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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21화 (1,801/2,000)

< 2021화 > 2021. 뉴타입

지난 시간 동안 마냥 놀고 있기만 한 건 아니었다.

나와 정수연은 천사에게 제대로 찍힌 건지 몰라도 거의 3~4일에 한 번씩 침식현상에 불러가 괴물을 상대해야 했다. 덕분에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다. 침식현상에서 살아남을 때마다 포스의 총량이나 신체능력이 조금씩 향상됐다.

천일 그룹은 흔들렸다.

회장을 비롯해 그 일가가 싸그리 죽었다. 살아남은 건 명예 회장과 나뿐이다. 공식적으로는 괴물의 소행이라 알려졌다. 명예회장은 다시 회장직에 복귀해 천일 그룹을 정상으로 되돌리려 애썼다.

아예 단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계열사에 분열되어 있던 그룹의 힘이 한곳으로 모여들었으니까.

나는 그룹의 사람을 시켜 영광회에 관해서 조사했다.

영광회.

꼭꼭 숨겨져 있는 어느 모임의 이름. 그러나 존재하고 힘을 행사하니 그 흔적까지 완벽히 숨길 수 없었다.

천일 그룹이 작정하고 조사하니 그 흔적을 일부 알아낼 수 있었다. 놈들은 사회 곳곳에 숨어 있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원, 경찰 고위직,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에서 심지어 정치계까지. 광범위하게 뻗어 있었다. 숨어 있는 게 놀라울 정도로.

내게 직접적으로 협조한 회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였다.

“그 떨거지들이 언제 이렇게까지 늘어난 거지? 이제 떨거지들이라 부르기도 뭣할 크기군. 놈들을 함부로 건들지 말거라. 대한민국 전체를 적으로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영광회의 손이 닿지 않은 자들도 많으니 그들을 이용하거라. 아마 놈들 중에 정신 계열 가디언, 그것도 세뇌 계열 능력자가 있을 가능성이 크니 주의하거라.”

회장의 조언이었다. 조금 기분 나빴지만, 조언 자체는 틀린 게 아니었다.

‘개나 소나 정신계 능력자군.’

마음 같아선 대놓고 활동하고 싶었다. 영광회와의 전쟁? 전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파로 대한민국이 좆될 수도 있었다. 퀘스트 성공 조건이 대한민국의 안전인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었다.

‘영광회의 어디부터 건드려야 할지 모르겠어. 판사? 국회의원? 그놈들의 사회적 위치가 높다고 해서 영광회의 간부라는 법은 없잖아. 대기업 임원이나 가디언 쪽이 더 영광회 간부 같은데.’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이란 힘이었다. 가디언은 반쯤 슈퍼 히어로 취급을 받으니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정수연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가슴을 살짝 움켜쥐었다. 옷 위의 감촉이었지만 워낙 크고 탱탱해서 주무르는 맛이 있었다. 희롱당하는 당사자인 정수연은 무표정했다.

천일 그룹이 조사한 정보를 정수연에게 판 덕분에 앞으로 나흘 동안 그녀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최근에 체육관에만 박혀 있더니, 오늘은 어디 가게?”

“중개인을 마나러 갈 거야. 영광회의 꼬리를 잡았으니까.”

“오, 그래? 나도 따라갈 건데 상관없지?”

“마음대로 해. 어차피 이미 알고 있잖아? 하지만 따라온다면 철저하게 이용해 주겠어.”

서늘한 눈빛으로 말하는 정수연의 입에 입을 맞췄다. 쪽. 내 혀가 그녀의 입안에 들어갔다가 나온다. 정수연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좀 아쉽긴 했다. 처음에는 몇 번 당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요즘엔 이 정도로는 표정 변화가 없다. 그녀의 무표정을 깨려면 아주 찐득한 섹스가 필요했다.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적당한 곳에 내려 거리를 걸었다. 정수연의 능력인 옅은 인기척 덕분에 대놓고 그녀의 가슴을 만지는 데 이쪽으로 시선을 주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바에 들어가서 중개인을 만났다.

기품있게 늙은 중년 여성인 강은숙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중개 브로커이기도 한 그녀는 정수연에게 붙어 있는 내게 천천히 입을 열었다.

“천일 그룹의 막내 도련님이시군. 한동안 정수연과 같이 지낸다더니… 결국 여기까지 따라왔나.”

강은숙은 젊었을 적엔 상당한 미인인 것 같지만, 지금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대충 그녀를 훑어보고 정수연의 가슴이나 주물렀다. 강은숙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린다.

“이 녀석은 내가 제어할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 영광회를 상대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실력 하나만큼은 인정할 수 있으니까.”

정수연이 말했다. 나를 제어할 수 있다라. 틀린말은 아니었다. 지금 나는 그녀의 보지에 푹 빠져 있으니까. 아마 어지간한 부탁은 다 들어주겠지. 게다가 나와 그녀의 목적도 일치한다. 영광회를 없애는 목적.

“딱히 뭐라 한 적 없다. 나도 그를 조사해봤으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자기 부모를 비롯한 친척들을 직접 죽인 것도.”

강은숙이 천일 그룹의 비사를 읊었다.

비사라고 해도 알 사람은 전부 아는 사실이긴 했다. 당시 저택에는 비서와 경호원들이 쫙 깔려 있었고, 그 뒤처리를 맡아서 했을 테니까.

“맹수는 길들일 수 없기에 맹수다. 잊지 마라.”

“쓸데없는 충고야. 찾아냈다는 영광회의 꼬리는?”

