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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19화 (1,799/2,000)

< 2019화 > 2019. 뉴타입

현대에서 재벌이란 귀족이나 다를 바 없다. 아니, 어떤 의미에선 귀족보다 훨씬 강하다. 그들이 휘두르는 재력에 권력자들마저 고개를 숙이니까.

당장 내가 개망나니라 불리면서도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는 것도 재벌이기 때문이다.

돈이 많으면 할 수 있는 게 많다. 당장 마약 섹스 파티를 열 수 있지 않던가. 원하는 것 대부분을 쉽게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힘은 내 것이 아니었다.

이 힘을 휘두르려면 눈치를 봐야 했다. 이 힘을 휘두르기 위해서 책임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더 이상 내게 힘도 뭣도 아니었다. 나를 귀찮게 하는 무언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쓰기 좋은 힘이 족쇄와 목줄이 되려고 한다면 기꺼이 끊어줄 용의가 있었다. 어차피 여긴 퀘스트 세계. 재벌이면 좋고. 재벌이 아니어도 딱히 상관없었다. 퀘스트 조건은 재벌이 되는 게 아니니까.

정신지배 능력도 있겠다. 돈이 필요할 때는 다른 재벌을 지배하면 그만이다.

문을 열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가장 상석에는 이 몸의 할아버지, 명예회장이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는 서열순서다. 이 몸의 아버지인 현 회장과 아내. 그 옆으로 회장의 형제 부부가 앉는다. 그다음은 회장의 직계인 형제들. 그다음은 사촌들.

비어있는 자리. 그곳이 내 자리였다. 내가 회장의 아들이긴 해도 막내이자, 셋째. 내 아래로는 사촌들밖에 없었다. 근데 나보다 아래에 있는 놈들이 내게 멸시하는 눈빛을 보내온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원래는 이러지 않았다. 최근에 일어난 일로 내가 후계자 경쟁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왔느냐? 인사는 왜 안 하는 게냐. 어른에게는 인사하라고 단단히 일렀거늘.”

명에회장이 혀를 쯧쯧 찬다.

나는 놀랐다. 그 목소리와 태도와는 반대로 명예회장에겐 짜증이나 분노 같은 게 전혀 없었다. 그걸 느꼈는지 다른 가족들의 얼굴이 굳어진다. 심지어 이 몸의 아버지인 회장마저.

“차가 밀려서 늦었습니다.”

“그래? 그럴 수 있지. 와서 앉거라.”

나는 식탁에 앉지 않고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명예회장이 호의를 보인다고 해서 뭐? 이미 일을 저지르기로 했다.

내 행동에 모두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성유진! 뭐 하는 거냐?!”

“…쟤 상태가 좀 이상한 것 같은데.”

“마약한 거 아닙니까? 딱 마약 중독자의 모습 같습니다만.”

“본가에 마약을 한 상태로 들어왔다고? 제정신인가?”

“아버지. 조카가 미친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너무 싸고돌아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버지가 평소에 힘을 강조하시더라도… 저건 선을 넘었습니다. 따끔하게 혼내시죠.”

모두가 기회라도 얻은 것처럼 재잘재잘 떠들었다.

나는 가장 앞에 있는 놈을 쳐다봤다. 머릿속에 놈의 정보가 떠오른다.

이제 막 중학교에 올라가는 사촌 동생. 큰아버지의 막내아들. 이름은 성유생. 나와 눈이 마주친 성유생은 몸을 흠칫 떨었다. 하지만 이내 재수 없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뭘 봐, 이 마약 중독자야!”

싸가지가 없었다. 뭐,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막내라 오냐오냐 예쁨 받고 자란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이 집안 태생부터가 싸가지가 없었다.

“너, 저번에 회장이 될 거라고 했었지.”

“그래!”

“내 경쟁자군.”

성유생의 머리채를 잡아 그대로 식탁에 찍었다.

퍽!

음식물이 위로 튀었다. 쌀밥과 된장찌개, 부서진 그릇 조각.

퍽! 퍽! 퍽! 퍽!

