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75 - 1975. 신의 아틀란티스
-드래곤이 온다! 드래곤이 온다!
쥐새끼가 연신 찍찍거렸다.
쥐새끼의 목소리에는 경외감이 실려 있었다. 파프니르를 두려워하면서도 동경하는 것이다.
“어이, 쥐새끼. 드래곤이 온다는 건 어떻게 알지?”
내 물음에 쥐새끼가 깜짝 놀랐다. 얼마나 깜짝 놀랐냐면 30cm 정도 튀어 오를 정도로 놀랐다.
-인간이 내 말을 한다!
“네가 내 말을 하는 거다. 드래곤이 오는 건 어떻게 알지? 그거부터 말해라.”
-느껴지니까! 드래곤이 온다!
진짜 오는 거 맞나?
쥐새끼의 말이라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쥐를 의심하면서도 황금 성배의 술을 홀짝였다. 지혜를 얻기 위해 마시는 게 아니었다. 그냥 맜이기에 마시는 거였다.
‘마을 놈들이 왜 경계하는지 알겠군. 상당히 중독적이야.’
절대 정신을 가진 내가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한 번 먹으면 바로 중독되어 찾게 될 것이다.
‘이건 술 좋아하는 엘레나 한테도 못 주겠다.’
한편, 오미코스 용병단의 분위기는 점점 흉악해지고 있었다. 몇몇은 노골적으로 무기를 만지작거렸다.
“단장! 저놈만 죽이면 우리끼리 황금을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린 강도가 아니라 용병이다!”
“딱 한 번이면 돼! 저놈은 우리가 죽인 게 아니라 사고사로 죽은 거야! 딱 한 번이면 우린 남은 시간을 편하게 살 수 있어!”
“평소에 내가 몇 번이나 강조했었다. 용병이라 하여도 신의를 가지라고. 더군다나 저분이 에이플랜 레기온 소속이란 걸 잊었나? 이 세상에 영원한 비밀 같은 건 없다. 에이플랜 레기온이 모든 정황을 알아내고 우리에게 보복할 것이다. 그 이전에 사신의 추적도 받겠지.”
“단장! 이럴 거야?! 이 수백 톤의 황금이 안 보이냐고! 사신이든, 레기온이든 놈들이 오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가서 떵떵거리면 살면 돼! 돈이 있는데 뭐가 불가능하겠어?!”
“안 된다. 일단 진정해라. 너희는 지금 이상할 정도로 흥분해 있다!”
오미코스가 일갈하듯 소리쳤다.
나는 두 눈을 가늘게 뜨며 용병들을 쳐다봤다.
오미코스의 말대로였다. 뭔가 좀 이상하다. 처음에는 단순히 본색을 드러낸 것인 줄 알았지만….
‘일부 용병들의 눈을 보면 초점이 일부 풀려있다. 단순히 황금에 대한 탐욕이 아니라… 정신적 간섭을 받은 건가?’
용병들이 저 지랄을 한 건 창고 내에 쌓인 황금들을 보고 난 직후였다. 황금 혹은 창고에 무언가가 있다.
‘음. 미미르의 술을 마셔서 그런지 머리가 생생 돌아가는 느낌이군.’
나는 술잔에 금괴를 몇 개 더 넣었다. 창고 내에 황금이 워낙 많아서 금괴 몇 개를 넣었음에도 사라진 티도 나지 않았다.
“단장!!!”
일이 벌어졋다. 용병 하나가 급발진하며 검을 휘두른 것이다.
깡!
오미코스는 부하의 검을 어렵지 않게 막아냈으나, 엄청나게 당황한 표정이었다.
나는 씩 웃었다.
“계약이 깨졌군.”
내가 선언하듯 말했다. 사실 계약은 이미 훨씬 이전에 깨졌다. 놈들이 내게 살의를 품은 그 순간부터. 단지 계약 당사자인 내가 인정하지 않고 지켜봤을 뿐이다.
「사신이 계약을 확인합니다.」
「확인 결과 을이 계약을 어겼습니다.」
「을, 오미코스 용병단에 사신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허공에서 시커먼 기운이 일어났다. 기운은 물결치듯 퍼지며 용병들에게 스며들었다.