“아직 사람이 덜 모였으니 조금 기다려라. 여러 번 설명하기는 귀찮으니.”

강은숙이 시선을 떼고 노트북을 두들겼다. 정수연은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정수연의 가슴을 무아지경으로 주물렀고.

이어서 사람들이 방안으로 들어 온다. 총 세 명이었다.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 테이.

교복을 입고 백팩을 멘 여중생, 양유라.

2m가 넘는 거구의 근육질 남자, 노경학.

이 셋은 모두 원작에서 나오는 조연들이었다. 주인공인 정수연의 일시적인 동료라 할 수 있는 관계.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양유라에게 향했다. 작달 만 한 키와 깔끔한 교복, 왜소한 체격과 반짝이는 눈을 보면 기존의 여중생보다 더 나이가 적어 보인다.

실제 나이는 30대가 넘었다. 외형은 평범보다 조금 위. 딱 잘라 말해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우와. 천일 그룹의 망나니잖아! 설마 직접 보게 될 줄이야!”

“TV에서 보던 오빠네.”

“이런 놈이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잠깐. 수연 씨에게서 떨어져라! 수연 씨의 가, 가슴을 만지지 마라!”

그들은 제각각 자기 개성에 따라 반응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노경학은 심히 거슬렀다. 원작에서도 정수연에게 이성으로서 관심을 보였던 놈이다. 물론 정수연은 노경학에게 조금의 관심도 없었다.

“지금 시비 건 거냐? 죽고 싶어?”

“이 경우 없는 놈이…! 수연 씨. 잠깐 비켜주십시오. 제가 저놈을 묵사발로 만들겠습니다.”

“관둬. 성유진. 사고 치지 마. 노경학. 넌 신경 꺼. 너랑 관련 없는 일이니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반론을 허락하지 않는 단호한 말이었다. 노경학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고, 나는 씩 웃으며 정수연의 오른쪽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정수연은 무표정했다. 도리어 노경학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탁.

강은숙이 노트북을 닫았다.

“노경학. 우린 놀러 온 게 아니다.”

“…저놈은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설마 저놈도 우리 동료입니까?”

“노경학. 여기에 영원한 동료는 없다. 모두가 목적을 가지고 모였을 뿐이다. 넌 너무 좋을 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그 부분은 고쳐라.”

“천일 그룹은 영광회 소속이 아니었습니까?”

“영광회의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해 준 게 정수연. 아니, 저 남자다. 덕분에 영광회의 꼬리를 잡을 수 있었지. 적은 아니니 안심해라.”

노경학이 길게 숨을 내쉬며 기세를 죽였다. 날 노려보는 눈은 여전했다. 나는 노경학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했다. 대놓고 죽이려고 하면 정수연이 막아설 거다. 그녀에게 있어 노경학은 일시적인 동료, 즉, 이용할 수 있는 도구였으니까.

‘정수연이 날 말리기 전에 몰래 죽이는 게 최선이다.’

상황이 어느 정도 진정됐다. 강은숙은 설명을 이어갔다.

목표는 가디언이었다.

강원도에서 활동하는 가디언 피드백. 본명은 배죽산.

강원도지사와 매주 저녁 식사를 함께할 정도로 친하다. 이혼남으로서 강원도지사의 딸과 재혼할 가능성이 높다.

“피드백이면 2년 전쯤에 등장해 신성 취급받던 가디언이네. 요즘은 시들시들하던데. 영광회였어?”

테이가 살짝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강은숙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피드백은 확실하지 않다. 영광회 소속일 가능성이 크긴 해. 영광회 간부는 강원도지사 마영재다. 강원도지사가 되기까지 큰 고비도 없이 올라왔다. 그의 아버지는 뒷세계의 큰손이었는데 1년 전쯤에 죽었지. 아마 그가 영광회의 간부였고, 마영재가 그 자리를 물러받았을 거다. 마영재는 반년 전부터 정재계의 거물들을 만나며 인맥을 쌓고 있다. 아무리 강원도지사라 해도 만나기 힘든 거물들이지.”

강은숙은 마영재의 행적을 철저하게 조사한 자료를 인쇄해 넘겨주었다. 마영재의 인생이 요약되어 적혀 있었다.

승승장구 그 자체. 심지어 서울대까지 졸업했다. 인생에 최고급 꽃길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다.

“우리의 목적은 마영재의 포획이다. 놈을 잡아서 표시된 안가로 데려오도록. 그곳에서 놈을 심문해 영광회의 정보를 캐낸다.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강은숙이 슥 둘러봤다. 뒤로 빼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나를 빼고 영광회에 갚아야 할 것들이 있으니까.

강은숙은 나를 지긋이 바라봤으나, 이내 시선을 돌렸다.

“시작은 오늘 밤. 차는 준비해뒀으니 지금부터 움직여라.”

***

강원도지사 마영재의 집은 으리으리했다. 강원도지사의 집이 천일 그룹의 본가보다 2배 이상은 컸다. 서울이 아니라 강원도라서 가능했다 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마당도 탁 트여 있을뿐더러 경호원의 수도 제법 많다.

‘뒷세계의 거물이라더니. 경호원 놈들도 평범한 놈들은 아니군.’

이 집에 피드백은 없다. 피드백이 여기까지 오려면 최소 40분은 걸린다. 그렇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우리는 작전을 짰다.

성동격서.

불꽃 능력자인 테이가 저택 옆구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경호원이 그쪽으로 몰리는 틈을 타서 마영재를 납치하는 작전이다. 일이 작전대로 잘 풀리지는 해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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