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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39화 (1,819/2,000)

< 2039화 > 2039. 아카데미의 구원자

내 계획은 하늘 위로 올라가 공간 이동 주문서를 찢는 것이었다.

명지아의 눈을 피해 주문서를 찢는 건 정보를 감추기 위해서다. 정보를 줘버리면 상대는 대책을 세우기 마련이니까.

[좌측에서 미사일 공격 감지!! 충격에 대비해!]

마키나가 다급히 말했다. 나도 느끼고 있었다. 대전차 미사일이 소음과 함께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명지아 뿐만이 아니라 다른 히어로까지 이곳에 도착했었던 것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미사일이 폭발하고 내 몸은 반대쪽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스톰브레이커의 슈트를 입고 마나까지 사용해 충격에 대비했는데 이 모양이다.

‘평범한 대전차 미사일이 아니군. 터지는 순간 마나가 느껴졌어. 능력 혹은 마법으로 미사일의 폭발력을 강화한 거겠지.’

그래도 큰 피해는 없다. 약간의 타박상이 전부다.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자 내 주위로 2명의 히어로가 나타났다. 한 명은 검은 코트와 긴 칼을 장비한 겉멋 충이었고, 다른 한 명은 밧줄 여러 개를 몸에 장식한 또라이였다.

‘히어로 새끼들은 무슨 정신으로 저딴 옷을 입고 다니는 거야.’

히어로가 자신의 능력과 관련된 옷차림을 하는 건 알고 있지만, 그게 너무 과하면 이상하게까지 보였다.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저런 옷차림을 하는 히어로가 많다고들 하지만 좀 심하지 않나.

“A급 빌런 적광. 네놈의 악행은 여기까지다.”

“얌전히 히어로 협회로 가자고. 근데 가까이서 보니 슈트 하나는 진짜 멋지군. 어디서 얻은 거야?”

말로 내 시선을 끄는 사이 밧줄이 슬금슬금 접근한다. 정령안(S)의 능력인 시야 공유의 효과로 마키나의 시야를 공유해 볼 수 없는 사각지대도 보였다.

[어쩔래? 쟤들도 죽일 거야?]

‘죽이고 싶다.’

근데 지금 죽이면 카르마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나는 방금 얻은 따끈따끈한 권능을 사용했다.

『미혹의 안개를 사용합니다.』

짙은 안개가 폭발하듯이 나타나 내 주위를 가득 채웠다.

“연막?!”

“붙잡아라!!”

슬금슬금 접근하던 대놓고 내 몸을 구속하려 든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0]

쇄도하는 밧줄을 피하며 밧줄 히어로의 앞으로 순식간에 접근해 그 머리통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컥!”

밧줄 히어로가 뒤로 날아가는 직후 칼을 든 히어로가 날 공격한다.

“거기냐!!”

그 칼날에 맺힌 것은 검은색의 검기임을 확인한 나는 손을 뻗어 칼날을 붙잡았다. 이딴 허접한 검기에 당할 정도로 내 스톰 브레이커는 약하지 않았다.

“너희 A급 아니지?”

“큭, 네놈만 잡으면 A급이다!”

붙잡은 칼날이 전기톱처럼 진동한다. 내 손에서 불똥이 튀기 시작했다. 손바닥이 조금씩 뜨거워진다.

놈의 무릎을 발로 찼다. 우지끈 소리가 들리는 걸 보아 무릎뼈가 개박살 났을 것이다.

“아아아아악!”

쓰러진 놈의 비명을 들으며 미혹의 안개를 더욱 흩뿌린다. 타니엘이 안개를 뿌릴 때는 마키나가 어지럽다고 난리를 쳤었는데 이놈들은 조금도 어지러워하지 않았다.

‘권능을 빼앗으면서 권능이 약해져서 그런가.’

[안개를 뿌릴 시간에 여기서 빨리 벗어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나는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들어 건물을 쳐다봤다. 건물 옥상 쪽에 명지아가 서서 나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명지아가 손을 든다. 그녀의 주위로 쇠붙이 수십 개가 나타나더니 회전하며 나를 향해 날아온다. 그것은 작은 폭풍과도 같았다. 그녀의 히어로 명이 왜 ‘아이언 스톰’인지 알 수 있었다.

[어? 방향이 좀 이상하지 않아? 똑바로 날아오지 않잖아.]

‘안개 때문에 내 위치를 가늠하지 못하는 거겠지.’

날아온 쇠붙이는 내 근처 땅바닥에 파바바박 박혔다. 이렇게 보니 안개도 꽤 쓸만한 권능인 것 같다.

바닥에 박힌 쇠붙이들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무차별적으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건 작은 폭풍이었다.

팅팅팅팅팅!

슈트에 쇠붙이가 부딪치며 튕겨 나간다.

[점점 위력이 거세지고 있어.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어! 너 마나도 거의 바닥이잖아! 돌아가자!]

마키나가 칭얼거렸다.

나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명지아를 쳐다봤다.

“절정해라.”

명지아가 비틀거린다. 거세게 회전하던 쇠붙이도 기세가 죽고 땅바닥에 처박힌다.

[히어로들이 몰려오고 있어! 최소 5명!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진짜 큰일난다구!]

