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창작물 속으로-2038화 (1,818/2,000)

< 2038화 > 2038. 아카데미의 구원자

‘정령의 정신에도 영향을 끼치는 건가.’

다행히 마키나는 어지러워할 뿐이지 정신을 변질되거나 힘이 풀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즉, 내가 똑바로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정령안. 천안.’

눈과 관련된 두 개의 힘을 동시에 사용한다.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짙은 안개를 단숨에 꿰뚫어 본다. 타니엘은 내가 안개를 꿰뚫어 봤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개의 머리를 가진 놈은 입꼬리를 끌어올린 채 득의만만하게 웃었다.

‘다른 놈들에겐 굉장히 성가신 권능이었지만, 내겐 아니야. 운이 따라주는군.’

악마는 여러 종류가 있다.

권능만 믿고 나대는 악마. 권능을 믿지 않고 자신의 힘과 기술을 믿는 악마. 권능, 힘, 기술 모든 걸 사용할 줄 아는 악마.

타니엘은 첫 번째 경우다. 지나치게 자신의 권능을 믿는 악마. 이런 악마들은 상대하기 쉬웠다.

[너무 어지러워. 빨리 끝내고 돌아가면 안 돼?]

‘그래. 빨리 처리하자.’

나도 오래 시간 끌 생각은 없었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11]

뇌천류(雷天流) 질풍신뢰(疾風迅雷).

신체를 일시적으로 강화하고 앞으로 뛰어간다.

내가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가서일까. 놈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였다. 날개를 퍼덕이며 빠르게 옆으로 물러난다. 물론 나는 놈이 보였기에 놈을 따라 방향을 틀었다.

“이놈! 이 안개 속에서 내가 보이는 거냐?!”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안 보였으면 이렇게 달리지도 못했지. 멍청한 놈.”

“인간 따위가 내 안개를 꿰뚫어 보다니…!”

전형적이다 못해 짜증까지 치밀어 오르는 악마의 반응. 나는 한 손에 스톰브레이커 대검을 생성해 손에 쥐고 악마를 향해 휘둘렀다.

타니엘이 깜짝 놀라 바닥을 굴러 내 일격을 피했다.

“대단하신 악마 양반이 꼴사납게도 피하는군.”

“닥쳐라! 지금 다른 악마가 소환되고 있다! 아무리 네놈이라도 두 명의 악마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

“말하고도 부끄럽지 않나. 그 와중에 뒷걸음질로 물러났군. 직접 싸울 생각은 없는 거냐?”

“나는 야만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나, 타니엘의 전투는 항상 고고해야 한다.”

“아, 그러시군.”

놈을 향해 한 발작 걸어갔다. 저 악마 새끼는 지금껏 만나본 악마 중에서도 역대급 병신이었다. 괜히 나까지 긴장이 풀릴 정도다.

스으으으으.

안개가 짙어진다.

[우에에에에엑.]

마키나가 구역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짜 구역질은 아니고 구역질을 할 만큼 어지럽다고 엄살 부리는 것이다.

안개가 보통이 아니긴 한 모양이다. 내가 아닌 다른 인간들이었다면 이 안개에 상당히 고전했겠지.

“왜냐! 왜 안개가 통하지 않는 거냐?!”

타니엘이 빽 소리치며 내게 무언가를 날렸다. 조잡한 마력 덩어리.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보법을 밟아 공격을 피했다. 마력 덩어리는 벽과 부딪쳐 폭발했다. 벽이 아예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조잡하긴 해도 위력만큼은 진짜군.’

마력 덩어리가 계속 날아온다. 너무 조잡하고 정직해서 찰나를 쓸 필요도 없었다. 적당히 보법을 밟으며 놈에게 접근해 대검을 휘둘렀다. 놈의 오른팔이 바닥으로 툭 떨어진다.

“아아아악! 빌어먹을 필멸자 주제에!!”

“니들도 영원불멸한 존재는 아니잖아. 기껏해야 수명이 없다는 것뿐이지.”

타니엘의 목에 대검을 겨누었다. 빽빽 소리 지르던 놈이 입을 다물었다. 덜덜 떨리는 눈동자를 통해 공포가 보인다.

“내, 내게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이군.”

타니엘의 속셈은 뻔했다. 다른 악마가 소환되기까지 시간을 버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질문에 성실히 대답할 것이다.

‘우연히 찾아온 심문의 기회를 놓칠 순 없지.’

궁금한 게 많았다.

