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9화 > 2029. 뉴타입
결혼식은 무난하게 진행됐다.
내가 한 거라곤 딱히 없었다. 집안에서 정수연과 함께 카탈로그 책자를 보며 결혼식에 필요한 것들을 정했다. 그럼 머슴들이 알아서 준비했으니까. 그나마 중요하게 여기고 행동한 건 정수연이 웨딩드레스를 고를 때뿐이었다.
결혼식은 대한민국 최고의 호텔에서 이루어졌다. 나와 정수연은 결혼식에 부를 가족, 친척, 친구가 별로 없었지만, 전 세계 각지에서 하객들이 몰려왔다.
천일 그룹의 영향력과 천사의 인정을 받은 가디언이라는 명성 때문이었다. 덕분에 여러 나라의 고위층들을 만날 수 있었다. 솔직히 만나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살판 난 것은 천일 그룹의 회장이었다. 이번 영광회 사태에서 짜증 나는 경쟁자들을 마녀사냥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천사의 이름으로 이루어졌기에 대놓고 척살했음에도 반발이 전혀 없었다. 그만큼 천사에 대한 믿음이 엄청났다.
경쟁자가 전부 죽은 건 아니지만, 다른 경쟁자들은 마녀사냥당하기 싫어서 천일 그룹에 고개를 숙였다. 천사를 뒤배로 둔 내가 있는 한 천일 그룹은 계속 승승장구할 것이다.
천사. 이놈은 인간 사이에 일어나는 일에 별 관심 없었다. 이놈이 관심 있는 건 외계 몬스터와의 전투였다.
천사는 내 부탁에 따라 주례를 섰고, 그 성스러운 장면은 뉴스를 통해 퍼져나갔다. 천일 그룹과 내 명성은 어마어마해진 건 덤이다.
「침략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침략 전쟁을 준비하십시오!」
결혼식이 끝난 뒤 신혼여행을 위해 공항으로 향하고 있을 때, 천사가 알림창을 띄웠다. 아랫배에 손을 올리고 있는 정수연은 알림창이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직 신혼여행은 시작도 안 했는데 무슨. 하지만 준비는 해둬야겠지.’
혼자서 다른 세계를 침략한다. 아무리 나라도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이 세상에는 사람을 순식간에 강하게 만들어 줄 방법이 존재했다.
‘그 대표적인 게 아이템이지.’
천사의 인정과 천일 그룹의 돈.
그것들이 있는 이상 웬만한 것들을 모두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천사의 이름으로 다른 나라에 협조를 요청하면 희귀한 아이템도 주겠지.
‘가장 먼저 구해야 할 건 아공간 아이템이군. 그다음은 무기 쪽으로….’
천사가 말하는 침략은 놈들 입장에서 내가 몬스터가 되는 것이다. 앞으로의 전투가 조금 기대되긴 했다.
원래 신혼여행 계획은 보름이었다. 전용기를 타고 몰디브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나머지 일주일은 유럽에서 보낼 계획이었다. 그러나 세상사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몰디브에서 보내는 시간이 조금 늘어나고 보름이었던 신혼여행은 20일로 늘어났다. 정수연이 몰디브를 마음에 들어 했기 때문이다.
몰디브의 어느 호텔 스위트룸의 새벽.
창가에 알몸으로 서 있는 정수연이 보였다. 그녀는 바다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태양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서 그녀의 모습을 감상했다. 떠오르는 태양 빛을 받는 그녀의 몸은 아름다웠다. 조용히 그녀의 몸을 감상하고 있는데, 그녀가 획 몸을 돌렸다. 당당하게 걸어와 침대로 들어온다.
나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눈을 감아 다시금 잠을 청했다.
***
뿌우우우우우우우!!
천사가 뿔 나팔을 불었다. 전쟁을 알리는 뿔 나팔 소리는 내게만 들렸다.
「전사여, 침략을 준비하십시오!」
「인간의 반격!
인간은 항상 침략당했습니다. 힘이 부족했기에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습니다.
버티고 버티어 힘을 쌓았습니다.
자, 반격의 시간입니다. 전사여, 침략할 준비를 하십시오. 인간을 먹이로 삼는 월타족을 모조리 죽여버리십시오!
