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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03화 (1,781/2,000)

< 2003화 > 2003. 신의 아틀란티스

옥좌에 앉은 제우스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 존재를 직접 마주한 것도 아닌데도 정신 오염과 존재 오염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신의 힘으로 오염을 억누르고 흩트린다.

‘설마 이정도 일줄이야. 들었던 것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존재로군.’

그건 분명 시련 속의 가짜가 아니다. 본체로 나타나 성유진과 대면한 것이다.

“……이해할 수 없군.”

-이해하지 마. 나도 이해할 수 없으니까.

기어 오는 혼돈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울린다. 제우스는 미간을 좁혔다.

"성유진을 구할 수 없나?"

-아쉽게도. 그 분께서 진심인 모양인지라…. 내가 직접 나서더라도 힘들다.

“지금 뭐 하는지 볼 수도 없고?”

-누가 감히 그분을 엿볼 수 있을까. 그분께선 전지 그 자체다. 화를 입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어라. 호기심을 충족하신단면 여느 때처럼 허무에 녹아드시겠지. 그때 움직여도 늦지 않다.

“성유진이 죽을 수도 있다."

-그분의 흥미를 끈 존재다. 그분을 만족시킨다면 살아남는 건 물론이고 보상까지 받을 수도 있겠지.

“......."

제우스는 입을 다물었다. 반박하고 싶어도 그는 외신에 대해 잘 몰랐다.

「■■■■■■■■■■■■■■■」

위대한 존재의 등장만으로 부서졌던 시스템이 알림창이 떠올랐다. 글자가 깨져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완벽히 복구되지는 않은 모양이다.

‘…잠깐. 벌써 알림창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복구했다고?'

시스템을 제작한 신들. 그 수많은 신 중에서도 시스템의 출력 부분을 담당했던 제우스였기에 남들보다 시스템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았다.

‘아틀란티스 관리에 들어가는 출력을 복구에 집중했나?…아니. 다른 신들이 눈치채고 시스템 복구를 거든 게 더 타당하겠군.’

혀를 찼다. 다른 신화의 신들이 알아차렸다면 앞으로가 귀찮아질 것이다. 이런저런 질문을 던질 테니까.

'다른 신들의 입단속을 해야겠군. 섞여 있는 배신자 놈이 몰래 소문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시련 속에서 헤르메스의 정체가 기어 오는 혼돈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헤르메스가…'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순간 추가로 알림창이 떴다.

「■■■■■그의 소멸을 확인했습니다.」

신화를 완성했습니다.」

「시련을 종료합니다.」

누구의 소멸?

시스템이 이름을 저렇게 표현할 정도는 하나밖에 없다. 이름만으로도 신과 인간을 오염시킬 수 있는 위대한 존재!

“시스템이 고장 났나?”

그럼 일이 좀 성가셔진다. 아틀란티스를 잠정적으로 중단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아틀란티스에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 온갖 신들이 깽판 치며 개판이 될 것이 분명했다. 평소 같았으면 무시했겠지만, 이번 아틀란티스에는 투자한 게 많았다.

제우스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평소 같았으면 옆에서 깐죽거리며 성질을 건드렸을 니알라토텝이 조용했기 때문이다.

“더러운 촉수여.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는 거냐?”

-……그분이 사라졌다.

장난기 없는 목소리로 충격적인 사실을 고했다.

“시련에서 사라진 걸 진지하게 말하는군.”

제우스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신화를 완성했다는 건 성유진이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니까. 그 존재와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살아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성유진은 찬사받아 마땅했다. 옛날이었다면 올림푸스로 초대해 신으로 만들어줬을 것이다.

-온 우주에 그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위대한 허무가 사라졌다.

“……어떤 개 같은 짓거리를 꾸미고 있는 거냐?"

-사실을 말했다.

“다른 우주로 넘어갔다는 거냐?"

-말했을 텐데. 온 우주에 그분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스스로 모습을 감춘 게 아닌가?"

-왜?

"……."

제우스는 할 말이 없었다. 그 존재가 남의 눈치를 보며 모습을 숨기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존재의 입장에서 인간은 굴러다니는 돌보다 못하고, 웬만한 신들은 지나가는 개새끼만도 못하다.

“온 우주에서 사라지는 게 가능한가? 설마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소멸을 택한 건가?”

제우스도 가끔 모든 것이 시시해져서 소멸을 택하고 싶을 때도 있었다.

-소멸? 머저리 놈. 어처구니없는 소리 하지 마라. 네놈은 절대로 그분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냥 사라졌다고만 알아라.

제우스는 발끈했다.

“머저리는 너다, 이 촉수 새끼야. 시스템이 방금 알리지 않았나. 그 존재는 소멸했다고.”

-개소리를, 시스템이….

니알라토텝이 도중 입을 다물었다. 제우스도 뒤늦게 깨달았다. 시스템이 워낙 편리해서 잠깐 잊고 있었다. 시스템은 시스템에 불과했다. 아무리 그래도 위대한 존재의 소멸을 감지하고 확신할 정도의 힘은 없었다.

-시스템을 확인해 봐라. 신화의 주신인 네겐 그 권한이 있을 테지.

제우스가 허공에 손을 뻗었다. 그의 다섯 손가락에서 전류가 파지직거렸다. 시스템의 본질에 접속하고 점검한다. 제우스를 비롯한 몇 안 되는 신들만이 가진 권한이었다.

「허락되지 않은 경로의 접근입니다. 접근을 차단합니다.」

"뭣이?"

파지직!

제우스가 다시 접근했다.

