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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70화 (1,750/2,000)

Chapter 1970 - 1970. 신의 아틀란티스

노리스에게 받은 만년필로 계약서에 사인하려다가 멈칫했다.

계약서에서 음산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평범한 계약서가 아니군.”

“사신의 계약서입니다. 계약을 어기면 사신의 저주와 추적을 받게됩니다.”

“원래 용병들은 사신의 계약서로 일을 진행하나?”

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사신의 계약서. 정말 중요한 계약을 할 때 쓰는 계약서 중 하나다. 계약서 그 자체의 가격만으로 1억 페니 이상이다.

“제가 이 계약서를 내밀었습니다. 옛날에 우연히 얻었던 계약서입니다. 알아보니 고용주님은 이번에 용병을 고용하는 게 처음이시더군요. 제게는 나름의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 안전장치가 이건가?”

“네. 계약서의 내용만 지켜주신다면 아무 일도 없을 겁니다. 대신이라고 할까. 선수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나는 계약서를 다시 한번 읽어봤다. 내게 불리한 조항은 딱히 없었다. 계약서 끝에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넣었다. 이어서 오미코스가 사인을 하고 중개업자인 노리스도 사인했다.

계약서가 검게 물든다. 계약서를 중심으로 음산한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다가 허공에 뭉치기 시작했다. 음산한 기운은 이어 사신으로 변했다.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손에 커다란 낫을 든 사신이 우리 셋을 한차례 둘러보고는 낄낄 웃었다. 그리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신의 계약이 완료되었습니다.」

「계약을 어길 시 죽을 때까지 사신의 저주와 추적을 받습니다.」

시스템이 확인성 알림창을 띄웠다.

노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몸의 긴장을 풀었다. 오미코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당장 움직여야하기에 용병단으로서 준비해야 할 게 많습니다. 내일 오후 1시에 뵙겠습니다.”

“그러도록.”

오미코스가 떠났다.

노리스는 그가 떠나자마자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오미코스는 융통성이 없습니다. 친근하게 사람을 대하는 성격도 아니지요.”

“그런 것 같군.”

“하지만 실력만큼은 진짜입니다. 제 말을 믿어달라고 하지 않겠습니다. 오미코스가 쌓아온 커리어를 믿어주십시오.”

“믿는다.”

짧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내가 오미코스 용병단을 믿느냐, 안 믿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내 목적의 달성 여부다.

• • •

용병 도시 북쪽 출구 앞에는 오미코스 용병단이 모였다. 50명이 넘는 인원들이 완전 무장을 갖춘 채로 떠날 준비를 했다. 전장으로 향하는 군인들처럼 그들에게서 일종의 각오가 느껴졌다.

긴장은 할지언정 두려워하는 자들은 없었다. 그들 모두 베테랑이었다. 그리고 그들 모두 오미코스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살펴보다가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내 용병들에게 나눠줬다.

“공간 이동 주문서로 이동한다. 주문서를 사용하지 않으면 너무 멀다. 시간은 둘째치고 이동으로 괜히 체력을 뺄 필요는 없다.”

“많이 준비하신 모양이군요.”

“내가 돈지랄하려고 너희를 고용했을까. 먼저 가서 기다리지.”

주문서를 찢었다.

「제 1,358 구역, 고요의 강에 입장했습니다.」

고요의 강은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넓은 평지와 흐르는 강이 아우러져 있어서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좋은 곳이기도 했다.

몇 초 지나자 오미코스를 필두로 용병들이 나타났다.

“고용의 강?”

“여긴 몬스터도 없는 구역이 아닌가?”

“여기에 파프니르가 있다고?”

용병들 전원이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고요의 강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곳이다. 고용의 강을 지배하는 자는 유스티아 제국의 귀족 중 한 명으로 별 볼 일 없는 자였다. 허나 누구도 이 고요의 강을 탐내지 않았다. 여길 얻어봤자 딱히 이득이 되는 것이 없으니까.

