중개업을 하고 있는 노리스라고 합니다.”

“성유진이다.”

“한국계시군요. 저는 미국 쪽 출신입니다. 일단 앉으시지요. 차는 뭐가 좋겠습니까? 커피? 녹차? 홍차나 쥬스도 있습니다.”

“콜라가 좋겠군.”

“그, 콜라는….”

노리스가 당황했다. 아틀란티스에서 콜라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비싼 물건이었다. 콜라를 구하려면 시스템에 AP를 지불하고 구매해야 한다.

“됐다. 콜라 정도야 내게도 있으니.”

거만하게 자리에 앉은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콜라를 손에 소환했다. 시원한 콜라 한 캔이 뿅 하고 나타나자 노리스가 놀란 듯 눈을 치뜬다.

콜라를 벌컥벌컥 마시자 노리스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아는 맛이 무섭다고. 특히 미국이라면 콜라를 물처럼 마시기로 유명하지 않던가.

“콜라를 그리 가볍게 마시는 분은 처음입니다.”

“원래 콜라는 가볍게 마시지 않나?”

“지구에서는 그렇지요. 이 세계에서 콜라를 가볍게 마시고 싶어도… 그 가격이 전혀 가볍지 않으니 가볍게 마실 수가 없지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나는 콜라 한 캔으로 기선제압을 한 것이다.

“유진 씨. 소속과 의뢰 내용을 말씀해주십시오.”

“돈만 있으면 용병을 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요즘 용병들은 돈만 보고 일하지 않습니다. 용병이 무식하다는 말도 다 예전 일이지요.”

이 세상의 대부분의 문명 수준은 중세 시대와 비슷하다. 그러나 사람들의 지식수준이 중세 시대인 건 아니다. 발전된 문명 출신의 추방자들이 많았으니까. 용병들을 속여서 손쉽게 부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에이플랜 레기온 소속이다.”

“들어본 적 있습니다. 요즘 주가를 올리는 레기온이군요. 게다가 환상공의 후원을 받는다지요.”

“이런 쪽으로 소식이 밝군.”

“레기온과 용병들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중개업자로서 항상 대형 레기온들의 동향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콜라를 한 캔 다 마신 나는 한 캔 더 꺼내서 마셨다. 노리스가 부러운 눈으로 날 쳐다본다.

“꺼억. 이번에 좋은 정보를 얻었다. 드래곤 하나를 잡을 생각이다.”

“……어마어마한 일을 계획하고 계시군요.”

“나도 직접 참가한다. 필요한 건 믿을 수 있고, 소규모 레기온 급의 용병단 하나. 유명하고 유능한 용병단이면 좋겠군.”

“여긴 용병의 도시입니다. 마침 일을 쉬고 있는 유명 용병단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고급 인력인 만큼 많은 고용비가 필요합니다.”

“얼마지?”

“드래곤을 사냥한다. 어떤 드래곤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또 대략적인 고용 시간을 알려주십시오.”

“노리는 드래곤은 파프니르. 늦어도 2주 내로 사냥할 생각이다.”

“파, 파프니르라니. 진심이십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놈을 용병단 하나로 잡겠다니!”

중개업자가 깜짝 놀랐다.

파프니르는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아주 유명한 드래곤이었으니까. 사악한 용으로도 알려져 있다.

“놈을 사냥할 방법은 내가 알고 있다. 보안상 그 방법은 말해줄 수 없다. 한 가지 더. 사냥에는 나도 직접 참가한다.”

“직접 말입니까? 그럼 신뢰성은 오르겠군요.”

“파프니르를 죽이고 얻는 모든 보상은 당연히 모두 내 것이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용병들도 납득해야 하지요. 하지만….”

노리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용병은 그래봤자 용병이었다. 마지막에 탐욕에 눈이 멀어 고용주를 배신할 수 있었다. 고용주를 죽이고 입을 싹 닦으면 누가 용병들에게 따질 수 있을까. 설령 내 뒤에 에이플랜 레기온이 있다고 하더라도 용병단을 해체하고 잠수하면 그만이다. 이 넓은 아틀란티스는 숨고 도망칠 곳이 많았다.

“중개업자가 용병들을 믿지 않는 건가?”

“마냥 순수하게 믿기에는 너무 많은 걸 경험했습니다. 용병단과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 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러지.”

방 밖으로 나간 나는 종업원에게 창관이 어딨냐고 물어봤다. 어중이떠중이들이 찾는 곳이 아닌 진짜배기들만이 찾는 창관을.

여종업원은 야릇하게 웃으며 내게 검지와 중지 사이에 엄지를 넣어대는 손가락 사인을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꽤 비싼 값을 불렀지만, 근육 보지는 만족스러웠다.

• • •

다음날, 중개업자 노리스를 만났다. 그의 옆에는 한 남성이 앉아 있었다. 커다란 체구, 빈틈없는 근육과 경장갑. 첫인상은 강철같은 남자였다.

“오셨군요.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이쪽은.”

“오미코스 용병단의 오미코스입니다. 반갑습니다. 대략적인 의뢰 내용은 노리스에게서 들었습니다.”

오미코스 용병단.

그 이름은 나도 알고 있었다. 이 도시에서 손꼽히는 용병단 중 하나였다. 게다가 신의가 있기로 유명했다.

“내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나?”

“조건이 있습니다. 그 조건을 보장해주신다면… 의뢰를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조건이 뭔지 들어보기로 할까.”

노리스가 서류를 꺼내 탁자 위에 올렸다. 중개업자로서 그가 해야 할 일이었다.

“우선 의뢰 보수부터 말씀해드리겠습니다. 보수는 10억 페니입니다. 2주 계약이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3,000만 페니가 늘어납니다.”

한화로 대략 100억이다.

유명 용병단 하나를 전체 고용하는데 10억 페니면 적절하다고 보면 된다.

“아까 말한 조건은 이게 아니겠군. 조건을 말해봐라.”

“지크프리트는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불사의 육체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세계에서는 그 설화를 결코 무시할 수 없지요. 여기 오미코스 용병단장은 파프니르의 피를 뒤집어 쓰기를 원합니다. 파프니르가 드래곤인 만큼 크기도 엄청날 테니 그 정도일은 어렵지 않다고 생각됩니다만….”

노리스가 나를 빤히 쳐다봤다.

솔직히 나는 불사 따위에 관심 없다. 불사가 있더라도 불사를 죽이는 힘 또한 있을 테니까. 전설 속 지크프리트도 완전한 불사가 아니었다.

“피를 달라는 게 아니라 피를 뒤집어쓰게 해달라는 게 조건이다. 맞나?”

“맞습니다. 계약서에 확실히 명시하겠습니다.”

“나도 조건이 있다. 보수를 5억 페니로 하지. 그럼 그 조건을 받아들이겠다.”

노리스는 옆에 앉아 있는 오미코스를 바라봤다.

오미코스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달리 고민하지도 않았다. 마치 보수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나는 그가 어떤 상태인지 알았다.

‘불사에 눈이 멀었군.’

불사. 살아 있는 생물은 그 누구라도 탐낼 수밖에 없으리라.

[황금 수집가가 낄낄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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