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71 - 1971. 신의 아틀란티스
앞장서서 움직였다.
용병들이 내 뒤를 따랐다. 어째 처음 봤을 때보다 분위기가 어수선하다. 파프니르를 직접 보고 쫄아버린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용병단장인 오미코스는 불안함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오미코스. 용병단이 파프니르에게 쫄아버린 것 같다만. 이대로 파프니르와 싸울 수 있겠나?”
“지금 당장은 힘듭니다. 허나 유진님은 방법이 있으신 것 같군요. 가능성이 있으니 따르겠습니다.”
오미코스는 차분하고 의리 있는 용병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말이다. 실제로는 무슨 꿍꿍이를 가졌을지 알 길이 없었다.
‘파프니르의 피가 어지간히도 탐나는 모양이지.’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시야 끄트머리에 무언가가 보였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마을이었다.
‘이 넓은 구역에 파프니르 혼자만 달랑 있을 리 없지.’
여기까지 오면서 다른 몬스터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처음부터 없었거나, 파프니르가 거슬린다는 이유로 정리했거나. 아마 후자 쪽일 것이다. 아틀란티스는 도시형 구역이 아닌 대부분 구역에 몬스터들이 있으니까.
‘파프니르는 성격이 존나 지랄맞아 보였어.’
속으로 파프니르를 씹으며 마을 가까이 다가갔다. 마을 주위에는 암석이나 돌멩이가 유독 많아 보였다. 가까이 가니 답이 나왔다.
‘광부마을이네.’
마을 근처에 광산은 없었다. 광산이 없더라도 땅 아래로 광맥이 있을 수 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나는 당당히 마을로 걸어갔다. 곁에 있던 오미코스가 당황했다.
“이대로 그냥 들어가면 안 됩니다. 마을 사람들이 경계할 겁니다.”
“이런 적이 많나 보군.”
“구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작은 마을들을 맞닥뜨리는 일이 많습니다. 이런 오지에 있는 마을은 기본적으로 이방인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신뢰하지도 않습니다. 대부분 도적, 산적, 마적 등에 시달렸기 때문입니다.”
“지들이 우릴 안 믿으면 어쩔 건데.”
“싸우면 저희가 손해입니다. 이 세계는 몬스터가 존재합니다. 작은 마을이라도 마을을 지킬 수준의 무력은 갖추고 있습니다.”
“내가 언제 싸우겠다고 했나? 파프니르와 관련해서 대화부터 해야지.”
오지에 있는 마을이라 그런지 마을을 지키는 경비원도 없었다. 나는 긴장하며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힌다. 대부분 집안일을 하던 아녀자들이었다. 죄다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잠시 마을을 둘러보고 천천히 중심으로 향했다.
저 멀리서 남자들이 헐레벌떡 뛰어온다. 상의는 어디다 벗어던졌는지 죄다 상체를 노출한 채였다. 손에는 곡괭이와 망치 등의 연장을 들고 있었다. 광부라 그런지 몸은 상당히 좋았다.
그들 중 한 명, 부리부리한 눈의 중년 남성이 내 앞을 가로막듯이 섰다.
“우리 마을에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들어오다니! 당장 나가시오!!”
“우리는 파프니르를 죽이러 이 구역에 왔다. 파프니르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 약점 같은 거 말이다.”
“고작 당신들 따위로 그 악룡을 죽인다고? 자살 지원자들이었군. 파프니르에 관한 정보 같은 건 없소. 썩 나가시오.”
마을 남자들이 점점 모여들었다. 이미 100명이 넘었다.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적의를 보냈다. 용병들도 덩달아 긴장했다. 저들이 미친 척 덤벼들면 당연히 싸워야 하니까.
“왜 이렇게 불친절하지? 그냥 파프니르에 관해 이야기만 하자는 거다.”
“당신의 무례한 태도는 생각하지 않는 거요?”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비협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어. 부탁이니 날 악마로 만들지 마라.”
