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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93화 (1,772/2,000)

< 1993화 > 1993. 신의 아틀란티스

"크어어어억!"

제우스에게 멱살 잡힌 하데스가 저도 모르게 추한 비명을 흘리며 팔다리를 버둥거렸다.

숨이 턱 막혔다. 멱살이 잡혀서만 그런 게 아니다.

신력.

압도적인 신의 힘이 하데스를 짓누르고 있었다.

‘신력이라 하면 나 또한 뒤지지 않는다…!’

지하 세계의 왕이 하데스였다. 그리고 여긴 지하 세계의 중심이다. 자신의 영역에서 100%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건 당연한 일.

그런데도 제우스의 신력을 이겨낼 수 없었다.

'인간들의 숭배가 제우스에게 힘을 주는 건가?'

지상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하늘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고개만 들어도 볼 수 있는 곳,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무한히 넓은 창공, 그리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재앙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의 힘은 예상 밖이다. 원래부터 강했다고 할 수밖에….’

하데스가 이를 악물었다.

상대가 강하다는 이유로 이토록 쉽게 굴복할 수 없었다. 패배하더라도 최소한의 이득은 얻어야 한다. 하데스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대답이 없군. 정녕 뒤지고 싶은 건가."

쿠르르르릉.

제우스로부터 천둥소리가 울린다. 그의 팔을 타고 시퍼런 번개가 살아있는 뱀처럼 꾸물거렸다. 아스트라페. 제우스의 번개. 그 어마어마한 힘에 하데스는 절로 긴장했다.

‘신력으로 저항했으나… 소용없다.'

신은 불멸이기에 죽지 않는다.

허나 그게 무적이란 말은 아니었다. 충분히 무력화될 수 있었다. 지금 타르타로스에 갇혀 있는 크로노스를 비롯한 티탄신족처럼.

하데스는 저항을 포기했다.

"내가졌소.”

“주제는 잘 알았군. 네가 벌인 일을 수습할 기회를 주마.”

제우스의 목소리에 차가운 분노가 서려 있었다. 반역자에게 내리는 자비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차가웠다. 이건 제우스가 원해서 내리는 자비가 아니다.

그렇기에 하데스는 멱살이 잡히고 압도당한 순간에도 웃을 수 있었다.

“이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모양이군. 하긴. 누가 어떤 신이 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지하세계를 맡으려 하겠소. 격이 낮은 하위 신들은 도리어 지하 세계에 잡아 먹힐 테고… 올림푸스 12신들은 이미 자리를 잡았으니 지하로 떨어지지 않겠지."

“말이 길다. 정말 내가 너 따위를 어찌하지 못할 거라 생각하나?”

“분노를 가라앉히시오, 제우스. 그대의 딸이자 아내인 페르세포네를 납치한 건… 나도 반성하고 있소. 내가 너무 성급했.”

퍽!

제우스의 주먹이 하데스의 턱에 작렬했다!

턱이 깨지고 격통이 느껴졌다.

주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콱, 콰앙, 쾅!

주먹은 빠르지 않았다. 천천히 힘을 실어서 묵직하게 하데스를 두들겼다.

"끄으으으..."

하데스는 이를 악물었다. 주먹에 맞을 때마다 육체 안의 뼈가 분쇄되는 것 같았다. 인간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신의뼈? 제우스의 주먹 앞에서 그딴 건 아무 소용 없었다.

콰아앙! 쾅!

주먹이 계속 이어졌다.

버티는 게 의미가 있나?

콰아아아앙!

주먹 한 방에 머리가 터졌다. 불멸자답게 하데스의 터진 머리는 다시 재생되었다. 잠깐 기절했다가 깨어난 하데스는 이어 날아오는 제우스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쾅!

다시 주먹이 떨어진다.

하데스는 저 주먹이 신력이 아닌 순수한 완력만을 사용하는 걸 알았다.

‘괴물 같은 놈….'

문득, 신들 사이에 돌았던 말이 떠올랐다.

제우스는 성장기다.

제우스의 전성기라 생각했던 티타노마키아 때는 제우스의 유년기에 불과하다. 제우스가 온전히 성장을 끝내면 올림푸스의 모든 신들이 힘을 합쳐도 제우스를 이길 수 없다. 그런 허황된 말이 신들 사이로 떠돌았었다.

'소문이 아니라 예언이었나…?'

콰앙! 쾅!

이제는 몸이 터지는 것도 익숙해질 즈음이었다.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한 명의 신이 내려왔다. 날개 달린 신발의 신은 긴장한 어조로 제우스에게 말했다.

"제우스 님! 고정하세요! 하데스 님은… 아니, 하데스는 이미 반죽음이에요! 저항심을 잃었다고요!"

"...쯧."

제우스가 혀를 차며 주먹을 내렸다. 손에 쥔 멱살은 여전했다.

“하데스. 잘 들어라. 네놈이 타르타로스에 처박히지 않는 건 올림푸스의 다른 신들 덕분이다. 그들이 하나같이 네가 지하세계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 번의 실수는 관대하게 넘어가라고 말하더군. 나를 제외한 모든 신들이 말이다.”

“…그런가. 그 누구도 지하 세계를 다스리고 싶지 않은 모양이로군. 그래. 너희 마음대로 해라.”

하데스가 축 늘어졌다. 몸에서 힘을 풀었다. 저항의 의지도 없었다. 그의 신력과 카리스마는 지하 세계를 휘어잡지 못했다.

