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8화 > 1988. 신의 아틀란티스
데메테르와 나 사이에도 자식이 태어났다.
페르세포네였다.
데메테르는 페르세포네를 무척이나 아꼈다. 남편인 나보다 페르세포네를 더 아끼는 것이었다.
“부탁이에요. 그 아이만큼은 건들지 말아주세요. 제발…!”
데메테르가 내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그 애처로운 모습을 보니 내 마음도 약해졌다.
“데메테르. 나도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만….”
"...싶지만?"
“이미 페르세포네는 내 아이를 임신했다.”
"……."
데메테르는 분노를 넘어서 황당하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저는 어제 그 아이를 낳았어요.”
“거사는 밤에 일어났지."
"이 쓰레기...!"
물론 데메테르도 대비하고 있었다. 그녀를 따르는 요정이나 신, 짐승들을 페르세포네 근처에 배치한 것이다. 근데 내겐 투명 투구가 있었다. 페르세포네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분노한 데메테르는 파업했다. 덕분에 인간들은 쫄쫄 굶어야 했다. 나는 적당히 그녀를 달래긴 했으나, 파업을 멈춰달라고는 하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 있는 인간 새끼들은 다 뒤져도 상관없다. 오히려 다 뒤졌으면 좋겠다.
허나 데메테르의 파업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녀의 딸이자, 내 아내인 페르세포네가 데메테르를 달랬다. 그 덕분에 인간들은 다시 땅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다.
페르세포네는 아들을 낳았다. 그는 디오니소스였고 내게 직접 빚은 포도주를 바쳤다.
포도주를 한 모금 한 나는 기분이 확 좋아졌다.
'엘레나가 마시면 좋아하다 못해 미칠 것 같은 맛이로군.’
한 번쯤 미쳐도 상관없지 않을까. 엘레나는 완전 회복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는 인벤토리에 포도주를 넣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꼼수를 부려 이 세계의 물건을 가져갈 수 없었다.
“어떻습니까. 아버지.”
“아주 훌륭하다. 본래는 네게 주어질 자리가 아니었지만… 아테나가 사라지고 그 주인은 존재하지 않으니, 네게 그 자리를 주겠다."
12자리 중 하나에 디오니소스를 앉혔다.
헤라는 이후 아레스를 낳았고, 마이아라는 여신은 나와 관계를 맺어 헤르메스를 낳았다.
바야흐로 올림푸스의 12자리가 채워진 순간이었다.
올림푸스 치세를 알리는 시작이기도 했다.
신과 인간을 떼어놓을 수 없었다.
인간은 신들의 장난감인 동시에 신화의 기록자이며 숭배자이기도 했다. 신들은 태어날 때부터 강했으나, 인간의 숭배를 받으면 더 강해졌다. 그러므로 내 마음대로 인간을 싹 쓸어버릴 수는 없었다. 신중에는 인간을 좋아하는 신도 있으니까.
-아아, 제우스시여! 제게 영원한 힘을 내려주소서!
-제우스 님 살려주세요! 괴물이 절 죽이려고 해요! 아아악!
-먹을 거 좀 주세요!
살짝만 귀를 기울여도 인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짜증 나는 것은 내게 순수한 마음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는 인간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아아! 신들의 왕인 제우스는 얼마나 아름다울지! 직접 만나보고 싶구나!
지금 이 시대에는 인간 여자가 없었다. 저딴 개소리를 지껄이는 게 인간 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것이었다.
‘결단을 내릴 때가 왔다.’
나는 인간 시대로 내려갔다. 마지막으로 인간들을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 시대의 인간은 내가 알고 있는 인간과 달랐다. 그 구성원들이 죄다 남자밖에 없다는 것부터가 내가 알고 있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놈들은 남자들끼리 사랑했고, 남자들끼리 번식했다. 어떻게 번식하는지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자기들끼리 사랑하고 결혼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눈앞에 남자 둘이 커다란 나무 아래에 앉아 사랑을 속삭이며 입을 맞췄다.
