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화 > 2026. 뉴타입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을 살펴봤다.
기자 회견 방송을 보고 있던 자들 중에 눈치 빠르고 힘 있는 자들은 바로 움직였다. 기자 회견에서 공개된 이름들. 그 이름의 주인들을 찾아가 붙잡은 것이다. 특히 가디언들의 행동이 재빨랐다.
‘천사 때문이군.’
천사와 가디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포스 각성자가 천사와 계약하여 가디언이 되는 것이니까. 가디언은 천사로부터 능력을 받고 괴물을 죽이고 이 세상을 수호한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 가디언이 아니어도 침식현상에 끌려가서 싸워야 한다.
‘천사가 직접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번 일을 잘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그리하여 가디언들이 앞장서서 영광회를 조지기 시작했다. 몇몇 가디언은 인터넷 방송을 이용하여 대놓고 자신의 업적을 알렸다.
-저, 서울 압구정에서 활동하는 가디언 소닉붐이 경찰청장 구본새를 잡았습니다! 이놈은 성유진 씨가 발표한 영광회 소속의 인류배신자입니다!
-아, 아니다! 난 인류를 배신하지 않았다! 영광회에 협박당해서 협력한 것뿐이다!
-헛소리 하지 마라, 인류 배신자! 인류를 배신하고 괴물에게 붙어먹은 놈! 나, 압구정의 가디언 소닉붐이 네놈에게 심판을 내리겠다! 인류를 위하여!!
-캬아아아아아아악!
경찰청장은 도마뱀으로 변하며 본색을 드러냈다. 진짜 괴물이었던 것이다. 입에서 불을 뿜으며 저항했으나, 소닉붐은 가디언 중에서도 강하기로 유명한 가디언이었다. 소리보다 빠르게 다가가 그 머리에 태권도 발차기를 처먹였다.
펑!
도마뱀 괴물의 머리통이 터졌다.
-인류여, 안심하십시오! 저, 압구정의 가디언 소닉붐이 간악한 괴물을 죽여 인류를 수호했습니다! 오직 인류를 위하여!!
인류를 위하여.
그 압도적인 대의명분에 취한 이들이 앞다투어 영광회 소속의 인간을 죽이기 시작했다. 가디언이 움직이기 힘들 때는 시민들까지 움직였다.
인간을 죽인다?
저것들은 괴물과 손잡은 인류의 배신자다! 인류를 위해 죽여야 한다! 천사가 인정했다!
일종의 광기와도 같았다.
나는 낄낄 웃으며 돌아가는 꼴을 지켜봤다. 영광회는 정치는 물론이고 군대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군인들이 직접 나서서 영광회 장성을 처단했다. 영광회가 죽어 나가고 있었다.
내가 기자 회견에서 발표한 명단 중 살아 있는 놈은 손에 꼽을 정도다.
‘천일 그룹의 경쟁자도 죄다 뒈졌군. 크크.’
그들은 영광회와 무고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천사가 나를 인정했다. 사람들은 영광회일지 모르는 놈들보다 나를 더 믿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니 나까지 미화되고 있었다. 내가 저지른 모든 잘못의 뒤에는 영광회의 수작이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천일 그룹의 댓글 부대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인류를 위하여!!
“인류는 지랄. 나를 위하여!”
영광회 찌꺼기들을 하나, 하나 잡기 귀찮아서 기자 회견을 열었다. 그게 정답이었다. 대한민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난리였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마녀사냥 비슷한 일이 벌어졌어도 내 알 바 아니었다.
‘정수연이나 만나러 가야겠다.’
영광회를 싫어하는 그녀였으니 좋아 죽겠지? 어쩌면 공짜로 보지를 대줄지도 모른다.
***
예상과 달리 정수연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행동하지도 않았다.
평소라면 구슬땀을 흘리며 신체를 단련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멍하니 앉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슬쩍 다가가 보니 뉴스를 읽으며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있었다.
“수연아.”
“……왔어?”