대기 시간: 30:00」
나는 머슴들을 불러 준비한 것들을 가져오라 명했다.
몇 개의 아이템을 걸치고, 수백 개의 아이템이 들어 있는 아공간 주머니를 확인했다. 손으로는 화련비도를 만진다. 준비는 3분도 되지 않아 끝났다.
나는 마약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약 기운이 전신을 돌며 집중력이 올라간다.
「천사의 축복이 당신에게 내려집니다.
천사는 승리를 원합니다!」
당연히 나도 승리를 원한다. 여기서 패배한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고, 죽음이란 곧 퀘스트 실패였다.
천사의 축복은 일종의 버프였다. 그것도 상당히 대단한 버프다. 단순히 신체 능력만 따져도 3배 이상은 강해졌다. 포스의 양도 마찬가지다. 천사가 이번에 멀마나 진심인지 알 수 있었다.
「대기 시간: 18:40」
「대기 시간: 11:07」
「대기 시간: 03:21」
대기 시간이 0이 되는 순간, 내 몸은 회색 땅이 있는 곳으로 나타났다. 내 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5시간을 버티거나 월타족 500 명을 처치하고 월타족 세계를 침략하십시오.」
‘500마리인가.’
따로 뭔가를 할 필요도 없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맹렬한 살의가 느껴진다. 날개로 하늘을 날고 있는 월타족들이 포스를 끌어올린다.
“반갑다.”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인간의 말을 못 하기 때문이다. 월타족은 반신이 기계인 만큼 육성이 아닌 통신으로 자기들끼리 대화한다.
나는 아이템 강철 날개를 착용했다. 내 등 뒤로 강철 날개가 활짝 펼쳐진다. 내가 하늘로 떠오르자마자 월타족들이 부리를 벌리며 광선을 쏘아냈다. 포스를 뭉쳐서 날려 보내는 것이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최대출력.
번쩍거리는 뇌전으로 이루어진 기막이 광선을 막아냈다. 그러나 놈들의 공격은 멈추지 않는다. 자기들끼리 멈추지 않고 공격을 이어가는 것이다.
‘좆 같이 싸우는군.’
전자기막은 무한히 유지할 수 없다. 이대로는 15분도 되지 않아 내가 먼저 지칠 것이다. 반격해야 한다.
손바닥을 펼친다. 손바닥의 중심으로 뇌전이 번뜩이며 모여들었다. 뇌전을 압축하던 나는 곧 그것을 터트렸다. EMP가 터지며 사방으로 뻗어 월타족을 휩쓸었다.
“끄끄끅끅끄.”
“끼에에에엑.”
월타족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몸의 절반이 기계인 월타족은 유독 EMP에 취약했다. 하지만 전부 쓰러뜨린 건 아니었다. 포스로 몸을 보호한 놈들은 쓰러지지 않고 버틴 것이다.
놈들이 아이템을 쓰기 전에 먼저 아공간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한뼘 길이도 되지 않는 작은 금속 화살.
추적의 화살. 30분 동안 자동으로 적을 쫓아다니는 화살이다. 이 화살의 유일한 약점이라 할 수 있는 내구성은 지구에서 다른 아이템으로 강화하며 극복했다.
추적의 화살을 허공에 내던졌다. 화살이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더니 근처에 있던 월타족을 향해 날아간다. 순식간에 월타족의 머리를 꿰뚫고 다른 월타족의 목숨을 노린다.
나는 화살에만 모든 걸 맡기지 않았다. 나 또한 하늘을 날며 화련비도를 휘둘러 월타족을 죽여댔다.
‘EMP 쇼크!’
간간이 EMP를 터트렸다. 놈들의 약점인데 이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놈들은 나를 상대하면서도 EMP를 대비해 몸에 포스를 둘러야했다. 그게 얼마나 귀찮고 집중력을 잡아먹는 일인지 잘 알았다.
서걱서걱서걱!
놈들을 벨 때마다 피가 튀었다. 하늘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붉은 피들은 꽤 아름다웠다.
‘근데 이 새끼들 접근전은 더럽게 못 하는군.’
월타족은 인간과 비슷한 손과 팔이 있었으나 하반신이 없었다. 대신 날개가 있었으나, 날개는 계속 움직여 하늘을 날아야 했다. 하반신 없이 두 개의 팔로 할 수 있는 근접전은 한정적이었다.
