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81 - 1981. 신의 아틀란티스
확실했다.
지금 나는 제우스가 되었다.
다른 사람이 된 감각. 이 감각은 낯설면서도 익숙했다.
‘설마하니 제우스가 될 줄이야.’
유희 생활을 통해 다른 세계에 빙의할 때도 그 베이스는 나였다. 다른 세계의 내가 되는 느낌이었다. 이처럼 완전히 다른 타인으로 빙의하는 건 처음이었다.
다시금 흐르는 강물을 쳐다본다. 강물에 비치는 내 모습은 젊은 제우스가 확실했다.
‘내가 제우스가 되는 게 시련이라면… 시련의 극복 조건은 뭐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이번 시련은 중요했다. 실패하면 모든 걸 잃으니까. 성공하려면 최대한 머리를 써야 했다.
‘내가 제우스가 되어 신화를 완성하는 건가?’
그렇다면 왜 이런 시련을 내렸을까?
‘신들의 변덕이야 내가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으나, 짐작하기로는 재미 때문이겠지.’
다른 세계의 신들이라면 몰라도 아틀란티스의 신들은 유희에 굶주려 있다. 재미라는 이유로 온갖 기상천외한 일을 벌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일단 확인해야 할 건… 상태창.’
「이름: 성유진
클래스: 뇌절사
칭호: 보지의 수호자
신좌: 천공의 주인
소속: AL 401 지구
근력: 137 민첩: 129 체력: 130 마나: 140 행운: 77
고유 특성: 기만(SS)
특성: 뇌전(SS)
스킬: 아스트라페(S), 만뢰(S), 전광석화(A), 보지 자리의 가호(S).
(특수 상태로 인해 상태창 일부 적용 불가)」
일단 상태창이 떠올랐다.
‘하단의 글자를 보면 상태창은 떠도 적용되는 상태가 아니다.’
상태창을 보고 안심했다. 상태창의 일부가 적용되지 않는 상태? 딱히 상관없었다. 이것도 아마 시련의 여파이니. 중요한 건 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거다.
‘여긴 여전히 아틀란티스다. 신의 힘으로 시련의 세계를 구현한 건가?’
시스템이 적용되고 있으니 신들의 횡포에 이리저리 휘둘릴 일은 없을 것이다.
혹시 몰라 인벤토리에서 화련비도나 공간 이동 주문서를 꺼냈다.
‘제재는 없다. 물건들을 사용할 수 있군.’
나쁘지 않았다.
“제우스 님!!”
한 여성이 소리치며 다가왔다. 나는 여성을 돌아봤다가 꼴깍 침을 삼켰다. 얇은 옷을 걸친 그녀는 아름다웠다. 선한 인상을 한 그녀는 뭐가 그리 급한지 내게 달려온다. 가슴은 그리 큰 편은 아니었는데, 격렬하게 달리다 보니 출렁출렁 흔들렸다.
‘고대 그리스의 옷은 우아하면서도 꼴리는군.’
나는 입술을 핥았다.
“그래. 내가 제우스다.”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제우스 님. 그리고 이렇게 밖으로 나오시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우스인 내게 대드는 것이냐?”
“제우스 님?”
여자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나는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농담이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올림푸스의 주신 시절의 제우스가 아니었다. 젊은 외형 그대로 정말로 젊은 시절인 것 같았다.
“빨리 돌아가요.”
“돌아가다니. 어디로?”
“동굴로요. 곧 크로노스 님이 일어날 시간이에요. 크로노스 님은 제우스 님을 알게 되는 순간……. 제가 말하지 않아도 아시잖아요.”
여성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크로노스도 살아 있는 건가. 그럼 정말 초창기군.’
눈앞에 있는 여성의 정체도 깨달았다. 제우스의 보모 역할을 하는 님프이리라.
「올림푸스의 신들이 당신을 지켜봅니다.」
나는 실룩거리는 요정의 엉덩이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따먹어야겠다.’
지금까지 제우스를 보살펴준 보모? 그딴 게 무슨 상관이냐. 나는 제우스였다. 여자를 따먹고 씨를 뿌리는 게 일이다.
그녀의 뒤를 따라 어느 동굴로 들어갔다. 제우스가 나고 자란 동굴로 보였다. 타인의 시선을 피하기에 딱 인 곳이다.
“제우스 님. 여기서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음식을 가져올… 으읏…. 제우스 님…?!”
나는 그녀의 허리를 팔로 두르고 끌어당겼다. 그녀에게서 달콤한 과일 냄새가 났다.
당황한 그녀는 내게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 허나 태어날 때부터 신이었던 제우스는 힘이 무척 강했다. 그녀가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
“날 돌보는 거라면 내 아랫도리도 돌봐줘야지.”
발기한 자지가 그녀의 아랫배를 쿡쿡 찌른다.
“저, 저번이 마지막이라고 했잖아요.”
그녀가 곤혹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마지막?’
아무래도 제우스가 그녀를 이미 건드린 모양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호색한 옆에 미녀가 있는데 호색한이 가만히 있겠는가. 제우스는 고자가 아니었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나는 그녀의 옷을 벗기며 말했다. 그녀가 거부하더라도 상관없었다. 억지로 범할 테니까. 나는 제우스라 그래도 된다.
“이,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요정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허락했다. 표정과 달리 목소리에는 묘하게 기대감이 섞여 있었다.
이 시대에서 즐길 거리가 따로 없다는 걸 생각하면 그녀도 은근히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천공의 주인이 추억에 잠깁니다.」
「올림푸스의 여주인이 눈살을 찌푸립니다.」
올림푸스의 여주인은 헤라였다. 내가 제우스의 모습으로 여자에게 껄떡거리고 있으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다.
