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화 > 2010. 뉴타입
천일 그룹은 여러 기업을 가지고 있다. 그 수만 따지면 50개가 넘는다. 물론 그중에 진짜라 할 수 있는 건 10개도 되지 않는다.
그중에서 천일 그룹의 중심은 제약이었다. 온갖 비인도적인 인체 실험 자료로 쌓아 올린 계단을 밟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제약회사가 된 것이다.
비밀리에 인체 실험도 진행하는 기업인데 마약도 다루지 않을까. 당연히 한다. 내가 손쉽게 마약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이유였다.
지금 내 앞에는 구할 수 있는 도핑용 약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 마약으로 분류된 것들이다.
‘부작용이 적은 도핑용 약은 안전한 대신에 효과가 적어.'
나는 부작용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효과만 보고 도핑용 약을 고르면 된다.
‘그냥 다 하면 되나? 그랬다간 효과를 체험하기도 전에 약물 중독으로 죽나?’
실험해볼 필요가 있었다. 근데 막상 하려니 귀찮았다.
“강 비서."
“네. 도련님.”
“이것들을 동시에 복용하면 어떻게 되는지 실험해봐라.”
“한국에서 실험하기는 힘듭니다. 중국이나 시베리아 쪽으로 가야 합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 석 달 이상은 걸릴 겁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겠습니다.”
석 달?
이 퀘스트가 그 정도로 오래갈까?
잠시 고민해보던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동진행을 사용하면 금방이지만 영광회의 정보가 없는 지금 섣불리 자동 진행을 하는 건 좋지 않았다. 이야기의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건 역시 주인공인 정수연이지.'
완전 회복의 쿨타임은 12시간. 하루에 2번. 그냥 내 몸으로 실험하는 쪽이 더 빠르고 확실할 터.
나는 책상 위에 놓인 것 중의 하나를 들었다. 붉은 액체가 든 주사기였다.
프리지아의 붉은 꽃.
프리지아라는 식물 괴물의 꽃잎에서 추출한 것. 인간의 신진대사를 강화하는 도핑 마약이었다. 중독성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약효가 끝난 뒤에 혈관이 쪼그라든다고 한다. 주사기를 허벅지에 투여했다.
액체가 들어오고 온몸의 힘이 넘쳐난다.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평범한 엔진을 슈퍼카 엔진으로 교체했다고 해야할까. 마약답게 기분까지 좋아졌다. 손바닥으로 책상을 눌렀다. 책상이 그대로 무너져 박살 났다. 아주 약간 힘을 줬을 뿐인데 이 정도 효과다.
"죽이네."
"......."
“방은 엉망이 됐군. 야, 오늘 일정은?"
“마약 치료사가 대기 중입니다. 오후에는 강남 마약 파티 건으로 기자 회견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기자회견?"
“기자 중 한 명이 폭로했습니다. 손을 쓰기 전에 일이 커져 버렸습니다. 원래는 필성 그룹의 자제를 파던 기자였습니다만, 도련님의 이름을 듣고 표적을 바꿨습니다.”
필성 그룹의 자제라면 이 몸의 친구였다. 같이 마약 빠는 친구. 천일 그룹에 비하면 필성 그룹은 좆밥이었다. 기자가 방향을 틀어 날 저격한 것도 이해는 간다. 그게 더 흥미로울 테니까.
"그 기자 새끼는?"
“소재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 처리하면 일이 더 커질 수 있기에 시간이 흐른 뒤에 처리할 예정입니다.”
“그냥 지금 죽여. 깡패를 부르든, 가서 쏴죽이든, 집에 불을 지르든. 가족까지 철저하게 죽여.”
“일이 더 커질 수도 있습니다.”
“까라면 까라고. 머슴 새끼야."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회장님의 재가가 필요합니다.”
“야. 말 잘 나왔다. 넌 누구 머슴이냐? 나? 아니면 회장?"
"……."
강지호가 숨을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놈의 뒷덜미에 땀이 흐른다. 1분 정도 기다려줬는데 답이 없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내 머슴도 아닌데 데리고 다닐 수는 없지. 스마트폰을 쥐었다. 인벤토리에서 화련비도를 꺼내려는 찰나, 강지호가 대답했다.
“저는 도련님의 머슴입니다.”
"처리해."
“네.”
다시 의자에 앉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마약 치료사가 들어왔다. 왜소한 체격의 남자였다. 의사는 아니고 가디언이었다. 그는 나를 보더니 갸웃거렸다.
“저, 강 비서님. 도련님은 멀쩡하십니다. 혹시 제가 모르는 신약이라도 개발하셨습니까? 마약 후유증까지 싹 사라지셨군요."
