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화 > 2017. 뉴타입
“저놈은?”
조작귀와 정신파괴자와 묘하게 거리를 벌리고 있는 남자를 가리켰다. 방호 코트를 입고 등에는 저격총을 메고 있다. 놀라운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총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니까.
“헤비 불릿. 너와 같은 공식 가디언이야.”
공식 가디언.
천사와 계약한 가디언임을 알리고 정부 기관과 손을 잡고 떳떳하게 활동하는 가디언. 특권이나 월급도 주어진다. 다만, 그 대가로 침식 현상에서 처리하지 못한 괴물이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불러나가 처리해야 한다.
그 외에 비공식 가디언 추격, 범죄 처리 등등에도 불러나갈 수 있었다.
나야 천일 그룹을 빽으로 두고 있으니 온전히 특권만 누리는 경우지만.
“저놈들과 친한 사이로는 안 보이는데.”
“일시적으로 손을 잡은 거겠지. 여긴 현실이 아니라 침식 현상이니까. 일단 살아남는 게 급선무야.”
[02:13:51]
현실로 돌아가기까지 2시간이 넘는 시간이 남았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놈들과 엮이지 않는 게 낫다. 월타족 1마리만 죽이면 현실로 돌아갈 수 있으니까. 피차 피곤해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저놈들에게 원한이 있는 것도,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런 나와 달리 정수연의 눈빛은 서늘하게 빛나고 있다.
“헤비 불릿은 발사한 탄환의 무게를 조절하는 능력이야. 예를 들어 잘 날아가던 탄환이 갑자기 무거워져서 떨어지지.”
설명하는 눈은 빛나고 있었다. 이미 놈들을 죽일 생각인 것 같았다.
“헤비 불릿도 죽이려고? 공식 가디언인데?”
“너 정도는 아니어도 헤비 불릿의 평판은 안 좋아. 여자를 밝히고 살인청부업자라는 소문이 있어.”
정수연은 그 소문을 거의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조용히 동의했다. 저격총은 암살하기도 좋고, 놈에게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그런 짓을 하는 놈들과 비슷했다. 아니면 말고.
“가장 위험한 건 정신파괴자야. 발동에 조건은 있겠지만 능력에 당한 것만으로 즉사할 수 있으니까. 시선을 끌어줘. 내가 몰래 접근해서 정신파괴자를 죽일게.”
미끼가 되라는 소리였다.
옳은 방법이었다. 그녀가 미끼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약했다. 무엇보다 그녀에겐 옅은 인기척이라는 능력까지 가지고 있다.
“하기 싫어. 월타족 보다 저 새끼들이 더 위험해 보이잖아. 남은 월타족이나 처리하러 가자.”
“독점 일주일 추가.”
“저 새끼들은 보는 순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죽여버리자고.”
“……될 수 있으면 죽이지 마. 내가 마무리 지을 테니까.”
그녀가 내 손을 놓고 옆으로 이동한다.
별명이 헤비 불릿이라 했던가? 놈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내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획 돌린 것이다. 그에 다른 2명의 남자도 긴장하며 이쪽을 경계한다.
“누구냐, 나와라.”
저격총의 총구를 겨누며 내게 말한다. 나는 화련비도를 어깨에 걸치며 그들 앞으로 나섰다.
“천일 그룹의 막내 성유진?”
“그 미친 개씹망나니 성유진?”
내 얼굴을 보자마자 이름이 튀어나왔다. 이딴 놈들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는 것은 영 기분 좋지 않았다.
‘유명해지긴 한 모양이군.’
그럴 수밖에. 마약 파티 기자 회견에서 사과는커녕 기자를 팼으니까. 참고로 그 기자는 신경에 문제가 생겨 목 아래의 몸은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였다. 물론 이 사실은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천일 그룹의 도련님께서 우리에겐 무슨 볼일이시지?”