제우스는 쓰레기 버리듯 하데스를 옆으로 치웠다.

"헤르메스."

"네. 제우스 님."

“프레스포네와 함께 올림푸스로 귀환해라.”

“제우스 님은 함께 가시지 않으시고요?"

“지하에선 하늘이 안 보이다 보니, 하늘을 우러러볼 줄 모르는 놈들이 많다. 이번 기회에 하늘의 위대함을 알려줄 생각이다.”

“그, 그러시군요!”

분위기가 좋지 않음을 느낀 헤르메스는 서둘러 행동했다. 그는 페르세포네와 함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림푸스로 날아갔다.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이야기는 유명한만큼 나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별 생각하지 않았다.

원래 신화와 달리 지금 신화는 많이 달라졌으니까. 올림푸스 12신 중 아테나가 존재하지 않으니 말 다 했지.

원래 신화와 다르다. 그러니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 일어나는 게 맞다.

포세이돈이 메두사에게 사랑을 느끼는 원래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원래 메두사는 포세이돈과 아테나 신전에서 섹스를 하다가 아테나의 분노를 받아 괴물이 된다. 허나 아테나가 없더라도 포세이돈이 있으니 그들이 서로 사랑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메두사 같은 미녀를 포세이돈에게 줄 수 없지.'

그러니 메두사를 내 여자로 삼았다. 포세이돈의 반발? 알게 뭔가.

‘하데스와 페르세포네의 일은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이다.'

페르세포네는 태어나자마자 내 여자가 됐으니까.

하데스는 음침해서 그렇지 올림푸스의 신 중에선 그나마 상식인이었다. 그러니 페르세포네를 건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페르세포네는 내 아내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데스는 미친놈이었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렸다.

'대충 넘어가선 안 되지. 확실하게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 지하 세계가 다시 지상으로 기어 나오지 못하도록.’

덤으로 화풀이 목적도 있었다.

지하 세계에 대한 약간의 호기심은 덤이다.

'우선은….'

이쪽을 쳐다보는 하위 신들이 보였다. 지하 세계에서 하데스를 따르는 신들.

“제, 제우스시여. 용서를…!”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지금 당장 업무를 시작하겠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지하와 지상의 혼란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츠즈즈즈즛.

약간의 살의를 품은 것만으로 내 주위에 뇌전이 일어난다. 이것은 권능이자, 자연현상이었다. 제우스는 그 자체로 번개니까.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법이다.”

번개를 잡고 휘두른다.

허공을 타고 번개가 사방으로 뻗어나가며 신들을 휩쓸었다. 신들이 일제히 바닥에 쓰러진다. 번개는 사라지지 않고 그들의 몸에서 잔류했다. 죽지 않는 만큼 오랫동안 괴롭히는 것이다.

'씹새끼가! 내 여자를 건드려?!’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아아앙!

벽이 부서지고 그 충격파에 장식품이 박살 난다. 기둥이든 뭐든 멀쩡해 보이는 건 죄다 파괴했다. 내가 날뛸수록 지하 세계가 울부짖었다.

'흐음?'

주먹질하며 이질감을 깨달았다.

내 신체 능력이 조금 더 강해졌다. 계속 주먹질을 하고 있었기에 눈치챌 수 있었다.

'이 순간에도 제우스의 육체가 성장한 건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제우스라고 하더라도 갑자기 성장할 일은 없다. 신들의 힘이 강해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선천적으로는 운명을 타고나는 것이고, 후천적으로는 신앙이었다. 신들이 괜히 인간의 숭배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다 도움이 되니까 숭배를 받는다.

‘숭배란 곧 경외지.'

결론으로 나를 경외하는 자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나는 뒤를 힐끔거렸다. 잔류한 번개에 고통에 허덕이는 지하 세계의 신들. 그들이 나를 경외하고 있었다.

‘신들의 두려움이 나를 강하게 만든다라…. 내가 신들의 왕이기에 가능한 거겠지.'

콰아아앙! 쾅!

모든 것을 박살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벽이 부서지며 용암이 튀어나와 나를 덮쳤으나, 아무렇지 않았다. 용암 따위에 치명상을 입기에는 지금 나는 너무 강했다. 용암 속에서 수영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앙!

거대한 문이 날아가 어딘가에 처박힌다.

“크르르르… 낑… 낑낑….”

머리 3개 달린 거대한 검은 개가 내게 이를 드러내다가 화들짝 놀라더니 몸을 움츠렸다.

케르베로스. 지옥의 수문장이 3개의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안쓰러울 정도로 덜덜 떨었다.

가까이 다가가 그 머리 하나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단숨에 거대한 머리 하나가 터졌다. 부서진 두개골과 뇌가 바닥에 쏟아진다. 경악한 케르베로스가 몸을 벌떡 일으켜 도망치려 했다. 내 주먹이 더 빨랐다. 또 다른 머리 하나를 후려쳐 박살 냈다.

가운데 머리만 홀로 남은 케르베로스가 패닉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했다.

“지옥의 수문장이라는 상징성도 있으니… 여기까지 하마. 허나 봐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다."

“끼잉…. 낑….”

다음은 없다.

이건 하데스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케르베로스를 지나치니 강이 나타나 내 앞길을 가로막았다.

'이게 그 유명한 저승의 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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