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화 > 2009. 뉴타입
정수연이 거리를 걸었다. 초저녁이라 그런지 거리에는 지나가는 사람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정수연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눈에 띄는 외모에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코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옅은 인기척.
인기척을 줄여 사람들의 눈에 잘 안 띄는 능력.
‘전투에 별 도움 안 되는 능력이지만… 이럴 때는 좋아.'
거리에 스며든 그녀는 어느 골목의 지하 바(BAR)로 향했다. 영업 중인 바에는 손님이 제법 있었다. 화장실을 가는 척 청소 도구실로 향했다. 숨겨져 있는 지하 계단으로 내려가니 먼지 냄새 풀풀 풍기는 바가 나왔다.
바의 중심에는 중년 여성이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는 중년 여성은 무표정했다. 브로커 강은숙. 그녀는 정수연의 몸을 힐끗 훑어봤다.
“태영 그룹의 최신 방호 코트군. 그거 한 벌에 못 해도 10억은 할 텐데…. 어디서 났지?”
"이거? 어제 침식 현상에서 무기랑 신발도 얻었어. 신발은 나랑 안 맞더라.”
정수연은 몸을 빙글빙글 돌며 방호 코트를 자랑했다. 방호 코트에는 이런저런 부가 기능이 있었다. 그중에 하나는 온습도 조절. 이걸 입고 있는 것만으로도 쾌적한 기분을 유지할 수 있었다. 허리춤에 있는 칼은 겉멋도 충실해서 디자인이 제법 괜찮게 뽑혔다. 칼의 가격은 20억이 넘었다.
“침식 현상 보상으로 얻은 건 아니겠지?"
“천일 그룹의 막내를 죽였어.”
흘러들을 수 없는 말에 강은숙이 멈칫했다. 그녀의 눈가가 살짝 떨렸다.
“…미친년이. 아니, 그전에 네가? 지금 네 실력으로?”
“운이 좋았어. 마침 호위가 없었거든. 빌딩 옥상에서 마약이나 하고 있더라고. 얼마나 약에 취했는지 내 접근도 알아차리지 못하더라."
강은숙은 헛웃음을 흘렀다. 여러 가지로 어처구니없는 말이었다. 천일 그룹의 막내인 성유진은 선천 포스 각성자다. 태어나자마자 포스를 다루며 컸다는 말이 된다. 그들이 다른 가디언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건 상식인 일이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정수연이라도 포스를 각성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원래라면 정수연이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미친년이…. 그놈은 영광회와 관련된 놈인지도 불확실해.”
“모르는 게 맞아. 죽기 전에 잠깐 심문해 봤는데 헛소리나 늘어놓더라. 전형적인 마약 중독자였어.”
“그놈이 마약과 섹스에 미친 놈인 건 다 아는 사실이고. 괜히 별명이 개망나니겠어? 문제는 놈의 신분이야. 천일 그룹의 막내. 너무 거물을 죽였어.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안 들켰어. 들킬 일은 없어. 흔적은 안 남겼으니까.”
정수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강은숙은 그녀의 스승이기도 했기에 어느 정도 그녀의 심리를 알 수 있었다. 우연히 마약에 취한 성유진을 보고 일을 계산했을 것이다. 리스크도 충분히 인지했을 것이다. 다만, 그 리스크보다 이득을 더 우선시했지.
"능력은 얻었나?"
정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능력은 강탈. 죽인 대상의 능력을 강탈할 수 있었다. 성유진의 능력은 유명하니 탐날 수 밖에 없었겠지.
정수연의 손바닥을 펼쳤다. 파지지직! 시퍼런 전깃불이 번뜩였다.
“진짜 얻었군."
“…능력이 능력이다 보니 다루기가 쉽지 않아."
“당분간 잠적해서 수련이나 해. 성유진이 죽었으니 일이 커질 테니까.”
“근데.”
"근데?”
"...성유진, 능력이 세 개던데?"
“다중능력자였나. 뭐, 선천 포스 각성자이니 이상한 건 아니야.”
강탈은 죽인 대상이 능력이 여러 개라면 하나만 얻을 수 있었다. 다른 능력이 뭔지 모르니 뇌전을 선택했다.
정수연은 찝찝한 표정을 지었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굉장히 찝찝했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의뢰를 줘.”
“잠적하라는 말을 못 들었나?”
“실전만큼 좋은 수련은 없어.”
강은숙은 한숨을 내쉬었다. 눈빛만 봐도 안다. 무시하더라도 혼자서 일을 저지르겠지. 차라리 적당한 의뢰를 주고 시야내에 두는 편이 낫다.
강은숙이 노트북 자판을 두들겼다. 의뢰를 확인하려던 그가 멈칫했다.
“……성유진을 죽였다고 했지?”
“죽였어. 이 능력이 그 증거. 지금도 보여주고 있잖아.”
“그럼 이놈은 뭐지? 가짜… 라고 하기엔 능력까지 쓰고 있군.”
"?"
강은숙은 노트북을 돌려 정수연에게 보여줬다.
실시간 방송. 그것도 기자회견.
천일 그룹의 막내 성유진의 마약 파티에 대한 해명 기자 회견이다.
"……!"
화면에는 죽었어야 할 성유진이 나와 있었다. 어느 한 기자의 멱살을 잡고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주먹 주위에는 번개가 번쩍이고 있었다.
“썬더 펀치! 썬더 펀치! 썬더 펀치!”
