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80 - 1980. 신의 아틀란티스
모든 세계와 동떨어진 어느 곳.
그곳에 제우스를 비롯한 신들이 모였다.
올림푸스의 12신들 뿐만이 아니라 지하 세계의 주인인 하데스까지.
제우스는 모인 신들을 보며 감회가 새로웠다.
그간 천지가 몇 번이나 뒤집혔다. 자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신들의 관계도 영원한 이어지는 지루한 시간에 따라 점점 가늘어졌다. 이렇게 모이는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어느 정도의 시간인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서로의 안부를 묻지 않았다.
최근 신들의 생활이야 다 거기서 거기다. 그들이 개입할 수 있는 건 특정한 인간 세계와 아틀란티스뿐이다. 인간 세계는 질리고 질린지라 대부분 아틀란티스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모인 이유도 아틀란티스와 관련된 일이었다.
제우스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의 계약자인 성유진이 있었다. 아틀란티스의 올림푸스 산으로 향하는 성유진.
‘여기까지 왔나.’
저 인간과 처음 계약했을 때가 떠오른다.
저 인간을 보자 무언가에 이끌렸다. 그래서 손해를 감수하고 계약을 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지금에 와서는 성유진의 행보를 지켜 보는 것이 가장 큰 재미였다. 성유진은 그는 다른 인간들과도 다르니까.
“이렇게 모이는 것도 오랜만이군. 그것도 인간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모이게 될 줄이야. 이게 얼마 만이지? 트로이 전쟁 이후 처음인가.”
제우스가 먼저 운을 뗐다. 물론 트로이 전쟁 이후로 모인 적은 몇 번 있었다. 단지, 그 주제가 인간 때문이 아니었을 뿐이다. 순수 인간을 주제로 모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쓸데없는 말을…. 어서 본론으로 들어가죠.”
제우스의 전 아내인 헤라의 목소리는 뾰족했다. 제우스는 흠칫 놀랐다. 제우스는 이혼한 전 아내를 대하기 어려웠다.
“저 인간이 들어오기엔 너무 이릅니다.”
제우스의 아들, 아레스가 말했다. 아레스는 성유진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프로디테 때문이었다.
“우리가 개입할 이유가 있나요?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올림푸스에 들어섰습니다. 저희가 모여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닙니다. 저는 그대들이 손을 쓰지 않도록 감시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아테나가 말했다. 그녀는 비교적 성유진에게 호의적이었다.
“저 미친 인간이 올림푸스의 권위를 떨어뜨릴지도 모릅니다! 벌해야 합니다!”
아폴론이 성유진을 노려보며 외쳤다.
“그는 영웅 중의 영웅입니다. 신마저 죽인 영웅이죠. 그는 언젠간 헤라클래스를 뛰어넘을 것입니다.”
아르테미스가 예언하듯 말했다. 성유진을 보는 두 눈에선 꿀이 뚝뚝 떨어졌다. 그에 아폴론이 더욱 분개했다.
“하하. 재밌는 놈이군. 지켜볼 맛이 있겠어.”
포세이돈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놈에게 죽고, 놈에게 죽을 산자들이 많다. 명계의 질서가 위험할 정도지…. 그러니 놈의 목숨을 여기서 거두는 것도 한 방법이겠군. 페널티는 내가 짊어지겠다.”
하데스가 말했다. 눈 아래에 거뭇한 다크 서클이 강했다. 신인데 피곤함에 찌들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12신도 아니면서 왜 끼어드는 거죠?”
데메테르가 하데스를 갈궜다. 헤라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하데스는 장모의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하데스가 페르세포네와 결혼한 순간부터 데메테르는 하데스를 싫어했다. 거의 증오했다.
“어차피 아틀란티스의 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죠.”
아프로디테가 말했다. 그녀는 흥미 가득한 눈으로 필멸자를 지켜봤다.
신들은 저마다의 의견을 말했다.
누군가는 그에게 우호적이었고, 누군가는 적대적이었으며, 누군가는 중립을 지켰다.
제우스는 적절한 시점에 손을 들었다. 신들이 입을 꾹 다물고 제우스를 주목했다. 비록 권위가 일부 떨어지긴 했으나, 제우스는 제우스였다.
“나는 그에게 시련을 내릴까 한다.”
제우스가 히죽 웃었다.
그가 생각한 시련을 들은 신들은 경악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죠? 혹시 그 인간이 당신의 숨겨진 아들이라도 되나요?”
헤라가 물었다.
“그건 절대 아니다.”
헤라가 이상한 오해를 하기 전에 확실히 말한 제우스가 이어 이유를 밝혔다.
“내가 그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는 이유는 딱 하나다. 재밌을 것 같으니까.”
다른 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
그래. 신들은 재미를 원한다.
“이 시련에는 그대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어떤가. 동의할 텐가?”
“조건이 있어요. 저 인간이 시련에 실패하면, 당신도 이번 아틀란티스에 손을 떼세요.”
헤라가 당돌히 말했다. 성유진을 노려보는 눈은 아주 매서웠다.
“오오! 아주 좋군요! 아주 흥미롭습니다!”
아폴론이 좋아했다. 그는 성유진이 시련에 실패하기를 간절히 바랬다. 그동안 제우스의 눈치가 보여서 개입하지 못했다. 이때 제우스가 물러난다면? 수작을 좀 부려서 성유진을 괴롭힐 수 있을 것이다.