“지금 도련님은 마약 담배를 피우고 계시다."
“아. 저 정도야 그냥 독한 담배지요. 아무튼 지금 제 능력으로는 도련님은 정상입니다. 도련님이 이토록 멀쩡한 건 처음 보는군요."
“문제없다는 거군. 꺼져라.”
“예. 도련님.”
마약 치료사는 두말할 것 없이 사라졌다. 강지호는 의문을 느꼈을 텐데도 불구하고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기자 회견장에 앉았다.
내 앞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천일 그룹이란 이름값 때문인지 외국인들도 여럿 있었다.
찰칵찰칵찰칵.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인다. 눈앞이 번쩍거리니 짜증이 났다. 그래도 기자회견이니 일단 참고 책상 위에 놓인 종이에 시선을 옮긴다.
오늘 내가 읽어야 할 사과문이었다. 물론 내가 쓴 건 아니고 강지호가 준비한 거다. 대충 내용을 살펴보자면 이렇다.
‘나다. 이 새끼들아. 마약 좀 하고 놀았는데 기자 새끼 땜에 기자회견 한다. 니들 남의 일에 존나 관심 많네. 아무튼 불매운동은 하지 마라. 기자 새끼들은 적당히 하고. 사과했으니 이 일은 여기서 끝내자.'
이 짧은 문장들을 A4 용지 2장으로 늘려 쓴 것이다. 이거 이대로 읽으면 내 목이 아프지 않을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그보다 섹스하고 싶은데. 연예인 데려오라 하면 데려오겠지? 마약 섹스는 좀처럼 즐길 수 없으니 여기서 즐길 만큼 즐겨야지.'
침묵.
계속 침묵이 이어지자 기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그리고 누구 한 명이 손을 들었다. 시선을 주자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멋대로 일어나서 내게 말했다. 신기열. 이 기자회견의 시발점. 기수열외시켜도 시원찮은 놈. 곧 가족들과 함께 사고당할놈.
“성유진 씨. 기자 회견을 열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하십니까? 해야 할 말씀이 있지 않습니까. 이번 강남 클럽 마약 파티에 대해 해명해주십시오. 원래라면 바로 수사가 시작되는데, 성유진 씨는 가디언의 특권으로 유야무야 넘어갔다는 말이 있습니다.”
짜증 나는 동시에 억울했다. 마약 파티는 내가 이 몸에 빙의 되기 전, 아바타가 저지른 게 아닌가. 왜 그 죄를 내가 뒤집어써야 하지? 억까도 정도도 있지.
“…저는 마약 파티를 하지 않았습니다.”
기자가 입꼬리가 꿈틀거렸다. 호선을 그리려다가 간신히 참아낸 모습. 놈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기에 알 수 있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럼 이 사진에 대해선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기자가 꺼낸 사진.
강남 클럽 어느 방에서 마약에 취해 있는 내 사진이다. 주위에는 싼티나는 여자와 재벌 3세 친구들이 같이 뻗어 있다.
“합성 사진입니다.”
“…이건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영상도 있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공개되었고요.”
“아, 그거 합성 영상입니다."
“헛소리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강남 클럽에 마약 했습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가디언이란 이유로! 재벌 3세란 이유로 끌려가지 않은 거죠! 다른 재벌 3세와 여인들은 모두 조사받고 있습니다! 당신을 제외하고!! 이게! 이게 옳은 일입니까?!!”
“듣고 있자하니 못 참겠군. 날조자 새끼. 사람들을 선동해 날 모욕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날조?! 그딴 소리를 믿을 사람은 여기에 아무도 없습니다! 일어난 건 왜입니까? 그 힘으로 협박으로 하시게? 폭력이라도 사용할 겁니까?”
“못할 것 같냐?”
기자에게 걸어갔다. 기자가 움찔 떨었다. 그러다 주위를 한 번 둘러봤다. 주변 기자들이 두 눈을 빛내며 미친 듯이 노트북 자판을 손가락으로 때렸다. 설치된 생방송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다.
“해보십시오! 대한민국의 기자는 폭력 따위에 굴복.”
빠각!
내 발이 놈의 다리 무릎을 후려쳤다. 일반인이 아닌 내 발차기에 무릎이 박살 나는 건 당연했고, 놈의 상체가 테이블 위로 쓰러진다.
파지지직!
뇌전을 일으켜 주먹을 감싼 뒤 놈의 머리에 갈겼다.
“썬더 펀치! 썬더 펀치! 썬더 펀치!”
경악하는 기자들.
달려오는 비서팀과 경찰들. 그들이 내 몸에 매달렸다. 나는 포스로 몸을 강화했다. 나를 말리려는 놈들을 무시하고 계속 주먹을 휘둘렀다. 의외로 힘 조절은 했다. 진자 죽이면 곤란해진다.