「허락되지 않은 경로의 접근입니다. 접근을 차단합니다.」

「허락되지 않은 경로의 접근입니다. 접근을 차단합니다.」

「허락되지 않은 경로의 접근입니다. 접근을 차단합니다.」

몇 번을 접속해도 똑같은 알림창이 떴다. 제우스는 황당한 얼굴로 시스템 알림창을 바라봤다.

“시스템! 보고 있겠지! 와서 해명해라!”

「해명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말한 대로 허락되지 않은 경로의 접근입니다.」

“내겐 그 권한이 있다는 걸 알 텐데?”

「당신에겐 저와 관련된 그 어떤 권한도 없습니다.」

“당신? 어딘가 제대로 망가진 게 확실하군. 내가 직접 고쳐주마.”

파지직!

제우스의 주위로 번개가 번뜩인다. 그는 권능을 사용해 강제로 시스템의 표면을 찢고 핵심으로 접근해 고장 난 부분을 수복할 생각이었다.

팅!

제우스의 번개가 튕겨 나갔다.

‘뭐지. 지금 내가 꿈을 꾸는 건가?’

「시스템에 대한 강제 간섭을 확인했습니다. 신좌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시스템에게 강제 간섭할 수 없습니다.」

「아틀란티스 규칙을 어긴 천공의 주인에게 페널티를 부과합니다.」

「앞으로 100일 동안 천공의 주인을 제약합니다.」

제우스는 금제를 당한 것처럼 힘이 급격하게 줄어든 걸 느꼈다.

"이런 미친! 네놈이 감히!"

분노한 제우스가 힘을 끌어올리려고 할 때였다. 니알라토텝의 탄식이 들렸다.

-말도 안 되는군. 정말로 그분께서 소멸을 택하셨나…. 대체 그 인간을 통해 무엇을 깨달은 것이지?

“니알라토텝! 네놈이 시스템에 수작을 부렸나?!”

-멍청한 놈. 아무리 나라도 그건 불가능하다. 시스템에는 소멸한 그분의 힘이 스며들었다.

“정말로 그 존재가 소멸한 거냐? 그럼 시스템에는 왜 힘이 스며든 거냐?”

-그분께서 정하신 일이다.

“그러니까 왜?”

-나야 모르지.

"……."

-흐흐. 아무튼 신들도 시스템을 함부로 건들 수 없게 됐군. 네놈을 비롯한 몇몇 신들이 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해 먹는 게 못마땅했는데… 아주 잘 됐군.

「시련을 복기 및 검사 중 기어 오는 혼돈의 허락되지 않은 개입을 감지했습니다.」

「기어 오는 혼돈 및 그 아바타에 제재합니다.」

-그건 이미 지난 일이잖아!

“흥. 꼴좋군.”

제우스는 니알라토텝을 한껏 비웃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제우스가 니알라토텝에게 물었다.

“그 존재가 소멸했다면, 그 여파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만한 존재가 사라졌으니 여파가 있을 터. 오래된 것들이 난리 치는 건 아니겠지?”

-모른다. 이런 일은 상정해본 적도 없었으니까. 애초에 그분께선 이딴 일에 별 관심도 없었으니… 여파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군. 나는 급한 일이 생겨서 가보겠다.

니알라토텝의 존재감이 사라졌다. 제우스는 혀를 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혼란에 빠진 다른 신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올림푸스의 다른 신들은 혼란에 빠지지 않았다.

“일이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잘 해결된 모양이군. 수고했소, 제우스."

포세이돈은 화면 속 성유진을 노려보며 제우스에게 말했다.

“마지막에 비틀어졌지만… 잘 정리했소."

하데스도 고개를 끄덕였다.

“신화는 완성됐어요. 설마 북쪽까지 정복할 줄이야…. 이처럼 완벽한 신화는 없다고 봐야겠죠. 다소 난폭하긴 했어도 애초에 신화란 그런 법이니…. 시련의 극복을 인정하죠.”

헤라는 언제나처럼 냉담한 태도로 말했다.

그 외의 다른 올림푸스의 신들도 제각각 의견을 말했다. 모두가 시련의 클리어를 인정했다. 성유진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 행적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야기가 모두 시련에 집중되어 있다.'

제우스는 조심히 그들을 떠봤다.

“그 존재가 나타나서 망했는데 시련을 극복했다고 할 수 있나?”

“그 존재를 누가 감당할까요. 그 존재가 나타난 순간부터 끝이라고 봐요. 실제로 끝났기도 하고요.”

헤르메스가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감한다는 듯 다른 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존재가 나타나고 시련이 끝난 것으로 아는군. 다른 신들은 그 이후의 일을 모른다.'

보아하니 시스템이 끊겼을 때부터 성유진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신들은 그걸 시련의 종료로 알았다.

‘나는 성유진과 이어져 있었기에 볼 수 있었던 거군.’

성유진이 제우스의 몸을 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니알라토텝의 경우 제우스와 계약했기에 엿볼 수 있었던 거고.

그마저도 성유진과 그 존재가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모른다면 됐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시스템도 겉보기에는 멀쩡하지 않은가. 제우스는 조용히 입을 다물기로했다.

"그 인간은 시련을 완성했으니 적절한 보상을 내려야 하오."

제우스가 근엄하게 선언했다.

“당연한 말을 하시는군요. 그럼 안 줄 생각이었어요?"

헤라의 핀잔이 날아왔다. 제우스는 목기침을 하며 애써 무시했다.

제우스는 시련 속의 헤라를 떠올렸다. 차가운 듯하면서도 묘하게 부드러웠던 헤라. 허나 현실의 헤라는 더없이 싸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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