쉬지 않고 성유생의 머리를 식탁에 찍었다. 쉽게 뒤지지 않도록 힘 조절은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곧 피와 살점과 함께 성유생의 머리가 터져 식탁 위로 뇌수가 흘렀다.

식당에는 숨막히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누군가는 혼이 빠져나갔고, 누군가는 자신의 눈을 못 믿겠다는 듯이 두 눈을 비볐다. 누군가는 공포에 질렸다.

“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은 큰아버지의 마누라에게서 튀어나왔다. 성유생의 어머니다.

“유생아! 내 아들! 뭐해, 경호실장! 저 새끼 죽여!! 죽이라고!!”

고개를 살짝 돌려 경호실장을 쳐다봤다. 경호실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돌렸다.

“회장님. 사직하겠습니다. 그, 개죽음당하는 건 아무리 그래도 좀…. 유진 도련님. 전 아무것도 못봤.”

변명을 들어주는 것도 귀찮았기에 화련비도를 꺼내 휘둘렀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붉은 궤적이 경호실장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대한민국에서 강함만 따지면 100명 안에 드는 강자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뒈졌다. 이게 도핑 마약의 힘이었다.

“머슴 따위가 어디 주인 허락 없이 입을 나불거려. 그리고 씨발년아. 누가 시끄럽게 비명 지르래?”

검지를 들어 큰숙모를 가리킨다. 번개 한 줄기가 뻗어나가 여자에게 명중한다. 여자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며 메케한 냄새와 함께 쓰러졌다. 뒤진 것이다.

“그, 그만! 유진아! 그만두거라!”

또 여자가 나섰다.

회장의 옆에 있는 여자. 내 어미였다. 습관적으로 머리를 위아래로 살펴봤다. 친모라 가산점을 받았다. 젊었을 때는 꽤 잘 나갔을 것 같다만… 50대 할망구에는 관심 없었다.

“시끄럽다는 내 말이 개좆으로 들렸나?”

화련비도를 휘둘렀다. 푸른 검기가 날아가 어미의 상반신을 반으로 갈랐다.

내 엄마라고? 어쩌라고?

공포가 내려앉았다.

마음에 들었다.

일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경호원들이 달려들 줄 알았는데, 내부에 있는 경호원들은 없다. 바깥에 있는 경호웓늘은 내부의 일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한계까지 마약을 투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 한계까지 마약을 투여했기에 경호실장이 겁을 먹었다. 내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차린 거지.’

칼을 휘둘렀다.

서걱.

사촌형제 중 하나의 머리가 떨어진다.

“아, 아아아아!”

다른 사촌형제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는데 작은숙모가 일어나 사촌형제를 끌어안았다. 사이좋게 배를 갈라줬다.

기회를 보다 도망치는 놈도 죽였다.

살려달라 애원하는 놈도 죽였다.

“유, 유진아. 난 네 아비다. 회장이 되고 싶었느냐? 회, 회장이 되게 해주마. 그러니 멈추거라.”

공포에 질린 회장이 말했다. 어미를 죽였는데 아비라고 살려둘 이유가 있나?

회장 자리? 있으면 좋다. 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근데 없어도 상관없었다. 미련이 있었으면 애초에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다.

서걱!

회장을 죽였다.

앞으로의 일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도망자 신세가 되겠지. 회장 일가를 죄다 죽인다고 내가 회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이후 당분간은 정수연의 거처에서 지낼 생각이다.

남은 것은 한 명. 천일 그룹의 실질적 주인인 명예 회장. 그를 죽이기 위해 몸을 돌렸다가 멈칫했다.

명예회장은 공포에 떨고 있지 않았다. 가족들이 죄다 뒤졌는데도 입가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를 보는 눈빛에는 자랑스러움과 대견함이 느껴졌다.

‘…대견함?’

나는 명예회장을 쳐다봤다.

“왜 그러느냐? 천일 그룹의 주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었느냐?”

“무슨 목적이지?”

“내가 네게 목숨이라도 구걸했으면 하느냐? 내 나이 벌써 여든이다. 이미 살 만큼 살았지.”