대신 뇌전으로 놈의 중추신경을 장난을 부렸다. 집중력 마약 담배를 빨고 오길 잘했다. 이거 꽤 미세 컨트롤이 중요하니까.
퍽! 퍽! 퍽! 퍽!
“그래. 마약 파티했다! 근데 씨발, 어쩌라고? 내가 마약파티 좀 하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가디언의 특권? 가디언인 내 덕분에 괴물의 위험 없이 살아가는 주제에 존나 태클이네. 꼬우면 너도 가디언 해서 괴물이랑 싸우던가. 불매 운동? 약을 안사면 니들이 뒤지는 거지! 받아라, 썬더 펀치!”
“도련님! 멈추십시오!"
“방송 꺼! 방송부터 끄라고!!”
“기자들! 보고만 있지 말고… 젠장!"
기자회견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후에는… 뭐, 집에 가서 퇴물 여배우랑 섹스하고 잤다. 시선이 너무 모여서 퇴물 여배우밖에 상대가 없었다.
경찰 몇 명이 주위를 어슬렁거리긴 했으나, 잡혀가는 일은 없었다. 가디언의 특권. 그리고 내 뒷배인 천일 그룹 덕분이다.
나중에 가디언 감찰관이 찾아올 게 분명하더라도 당장은 아무 일도 없다. 이 세계는 가디언에게 관대한 편이니까.
어느 클럽의 안.
성유진은 미친 기자 회견을 한 다음 날 바로 단골집에 가서 마약 파티를 벌었다. 창녀들까지 끼고서 아주 제대로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지켜보고 있는 단골집의 주인, 클럽 매니저는 다소 어이가 없었다.
'인터넷에선 개망나니가 아닌 미친 개씹망나니라 부른다지. 가디언 자격 박탈 이야기도 나오고. 뭐, 소용없겠지. 천일 그룹이 뒤에서 떡하니 버티고 있는데.’
불매 운동? 소용없을 것이다. 어제 성유진이 말한 대로 약은 불매한다고 해서 사지 않을 수 없으니까.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치병 치료제 절반 이상은 천일 제약 회사에서 나온다.
'그래도 어제 기자회견은 진짜 미쳤지. 개그 프로보다 몇 배는 더 재밌었다.'
한국을 넘어 전 세계에서 난리 났다. 이토록 대놓고 한국 망신을 한 놈은 저놈 말곤 없을 것이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어제 그 지랄을 했는데도 지금은 마약 파티를 열며 멍청한 얼굴로 좆질을 해대고 있는 것. 마약에 취한 여자는 아주 좋아서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다.
‘멍청한 낯짝을 한 주제에 섹스 하나는 기똥차게 잘하는군. 좆도 존나 크고…. 인성 빼고 다 가진 놈.’
성유진의 얼굴은 평범한 편이었다. 아니지, 피부가 좋아서 그런지 평범함보다는 좀 잘생긴 편? 그래도 흔히 볼 수 있는, 더러운 일과는 무관할 것 같은 청년처럼 보였다.
‘멀쩡한 모습과 달리 내부는 미친놈이지만. 뭐, 저렇게 마약에 쩔어 있으니… 오늘 시작해볼까.'
클럽 매니저는 얼마 전에 천사와 계약하며 가디언이 됐다. 아직 공식으로 알리지 않았고, 공식이 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의 능력은 정신 지배. 이 꺼림직한 능력은 자신만 알고 있어야 한다.
‘아무리 성유진이라 하더라도 마약에 취해 있으니 정신 지배는 껌이겠지. 프흐흐. 재벌 3세의 돈과 권력을 뒤에서 조종한다라. 존나 좋군.’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성유진에게 정신 지배를 사용했다.
―――― ―――― ―――― ―!!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클럽 매니저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의 바지가 축축하게 젖어갔다. 그는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뭐냐, 뭐냐, 그게 인간의 정신이라고? 아니야! 내가 본 인간의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고! 저건, 저건 이미 인간의 정신이 아니야!'
정신 지배를 위해 성유진의 정신을 살펴본 순간 압도당했다. 정신의 크기는 그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마다 정신의 크기가 들쭉날쭉하니까. 성유진의 정신이 유독 큰 것이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내용물을 엿보기 전까지는.
“씨발. 넌 또 뭐야."
알몸의 성유진이 다가왔다.
바닥에 이마를 찧고 있던 클럽 매니저는 깜짝 놀라 성유진을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는 성유진이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괴, 괴물."
“초면에 뭐래. 버러지가.”
퍽!
성유진이 클럽 매니저의 머리를 발로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