「사신의 저주가 내려집니다.」
“끄으으으으…!”
“아, 아파!”
“머리가 아파!”
“허억, 헉!”
용병들이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멀쩡한 건 오미코스 정도였다.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걸 보아 저주가 피해 간 건 아니군. 이 악물고 버티고 있는 건가.’
「사신이 계약 위반자들을 추적합니다. 곧 사신이 위반자들의 목숨을 거둬갈 것입니다.」
‘크크. 좆됐구만.’
내가 아니라 저놈들이.
‘아니, 나도 좆된 건가.’
빌어먹을 용병 새끼들이 나를 배신하는 바람에 일이 틀어졌다. 원래는 창고 내의 황금을 정리하고 약해진 파프니르를 다구리쳐서 죽여야 한다.
‘하여간 믿을 놈이 없군.’
머리를 굴린다.
여기 있는 황금들을 모두 정리한 뒤, 나 혼자서 파프니르를 상대할 수 있을까?
‘파프니르가 얼마나 약해지냐에 따라 다르겠지.’
당황한 용병들은 싸우는 걸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야 정신이 좀 드는 모양이다.
‘여기서 파프니르가 적절하게 나타나 준다면 의외로 할만할지도 모르겠….’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
거대한 생물의 울부짖음.
그 소리의 여파만으로 땅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리고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존재감. 파프니르의 분노가 느껴졌다.
-드래곤이다! 드래곤이 왔다!
쥐새끼가 찍찍거리며 창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용병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벌써, 벌써 파프니르가 왔다고? 이야기가 다르잖아!”
“제기랄! 여긴 동굴이라 도망갈 일이 없다고!”
“황금을! 황금을 챙겨!”
오미코스가 창고 입구를 떡 하니 지키고 있었기에 용병들은 쉽게 들어오지 못했다.
“진정해라! 전장에서 패닉에 빠지는 건 자살행위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나! 진정해라!!”
“단장! 드래곤이! 드래곤이 오고 있다고! 빨리 저 창고에서 황금을 빼내야 해! 비켜!”
“유진 님이 하실 거다. 유진님에겐 아르타의 비약이 있다! 한순간에 창고 내의 황금을 모두 다른 금속으로 바꿀 수 있다! 유진 님을 믿고 준비한 진형을 짜라! 드래곤이라면 이미 상대해본 적 있지 않나!”
“파프니르에 비하면 그건 그냥 좀 커다란 도마뱀이었다고!”
“겁먹지 마라! 우린 할 수 있다! 늘 그래왔듯이!”
오미코스가 용병들을 잘 다독였다. 인망은 있어서 그런지 용병들이 빠르게 진정되어 간다. 믿을 수 있는 리더란 오미코스를 말하는 거겠지.
허나 그것도 잠시.
쿵! 쿵! 쿵!
파프니르가 성난 걸음으로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거대하고 새까만 드래곤. 놈의 눈동자는 감히 자신의 보물고에 들어온 침입자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버러지 새끼들이 감히…!
파프니르가 분노를 토한다. 대기에 있는 마나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대기의 마나들이 모두 파프니르의 감정에 동조하는 듯했다. 마나는 드래곤의 편을 들었다.
‘이렇게 빨리 온 건 이상하다. 창고에 경보 장치라도 달아 놓았나? 그런 건 안 보여.’
미미르의 술잔 덕분에 머리가 생생 돌아갔다.
‘마을 놈 중 하나가 배신했군. 파프니르가 가장 먼저 향했을 곳은 두 번째 마을….’
발키리의 날개를 얻은 그 마을이었다. 안드바리의 창고에 대한 정보를 얻은 마을이기도 했다.
‘파프니르가 날아서 가면 10분 내로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쿵! 쿵! 쿵!
파프니르가 용병들에게 다가온다. 주둥이에선 숨을 내쉴 때마다 시커먼 저주가 꿈틀거린다.
나는 여전히 황금 성배의 술을 홀짝였다. 술이 떨어지자 근처에 있는 황금들을 황금 성배에 집어넣었다. 이번에는 마시지 않고 계속 잔에 황금을 넣었다. 미미르의 술이 농축되기 시작했다.
