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76 - 1976. 신의 아틀란티스
“음. 섹스.”
너무 맛있어서 순간적으로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습관적으로 성배에 혀를 갖다 댔지만, 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황금 100톤이 100ml도 안 되는 양이 되어 내 뱃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여운에 계속 잠겨 있을 시간은 없다.’
나는 아쉬움을 달래며 인벤토리에서 아르타의 비약을 꺼냈다. 비약을 창고 내의 황금에 떨어뜨린다. 비약은 황금에 닿는 순간 기체로 변했다. 기체는 창고 안을 가득 채웠고 황금을 무작위 금속들로 바꿔버렸다.
철, 납, 알루미늄, 아연, 주석 등등. 황금을 제외한 금속으로 변했다. 창고를 가득 채웠던 200톤의 황금이 순식간에 사라진 것이다.
「아르타의 비약 효과는 30분 동안 유지됩니다.」
창고 밖의 파프니르를 지켜봤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용병들이 파프니르 근처에만 가도 저주를 받았었는데, 지금은 아니었다. 파프니르의 기세는 3할 이상 약해졌다.
‘절반도 아니고 3할이라.’
대충 100톤에 1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가성비가 최악이군.’
한국의 금보유량이 100톤 정도던가. 그 3배나 더 보유했음에도 저 정도밖에 강해지지 못했다. 안드바리의 창고는 그다지 탐나지 않았다.
‘약해졌어도 파프니르는 파프니르다.’
용병들은 이미 20명 이상 당했다. 약해진 파프니르는 여전히 용병들보다 더 강하다.
‘더 죽어라.’
나는 팔짱을 끼며 전투를 지켜봤다. 용병들은 살아서 나가는 것보다 여기서 죽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이미 사신의 계약도 파기 됐으니, 살아남는 놈이 있으면 내가 직접 죽일 생각이다.
“내가 틈을 만들겠다!”
오미코스가 파프니르의 정면으로 달려들었다. 마치 신화 속 지크프리트처럼 당당했다.
-네놈이 지크프리트라도 된 줄 아느냐!
파프니르가 일갈했다. 같은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오미코스는 대단했다. 인간보다 몇십 배는 더 큰 몸을 가진 파프니르를 상대로 비등해 보일 정도로 버티고 있었으니까.
그의 틈으로 용병들이 달려든다. 활을 쏘고, 다가가서 검을 휘두르고, 마법으로 공격한다.
“공격이 먹힌다!”
“아까보다 훨씬 약해졌어!”
“놈이 피를 흘린다! 죽일 수 있다! 죽일 수 있다고!”
-이 벌레들이!!
파프니르가 입을 쩍 벌렸다. 그에 오미코스가 다급히 소리쳤다.
“브레스다! 피해라!”
용병들은 일사불란하게 주둥이를 피했다. 대부분 파프니르의 몸체에 달라붙었다. 입으로 내뿜는 특성상 가까울수록 더 안전해지는 것이다.
파프니르의 두 눈에 조소가 담긴다. 파프니르의 몸에서 저주가 뿜어져 나온다. 브레스는 속임수였다.
화아아아아악!
새까만 독연기처럼 퍼진 저주가 용병들을 휩쓸었다. 저주에 닿은 용병 대부분이 바닥에 뻗어버렸다. 간신히 움직이는 자들은 저주에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 자들뿐이다.
-네놈! 감히 내게 마법을 날려? 네놈은 팔다리를 찢어 천천히 죽여주마!
파프니르는 사악하게 웃으며 뻗은 용병 중 하나를 잔혹하게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아이러니하게도 벌레를 잡아 해부하는 어린아이처럼 순수했다.
-네놈은 내 눈에 활을 쐈지. 넌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라!
파프니르의 웃음소리가 공동을 가득 채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용병들은 진형을 수습할 약간의 시간을 얻었다.
“유진 님! 보고만 있지 말고 도와주십시오!”
오미코스가 외쳤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원래 같이 싸우기로 했지 않습니까! 그게 계약이었습니다!”
“계약을 파기한 건 너희 용병들이다. 너희가 먼저 계약을 무시했는데, 나는 계약을 지켜라?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냐.”
오미코스를 한껏 비웃어줬다.
“그건 죄송합니다! 제 동료들이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의 대가는 나중에 치르겠습니다! 일단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힘을 합쳐야 파프니르를 해치울 수 있습니다.”
정론이었다. 파프니르를 죽이려면 힘을 합치는 게 낫다. 누구도 부정하지 못 하리라. 파프니르에게 다구리를 놓기 위해 저 용병들을 고용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황금 성배로부터 얻은 지혜가 내게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글쎄. 내가 볼 땐 지금 대가를 치러야 할 것 같군.”
“……?!”
“자, 봐라. 대가를 청산하러 사신이 오셨다.”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켰다. 어둠이 뭉치는가 싶더니 대낫을 든 사신이 나타났다. 사신의 텅 빈 해골이 용병들을 확인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이어서 사신이 용병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크크. 상황이 재밌게 됐군!
파프니르가 웃으며 용병들을 짓밟는다.
이제 남은 용병은 10명도 되지 않는다. 계속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앞으로 나섰다.
‘뇌전창.’
손에서 뇌전을 일으켜 창의 형태로 만들어 파프니르에게 던졌다. 정확히 파프니르의 머리를 때렸다. 놈이 방심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네이놈! 창고를 털어버린 주범! 드디어 나서는 것이냐! 오냐, 지금 죽여주마!!
파프니르가 입을 벌린다.
브레스? 블러핑?
이미 용병들을 속였던 파프니르다. 입을 벌렸다고 해서 브레스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보였으니까.
파프니르는 브레스를 뱉는 척하며 저주의 창들을 쏘아냈다. 나는 천천히 앞으로 걸으며 저주의 창을 전부 피했다.
