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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92화 (1,771/2,000)

< 1992화 > 1992. 신의 아틀란티스

하데스는 지하 세계를 다스리라는 제우스의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하 세계는 중요했다.

신을 제외한 어떤 생물이든 결국은 죽음이란 끝을 맞이하고, 그들은 곧 지하 세계로 내려와 쌓은 업을 정리해야 하니까.

지하 세계는 곧 세상의 한 축이라 할 수 있었다.

지하 세계의 특성상 쉽게 올라갈 수 없었고, 신들이 부족했기에 항상 바빴다. 그 점들을 제외하면 하데스는 지하 세계에 불만은 없었다.

무엇보다 저 지상은 신이나 인간이나 제우스의 눈치를 보지만, 지하 세계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좋았다. 이 지하 세계에선 하데스가 왕이었다.

그러나 하데스에게도 견디기 힘든 것이 있었다.

외로움이었다.

가끔씩 느끼는 외로움은 하데스의 한숨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그럴 때마다 지하 세계의 엄숙한 침묵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의 옆에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렬히 들었다.

그날도 외로움을 느끼는 날이었다. 뿐만이 아니라 심심함까지 느꼈다.

'내가 지하 세계의 왕이 되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나는 빛도 들어오지 않는 이 세계에 계속 있어야만 하나?'

현자 타임이 찾아온다.

현명한 하데스는 이럴 땐 휴식을 취했다. 억지로 업무를 보면 업무에 대한 염증만 느낄 뿐이었다.

하데스는 휴식을 취할 때면 지상을 살폈다. 익숙한 지하 세계보다 낯선 지상이 더 재밌었으니까.

지상을 살피던 하데스의 눈에 한 여신이 보였다. 그의 누이라 할 수 있는 데메테르와 함께 웃고 있는 여신. 처음 보는 여신이었으나 그 정체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하 세계에 있다고 해서 지상의 소식이 들려오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데메테르와 제우스의 딸인 페르세포네인가!'

제우스가 페르세포네가 태어난 날 밤에 범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미 신들 사이에선 유명한 이야기였다. 옳지 않은 일이었다. 허나 그 누구도 제우스를 벌할 수 없었다. 제우스는 신들의 왕이니까.

'……제우스의 마음을 이해해버렸다.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건만…. 저 아름다운 여신을 보라. 봄처럼 싱그러우며 활기차니 누가 그녀를 싫어할까. 데메테르 또한 자기 딸을 애지중지하지 않는가.'

난생처음으로 욕심이 생겼다.

페르세포네가 자신의 옆에 있다면, 이 칙칙하기 그지없는 지하 세계도 조금은 밝아지지 않을까.

하데스는 자신의 옆에 앉은 페르세포네를 상상했다. 아주 잘 어울렸다.

'이건 나뿐만이 아니라 지하 세계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결심한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지켜봤다.

마음 같아서는 올라가서 정식으로 청혼하고 싶었다.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 지하 세계로 내려오겠는가. 절대 거부할 테지. 무엇보다 페르세포네를 아끼는 데메테르와 제우스가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투명 투구가 없었기에 몰래 데려오기도 힘들었다. 허나 기회는 언젠가 찾아오는 법. 하데스는 계속해서 기회를 엿봤다.

기회가 생겼다.

수확의 계절이 오자 데메테르가 바빠졌다. 제우스는 여자에 미쳐서 페르세포네를 신경 쓰지 못했다. 하데스는 지상으로 올라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해 지하 세계로 돌아왔다.

그녀를 위한 옥좌를 준비하고 저승에서만 피는 꽃을 건네며 청혼했다.

“오. 페르세포네. 봄의 여신이여. 저승의 안주인이 되어 이 삭막한 저승에 봄을 가져와 주시오.”

납치당한 페르세포네는 빈말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하데스 님. 절 돌려보내 주세요. 제가 있을 곳은 지상이에요. 또한 이 결혼은 저의 어머니인 데메테르 님과 아버지이자 남편인 제우스 님이 허락하시지 않을 거예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 그분들이 분노하시기 전에 절 지상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그럴 수는 없소. 그대는 이미 지하 세계로 들어왔으니, 지하 세계의 법도에 따라 내 아내가 되어야 하오.”

“법도라뇨?”

“내가 지하 세계의 왕이요. 그대는 내 아내가 되어야 한다. 라는 법을 방금 정했소.”

“……제가 제우스 님의 딸이자 아내인 건 알고 계시나요? 저는 제우스 님을 사랑해요.”

“거짓말을 하는군. 뭐, 이해는 하오. 제우스의 힘이 보통이 아니니 두렵겠지. 설령 그대가 순결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소. 나는 그대를 사랑하오. 그리고 이 사랑은 진짜요. 제우스의 음욕과는 다르오.”

페르세포네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에게 있어 제우스나 하데스나 거기서 거기였다.

“제우스 님이 허락한다면,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제우스는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제우스는 자기 여자를 남에게 주는 법이 없었으니까.

페르세포네의 생각과 달리 하데스는 간단한 일이라 판단했다. 그 자신감의 원천은 이 지하 세계에 있었다.

'지하 세계는 제우스마저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다. 올림푸스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태업하여 지하 세계의 질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혼란은 지상이 감당해야 한다.’

물론 지하 세계 또한 멀쩡하지 않으리라. 허나 지상만큼은 아니리라.

하데스는 바로 올림푸스에 연락하지 않았다. 지하 세계의 업무에서 손을 놓으며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

‘지상이 혼란을 겪으면 겪을수록 이쪽이 우위에 설 수 있다.'