‘어쩌라고.’
나는 보드라운 요정의 피부에 입술을 갖다 댔다.
“하아아앙!”
동굴에서 열락의 소리가 울린다.
해가 뜰 때까지 요정과 몸을 섞은 나는 바닥에 누워서 멍하니 동굴 천장을 바라봤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가속됩니다.」
주변의 시간이 빠르게 흐르기 시작했다.
‘과연. 지루한 시간은 이렇게 넘기는 건가.’
몸이 멋대로 움직인다. 유희 생활 어플의 자동 진행을 직접 겪는 것 같았다.
‘그만.’
내 의지를 감지한 것일까. 빠르게 흐르던 시간이 단숨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동굴 근처 강가였다. 나는 딱히 할 일이 없었기에 강가를 걸었다.
강가의 바위 위에 앉아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 강처럼 시원한 푸른 머리카락의 여인이었다. 풍기는 분위기도 어쩐지 시원했는데 강에 발목을 넣은 채로 물장구를 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절대자인 제우스인 나는 당당하게 그녀에게 걸어갔다.
“오, 예쁜이. 혼자요?”
그녀가 나를 돌아봤다.
“푸흡. 그게 뭔가요.”
그녀가 웃음을 터트렸다. 청순가련한 그 모습을 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녀는 요정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나는 제우스다. 너의 이름은 뭐지?”
“메티스에요. 오케아노스와 테티스의 딸이요.”
“테티스!”
나는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에 들어오고 신화를 어느 정도 공부했다. 원작이 신화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소설인 만큼 신화를 알면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니까. 그중에서도 특히 제우스에 대해 자세히 알아봤었다.
지혜의 여신 메티스는 제우스의 첫 번째 아내였다. 제우스와 메티스 사이에 태어난 자식이 그 유명한 아테나다.
“우리의 만남에서 운명이 느껴지는군.”
“저도 그래요.”
“내 여자가 돼라!”
“꺄아아아악!”
메티스를 덮쳐서 내 여자로 만들었다. 다리를 강제로 벌리고 그사이에 자지를 푹 꽂아 넣었다. 처녀 보지의 맛은 끝내줬다.
“하악, 흑…. 저, 저항할 수가 없어요.”
“저항하기 싫은 거겠지. 솔직해지라고.”
“그, 그런 게 아니라. 처음부터 이런 관계는… 하윽….”
철퍽철퍽!
흔들리는 푸른 머리칼을 보며 허리를 흔들던 나는 곧 질내 깊숙한 곳에 사정했다. 쾌락의 여운을 느끼며 메티스의 위에 몸을 올린다.
“하악, 학….”
메티스는 풀린 눈동자로 하늘을 쳐다봤다. 이미 하늘은 저물어 있었다.
“…이상한 별자리가 생겼네요.”
메티스가 헐떡이는 숨을 애써 숨기며 말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밤하늘을 쳐다봤다.
내게는 익숙한 별자리가 표표히 빛나고 있었다.
“보지 자리.”
“…네. 보지처럼 생겼어요. 누가 저런 멍청한 별자리를….”
말을 잇던 메티스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를 알아차린 듯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내 얼굴과 보지 자리를 번갈아 쳐다본다. 이 보지 자리가 나의 별자리임을 깨달은 것이다. 과연 지혜의 여신이라고 할까.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깨닫는다.
“나의 별자리지.”
내가 당당하게 말하자 메티스가 작게 웃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는 분이시네요.”
• •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나는 섹스를 할 때를 제외하면 시간 가속에 몸을 맡겼다.
어차피 시간은 많았다. 인간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시간도 찰나와 같이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신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그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방대할 것이다. 시스템이 시간 가속을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오늘은 뒤치기를 하자고 마음먹으며 메티스를 찾았다.
“제우스.”
어쩐지 메티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꿀꺽.
나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긴장했다.
“메티스. 오늘의 너도 아름답군. 덕분에 내 자지는 오늘도 성이 나버렸어. 오늘도 같이 즐기자자고. 보지 자리가 널 축복할 거야.”
평소에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을 그녀는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제우스. 세상이 신음하고 있어요. 당신의 아버지가 세상을 제 마음대로 주무르며 망가뜨리고 있죠.”
“…크로노스. 그놈 말이지.”
“더 늦기 전에 크로노스를 막아야 해요.”
솔직히 꺼림직하긴 했다.
지금 크로노스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최고신이었다. 함부로 덤빌 놈이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 시련 속에 있을 수는 없지. 원전에서 제우스는 크로노스를 몰아내고 최고신이 되었다. 내가 제우스인 이상 나 또한 그래야 하지.’
나는 각오를 굳혔다.
“어떻게 해야 크로노스를 이길 수 있겠소.”
“크로노스는 당신의 형제, 남매들을 삼켰어요. 그들을 토하게 해서 함께 싸우면 승산이 있을 거예요.”
“어떻게 토하게 하고?”
“이 약을 먹이면 돼요.”
그녀로부터 약을 받았다. 나는 나뭇잎에 감싸인 약을 보면서 물었다.
“이 약은 어떻게 먹이지? 크로노스는 내가 살아있는 걸 몰라. 직접 가서 먹일 수는 없잖아.”
“당신의 어머니께 부탁해봐요. 그분이시라면 도와주실 거예요.”
제우스의 모친은 풍요와 다산의 여신인 레아였다. 이름답게 제우스 남매를 낳았다.
나는 조용히 레아를 찾아갔다.
모친인 레아는 아름다웠다. 애를 몇 명이나 낳은 유부녀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원작의 제우스가 그랬던 것처럼 따먹어야겠군.’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이것도 일이 끝난 뒤다. 지금 당장은 레아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머니! 도와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