‘씨발!’
짜증과 분노가 잔뜩 치밀었다.
쿠르르릉쾅쾅!
천둥소리와 함께 번개가 떨어져 두 명의 남자를 벌했다. 의도한 일은 아니었다. 내 심기가 불편해지자 하늘이 반응해 벼락을 떨어뜨린 것이다.
'잘했다, 하늘아!'
이어서 구름을 타고 돌아다니며 인간 세상을 둘러봤다.
세상은 아주 끔찍했다. 자기들끼리 뭐가 즐거운지 하하 호호 웃는다. 놈들의 번식 행위를 볼 때는 내 두 눈을 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저번에는 대충 보고 넘겼었는데….’
지금 보니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남자뿐인 인간들은 늙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인간들보다 훨씬 더 신체 능력이 강했다. 물론 신들처럼 죽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었다.
'이 새끼들 일을 안 하잖아?'
데메테르, 혹은 가이아의 축복 덕분일까. 땅은 너무 풍족했다. 나무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열매가 열렸다. 가만히 있어도 굶을 죽을 걱정이 없으니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다.
‘서로 싸우지도 않는군. 향상심 같은 것도 없나?'
제우스의 관점이 아닌, 인간 성유진의 관점으로 보자면 이것들은 인간이 아니었다.
‘흐음. 원전의 제우스처럼 갈까? 제우스가 왜 그랬는지 알 것 같군.’
일단 기다렸다.
아직 이놈들은 불을 사용할 줄 몰랐다. 즉, 불은 신들의 것이었다.
‘이놈들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가 조만간 일을 치르겠지.’
신화로 봤을 때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편에 가까웠다.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다. 인간을 창조한 것은 프로메테우스니까. 인간이 자기 자식처럼 보여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겠지.
‘문제는 이 새끼를 내버려 두면 선을 넘을 게 분명하다는 거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서 줬다. 다른 것도 못 줄까.
인간은 인간다워야 했다. 기어올라 서는 안 된다.
“건방진 것들… 조치가 필요하다.”
「최초의 횃대가 10,000AP를 후원합니다.
“너 또한 인간이 아니더냐.”」
최초의 횃대.
그 정체가 프로메테우스일 것은 자명했다. 무려 10,000 AP를 후원한 것은 일종의 뇌물일 것이다. 나는 코웃음 쳤다.
“나는 지금 올림푸스의 최고 존엄인 제우스다. 또한 인간의 관점으로 봤을 때…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다. 늙지도 않고 하루 종일 하하 호호거리며 남자를 탐한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군….”
프로메테우스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레메테우스는 여신이라는 참고 자료가 있음에도 인간 남자만 만들었다.
이 뜻이 무엇이겠는가.
‘프로메테우스. 이 새끼는 게이다. 가까이해선 안 되는 신이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최초의 횃대가 탄식합니다. 그는 당신이 인간에게 자비를 내리기를 바랍니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마침 알몸으로 부대끼는 인간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자비는 내려졌느냐니.”
저것들을 벼락으로 쓸어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자비를 내린 것이다.
시간이 지났다.
원전대로 프로메테우스가 사고를 쳤다. 불꽃을 훔쳐 인간들에게 내린 것이다. 이날을 벼르고 있던 내가 12신들을 모아 소리쳤다.
“저 빌어먹을 게이 새끼가 감히 우리의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줬다! 놈은 벌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나?!”
신들 대부분이 내 의견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신의 것을 훔쳤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쾌한 일이었다. 그 도둑이 같은 신이라 하더라도.
프로메테우스는 우리 앞에 무릎 꿇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결의로 가득 찬 얼굴에는 한 점의 후회도 없었다. 조금의 반성도 없다는 뜻.
신들은 그 태도에 분노했다.
“제우스시여, 그저 인간에게 자비를 내리소서. 그들은 신들을 숭배하니. 인간과 신들은 갈라설 수 없음이라.”