“저희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는 모양이군요.”

오미코스는 다른 용병들과 달리 침착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주며 움직였다. 강의 하류를 거슬러 위로 올라간다. 오미코스는 용병들을 이끌며 내 뒤를 따라왔다.

상류의 강은 세 줄기로 나뉘어졌다. 나는 가장 오른쪽에 있는 강줄기를 따라 걸었다. 30분 정도 걸었을까. 목적지에 도착했다.

“왜 멈춘 거지?”

“뭐가 있나?”

“아무것도 없다.”

오미코스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나는 그 무언의 시선을 무시하고 강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몇몇 구역은 대놓고 드러나 있지만, 몇몇 구역은 숨겨져 있지.’

숨겨져 있는 구역을 암시하는 물건들이 가끔 세상에 나온다. 그 물건들의 비밀을 풀면 숨겨진 구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강명진이나 나는 좀 다르지.’

이미 알고 있으니까.

인벤토리에서 준비한 가방을 꺼낸다. 가방을 열자 1kg짜리 골드바 20개가 들어 있었다. 총 20kg 골드바.

반짝이는 금이 나타나 용병들의 탐욕 어린 시선이 모여든다. 누군가는 침마저 꿀꺽 삼켰다.

나는 흐르는 강에 20kg의 골드바를 전부 내던졌다.

“아아!”

“금을 강에 버리다니!”

“금은 물에 가라앉잖아. 나중에 가서 주우면 되지 않을까?”

피식 웃었다.

내가 멍청이라서 강에 금 20kg을 버린 줄 아나? 강을 쳐다본다. 강물이 투명해서 내부가 잘 보였다. 내가 버린 20kg의 금은 이미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이 장소에서, 이 강에 금 20kg을 버리는 것. 이게 조건이었다.

사실 이건 원작에서 나온 게 아니다. 작가의 설정집에 적혀 있는 몇 줄을 보고 알아차린 것이 전부다. 손해를 감수하면서 용병을 구한 이유도 파프니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제 1,399 구역, 라인 강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히든 구역입니다.」

「언제든지 밖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다만, 다시 입장하기 위해서는 20kg의 금을 바쳐야 합니다.」

고요한 작은 강줄기가 커다란 강줄기로 변했다. 그걸 제외하면 풍경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앞으로 걸어갔다.

「황금 수집가가 웃습니다.」

황금 수집가.

초창기 때부터 나를 지켜봐 온 신좌 중 하나다. 하지만 최근에 그 정체를 눈치챘다. 요새 지나칠 정도로 내게 관심을 보이는 이유.

그건 황금 수집가 본인의 일이기 때문이다. 황금 수집가가 진짜 파프니르다.

「황금 수집가가 힘을 씁니다.」

「황금 수집가(僞)의 힘이 더 강력해집니다.」

“이 씨발놈이?”

「황금 수집가가 낄낄 웃습니다」

역시 사악한 용이라고 할까. 쉽게 갈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랫동안 나를 봐왔으니 미운 정이라도 들법한데, 이놈은 날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초를 치고 있었다.

「황금 수집가가 1,000AP를 후원합니다.

  “필멸자가 건방지도다.”」

건방지다고 말하는 주제에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색 대신 웃음기가 가득했다.

“그래봤자, 결과는 안 바뀐다. 도마뱀.”

「황금 수집가가 힘을 씁니다.」

「황금 수집가(僞)의 힘이 더 강력해집니다.」

“…….”

지금 당장 무릎 꿇고 사과할까? 강렬한 유혹이 찾아왔다. 미운 정도 있으니 여기서 무릎 꿇고 사과하면 적당히 도움도 주지 않을까?

‘그럴 리가. 저 새낀 사악한 용이다. 오히려 실망했다며 지랄하겠지. 다른 신들도 보고 있으니 내가 무릎 꿇은 순 없다.’