정말로 생방송에서 기자를 쥐어패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던 놈이 이번엔 숨길 생각도 없는지 태연히 미친 짓을 저지르고 있었다.
‘개미친놈.'
정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왜 살아 있지? 다른 능력 중 하나인가? 강탈한 능력은 어떻게 사용하는 거고?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진다.
“성유진을 죽일 때 얼굴을 보였나?"
“어. 죽일 생각이었으니까. 실제로 죽였고.”
"살아있잖아."
“……죽였어. 능력도 강탈했어.”
"살아있잖아."
“……그때 마약에 취해 있었어."
“심문을 했다는 건 대화가 가능할 정도의 정신은 있었다는 거지?"
“……좆됐네.”
정수연의 뺨을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정말로 당황하고 있었다. 자신의 얼굴을 봤다면 당장 뭔가를 해야 한다. 천일 그룹에는 그럴 힘이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조짐도 없었다. 미행도 당하지 않았다. 마약 때문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나? 되살아나는 능력이라면 기억을 잃는 능력이라도 있나? 아니면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나?
그때 문이 열렸다. 정수연이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랐다. 들어온 것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어, 정수연? 너도 있었어? 우왓, 왜 그렇게 땀을 흘리고 있어? 운동이라도 했어?”
“닥쳐.”
“아, 예․ 아줌마. 의뢰 완료야. 마약도 싹 태우고 왔어."
강은숙은 테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정수연을 보고 물었다.
“놈이 어떤 마약에 취해 있었지?"
“…카르빈 마약이었어."
“테이. 카르빈 마약에 대해 알고 있나?"
“요즘 유행하는 마약이지. 마약 중에서도 질이 나쁜 정도야. 끝내주는 환각을 느껴버리지. 몇 번 하면 바로 인생 끝장나는 놈이라고 할까. 내가 방금 태우고 온 마약도 그거야."
강은숙은 좀 더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마약을 하면 타인과 대화할 수 있나?"
“못 해. 환각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놈이랑은 무슨.”
"……가디언이라면 버틸 수 있나?”
“몇 번을 버티겠지. 근데 버틸 거면 마약을 왜 해?"
테이의 말이 정론이었다. 마약을 버틸 거면 마약을 할 이유가 없다.
강은숙과 정수연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
"……."
“왜 나만 빼고 심각해?!”
강지호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바로 내 앞에 무릎 꿇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소홀히 하는 바람에 도련님의 장비들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생포도 실패하는 바람에….”
꼴등으로서 벌을 받았다. 내 왼팔은 움직이지 않았다. 감각도 없었다. 지금 내 왼팔은 달려있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완전회복을 쓰면 바로 해결될 것이다. 쿨타임이라 쓸 수 없지만.
“됐다. 1등으로 받은 보상은 뭐지?”
강지호가 공손히 물건을 바쳤다. 검은색의 고양이 꼬리와 오징어 다리를 합쳐 놓은 듯한 이상한 비주얼의 물건이었다.
"이상한 마나가 느껴지는군.”
"마나 말입니까?"
“포스. 말을 잘못했다. 그래서 이 물건의 효과는?”
“고양이오징어를 사역할 수 있습니다. 포스를 부여하고 바닥에 던지면 됩니다.”
강지호가 말하는 대로 했다.
바닥에 떨어진 고양이오징어꼬리가 작은 동물의 형태로 변한다. 등에 오징어 촉수가 돋아난 검은 고양이. 등에서는 축축한 오징어다리가 꿈틀거린다.
"냐옹!"
“고양이오징어. 이딴 괴물이었나?"
“…원래는 3m가 넘는 괴물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사역해야하는 쪽이 아닐지.”
파지직.
오른발에 스파크가 번뜩인다.
“썬더 킥."
고양이오징어의 몸을 발로 찼다. 벽으로 날아가 그대로 터진다. 시뻘건 피와 내장이 방안을 더럽혔다.
"역겹게 생겨서 죽여버렸네. 알아서 치워라.”
"연구소에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고양이오징어의 시체는 흔하지 않기에 연구원들이 반길 겁니다. 연구원들이 도련님께 감사할 것입니다.”
“개돼지의 감사 따윈 필요 없다. 알아서 해. 마약이나 챙겨와라.”
“카르빈 마약 말입니까?"
"그거 말고."
“…알겠습니다. 흔적은 사람을 시켜 청소하겠습니다.”
강지호가 고양이오징어의 시체를 가지고 물러났다.
강지호. 마음에 안 드는 놈이었다. 남자 주제에 내 비서를 하다니. 그냥 죽여버릴까. 잠깐 고민하다가 관뒀다. 강지호 정도의 능력을 가진 미녀 비서를 찾는 건 단숨에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정수연이 보지 대준다고 했는데… 갈까? 지금 어디에 있는지 대충 짐작 가는데.’
마약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생각에 잠겼다. 머리가 획획 돌아가기 시작했다.
정수연이 쫓고 있는 영광회. 아마 그놈들을 찾아내 죽이는 게 퀘스트 완료 조건이겠지.
'이 몸의 아버지, 천일 그룹의 회장이면 알고 있겠지. 본가로 가서 족쳐볼까.’
머릿속에 있는 천일 그룹 막내아들 성유진의 정보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올라간 집중력 덕분에 꽤 수월했다.
'이래서 도핑하는 거군.'
집중력 관련 마약 도핑을 존나하면 한순간에 불과하더라도 천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건 좀 꼴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