-20개 넘는 저주의 창을 전부 피해?!
“불가능하다!”
-불가능하다!
파프니르의 목소리와 내 목소리가 겹쳤다. 파프니르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얼마나 당황했는지 뒤로 주춤거리기까지 했다.
-이놈! 무슨 개수작을 부리는 거냐?!
“극에 이른 지혜는 미래마저 예지하지. 나는 이미 너의 모든 것을 파악했다. 네 행동은 불 보듯 뻔하다.”
파프니르와 관련된 미래가 보였다. 고작해야 5~10초 앞을 내다보는 것이 전부다. 허나 그것만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
“너는 개소리 하지 마라! 라고 말한다.”
-개소리 하지 마라! …헉?!
“이 벌레 새끼가!”
-이 벌레 새끼가!
“따라 하지 마라!”
-따라 하지 마라! …이런 씹!
분노한 파프니르가 땅을 쿵쾅거리며 달려든다. 나는 발키리의 날개를 등에 둘렀다. 망토는 순식간에 커다란 비둘기 날개가 되었다. 하늘을 날며 파프니르의 몸통 박치기를 피한다.
파프니르가 꼬리를 휘두른다. 물론 이것도 간파했기에 어렵지 않게 피했다. 이미 피해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크아아아아아아!
파프니르가 입을 쩍 벌렸다. 이번에는 진짜 브레스다.
‘무리해서라도 나를 죽여야겠다고 판단했군.’
파프니르는 내게서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약간의 두려움이 저 무리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황금 수집가가 혀를 찹니다.」
진짜는 이미 승패를 예측한 모양이었다.
“발키리의 방패.”
내 앞에 방패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방패를 꽉 잡으며 파프니르의 브레스로부터 몸을 지켰다. 방패가 브레스를 막아낸다. 그 거친 저주의 화염은 나를 끝까지 밀어냈다. 날개의 힘만으로 막기에는 힘들었다. 결국 내 몸은 쭉 뒤로 밀려나 바위산 밖으로 나왔다. 바위산 천장이 놈의 브레스로 증발하듯 녹아버렸기 때문이다.
파프니르가 하늘을 향해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른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기세가 좋았다.
‘용병들은… 도움이 안 되는군.’
사신과 싸우고 있었다. 괜히 데려왔나 싶었다.
‘그래도 뭐, 파프니르의 힘을 어느 정도 빼놨으니.’
“하늘은 내 영역이다. 라고 말한다.”
-하늘은 내 영역― 죽여주마!!
파프니르가 흥분했다. 거대한 날갯짓으로 내가 달려든다. 이번엔 아예 나를 씹어 죽일 생각이 가득하다.
나는 녹아서 너덜너덜해진 발키리의 방패를 버리고 인벤토리에서 황금검을 꺼냈다.
“황금 성배의 술을 먹기 전까지는 그냥 단단한 검인 줄 알았지. 하지만 아르타의 비약을 쓰고나서 답이 나왔다.”
나는 아르타의 비약 한 방울을 황금검에 떨어뜨렸다. 황금검이 은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황금검의 정보창도 변했다.
「노퉁
용의 뼈와 살을 베는 검.
랭크: S」
용을 죽이기 위한 검이 완성되었다. 나는 파프니르를 마주 보며 날아갔다.
전부 보이는데 두려울 게 없었다. 주둥이와 발톱을 피하며 노퉁으로 놈의 옆구리를 갈랐다. 검날은 크게 힘을 주지 않았는데도 두부 베는 것처럼 아주 손쉽게 용의 비늘을 갈랐다.
-아아아악!
“고통스럽나?”
내가 비죽 웃으며 하늘에서 비틀거리는 파프니르에게 물었다.
“너는 간지럽다고 말한다!”
-간지럽다! …이런 썩을!
놈이 분노를 터트리며 내게 다가와 꼬리를 휘둘렀다. 나는 알면서도 그 꼬리 공격을 맞아줬다. 흐르는 강에 떨어진다.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아프진 않았다.
‘노퉁으로는 파프니르를 죽이기 어렵다.’
용의 뼈와 살을 베는 검. 그러나 정작 용의 뼈를 베기엔 검이 길이가 너무 작았다. 체급 차이가 너무 큰 것이다.
나는 노퉁을 비스듬히 바닥에 내려쳤다.
까아아앙!
노퉁의 검신에 금이 갔다. 몇 번 더 내려치니 그대로 부서졌다.
‘노퉁은 부서져도 황금검은 부서지지 않는다.’
은색 검이 사라지고 황금으로 빛나는 검이 드러났다. 나는 다시금 아르타의 비약을 황금검에 부었다. 아르타의 비약은 황금검에 한해 무작위로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다음에 나올 검도 예측할 수 있었다.
「발뭉
용을 저주하는 검.
랭크: SS」
-발뭉… 이라고?!
파프니르가 경악한다. 노퉁을 봤을 때와는 반응이 천지 차이였다. 그럴 만도 했다.
“너를 저주한다, 파프니르.”
발뭉의 저주가 파프니르를 덮쳤다. 파프니르의 온몸에서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나타나 피가 줄줄 흘렀다.
-끄아아아아아악!
파프니르의 끔찍한 비명을 배경음악 삼아 작업을 이어갔다. 나는 노퉁처럼 발뭉을 부수고 황금검으로 되돌렸다. 그리고 아르타의 비약을 뿌렸다.
황금검이 백금으로 변했다.
「그람
용을 죽이는 검.
랭크: SSS」
나는 하늘을 향해 검을 높이 들었다.
“아스트라페.”
콰아아아앙!
검을 향해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벼락은 사라지지 않고 마검을 휘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