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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1995화 (1,774/2,000)

< 1995화 > 1995. 신의 아틀란티스

하늘의 신이자, 올림푸스의 왕께서 인간들에게 번개를 내리셨다.

모든 인간은 기뻐하면서도 떨떠름했다.

모두 뜬금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신중의 신이 내린 번개인 만큼 인간들은 감사의 의미로 제사를 올렸다.

제우스는 인간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경외를 받고 있었다. 동시에 그가 어마어마한 폭군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단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이 두려워 제우스에 대해 떠들지 않을 뿐이다.

다른 신들의 제사를 빼먹어도, 제우스에 대한 제사는 빼먹을 수 없었다. 다른 신들을 모시는 도시도 제우스를 위한 제사는 반드시 챙겼다. 제우스를 위한 제사를 실수로라도 빼먹는다면 그 도시는 멸망할 테니까.

아르고스의 왕인 페르세우스는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성실히 감사의 제사를 올렸다. 그의 아버지 제우스는 아들이라고 해서 봐주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우스를 본 적은 없지만.

“제우스 님께서 번개를 내리셨다. 모든 신전이 동시에 신탁을 알렸으니 번개가 인간들에게 주어진 건 확실하다.”

페르세우스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인간들에게 번개가 주어졌으나, 정작 인간들은 번개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몰랐다. 박학다식한 학자들도 말문이 먹혔다.

뭔 과거.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푸스에서 불을 훔쳐 인간들에게 건네주었다. 인간들은 감사했다. 그리고 별다른 고민 없이 불을 사용했다. 불은 직관적이었으니까. 하지만 번개는? 하늘에서 내려치는 번개를 인간이 감히 어떻게 다루란 말인가.

“위대한 하늘의 주인께서 신탁만 내리신 겁니까?”

“아버지께선 이걸 내게 주셨다.”

페르세우스가 무언가를 손에 들었다. 투명하고 둥근 무언가였다. 신하들은 한순간에 그 물건의 이색적인 아름다움에 빠져들었으나 곧 이성적으로 생각했다.

“아마 저 물건이 번개와 관련 있는 물건일 겁니다.”

“번개를 소환하고 다루는 물건이 아니겠습니까?”

“번개를 떨어뜨려 동물을 죽일 수 있다거나!”

“번개를 부려 인간을 벌하거나!”

그 똑똑한 신하들의 입에서는 원색적인 방법만 나왔다. 아무리 똑똑한 학자라도 그들은 번개에 대해 너무 무지했다. 하늘에서 치는 번개는 오직 제우스의 것이다. 그걸 연구할 생각을 하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페르세우스는 죄다 똑같은 말을 지껄이는 가신들에게 실망했다.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손에 쥔 물건을 조심스레 만지작거렸다.

'이게 정말 벼락을 다루는 도구라면… 이 도움 안 되는 가신들에게 천벌을 내리고 싶군. 어떻게 써야지? 번개라고 외쳐야하나?’

아무리 그래도 왕인데 그건 너무 채신머리가 없지 않나?

딸칵!

페르세우스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것에 불빛이 들어왔다.

“불?!”

깜짝 놀란 페르세우스는 하마터면 손에든 전구를 떨어뜨릴 뻔했다.

지켜보고 있던 신하들은 입을 벌렸다.

“불을 손에 쥐시다니…. 전하. 뜨겁지 않으십니까?”

“뜨겁지 않다. 근데 이게 정말 불이 맞나?”

“.…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제우스 님께서 번개를 내리신다고 하셨으니… 이게 번개가 아닐는지?”

“자네 눈에는 이게 번개로 보이나?”

"……."

신하들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아무리 봐도 빛나는 건 번개가 아니었다. 번개는 더 사납고 공포스러웠다.

“후우. 아버지께 다시 제사를 올려야겠군. 사제들은 제사를 준비하라.”

페르세우스는 이 와중에도 단 한 번도 직접 만난 적 없는 제우스를 꼬박꼬박 아버지라 불렀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였다.

이틀이 지났다.

사제가 제사 준비가 끝났음을 알렸다. 제사를 위한 신전 주위로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그들도 인간에게 내려진 벼락이 궁금한 모양이다.

‘이런. 이렇게나 모여들 줄이야.’

페르세우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제사를 하더라도 신들이 반드시 응답하지는 않는다. 대부분은 무시당한다. 특히 제우스는 100번 제사를 올리면 1~2번을 제외하고 전부 무시당하기 일쑤인 신이었다. 친아들인 페르세우스는 그나마 5번 정도다.

'여기서 아버지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면… 내 권위가 떨어진다.'

보통 제사 때는 바쁘다는 이유로 잘 모이지 않던 백성들이 이렇게까지 모이니 부담스러웠다.

'제기랄. 여기서 그만둘 수도 없고….'

제사는 진행되었다. 원래 소 2마리만 바치려고 했으나, 추가로 1마리를 더 바쳤다.

‘제발. 제발 응답해주십시오! 아버지!'

정성이 통해서일까.

어떠한 존재가 신전에 내려온 게 느껴졌다.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숨이 턱 막혔다. 그나마 페르세우스는 나은 상태였다. 사제는 바닥에 주저앉아 오들오들 떨었다. 눈이 빙글빙글 도는 게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신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선가 지린내가 나는 것 같기도했다.

신전 밖의 백성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무릎 꿇으며 제우스를 경배했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경배할 뿐이다.

“아버지 소 3마리를 바칩니다! 저희에게 위대한 지혜를 내려주소서!”

-뭐가 궁금한 거냐?