“사람들이 영광회를 죽이고 있어. 너도 영광회를 싫어하잖아. 그, 복수였나? 복수하고 있는데 기뻐 보이지 않네.”
“영광회의 끝은 내가 바라던 일이야. 하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뭔가…. 뭔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정수연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어떤 일이 있어도 냉정하게 생각하던 그녀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감정을 드러냈다. 그만큼 그녀가 동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해한다. 정수연에게 있어 아버지의 복수, 영광회는 삶의 목표였다. 원작에서는 이토록 허무하게 영광회가 무너지지 않았다. 최신화에서도 영광회의 정보가 나오지 않았으니까.
‘아마 원작에서는 정수연이 영광회를 상대해가며 성장하겠지. 복수 이상의 무언가를 찾을지도 모르고.’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완전히 성장하기도 전에 영광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광회가 몰락하면 뭐 할 거야?”
“그건….”
정수연은 대답하지 못하고 입만 우물거렸다. 복수가 끝난 뒤? 생각해 본 적 없을 것이다. 영광회는 그런 물렁한 생각을 할 만큼 나약한 집단이 아니었으니까.
‘근데 영광회는 망했지.’
인류를 위하여.
인간이라면 거부할 수 없는 대의명분에 의해 철저히 망하고 있었다.
영광회의 회장이 어딘가로 도망쳤다고? 그래봤자 놈을 찾는 건 시간문제다.
“복수 끝난 뒤에 할 거 없으면 내 여자나 해.”
일그러졌던 정수연의 표정이 돌아왔다. 무표정하게 변한 것이다.
“내가 네 여자?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하루에 몇 번이나 섹스했잖아. 그 정도면 떡정이 들다 못해 사랑에 빠져도 이상하지 않아.”
“내가 네 여자가 될 일은 없어.”
정수연이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로? 내 눈에는 보짓물을 질질 싸는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리는데?
“이런 말이 있지. 허락보다 용서가 더 쉽다고.”
“…….”
정수연의 눈이 가늘어진다. 내 말의 의도를 헤아리려는 듯했다. 이어 그녀는 모르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거야? 아니,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난 지금까지 콘돔을 안 썼잖아. 매일 섹스하는데도 말이야. 설마 그 아이를 애비 없는 놈으로 키울 생각이야?”
“허, 헛소리하지 마!”
정수연이 당황했다. 원래 당황해도 속내를 감추던 그녀인데, 지금은 얼마나 당황했는지 속내를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헛소리할 리 없잖아. 매일 질내 사정했는데 임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지. 내 정액이 얼마나 진한지 너도 알지? 보지에. 그것도 자궁에 다이렉트로 퍼부었는데 임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하지 않아?”
지금 내겐 [황금 정액] 스킬이 없었다. 특수 신체 능력인 [영웅의 고환]도 없는 상태다. 여기에 오기 전에 스킬과 함께 빼버렸으니까. 즉, 지금 내겐 임신 제어 능력이 없었다.
당연히 정수연이 임신했는지도 모른다. 그저 짐작할 뿐이다.
‘한 달 넘게 박고 싸질렀으니 임신했겠지.’
정수연은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러고 보니 최근 정수연에게 마법이 찾아오지 않은 것 같다.
‘진짜 임신했나?’
좋군.
정수연이 냉혹하다고 해도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자기 자식에게까지 냉혹할까? 가족의 복수가 목적인 여자다. 자기 자식을 버릴 리가 없다.
“아, 아니야. 나는 꼬박꼬박 약을 먹어 왔어.”
정수연은 내가 콘돔을 쓰지 않았음에도 뭐라 하지 않았다. 피임약이 있었으니까. 피임약이 몸에 좋지 않다? 정수연은 가디언이었다. 피임약의 부작용 정도는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설령 부작용을 극복하지 못하더라도 별 관심 없었을 거다.
“수연아. 천일 그룹을 키운 분야가 뭐게?”
“…제약. 설마 내가 산 피임약들 전부를 바꿔치기한 거야?!”
“쉬운 일이야. 이 근처 약국에만 뿌려두면 되니까. 굳이 멀리 있는 약국에 갈 필요도 없잖아.”
