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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89화 (1,768/2,000)

< 1989화 > 1989. 신의 아틀란티스

대홍수가 쓸어버린 세계는 조용했다.

적어도 내 세계에서 판도라를 제외한 인간은 모조리 사라진 것이다.

최초의 여자 인간인 판도라가 내 아이를 임신하긴 했으나, 인류의 시작으로 삼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1명이 1,000명이 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신화를 이루기엔 1,000 명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대 그리스의 인구수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신화를 이루기 위해선 최소 수십만 이상의 인구수가 필요한 건 당연한 일.

'인간을 만들어야 한다.'

원래 그럴 생각으로 쓸어버렸다. 실제 원 역사에서도 인간은 새롭게 만들어졌다.

'인간을 돌멩이로 만들었던가?'

이런 쪽의 전문가인 여신이 있었다.

곧장 가이아를 찾아가 부탁했다.

“인간을 만들어라.”

“……제우스. 인간을 모두 없앤 건 너잖니. 이제 와서 다시 인간을 만들라고?"

“인간이 중요한 역할을 가졌다는 건 내가 아니어도 알지 않나. 숭배받기 위해선 인간이 필요하다."

“그래. 그렇지. 근데 인간이 또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쓸어버릴 거니? 그럴 거면 인간을 만들 필요가 있을까?”

“스틱스강에 맹세코 인간을 멸종시키지 않겠다."

새롭게 만들어질 인간은 이전의 인간과 확연히 다를 것이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 세상에 퍼졌으니 인간들은 영광을 누리지 못 하리라. 이제 인간들은 생존을 위해 조금 더 까다로운 선택을 하게 될 것이다.

“믿음이 가는 건 아니지만… 인간이 없는 건 문제긴 해.”

가이아는 한숨을 내쉬며 내게 돌멩이들을 주었다.

“이걸 땅에 뿌리면 인간이 만들어질 것이란다.”

“부족하다. 더 줘."

“…그래. 추가로 이 정도면 충분하니?”

“더 줘."

"……여깄단다."

“더.”

“인간이 너무 많으면 인세가 혼란스러울 수 있단다."

가이아의 얼굴은 단호했다.

나와 가이아는 나쁘지 않은 관계이긴 해도, 썩 좋은 관계라곤 할 수 없었다. 특히 가이아는 고집이 셌다. 힘이 아닌 격으로 따지면 제우스보다 훨씬 윗줄이라 그런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밖으로 나왔다. 구름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이아에게 받은 돌멩이를 각지에 뿌렸다. 돌멩이는 사람이 되었다. 미개한 원시인 수준이지만, 신들의 도움이 있다면 빠르게 발전할 것이다.

아직 이 세계는 신들의 시대였다.

「시간이 가속됩니다.」

이런저런 일이 있었다. 아무리 나라도 모든 일에 간섭할 수는 없었다. 그리스 신화라고 해서 제우스인 내가 모든 일에 관여할 필요도 없었다.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본다.

인간들이 보였다.

도시를 세우고 왕을 추대하며 신을 숭배한다.

도시 수준에 불과한 왕국들이 난잡하게 세워지는 건 다소 마음에 안 들었다. 번잡한 느낌이 들었다. 인간들은 발전했으나, 그 이상으로 발전하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어느 날이었다.

포세이돈이 올림푸스로 찾아왔다. 바닷물에 흠뻑 젖은 포세이돈은 아랑곳하지 않고 12자리 중 하나에 앉았다. 나는 미간을 좁히며 포세이돈을 노려봤다.

“짠내나는군. 좀 씻고 다닐 수 없나?"

“제우스, 나의 형제여. 바다가 위험하다.”

"뭔소리야?”

다짜고짜 말을 해대니 이해할 수 없었다. 하늘의 시선으로 바다를 확인했다. 바다는 평소와 같았다.

“지금 바다를 봤다. 딱히 특별한 점은 없다만."

“겉보기에는 그렇지. 바다는 지상과 다르다. 온갖 괴물들이 아직 남아 있다.”

“네가 바다를 다스릴 수 있도록 트리아이나를 줬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바다를 완벽히 정복하지 못했나?”

“네가 모든 하늘을 지배하지 못한 것과 같은 이유다. 이 바다에도 수많은 신들의 이권이 걸려있지."

유감스럽게도 이 세계는 그리스 신화의 신들만 있는 게 아니었다. 북유럽 신화, 이집트 신화 등등 다른 지역권 신화와 섞여 있었다. 내가 모든 하늘을 지배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나는 딱 그리스 신화 영역 내의 하늘만 지배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데스 또한 명계 전체를 지배하지 못했다.

“너와 다르다. 나는 영역 내의 하늘을 모두 지배했다. 반면에 너는? 지배해야 할 곳도 지배하지 못하고 있지 않나."

“제우스여. 나도 최근에 발견한 것이다만… 바닷속에 괴물이 있다. 아주, 아주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 그것은 단순한 괴물이 아니다. 심해의 신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 우리가 탄생하기 전부터 존재했었던… 태초의 신이라 봐도 이상하지 않은 괴물이다."

“신이면 신. 괴물이면 괴물. 둘 중 하나만 정해라.”

“그것은 신이며 또한 괴물이다.”

포세이돈이 진지하게 말했다. 개소리를 지껄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이 신은 잠들어 있으나, 괴물들을 창조하고 있다. 아주 골치 아픈 신이지."

“위험한가?”

“그렇지는 않다. 나와 내 자식들에 비하면 약해빠진 것들이다. 인간들보다 약간 더 강한 수준에 불과하니, 내가 있는 한 그들은 바다 밖으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심각한 일은 아니라는 거군.”