‘이놈들 세계에선 무술이 발전하지 않은 거다.’
뇌천류(雷天流) 뇌섬(雷閃).
번개를 휘감은 검기를 날린다. 월타족은 화들짝 놀라 옆으로 피했다. 하반신이 없어도 그 기동성은 어마어마했다.
‘검기 날리기는 안 써야겠다.’
월타족 수십 마리가 한곳에 모였다. 놈들은 고도를 높여 위로 올라갔다. 일제히 포스를 사용해 날갯짓한다. 거대한 바람이 일어나 나를 휩쓸었다. 바람 속에는 검기와 비슷한 날카로운 기운이 섞여 있었다.
뇌천류(雷天流) 전자기막(電磁氣幕).
날카로운 기운을 기막으로 막아냈지만 오래 버틸 수는 없다.
‘바람이 무슨 토네이도 수준이냐.’
강력한 바람은 EMP로 기절한 놈들도 휩쓸었다. 바람에 섞인 기운에 온몸이 갈려 나갔다. 핏물이 바람에 실려 회오리친다. 짧게 혀를 찼다. 피 자체가 바람의 칼날이 되었다.
‘추적의 화살은 놈들을 한 마리씩 차근차근 줄여주고 있지만, 전부 죽이려면 시간이 걸린다. 이대로는 내가 못 버텨. 새로운 아이템을 꺼내기도 마땅치 않고.’
어쩔 수 없다. 포인트를 사용할 수밖에.
[강화 도약을 사용했습니다.]
[2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공간을 도약해 놈들의 뒤로 이동했다.
내가 사라지자 깜짝 놀란 놈들이 당황하며 날갯짓을 멈췄다. 나를 찾듯이 두리번거리다가 뒤를 돌아본다.
늦었다.
화련비도에서 붉은 뇌전이 번쩍이며 사방으로 뻗어나간다.
뇌천류(雷天流) 극기(極技) 폭진뢰(爆震雷).
콰콰콰콰콰콰콰콰쾅!
붉은 뇌전이 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은 모여있는 수십 마리의 월타족을 단숨에 찢어발겼다. 놈들의 시체 조각들이 지상으로 후두둑 떨어진다.
“샤트로부피아다카!!”
조금 떨어진 곳에 있던 월타족 중 한 마리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놈에게서 느껴지는 공포와 분노의 기색을 보자면 욕이 아닐까 싶다.
“씨발놈이.”
놈이 욕했으니 나도 욕했다. 놈이 양팔을 휘두르며 뭔가를 했다.
키이이이이이잉!
무언가가 머릿속에 파고들려다가 그대로 튕겨 나갔다. 정신 계열 공격이다.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은 나는 강화 도약을 사용했다.
[강화 도약을 사용했습니다.]
[1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놈의 바로 앞에 나타나 칼을 휘두른다. 정신 공격이 튕겨 난 여파인지 놈은 제대로 반응하지 못했다.
“반으로 갈라져 죽어라.”
서걱!
한놈을 죽인 나는 심상치 않은 느낌에 뒤를 돌아봤다. 3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월타족 수십 마리가 미사일 런처를 손에 들고 나를 겨누고 있었다.
“…미사일?”
잠깐 당황했으나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월타족은 몸의 절반을 기계로 바꾸는 놈들이었다. 과학 기술력만 따지면 인간보다 월타족이 더 높다는 뜻이었다.
미사일 수십 개가 날아온다. 딱 봐도 유도 미사일이다. 강화 도약을 쓰더라도 쫓아올 가능성이 있었다.
나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하얀 천을 꺼내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하얀 천은 나를 동그랗게 말며 감쌌다.
콰콰콰콰콰콰쾅!
미사일의 폭발이 일어났으나, ‘지고의 수호’란 이름의 천속에 있는 나는 안전했다.
‘지고의 수호는 이론상 핵폭발도 정면에서 견딜 수 있다. 일회용이라 아쉽긴 하지만 미사일 수십 발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어서 지고의 수호가 사라졌다. 미사일 런처를 든 놈들이 당황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미사일을 여러발 들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죽여주마.”
[강화 도약을 사용했습니다.]
[10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