그러니 지상에 혼란이 일어나기를, 죽은 자들이 범람하며 문제를 일으키기를 기다렸다.

사흘 정도 지났을까.

올림푸스에서 연락이 왔다. 하데스는 태연히 옥좌에 앉아 그들의 연락을 받았다. 허공에 올림푸스 신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

올림푸스 12신들의 분위기는 하데스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큰일이 일어났으니 어수선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조용했다. 올림푸스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올림푸스의 신들이 제우스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분위기를 이끌던 헤르메스는 조용히 침묵했고, 색기 가득한 웃음을 짓던 아프로디테는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평소 제우스의 눈치는 조금도 보지 않던 헤라마저 침묵하며 제우스의 눈치를 살폈다. 페르세포네가 납치되어 가장 흥분해야 할 데메테르마저 조용했다.

하데스는 불길함을 느꼈다.

“하데스. 마지막 기회를 주마. 지금 당장 페르세포네를 안전하게 지상으로 데려와라.”

제우스의 목소리에는 살기가 담겨 있었다. 죽음에 익숙한 하데스마저 흠칫하게 만드는 살기가.

'진정해라. 제우스가 분노하더라도 할 수 있는 건 없다. 여긴 지하 세계다.’

하데스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해야 한다.

“제우스여. 나는 페르세포네와 결혼하고 싶소. 그녀는 나의 반려로서 많은 것을 누릴 것이오.”

“마지막 기회를 이따위로 차버린다는 거냐?”

“지하 세계와 지상의 법도는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오. 아무리 그대들이라 할지라도 지하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는 법. 그대들이 전쟁을 원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물러나지 않을 것이오. 또한 그대들이 나와 페르세포네의 결혼을 인정하기 전까지 지하 세계의 질서 또한 멈출 것이오. 시간이 지날수록 지상의 혼란이 커지겠지. 그 혼란을 수습하려면 내가 원하는 답을줘야 할 것이오."

“하데스. 그게 옳다고 생각하시나요?”

헤라가 물었다. 하데스는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으며 대답했다.

“나는 모든 것을 걸기로 했소. 이해해주시오.”

제우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두 눈에서 분노가 줄줄 흘러나온다.

“너의 선전포고는 잘 들었다. 지금부터 전쟁이다.”

제우스의 선언과 함께 연락이 끊겼다.

그 직후.

쿠우우우웅.

땅이 흔들린다.

'지진인가?'

가끔 있는 일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쿠우우우웅! 쿠우우우우우우우우웅!

'지진이 아니다.'

충격의 방향은 천장이다. 지상에서 무언가가 지하를 때리고 있었다.

이 정도로 지하에 충격이 전해질 정도라면….

‘올림푸스 신들이 지하를 공격하는 거군. 지하 세계로 직접 내려오기 꺼림직하니 이런 식으로 항의하는 건가.'

하데스는 피식 웃었다.

'지하 세계로 직접 내려올 용기도 없는 것들. 나는 지하 세계에서 버티기만 하면 된다. 그럼 저들이 알아서 굴복할 테지.’

일을 저지를 땐 불안했지만, 막상 생각해보니 잘된 일이었다. 지하 세계의 위대함을 올림푸스의 신들에게 알려줄 수 있으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아앙!

폭음이 커졌다.

지하 세계 전체가 강렬히 흔들린다. 천장에서 흙 부스러기 같은 것들이 떨어졌다.

‘내가 있는 곳은 타르타로스 정도는 아니어도 지하 세계의 깊은 곳 중 한 곳이다. 여기까지 진동이 느껴질 정도면… 대체 무엇으로 지하 세계를 때리는 거지?'

콰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앙!

시도 때도 없이 충격이 느껴진다.

슬슬 짜증을 느끼려는 찰나였다. 명계의 하급 신들이 다급히 하데스를 찾았다.

“하데스 님! 큰일입니다! 지하 세계에 구멍이 뚫리고 있습니다!”

“이미 수천, 수만의 영혼이 소멸했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지하 세계의 존립마저 걱정해야 할 판입니다!”

“올림푸스의 신들과 척지는 건 너무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하데스는 손을 들어 그들을 진정시켰다. 그들은 입을 다물었으나, 불안한 듯 두 눈동자가 요동쳤다.

“지상과 지하 세계 사이에 구멍이 뚫렸다고? 대체 뭐가 구멍을 뚫은 것이냐?"

“벼락입니다! 제우스의 벼락이 지하 세계로 파고들어 영혼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직후, 천장을 뚫고 벼락이 떨어져 내렸다. 시퍼런 벼락은 방전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 하데스를 비롯한 신들을 감전시켰다.

"아아아아아악!”

신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하데스는 이를 악물며 고통을 견뎠다.

쿠르르릉.

천둥소리가 들린다. 하데스가 천장을 향해 손을 뻗어 힘을 사용했다. 또다시 떨어지는 벼락을 막아냈다. 이것도 한두 번 이다. 하데스는 오래 버틸 수 없을 것이란 걸 직감했다.

“이런 미친. 제우스의 힘이 이 정도였단 말인가!"

“하데스 님! 지하 세계는 버틸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항복해야 합니다!”

“며칠만 버티면 된다. 며칠만 버티면 지상은 버틸 수 없을…."

천장을 막던 하데스의 힘이 찢겨나가고 벼락이 바닥에 떨어졌다. 벼락은 사라지지 않고 사람의 형상을 취한다. 벼락은 곧 제우스가 되었다. 제우스는 경악하는 하데스의 멱살을 잡아끌었다.

“계속할 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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