“이 시련, 만만치 않군. 저 인간도 죽을 수 있겠어. 저 인간이 죽으면 세상에 이롭다. 찬성하지.”
제우스는 아르테미스를 바라봤다. 의외로 그녀는 거부하지 않았다. 제우스가 그 이유를 묻자, 아르테미스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이가 겨우 이런 시련에 굴복할 것 같지 않군요.”
“그이? 오오, 내 여동생아! 저 인간은 인간일 뿐이다!”
“닥쳐, 좀. 너한테 그딴소리 듣고 싶지 않으니까. 어린 남자나 좋아하는 게이 주제에.”
“아, 아니. 동생아…!”
어쨌든 시련은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다.
그를 싫어하는 신도, 그를 좋아하는 신도 흥미를 느꼈다. 신들의 입장에서도 이런 볼거리를 즐길 기회는 흔치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시스템과의 협상. 문제없다. 시스템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니까. 실질적으로 시스템의 의견보다 시련의 당사자인 성유진의 의견이 더 중요했다. 성유진이 시련을 받아들인다면 시스템이 하는 일은 밸런스 조절 정도가 전부다.
“시스템. 우리는 그에게 시련을 내리기로 했다.”
「시련의 끝에는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이다.”
제우스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련을 이겨낸 영웅에게는 보상이 있어야 한다. 그 어떤 신들도 인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시련의 실패에는 대가가 필요하죠.”
헤라가 말했다. 그녀는 뭐가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제우스를 노려봤다. 제우스는 애써 담담한 척 그 시선을 넘겼다. 괜스레 다리 사이가 아파온다.
“시련에 실패하면 그 흉물스러운 별자리를 없애야 할 거예요.”
흉물스러운 별자리. 어떤 별자리를 말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다. 여신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테미스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 별자리는 좀 그랬으니까.
「그에게 전달하겠습니다.」
• • •
나는 넓은 공동에 있었다. 나를 중심으로 높은 곳에 앉아 있는 12명의 신들이 있었다. 제우스를 필두로 한 12명의 위신들. 그들은 나를 내려다보는 그대로 굳어 있었다.
‘뭐 하는 거지?’
사람을 불러왔으면 뭐라도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런데 입을 열기는커녕 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다. 느낌적으로 봤을 때 정말 인형이 된 것 같았다.
‘진짜 신이 아니라 위신이라 하더라도 이럴 수가 있나?’
나는 12명의 신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신들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천안을 사용해 억지로 볼까 하다가 관뒀다. 신이 1~2명만 있는 것도 아니고 12명이나 있었다. 괜히 마음대로 행동했다가 12명의 신들을 모두 적으로 돌릴 수 있다.
몇 분 더 걸렸을가.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인간이여. 네가 무슨 목적으로 올림푸스에 왔는지 알고 있다. 우리는 네게 시련을 내려, 네게 자격이 있는지 살피기로 했다.”
시련.
귀가 쫑긋 선다.
이 세계에서 시련은 대박의 기회였다. 달리 막대한 보상이 걸린 퀘스트였다.
물론 시련이라 불릴 만큼 그 난이도가 어마어마하다. 신좌들이 내주는 미션과는 아예 격이 다르다.
‘SSS급을 넘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어떤 시련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말해줄 수 없다. 그것 또한 너의 시련이다.”
「올림푸스의 시련
올림푸스의 신들은 당신에게 시련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시련을 극복할 시.
-아스트라페(EX)를 획득합니다.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올림푸스의 구역 중 하나의 지배권을 획득합니다.
시련에 굴복할 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별자리가 소멸합니다.」
시련의 내용을 읽었다. 내 시선에 들어오는 것은 역시 보상이었다. 아스트라페(EX). 스킬 아스트라페를 말하는 게 확실하다. 설마하니 아스트라페가 한계를 초월하게 될 줄이야.
아주 흥분되는 일인 동시에 우려스럽기도 했다. 시련의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으니까.
‘억까는 아니지?’
최악의 경우, 시련의 목적이 아닌 나를 죽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련을 내릴 수도 있었다.
‘그 가능성은… 적다. 시스템이 태만을 부릴 리 없어. 보상을 보아하니 진짜 제우스의 의중도 들어가 있는 것 같고.’
「시련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시련을 받아들이겠느냐?”
시스템과 가짜 제우스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나는 당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좋다, 인간이여. 네게 자격이 있는지 지켜보겠노라.”
쾅!
눈앞에서 번갯불이 번쩍였다.
고통은 없었으나, 시야가 점점 암전하는 것을 느꼈다.
잠깐 정신을 잃고 다시 의식을 차렸다. 몸을 일으키던 나는 이변을 알아차렸다.
무언가가 이상하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느낌이다. 호흡에서부터 보이는 시야, 육체의 세세한 감각까지 전부 바뀌었다.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감각이 더 좋아졌다.
손을 내려봤다.
확실하다.
이건 내 손이 아니다. 내 손보다 조금 더 크다.
‘설마. 어떤 몸으로 빙의했나?’
주위를 둘러봤다. 숲과 흐르는 강물이 보인다. 강을 향해 달려가 내 모습을 확인했다.
나는 얼굴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젊었으나, 이 얼굴은 분명 그의 얼굴이다.
‘제우스?!’
나는 제우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