근처 약국에 정수연의 생김새를 알리며 명령했다. 정수연이 피임약을 구매하러 오면 미리 준비해 둔 가짜 피임약을 팔라고.
동네 약국들은 감히 천일 제약의 명령을 거부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순식간에 가게 망하니까.
“미친… 놈이…!”
정수연은 이를 악물며 나를 노려보다가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정수연의 뒤를 따라갔다. 정수연은 자동차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 좀 떨어진 약국에 도착했다. 그리고는 임신 테스트기를 구매했다. 직원이 주는 임신 테스트기가 아닌 다른 임신 테스트기를 직접 골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임신 확인하려고? 그냥 산부인과 가서 확인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시끄러 닥쳐.”
쾅!
정수연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앞에 멀뚱멀뚱 서 있었다. 화장실 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변기에 앉아 임테기를 적시고 있겠군. 부탁하면 내가 해줄 수 있는데.’
정수연의 보지는 초인적이지 않았다. 2시간 정도 자지를 박으면 실금하는 보지였다.
‘임신했겠지? 했을 거야. 나는 내 정자들 믿어.’
임신하지 않으면 큰일 난다. 그녀는 이제 경각심을 가질 테니까. 피임약을 바꿔치기하는 것도 힘들고, 콘돔을 쓰지 않으면 섹스를 거부할 수도 있었다.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정수연이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표정은 어두웠다.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쉰다. 그리고 신경질적으로 임신 테스트기를 내던졌다.
그 반응만으로 결과를 알 것 같았지만, 확실히 하는 게 좋겠지. 달려가 임신 테스트기를 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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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이었다.
히죽.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기정사실 작전은 여자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는 냉수를 벌컥벌컥 마시고 있는 정수연에게 다가갔다.
“마누라. 우리 아이 태명은 뭐로 할까? 내 생각엔 닌자가 좋을 것 같아. 피임약 바꿔치기 술로 태어났잖아.”
“닥쳐. 내가 애를 못 지울 것 같아?”
“못 지울 것 같은데. 진짜 지우게? 난 네 가족이 아니지만, 닌자는 네 가족이잖아. 네 자식을, 네 가족을 죽일 거야?”
“…….”
정수연이 부들부들 떨었다.
못 하겠지. 하려고 했어도 내가 막았을 거다.
나는 히죽 웃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임신 기념 키스나 하려고 했는데 정수연이 내 몸을 밀쳤다. 키스할 기분은 아닌 모양이다.
“역겨운 얼굴 치워.”
“벌써부터 입덧이야? 뭐 먹고 싶은 음식이나 과일은 없고?”
“…딸기 먹고 싶네. 가져와. 냉동 말고. 겨울 딸기로.”
지금은 한여름.
겨울 딸기는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요구였다.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 강 비서에게 연락했다.
“어이, 머슴. 내 마누라가 싱싱한 딸기가 먹고 싶단다. 알지? 임신 기간에는 먹고 싶은 걸 갖다줘야 하는 거. 딸기 구해와라. 국산으로. 여름딸기 말고.”
-…정수연 님이 임신하셨습니까? 알겠습니다. 천일 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딸기를 구해오겠습니다.
정수연의 얼굴이 구겨졌다.
3시간 만에 싱싱한 딸기 한 박스를 구해왔기 때문이다. 박스를 들고 온 건 할배였다.
“허허. 우리 손주며느리 딸기가 그리도 먹고 싶었느냐? 손주며느리가 딸기를 먹고 싶다는 데 내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느냐. 식물 성장 아이템을 이용해 겨울 딸기를 수확했다. 30억 정도 들었지만, 며느리를 위해서라면 전혀 아깝지 않지. 허허. 그래서 결혼식은 언제 올리느냐?”
정수연은 현관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았다.
쾅!
현관문 너머에서 할배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허허. 우리 손주 며느리의 성격이 유진이를 닮았구나! 과연. 끼리끼리 논다더니….”
정수연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