“바알이라고 아냐?”

“……네놈이 어찌 그 이름을 아는 거냐? 그년은 이제 막 새로운 군단장이 된 년이다. 설마 마계에 배신자가 있는 거냐?”

“군단장을 그딴 식으로 불러도 되는 거냐?”

“흥. 내가 충성을 바치는 건 오직 제 2군단장, 사마엘 님뿐이다!”

대부분의 악마가 그러하듯, 다른 군단의 악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즉, 다른 군단의 정보를 거리낌 없이 내게 알려줄 수 있다는 거다. 타니엘이 속한 2군단에 별 관심 없었기에 잘된 일이다.

“바알은 마계에서 뭐 하고 있지?”

“여덟 번째 군단장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 그년이 원래 인간이었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근본 없는 여덟 번째 군단답게 아주 개판이로군.”

놈의 허벅지를 짓밟았다.

“아아아악! 무슨 짓이냐!!”

“내 질문에 답해라. 바알은 마계에서 뭘 하고 있는 거냐?”

“…바알은 여덟 번째 군단의 떨거지들을 이끌고 네 번째 군단과 전쟁을 벌였다.”

네 번째 군단은 용의 군단이었다.

군단 중에서 다섯 번째 군단과 더불어 가장 포악한 군단.

“왜지?”

“바알의 권능은 폭식. 권능을 빼앗는 권능. 그년이 강해지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다른 악마를 죽일 수밖에 없다. 정말이지 역겨운 권능이로다. 듣기로는 자기 부하들까지 잡아먹었다더군.”

“헛소리하지 마라. 너희 악마가 뭐가 맛있다고 잡아먹겠냐!”

“윽…. 네, 네 말이맞다. 흥분하지 마라.”

“다른 군단은 군단 간의 전쟁에 개입하지 않는 거냐?”

“어차피 남의 일이다. 왜 개입해야 하지?”

“……네놈들이 그럼 그렇지. 전쟁은 누가 더 유리하지?”

“당연히 네 번째 군단이다. 내가 볼 땐 네 번째 군단이 승리할 것이 분명하다만… 다른 놈들은 바알이 이길 것이라 보더군. 그년은 싸울 때마다 강해진다고 하던가. 매 순간 강해지는 괴물…. 다섯 번째 군단장마저 긴장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미간을 찌푸렸다. 다섯 번째 군단장 메킨. 내가 죽여야 할 복수 대상.

‘당장 영하리가 죽는 건 아니니 좋은 소식이군. ……좋은 소식 맞나?’

듣자 하니 영하리는 더욱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도 어마어마하게 강했는데 그 상태에서 더 강해진다라.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좀 적당히 강해지면 안 되나. 나중에 붙었을 때 힘으로 이기지 못한다면… 다른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르겠군.’

“메킨. 그 새끼는 뭐 하고 있냐?”

“인간들을 주시하고 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조만간 인간계에 재밌는 일이 생길 거라더군.”

조만간 일어날 사건. 마도정의 의식 말고는 딱히 없었다.

“첫 번째 군단은?”

“모른다. 첫 번째 군단은 우리들 사이에서도 독보적인 군단. 비밀이 많은 재수 없는 놈들이다.”

“첫 번째 군단이 그렇게 강하나?”

“악마들 사이에는 첫 번째 군단을 치려면 최소 2개 군단이 힘을 합쳐야된다는 말이 있다. 물론 과장된 개소리지. 아무리 첫 번째 군단이라 하더라도 그 정도는 아닐 터. 그 소문의 출처는 첫 번째 군단에서 퍼뜨린 게 확실하다.”

“메킨을 죽이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냐?”

“다섯 번째 군단장을 죽이는 방법? 당연히 있다!”

타니엘이 당당히 소리쳤다. 신뢰가 전혀 가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 지껄인 말 전부가 거짓일지도 모르겠다.

“말해봐라.”

“그건 바로… 이놈을 죽여라!!”

위이이이잉.

내 뒤에서 소환된 악마가 나를 향해 날아왔다. 하늘을 나는 네모난 기계 몸과 그 아래로 윙윙 돌아가는 원형 블레이드.

일곱 번째 군단, 달리 기계의 군단이라 불리는 악마였다.

[해킹에 성공했습니다.]

[푸르탐을 40초 동안 해킹할 수 있습니다.]

해킹당한 기계 악마 푸르탐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역시 되는군.’