"건방진 것. 예언의 힘 좀 가졌다고 내 머리 위에 올라서려고 하느냐? 네놈은 평생 고생 받을 것이다.”
“제우스시여. 당신을 위한 예언을 하겠나이다. 자비를 내리소서.”
"네놈의 예언 따위 흥미 없다. 너는 무한 고기가 되어 괴물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원전보다 더 심한 벌을 내렸다. 근처에 있는 신들이 놀랄 지경이었다. 허나 프로메테우스는 여전히 의연했다.
프로메테우스가 끌려가고, 헤르메스가 내게 물었다.
"제우스 님. 인간들에게서 불을 가져올까요?”
불은 단순히 불만을 뜻하지 않는다.
지금의 불이 상징하는 것은 문명이었다. 즉, 인간들이 불을 가졌다는 건 문명의 씨앗가 뿌려졌다는 뜻이다. 오늘 이후로 인간은 발전할 것이다.
“됐다. 지금 인간은 너무 미개하니 불이 있어야 한다. 대신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야지. 헤파이스토스.”
“네. 아버지.”
“인간 여자를 만들어라. 남자밖에 없는 인간은 너무 끔찍하다.”
“그러겠습니다.”
헤파이스토스가 인간을 만들었다. 나는 신력을 사용해 판도라의 상자를 만들어 온갖 것들을 집어넣었다. 지혜의 신인 메티스의 도움을 받으니 한결 수월했다.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최초의 인간 여자에게 판도라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신들은 그녀를 축복했다.
‘예쁘네.’
화려한 금발과 풍만한 몸매. 판도라는 아프로디테를 닮았다.
‘아프로디테를 참고해서 만들었나.'
나는 원전의 제우스가 그러했듯이, 호기심을 선물했다.
‘원래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인 에피메테우스에게 선물로 줘서 아내로 삼게 했을 테지만….’
직접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나는 판도라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그녀는 신이 아니었기에 인간 세계에서 살도록 했다.
어느 날이었다.
내가 없는 날. 판도라는 집을 청소하다가 탁자 위에 놓인 상자로 시선을 줬다. 나는 그녀에게 상자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내게 호기심을 받은 판도라는 별 고민 없이 상자를 열었다.
상자에는 노화, 질병, 시기, 전쟁, 탐욕 등의 인간을 쓸어버릴 재앙이 담겨 있었다. 희망? 그딴 거 없다. 왜 넣냐.
“아, 아아아아아…!”
판도라가 무릎 꿇고 절망한다. 나는 판도라의 뒤에 나타나, 그녀를 부드럽게 끌어안았다.
“이런. 상자를 열어버렸군.”
“제, 제우스 님! 저는…! 이, 이럴 의도가…!”
“알고 있다. 네 탓이 아니다. 상자를 여기에 둔 내 잘못… 은 아니지. 이건 일종의 사고다. 우연과 우연으로 만들어진 사고․ 걱정 말거라. 뭐, 별일이라도 있겠느냐.”
나는 판도라를 끌어안으며 웃었다.
인간들은 탐욕을 부리고 서로를 질시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또한 늙지 않던 그들은 세월이라는 불치병을 맞닥뜨려야 했다.
재앙은 인간들로부터 풍족함을 빼앗아 갔다. 지진이 일어나고 가뭄이 일어났으며 화산이 터졌다. 작물이 자랄 환경이 아니었다. 그들은 점점 굶주려갔다.
그리고 비가 내렸다.
끊임없이 내리고 내려 홍수가 일어나 인간을 싹 쓸어버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인간은 다시 만들면 되니까.
'사실 판도라를 만들 필요도 없었지.'
신들의 힘은 꽤 전능했다. 인간을 만드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
구태여 이런 귀찮은 과정을 벌인 것은….
“판도라를 따먹고 싶었거든. 12신들의 축복을 받은 최초의 여자…. 군침이 안 돌 수가 없지. 크크.”
「올림푸스의 모든 신들이 경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