“하, 이제 협박까지 하는가!”
“이 새끼가 상황 파악을 못 하네. 머릿수가 많다고 이길 것 같나? 니들 따위는 나 혼자서도 쳐 죽일 수 있다.”
내가 마나를 운용해 신체를 강화하려 할 때였다.
오미코스가 불쑥 앞으로 나섰다.
“두 분 모두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유진 님. 아까 파프니르를 만나 기분이 많이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다. 여기 간이 의자에 앉아 잠시 쉬고 계십시오.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좀 피곤하긴 했지.”
귀찮은 일을 대신 해주겠다는 데 거부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오미코스가 직접 펼쳐준 간이의자에 앉았다. 중개업자의 말로는 융통성 없는 용병이라고 하더니… 실제로는 융통성이 넘쳐흘렀다.
‘용병일을 하며 다져진 짬밥인가.’
“마을 촌장님. 저희가 허락도 없이 마을에 들어온 건 사과드리겠습니다. 방금 전에 파프니르를 맞닥뜨린지라 경황이 없었습니다. 사과의 뜻으로 저희 물건들을 조금 나눠드리겠습니다. 행상인들도 많이 안 다니는 것 같은데… 필요한 물건들이 있으시지 않습니까?”
“필요한 물건들이 있긴 하지. 혹시 과일 같은 것도 있소? 기왕이면 이런 땅에 잘 자라는 과일 같은 거 말이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지만, 과일은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옷도 있으면 좋겠군.”
“여분으로 가지고 다니는 옷도 있습니다. 이번 파프니르 공략이 중요한 만큼 많은 걸 챙겨왔습니다.”
“선물은 됐소. 우린 많은 것이 부족하긴 해도 가난하지는 않소. 모두 정당히 값을 지불하리라.”
“페니를 가지고 계십니까? 아니면 AP로?”
“행상인도 안 오는 곳이라 페니는 없소. AP는 우리도 귀해서 고작 이런 일에 쓰긴 어렵지. 대신 우리에겐 황금이 있소.”
촌장이 바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빛을 받아 노란색으로 반짝이는 것. 황금이었다.
용병들이 깜짝 놀랐다. 그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 마을이 황금을 캐는 곳임을 깨달았다.
‘황금 캐는 마을이라. 나쁘지 않군.’
황금은 예로부터 보장된 화폐이기도 했다. 지구에서도 황금의 가치는 높았고, 아틀란티스는 마찬가지로 황금은 가치가 있었다.
선물을 하겠다는 말에 미간을 찌푸리던 용병들은 황금으로 사겠다는 말이 나오자 안색이 바뀌었다. 죄다 자기 배낭을 뒤지면서 물건을 팔려고 했다. 몇 배나 남겨 먹을 수 있는 장사라 그렇다.
「황금 수집가가 1,000AP를 후원합니다.
“이해할 수 없군. 왜 거래를 하는 거지? 어차피 약해빠진 놈들이다. 분수에 맞지 않게 금을 가지고 있으니 힘으로 빼앗으면 되지 않나. 황금은 강자의 손에 들어가는 게 옳다.”」
“너도 맞는 말을 할 줄 아는군. 그런데 씨발. 아까 왜 그랬어?”
「황금 수집가가 1,000AP를 후원합니다.
“시련이 너를 강하게 만들 것이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금도 황금 수집가를 보면 이가 갈렸다.
원래 내 계획상 지금쯤 파프니르를 조지고 있어야했다. 용병단과 함께 다구리를 놓으면서.
차라리 다른 드래곤을 노릴까. 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드래곤의 소재는 애매했다. 무엇보다 이미 사신의 계약서에 사인했다.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기도 힘들었다.
‘사신의 저주야 천심을 사용하면 되니 상관없더라도, 사신의 추적은 지금 나로서 감당하기 힘들어.’
화련비도를 강화하는 일인데 어중이떠중이 드래곤을 잡을 수도 없었다.