조작귀가 말했다. 날 향한 적의가 가득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질투였다. 조작귀는 딱 봐도 불운하고 가난한 인생사를 가졌을 것 같으니까.
“너 혹시 고아냐?”
조작귀의 얼굴이 와락 구겨진다. 놈이 노골적인 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시비 걸려 왔나? 싸가지가 없다 못해 개념이 뒈져버렸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이봐, 도련님. 여긴 침식 현상이다. 네놈이 여기서 죽어도 현실은 진실을 파헤칠 수 없다는 뜻이지. 보아하니 호위도 없는 것 같은데….”
“하지 마라.”
헤비 불릿이 조작귀의 앞에 서며 말했다. 그는 총구를 내리고 이어서 내게 말했다.
“이놈의 헛소리는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는 공식 가디언인 헤비 불릿입니다. 인천에서 활동 중이고 성유진 님과 적대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함께 있으면 서로 불편할 테니 이만 헤어지시죠. 이 장소에 볼일이 있으시다면 저희가 물러나겠습니다.”
주제 파악을 잘 했다. 평소의 나였다면 고개를 끄덕이며 꺼지라 말했을 거다. 하지만 나는 이놈들의 시선을 끌 필요가 있었다.
‘어떻게 시비 걸지?’
이 새끼들한테 악감정은 없다. 라고 생각하려다가 헤비 불릿 뒤의 조작귀가 눈에 들어온다.
“씨발. 고아 새끼가 감히 나한테 지껄인 말을 이해하지 못했나? 저새낀 여기서 죽여야겠다. 어이, 헤비 불릿. 저 새끼를 죽여라.”
“제가 이놈을 대신해 성유진 님에게 대신 사과드렸습니다만….”
“사람 죽여놓고 대신 사과하면 용서받을 수 있나?”
“죄, 죄송합니다!”
조작귀는 퍼뜩 정신을 차리곤 내 앞에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 사과. 받아들이도록 하지.”
동시에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카앙!
헤비 불릿의 저격총이 내 화련비도를 막아냈다. 역시 평범한 저격총은 아니었다.
“무슨 짓이지?”
“제가 할 말입니다. 사과를 받아들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과를 받아들이는 것과 배상은 다른 개념이지. 병신이냐?”
“…….”
헤비 불릿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벌렸다.
“근데 왜 끼어들어? 이놈이랑 사귀냐? 게이는 죽여야 하는데….”
“약속한 게 있습니다. 저놈에게 받을 게 있어서 말이죠. 그러니 이만 여기서 끝내죠. 좋게 좋게 말입니다.”
헤비 불릿의 목소리에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나 정도는 언제든지 해치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다.
“좋게 좋게? 좋지. 내가 생각하는 좋게 좋게 랑은 좀 다른 것 같긴 한데.”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가디언은 침식 현상을 많이 해결할수록 강해진다. 다만, 마냥 살아남는다고 강해지는 건 아니다. 이 세계의 성유진은 설정상 재벌 3세이고 재능이 뛰어난데도 수련하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해왔다. 덕분에 그 전투 능력은 평균보다 아래다.
‘내가 죽여버린 회장 비서들보다 이놈들이 더 강해.’
무턱대고 정면으로 싸우면 못 이긴다.
나는 담배 케이스를 열고 들어 있는 마약 담배를 입에 물었다. 스파크로 불을 붙이고 연기를 한껏 들이켠다.
헤비 불릿은 눈동자를 가늘게 떴다. 소매 속에 숨기고 있던 단검으로 내 머리를 노린다. 급히 피했으나 마약들이 베여 땅으로 떨어졌다. 아직 절반도 못 빨았는데 아쉽다.
“…마약. 도피형 마약인가. 이 새끼 죽여.”
빠르게 판단을 내린 헤비 불릿이 뒤로 물러나며 내게 총구를 겨눴다. 총알이 발사되며 내 머리를 노린다. 총구를 계속 주시하고 있던 나는 고개를 까딱여 총알을 피했다.