파프니르를 약하게 만들려면 이 창고 내의 황금을 최대한 없애야 했다.
‘황금이야 다시 쌓으면 된다. 황금을 캐는 마을들이 있으니까.’
황금이 그렇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정 급하면 다른 유희 세계에 가서 황금을 가져와도 되니까.
“이놈!!! 내 황금을 내버려 둬라!! 그 황금들은 모두 내 것이다!!!”
황금을 술잔에 빠르게 넣고 있는 나를 보고 눈이 돌아간 파프니르가 입을 벌려 브레스를 뿜었다. 시꺼멓게 타오르는 불꽃과 저주의 브레스. 저 브레스에 맞으면 온몸이 불타는 것과 함께 몸이 썩어갈 것이다.
오미코스가 앞으로 나섰다.
“전원 내 뒤로 와라!”
그가 양손을 앞으로 내밀며 스킬을 사용했다. 그의 몸에서 환한 빛이 퍼지며 방어막을 형성했다. 무드등처럼 주황빛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방어막은 놀랍게도 파프니르의 브레스를 막아냈다.
‘태양의 성질을 가진 방어막이군. 파브니르의 브레스를 막을 정도의 출력은 아니다. 이건 상성의 힘으로 이겨낸 거군. 신좌에게 받은 스킬인가. 신좌는… 음. 미트라?’
전부 눈에 들어온다. 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돕지 않아도 꽤 버티겠어. 명성만큼 유능하긴 유능하군.’
나는 황금 성배에 황금을 계속 넣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시스템. 하텔 마을이 배신했다. 이건 계약 위반이 아닌가?”
「확인 결과 하텔 마을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충성을 지켰다고? 파프니르가 저리 빨리 돌아왔는데?”
「하텔 마을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습니다.」
시스템이 그렇다고 하니.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시스템은 만능이 아니다. 당장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내지 못한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같긴 한데. 그 점에서 허점이 생긴다.
‘배신의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 얼마든지 엿먹일 수 있다. 파프니르와 대화를 하면서 파프니르의 사고를 자연스럽게 어느 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거지.’
우선 하텔은 금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전부 가져갔으니까. 거기서 끝내지 않고 이것저것 말하겠지. 나의 충성을 지키는 척하며 입을 꾹 다물기만 해도 파프니르를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시스템을 마냥 두려워하던 용병놈들보다 낫군.’
근데 괘씸한 건 괘씸한 거였다.
“끄아아아아악!”
용병의 비명이 울린다. 파프니르의 꼬리치기를 맞고 날아가 바닥을 구른 것이다. 척추가 부러진 것 같은데 살아는 있었다. 몇 분 뒷면 죽을 테지만.
“유진 님! 아르타의 비약을 쓰십시오!”
“조금만 더.”
나는 황금 성배에 계속해서 황금을 넣었다. 그러면서 천안을 사용해 파프니르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여러 방향에서 지켜보며 놈의 버릇과 육체 능력을 살펴본다.
‘브레스를 연속으로 못 쓰는 건 확실하다. 마나의 흐름을 보면 적어도 3분은 못 쓴다. 그래도 꼬리와 발톱만으로 위협적이다. 피지컬 자체가 남달라. 어지간한 검기는 비늘에 튕겨 나가는군. 주둥이를 공격에 활용하지 않는다. 자기는 짓믕이 아니다. 뭐, 이런 자존심인가?’
용병들이 죽어 나갔다. 파프니르에겐 일반 공격보다 마법이 더 통하지 않았다. 드래곤이라 그런지 마법 저항력이 어마어마했다.
‘가까이 다가 가기만해도 저주 받는다. 저주 종류는 무작위이군. 몸이 약해지기도 하고, 정신이 미치기도 하고….’
“성유진!!!”
오미코스가 내 이름을 외친다. 수십 명의 용병이 죽고 나니 그도 급해진 것이다.
“다 됐다.”
나는 황금 성배의 안을 바라봤다. 황금 100톤이 들어간 술은 매우 영롱했다.
‘황금 100톤분의 지혜. 기대되는군.’
잔에 입을 대고 술을 들이켰다.
맛은 죽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