“저희는 아버지로부터 막대한 은혜를 입어 번개를 내려받았으나, 정작 우리는 아둔하여 번개를 다루는 법을 모릅니다! 부디 위대한 지혜를 베풀어주소서!”

-아, 그렇군. 내가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내 실수다. 번개는커녕 전기라는 개념도 모르는 무식하고 무능하고 어리석고 미개한 것들이 너희였지….

울컥.

페르세우스는 불경한 무언가가 치솟는 걸 느꼈으나, 애써 다스렸다. 상대는 손짓 한 번으로 도시를 없애버릴 수 있는 신이었다.

=너에게 지혜를 하사하겠다. 번개를 잘 다루려면 도구가 필요하니. 헤파이스토스를 잘 대접하는 게 좋을 거다. 대장장이 또한 많이 확보해라.

콰르르르릉!

신전 천장에서 벼락 한 줄기가 떨어졌다. 페르세우스는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몸을 덜덜 떨었다.

'어, 어째서? 이, 이대로 죽는 건가?!'

당황한 그의 머릿속으로 지식이 파고들었다.

번개. 전기. 발전기. 건전지, 스마트폰. 냉장고, 에어컨, EMP….

이해할 수 없는 지식들이 머릿속에 들어왔다. 뭐랄까. 그 지식들을 깊게 탐닉하려고 해도 알맹이가 텅텅 비어있어서 활용하기가 어렵다 못해 불가능한 것 같았다.

‘…나는 왕이다. 이런 것들을 만드는 건 대장장이의 역할이니 깊숙이 알 필요는 없다.'

아버지 신께서도 말하지 않으셨나. 대장장이를 굴리라고.

페르세우스는 격통을 털어냈다. 그는 운이 좋아 아르고스의 왕이 된 게 아니었다.

“아버지! 부탁이 있습니다!"

페르세우스가 말했다. 신들의 왕에게 하는 말투치고는 다소 무례했다. 그는 혈육의 정에 기댔다. 적어도 생판 남인 것보다는 낫겠지. 천벌도 한 번 정도는 봐주지 않을까.

-부탁?

다행히 아버지 신께서는 그리 화낸 기색이 아니었다.

-흐음. 다나에의 부탁도 있고… 안드로메다가 널 좋게 보기도 했으니. 부탁 정도는 들어주마.

다나에는 페르세우스의 어머니였다. 안드로메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였다. 페르세우스와 혼약이 오갔으나, 안드로메다는 결국 제우스께 몸을 바쳤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의 왕비가 포세이돈의 분노를 샀고, 에티오피아의 왕은 딸을 제우스께 바쳐 나라를 지켰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아무리 포세이돈이라 할지라도 제우스에겐 어쩌지 못하니까.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제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내려주소서!"

-대충 쓸만한 걸 달라는 말인가? 뭐, 좋다.

허공에서 무언가가 나타나 천천히 떨어졌다. 페르세우스는 양손을 펼쳐 공손히 그것을 받았다.

손바닥 위의 얹어진 막대를 본 페르세우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가 받은 지식에 이것에 대한 정보가 있었다.

'광선검!'

제우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몸을 일으킨 그는 광선검의 버튼을 눌렀다.

지이이이이이잉!

에너지 블레이드가 치솟아 푸른 빛을 냈다.

페르세우스는 가슴이 웅장해지는 걸 느끼며 신전 밖으로 나갔다.

신의 존재감에 압도당한 백성들은 일어서지 못하고 주저앉아 있었다. 페르세우스는 그들의 앞으로 걸어가며 광선검을 선보였다.

“보라! 아버지 신, 제우스께서 그 아들인 내게 내려주신 신물이다! 내가 왕으로 있는 한 아르고스는 무한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페르세우스 왕께 축복을!!”

페르세우스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왕권이 강해지는 소리는 그를 즐겁게 만들었다.

나와 헤파이스토스의 힘으로 전기를 다룰 수 있게 된 인류는 빠르게 발전했다.

처음에는 삐걱거렸다. 대장장이와 학자들을 교육시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들은 발전했다. 신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인류가 발전했다.'

빈말이 아니었다. 시간 가속 때문에 시간이 10년 단위로 훅훅 지나갔다. 본래 신화에서 이름을 날렸던 영웅들은 별 활약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반대로 듣도 보도 못한 이름들이 찬란히 빛나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없다.'

지금 나는 힘이 넘쳐나고 있었다. 모든 인간이 나를 숭배하기 때문이었다.

‘에어컨, 선풍기, 냉장고, 인덕션…. 지금 인간들이 누리고 있는 모든 문명은 전기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지.’

너무 편리해진 인간들은 가끔가다 어리석은 선택을 했다. 옛날이라면 벼락을 떨어뜨려 모조리 죽여버렸을 테지만, 지금은 전기를 일주일간 압수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이미 편리해진 생활을 빼앗는 것은 죽음을 선고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었으니까. 전기를 사용할 수 없어 강제로 원시인으로 돌아간 인간들은 성심성의껏 제사를 치렀다. 내 화를 풀기 위해 미녀는 바치는 것은 물론이고 공주나 왕비까지 바쳤다.

문명의 맛을 본 그들은 왕이고 뭐고 없었다.

‘마찬가지인 이유로 헤파이스토스의 격도 높아졌다.’

전기만 있다고 해서 문명이 완성되는 건 결코 아니니까. 헤파이스토스는 인간 대장장이들에게 지식은 전수했고, 그것은 곧 신앙이 되어 돌아왔다. 지금 헤파이스토스는 포세이돈과 1대1로 싸워도 지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졌다.

“아버지!"

아레스가 소리치며 날 찾아왔다. 그 잘생긴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어서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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