“당장은. 허나 우려스럽군. 너도 그 괴물을 보면 내 우려를 이해할 거다.”

딱!

포세이돈이 트리아이나로 바닥을 찧었다. 직후 바닷물의 장벽이 튀어나왔다. 바닷물은 사방으로 튀지 않고 아래에서 위로 흐르며 순환했다. 바닷물 표면은 TV처럼 영상이 떠올랐다.

바다의 아주 깊은 곳.

거대한 어인이 있었다. 어인은 어미의 자궁 속의 태아마냥 심해 깊은 곳에 웅크린 채 잠들어 있었다.

나는 놈을 보자마자 숨을 삼켰다.

‘크툴루 신화에 나오는 다곤이잖아.'

왜 이놈이 여기에 있는 거지? 놀랍다 못해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원래 있었나? 그게 아니면 시스템이 수작을 부린 건가?'

만약 시스템이 수작을 부린 거라면?

'이게 시련의 진짜 목적일 수도 있어.'

다곤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라고 해서 크툴루 신화를 자세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다. 다만 그쪽 신들이 하나같이 무식할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허나 다곤은 어쩐지 그리 강하다는 인상은 아니었다. 올림푸스의 모든 신들이 힘을 합치면 다곤하나 정도는 죽일 수 있지 않을까.

“포세이돈 놈을 공격해봤나?”

“당연히 해봤다. 허나 내 공격이 통하지 않더군. 알 수 없는 힘이 놈을 지키고 있었다. 억지로 힘을 쓴다면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지만… 굳이 그러지는 않았다.”

"왜?"

“불길했다. 감이 좋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

인간이 그딴 말을 했다면 코웃음 쳤겠지. 그러나 불길한 예감의 주인이 포세이돈이면 절대 무시할 수 없다.

“당장 위험한 건 아니니 일단 지켜본다. 단, 경계를 풀지 마라.”

“나로서는 모든 신들이 힘을 합쳐 죽여야 한다고 본다만.”

포세이돈이 오랜만에 올림푸스로 찾아온 이유가 그것이었다.

“정보가 부족하다. 충분한 정보를 얻은 뒤에 행동해도 늦지 않다.”

정보가 부족했다.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우주 어딘가에 존재하는 진짜 올림푸스에는 하데스와 12신들이 모두 모였다. 허나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성유진의 시련에 변수가 일어났다.

변수가 일어날 것은 예측하고 있었다. 제우스가 된 성유진은 그 성격부터가 평범한 이들과 궤를 달리했으니까. 게다가 성유진은 신화의 미래를 이미 알고 있었다. 변수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의외로 내용으로 커다란 변수가 없다는 것이 더 놀라울 지경이었다.

“시스템."

제우스가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천공의 주인이시여, 말씀하십시오.」

"시련의 내용이 바뀌었다. 우리가 정한 시련에는 우리를 제외한 신들이 개입해선 안 된다. 당연히 그 흔적이 있는 것도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감히 네가 시련의 내용을 바꾸었느냐?”

「시련은 여러분의 의견을 모두 반영되었습니다.」

“네가 감히 농간을 부리는 것이냐?”

「저는 거짓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유진의 시련은 여러분의 힘과 의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졌습니다.」

제우스는 침음을 삼켰다.

시스템이 맛이 간 게 아니라면 거짓을 말할 리 없다. 시스템이 만들어질 때, 그 자리에 제우스 또한 있었으니. 시스템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신중 한 명이 제우스라 할 수 있었다.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모양이군.”

"……."

신들은 서로를 둘러봤다.

그들 사이에 고성은 없었다. 누구 한 명 의심스러운 말도 내뱉지 않았다. 그저 서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영원불변은 없다. 신들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샐 수 없는 세월은 신들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때 입을 연 것은 아폴론이었다.

“이게 배신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장난. 그 정도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아프로디테가 팔짱을 꼈다. 불편한 표정의 그녀가 눈을 흘겼다.

“장난? 그냥 신도 아니고 외신이 개입했어. 이게 장난으로 보여? 외신의 이질성은 너도 잘 알 텐데? 우리 중에 누군가가 외신과 손을 잡았다고 생각하니 역겨워 죽겠네. 아폴론. 설마 너니?”

“아프로디테 님. 그 이상의 모욕은 저도 참지 않겠습니다.”

아폴론과 아프로디테가 서로를 노려봤다.

다음으로 입을 연 것은 아르테미스였다.

“우리의 힘과 의견을 받아 시련을 만든 시스템이라면 범인을 알고 있겠죠. 시스템에게 물어보죠. 시스템. 배신자는 누구지? 누가 다른 신화를 시련에 끌어들인 거냐?"

「저는 모든 신좌의 권리를 존중하기에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또한 제가 받은 의무는 아틀란티스의 관리입니다. 아틀란티스 밖의 일에는 개입할 수 없습니다.」

아르테미스가 활을 움켜쥐었다. 허나 그뿐이다. 그녀라고 해도 시스템을 물리적으로 어떻게 할 수 있진 않았다.

아레스는 턱을 괴고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딱히 별일은 아닌 것 같군. 시련에 외신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딱히 우리가 손해 보는 건 없지 않나?"

아레스에게 반박한 것은 아테나였다.

“우리들의 명성이 걸려 있습니다. 이 사실이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다른 신들이 저희를 비웃겠지요. 아레스, 당신은 언제나 생각이 짧군요.”

“네년은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 그 잘난 지혜로 배신자는 알아내셨나?”

"……."

지혜와 전지는 달랐다. 아무리 아테나가 지혜롭다고 해도 모든 정답을 아는 건 아니다. 특히 신과 관련된 일은 더욱더. 아테나와 아레스는 서로를 노려봤다. 이복 남매는 아주 오래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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