악마라고 해도 기계인 이상 내 해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 이놈! 대체 어떤 힘으로 저 깡통을 제압한 거냐?!”

타니엘에게서 마력이 심상치않게 모이는 게 느껴졌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놈의 몸을 베어 죽였다. 놈이 죽자마자 권능으로 생성된 안개가 사라진다.

아직 궁금한 게 있었지만 이쪽도 시간이 넉넉한 게 아니었다.

『성공적으로 악마를 사냥했습니다. 악마 사냥꾼(S)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악마 사냥꾼(S)이 죽인 악마의 권능 일부를 흡수합니다.』

『미혹의 안개(B)를 흡수합니다.』

『현재 흡수한 권능: 괴력의 권능(A-). 미혹의 안개(B)』

『카르마: 선(善)이 2 상승합니다.』

‘상승하는 카르마가 2개뿐이라고? 이거 악마란 새끼가 악마 숭배자보다 못한 새끼였잖아.’

그래도 권능을 얻은 건 좋았다.

나는 다음으로 기계 악마 푸르탐을 향해 다가갔다.

‘마키나. 이 새끼를 네 힘으로 조종할 수 있겠어?’

[이건 펴범한 기계가 아니야. 기계이면서도 생물이라고 할까. 나로서는 제어할 수 없어. 기껏해야 혼선이 주는 건 전부야. 솔직히 그냥 없앴으면 좋겠어. 보고만 있어도 소름끼쳐.]

맞다. 평범한 기계가 아니었다. 해킹을 통해 제어할 수는 있어도 정보를 캐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놈의 인공지능은 매우 단순했고, 메모리 용량은 얼마 되지도 않았다. 이놈은 파괴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나는 대검을 내려쳐 놈을 파괴했다.

『성공적으로 악마를 사냥했습니다. 악마 사냥꾼(S)의 효과가 강화됩니다.』

『악마 사냥꾼(S)이 죽인 악마의 권능 일부를 흡수합니다.』

『규율의 저주(A)를 흡수합니다.』

『현재 흡수한 권능: 괴력의 권능(A-). 미혹의 안개(B), 규율의 저주(A).』

남작과 자작. 두 마리의 악마를 사냥했음에도 악마 사냥꾼(S)의 랭크는 오르지 않았다. 살짝 기대했는데 아쉽다.

‘그래도 악마 사냥꾼(S)의 힘은 강해졌다. 권능도 얻었으니 손해는 절대 아니다.’

『미혹의 안개

랭크: B

마나를 소모해 안개를 흩뿌린다.

대상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추적을 무력화한다.』

『규율의 저주

랭크: A

대상에게 저주를 건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저주를 걸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저주를 걸면 기존의 저주가 해제된다.

저주는 단순하고 명확할수록 효과가 극대화된다.』

흡수한 권능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아! 방심했구나! 적이야!]

“응?”

콰콰콰콰콰콰콰쾅!

마치 믹서기로 얼음을 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천장이 부서지며 한 인형이 내 앞에 떨어졌다. 자연스럽게 히어로 랜딩 자세로 착지한 여자가 몸을 일으킨다.

포니테일로 묶은 회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리고, 신념이 담긴 흑갈색 눈동자는 나를 매섭게 노려본다. 강철로 이루어진 코트를 외투로 걸치고 그 안에는 특수한 재질로 만든 파란색 쫄쫄이 슈트를 입었다.

나는 그녀가 누군지 알고 있다.

원작에서 시간 강사로 출현했기도 했으며, 지금은 현역 A급 히어로로서 활동 중인 여자.

“아이언 스톰….”

본명, 명지아.

“적광. 히어로의 이름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습니다.”

“응. 보지의 저주.”

내 손가락 끝에서 어두운 기운이 쏘아졌다. 어둠의 기운은 명지아의 보지로 스며들었다.

『대상에게 규율의 저주를 발동합니다.』

『대상의 저항력이 낮습니다. 저주에 성공합니다.』

『대상의 보지에 저주를 걸었습니다.』

“하?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넌 보지의 저주에 걸렸다.”

“성희롱입니까? 제가 여자라 얕보고 계시는군요. 그딴 음담패설은 몇 번이나 들었습니다.”

“절정해라.”

“그딴 장난은… 흐으으읍?!”

털썩.

명지아가 바닥에 꿇어앉았다.

“지금은 내가 좀 바빠서. 나중에 보자고, 저주 걸린 보지.”

나는 하늘을 향해 날아올랐다.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