‘저격수에게 거리를 내주는 건 안 좋지. 억지로라도 따라붙어야 한다.’
헤비 불릿을 따라가며 칼을 휘둘러 조작귀를 죽이려 했다. 조작귀도 평범한 놈은 아닌 듯 능력으로 만든 와이어로 내 칼을 막아내며 거리를 벌렸다.
‘안 좋은데.’
조작귀는 중거리. 헤비 불릿은 장거리. 하나를 쫓으면 하나가 문제다. 조작귀를 먼저 죽여버리기에는 헤비 불릿의 장거리 저격이 무섭다. 특히나 지금 침식 현상은 장애물이 없는 탁 트인 곳이 아닌가.
‘헤비 불릿을 먼저 죽인다. 그게 최선이야.’
뒤에서 날카로운 예기를 품은 와이어 4가닥이 채찍처럼 날아온다.
‘장거리 저격보다 훨씬 낫다.’
적어도 지금 내 감각에서 그 움직임이 훤히 느껴지니까.
헤비 불릿에게 칼을 휘두르는 척하며 와이어를 향해 내뻗는다. 와이어가 화련비도의 칼날에 칭칭 감겼다.
파지지지지지직!
붉은 뇌전이 일어나 와이어를 타고 조작귀를 향해 질주한다. 식겁한 조작귀가 손가락에서 뻗어 나온 와이어를 끊었다. 대신 다른 방법을 사용했다. 땅바닥에 와이어를 꽂아 넣은 것이다.
회색 흙으로 이루어진 흙인형이 일어난다. 그 수는 5마리.
놈이 왜 조작귀라 불리는지 알겠다. 와이어를 조작해서 조작귀가 아니라, 와이어로 무언가를 조작해서 조작귀다. 인형들이 내게 다가온다. 딱히 위협적이진 않았다. 그 움직임이 모두 느껴졌으니까.
‘마약, 죽이네!’
흥분되기 시작했다. 칼을 쥔 손에 힘이 팍 들어간다. 절반도 빨지 못했어도 효과는 충분히 있었다.
콰콰쾅!
벼락이 놈에게 떨어졌다. 허나 놈은 내 포스의 방향을 읽고 옆으로 피했다. 예상대로다. 벼락이 통하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벼락은 틈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떨어뜨린 거니까.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서걱!
헤비 불릿의 오른팔이 떨어진다. 몸을 반으로 가를 생각이었는데 피한 것이다.
“정신파괴자!! 뭐해! 당장 능력을 써!!”
헤비 불릿이 소리쳤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며 꿀 빨고 있던 정신 파괴자가 깜짝 놀라더니 이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역시 사정거리가 있나 보군.’
정신파괴자에게 검기를 날리려다가 멈칫했다. 정신파괴자의 뒤로 무표정한 정수연이 나타났다. 그녀의 칼은 정확히 정신파괴자의 뒤통수를 노리고 떨어진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일어났다. 정수연은 맥없이 뒤로 날아가고, 정신파괴자는 충격파의 반동으로 내 쪽으로 날아온다. 나는 정신파괴자의 팔목에 있던 팔찌가 부서지는 걸 보았다.
‘아이템! 지랄 맞은 물건을 가지고 있었군.’
상정하지 못한 변수였다. 아니, 오늘 처음 보는 놈이니 저런 변수는 상정하고 있을 수는 없다.
거리를 벌리는 건 힘들었다. 놈이 더 빠르게 날아오고 있으니.
“멈춰! 능력 쓰지 마라!!”
헤비 불릿이 정신파괴자에게 소리친다. 그 꼴을 보니 정신파괴는 일종의 광역기란 걸 알겠다.
‘검기를… 이런. 늦었다.’
정신파괴자의 두 눈동자가 새빨갛게 빛나고 있었다. 놈을 중심으로 보이지 않는 파동이 주변을 휩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