나는 차가운 생수를 꺼내 타오르는 속을 달랬다.
대충 1시간이 지났을까.
온갖 물건들은 손에 넣고 기분 좋아진 촌장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 마을은 갱굴을 파서 금을 캐고 있소. 대충 지하 50m 아래로만 가도 금맥이 널려 있지.”
“그게 이 마을 사람들이 금을 물처럼 쓰실 수 있는 이유군요.”
오미코스는 감탄하며 맞장구쳤다. 금이 나오는 마을. 실제로 감탄이 나오는 이름이긴 했다.
“그러면 뭐 하나. 우린 파프니르 때문에 마을 밖으로 나갈 수가 없소. 파프니르. 그 사악한 용이 우리를 놓아주지 않으니…. 금이 있어도 금을 쓸 곳이 없소. 게다가 우리는 매주 파프니르에게 금을 바쳐야 하오.”
“저희는 그 파프니르를 죽이러 왔습니다. 파프니르의 약점을 알려주십시오. 파프니르가 죽으면 여러분도 자유를 찾는 게 아닙니까?”
“말은 똑바로 하시오. 파프니르가 죽으면 새로운 주인이 나타날 뿐이오.”
용병들이 떨어져 앉아 있는 나를 힐끔거렸다. 계약상 파프니르를 죽인 뒤의 그 모든 부산물은 내가 갖게 된다. 이 구역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세 가지 조건이 있소.”
“굳이 조건씩이나 달 정도입니까?”
“파프니르가 내가 말했다는 것을 알면 우리 마을을 얌전히 내버려 둘 것 같소? 온갖 몹쓸 짓을 하며 우리를 괴롭히겠지. 제물을 바치라고 요구할지도 모르오.”
“…일단 조건을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는 우리 마을의 안전 보장이오. 당신들 중 누가 지배자가 되어도 상관없이 우리 마을에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주시오. 저 건방진 놈이 구역의 지배자가 되어선 안 되오.”
오미코스는 나를 힐끗 보고는 이어서 물었다.
“두 번째 조건은 무엇입니까?”
“파프니르가 우리에게 수탈해간 황금을 돌려주시오. 그 일부만이라도 좋소. 우리는 몇십 년 동안이나 일했소. 그 보상은 있어야 하지 않겠소?”
“마지막 세 번째 조건은?”
“우리를 좀 도와주시오. 지하 갱굴에 커다란 바위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소. 용을 써도 좀처럼 부서지지 않더군.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그 바위를 부술 수 있을 것이오. 하루만 도와주면 되오. 아, 이 조건들은 모두 시스템이 보장할 것이오. 파프니르에게 수탈당하는 대신 시스템에게 받은 권한이오.”
「거래 계약」
「이 계약은 시스템이 보증합니다.」
「계약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오미코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고작 정보는 말해주는 것에 비해 원하는 게 많았다. 그걸 오미코스도 느끼고 있다.
“…동료들과 의견을 나눌 시간이 필요합니다. 기다려주십시오.”
“많이는 못 기다리오. 우리는 빌어먹을 파프니르에게 바칠 금을 캐야 하니까.”
나는 오미코스 용병단을 이끌고 마을 밖으로 나갔다. 마을에서는 도청의 위험이 있었다.
“마을 놈들이 당당한 이유가 있었군. 시스템이 어느 정도 편의를 봐주고 있었어.”
내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신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위해서 대륙인들은 희생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희생당하는 대륙인들이 트롤 짓을 해서 신들을 즐겁게 할 이야기를 망친다면? 시스템으로선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그러니 시스템은 밸런스가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대륙인들에게 혜택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 혜택은 지금처럼 계약 보증이다. 대륙인들에게 직접적으로 힘을 주는 혜택도 아니니 문제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오미코스가 내게 물었다. 이들은 용병이고 나는 고용주다. 선택권은 당연히 내게 있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