나도 자존심이란 게 있었다.

나는 하늘을 향해 양손 중지를 세웠다.

“빡큐나 먹어라! 두 번 먹어라!”

「황금 수집가가 분노합니다!」

「황금 수집가가 힘을 씁니다.」

「황금 수집가(僞)의 힘이 더 강력해집니다.」

어차피 분노하지 않았어도 힘을 썼을 것이다. 그런 예감이 들었다. 그러니 빡큐라도 날려서 다행이었다.

“유진 님? 갑자기 뭐 하시는 겁니까?”

오미코스가 의아함을 느꼈다. 그에겐 내게 보이는 메시지가 안 떠오르니까.

“짜증 나는 놈이 내 일에 초를 쳐서.”

그때였다.

하늘 저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온다.

그 묵직한 존재감에 나를 물론이고 용병들까지 모두 한순간 압도당했다. 새까만 그것은 드래곤이었다. 삐죽한 생김새의 사악함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듯한 검은색 드래곤.

「황금 수집가(僞)가 침입자의 의도를 깨닫고 분노합니다!」

-필멸자가 감히 나의 영역에 침입하였는가!

용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린다.

파프니르에게서 느껴지는 힘과 기세는 내 예상을 아득히 초월했다. 원본이 엄청나게 힘을 쓴 것이다.

나는 일단 무릎 꿇었다. 오미코스는 폼으로 짬밥을 먹은 게 아닌지 바로 용병들과 함께 나를 따라 무릎 꿇었다.

나는 점점 가까워지는 파프니르를 향해 소리치며 인벤토리에서 황금을 꺼냈다.

“위대한 드래곤이시여! 여기 황금 100kg을 바칩니다! 저희가 이 구역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시옵소서!”

황금에 미친 검은 용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그는 내 앞에 놓인 황금들을 보며 군침을 흘렸다.

-좀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 왔군. 근데 황금이 좀 가벼운 것 같군.

“여기 10kg 더 있습니다!”

-그래도 가볍다!

“…10kg 더 있습니다.”

-더 있는 것 같은데?

“없습니다! 진짜 없습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흐음. 너희를 죽이고 황금을 가져가는 게 나을 것 같군.

“그 전에 제가 이 황금들을 아공간에 넣을 겁니다!”

-쯧.

불만스러움을 담은 혀 차는 소리.

이후, 사악한 드래곤은 잠시 침묵했다. 어쩔까 고민하기로 한다.

‘이놈은 황금 수집가가 아니야. 나에 대한 정보가 없다. 받아들일 거다.’

놈의 눈동자에선 황금에 대한 탐욕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아틀란티스에 맞게 밸런스가 맞춰진 상태라는 거지. 파프니르가 마냥 강해지는 걸 시스템이 묵인했을 리 없다.’

시간을 벌어야 한다. 이놈을 공략할 방법을 찾을 시간을.

‘지금 바치는 황금은 나중에 저 새끼를 죽이고 되찾으면 돼.’

-좋다. 황금을 내놔라. 네놈들이 내 영역에 사흘 동안 머무는 것을 허락해주마. 그 이상은 안 된다.

“여기 황금이 있습니다.”

파프니르는 다소 짧은 앞발로 황금을 쥐고 커다란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사흘이다. 잊지 마라.

사악한 용이라고 해도 용은 용인지라 자기가 했던 말을 지키려고 했다. 수틀리면 그것도 없겠지만.

“……정말로 파프니르를 죽일 방법이 있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 것 같습니다만.”

“방법은 있다. 이 넓은 구역에 파프니르 하나만 있을 리 없다.”

나는 시스템의 공정함을 믿었다.

파프니르가 갑작스레 기존보다 강해진 만큼, 놈을 약화시키거나 죽일 수 있는 다른 방안도 마련해뒀을 것이다.

“일단 움직이지. 시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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