명예회장은 그룹을 세운 초대회장이다. 나와 같은 선천 포스 각성자. 그 덕분에 그는 50대라 해도 믿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그가 명예회장으로서 실권을 쥐고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날 죽이면 네가 회장이 될 수 있을 거다. 이미 그런 조치를 해두었다.”

“그딴 조치를? 미래라도 봤나?”

“이 할아비가 널 언제부터 봐왔다고 생각하느냐? 언제고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그 지배자의 본성이 튀어나올 줄 알았단다!”

“난 네가 아는 성유진이 아니다.”

“무슨 소리 하느냐. 넌 내가 아는 성유진이다. 너무 잘 아는 내 손주지.”

나는 머리를 굴렀다.

머릿속의 정보를 이것저것 뒤진다. 이미 한 번 훑어본 기억을 다시금 훑어본다. 옛날 기억을 떠올린다. 나는 옛날부터 싸가지가 없었고 생명을 경시했다. 지금의 나와 옛날의 나의 차이는… 크게 없었다. 능력의 차이라고 할까.

“목적이 뭐야?”

“천일 그룹이 이 대한민국의 주인이 되길 원한다. 너라면 할 수 있다.”

“내가? 솔직히 말해서 돈 버는 내겐 돈 버는 재능 따윈 없어.”

이 세계의 나도 공부 머리는 없었다. 돈은 많아도 공부하는 걸 싫어했다. 학교 성적은 30위권 내로 들어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네겐 폭력의 재능이 있지 않느냐. 돈과 권력은 서서히 그 힘을 잃고 있다. 이제 떠오르는 것은 원초적인 힘이다. 폭력. 그 힘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세상의 지배자 중 하나가 되겠지.”

“가문을 내가 작살냈는데 그게 중요해?”

“너는 여자를 좋아하지. 가문이야 얼마든지 늘릴 수 있지 않느냐? 네가 살아 있는 한 성씨 가문은 몰락한 게 아니다. 천사는 이미 너를 주시하고 있느리라.”

“…….”

명예회장을 빤히 쳐다봤다. 거짓은 느껴지지 않는다.

이 늙은이는 미치광이였다. 그리고 이 세상에 미치광이는 두 종류로 나뉜다. 내게 도움이 되는 미치광이와 도움이 되지 않는 미치광이. 명예회장은 전자였다.

“폭력의 시대라…. 뭐, 세상이 멸망하기라도 하나?”

“천사가 나타났다. 천사가 언제 나팔을 부는지 아느냐?”

“……종말?”

“그것만이 아니다. 나팔이란 곧 전쟁의 시작이다. 너는 그 전쟁의 영웅이 될 것이다. 흐흐흐.”

죽일까. 이용할까.

고민이 된다.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가장 큰 이득은 역시 이용하는 것. 재벌 3세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명예회장의 이 모습은 연기가 아닐까? 나중에 내 뒤통수를 치지 않을까? 정신지배를 쓰면 먹히나?

“고민하고 있구나. 나를 이용하고 싶으냐?”

“폭력의 시대니 뭐니해도 돈과 권력은 중요하잖아.”

“흐음. 네 마음에 안 드는 놈이 있다. 어떻게 할 거냐?”

“죽인다.”

“그게 대통령이라도?”

“죽이지 못할 이유가 아닌데.”

“역시로구나! 좋다! 날 얼마든지 이용하거라! 어차피 죽을 날만 기다리는 할 일 없는 늙은이다. 네 뒤처리를 하는 것 정도는 심심풀이로 딱이겠지.”

“여길 수습할 수 있다고?”

“괴물이 와서 내 가족들을 죽이고 사라졌다. 내가 그리 말하는데 누가 반론하겠느냐.”

나는 칼을 내렸다. 솟구치는 살의를 흩트리며 웃는다.

“할배. 돈줄이 끊기는 순간이 할배의 제삿날이야.”

“제사까지 챙겨주는 거냐? 이거이거… 내 손주 놈은 효심까지 갖췄구만.”

어이가 없어 킥킥 웃었다.

그러고 보니 천일 그룹이 뒤에서 인체 실험을 진행하는 게 떠올랐다. 인체 실험을 시작하고 총괄하는 건 눈앞에 있는 이 늙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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