호들갑 떨지 않아도 알고 있다. 강렬한 기척이 느껴지니까. 이번에야말로 A급 히어로들이겠지. 나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소환해 찢었다.

***

아이언 스톰, 명지아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안개를 노려봤다. 빠르게 흩어지는 안개 속에서 적광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 놓쳤어.’

사실 그녀가 적광을 쫓는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몇 번이나 적광을 쫓았었다. 문제는 매번 늦어서 만나기도 전에 적광이 사라진 후에야 현장에 도착해 버리지만.

‘이번에야말로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명지아가 이를 악물었다. 직접 대면한 적광은 상상 이상의 적이었다. 그 역량을 전부 가늠할 수 없었고, 적광의 목적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정의를 위해 활동하는 게 아닌 건 확실해.’

적광을 막아야 했다.

적광이 더 강해지기 전에, 히어로들이 감당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찌릿.

“흡…?!”

그녀가 돌연 허리를 떨었다. 음부에서 시작된 낯선 감각에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아까부터 적광을 생각할 때마다 음부가, 아랫배에서 자극이 느껴진다.

이게 어떤 자극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성적인 쾌락.

적광이 자신에게 건 저주. 그 이름도 음탕하고 역겨운 보지의 저주.

‘저, 적광! 이 죽일 놈…!’

찌릿찌릿.

자위를 할 때와는 전혀 다른 감각. 자신의 음부가 자신의 것이 아닌 듯한 기괴한 느낌.

찌릿찌릿.

보지가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은밀한 구멍에서 액체가 흘러나와 사타구니를 적시는 것도 느껴졌다.

‘아, 안 돼…. 멈춰…! 적광에 대한 생각을 멈춰야 해!’

그러나 생각이란 게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도리어 적광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다른 생각을 한다? 그것도 힘들었다. 음부가 직접적으로 자극되고 있었으니까.

악순환이 이어졌고, 결국 절정이 시작되었다. 음부에서 시작된 쾌락의 번개가 그녀의 척추를 타고 올라가 뇌에서 폭발했다.

“흐으으으으으윽…!”

명지아는 이를 악물며 턱을 치켜들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탁했다. 움찔움찔 떠는 몸은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그래도 그녀는 히어로였다. 승천할 것 같은 정신을 붙잡고 다리에 힘을 준다.

쫄쫄이 히어로 슈트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평범한 바지였다면 사타구니가 흠뻑 젖어 부끄러운 꼴을 보였을 테니까.

‘아, 안 돼. 이건 안 돼. 너무 위험해.’

다행히 한번 절정하고 나니 적광에 대해 생각해도 멀쩡했다. 쿨타임이라도 있는 걸까.

‘히어로 활동을 하려면 이 이상한 저주부터 해제해야 해.’

이에 관해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아이언 스톰!”

“적광은 어디에 있습니까?!”

히어로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명지아는 필사적으로 얼굴을 관리했다. 뺨이 붉어지긴 했으나 히어로들은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적광을 놓쳤습니다.”

“죄송할 것 까지는 없습니다. 적광이 공간 이동 능력이 있다는 건 모두가 짐작하고 있었으니…. 히어로 협회는 적광을 위한 함정을 준비하고 있다더군요.”

명지아도 처음 듣는 말이었다.

“함정이라니. 적광을 끌어당길 미끼가 있습니까?”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뭐, 히어로 협회니 알아서 잘하지 않겠습니까. 그보다 적광이 이곳에서 뭘 했는지 아십니까? 피 냄새가 진동하는군요.”

“저도 방금 이곳에 온지라… 둘러보지 못했습니다.”

명지아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인간의 시체. 그리고 검은 날개가 달린 악마의 시체.

히어로들은 일제히 눈살을 찌푸렸다.

“악마 숭배자와 악마로군요. 적광을 옹호할 생각은 없으나… 이번만큼은 적광이 잘했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은 이미 인간도 아니니까요.”

히어로들은 죄다 욕부터 지껄였다. 그리고 수색을 위해 흩어졌다.

명지아는 평소와 달리 수색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보다 급한 일이 있었으니까.

***

명지아가 찾은 곳은 히어로 협회와 멤버십 계약을 맺은 저주 전문가이자 해주술사인 지영지다.

지영지는 명지아와 마루한 아카데미의 동기이기도 했다.

지영지의 가게는 약과 골동품 냄새가 났다. 저주에 사용하는 물건들은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그렇다.

“저주에 걸렸다고? 얼굴을 보니 심각한 저주는 아닌 모양이네. 설마하니 천하의 아이언 스톰이 저주에 걸릴 줄이야.”

“심각해. 이대로는 히어로 활동도 힘들어.”

“무슨 저주인데 그래?”

명지아가 주위를 둘러봤다. 가게에는 아무도 없었다.

“안심해. 가게 영업은 3시간 전에 끝났으니까. 퇴근했다가 너 때문에 다시 출근한 거라고.”

“그, 내가 저주에 걸린 건 누구에게도 말하면 안 돼.”

“걱정 마. 환자의 비밀은 지키니까. 물론 친구의 비밀도 지킬 거고.”

현대에서 해주술사는 의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명지아는 친구인 지영지를 믿었다. 그녀가 적광과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들은 지영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보지의 저주?”

명지아의 얼굴은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그놈이 그렇게 말했어. 대체 무슨 저주야?”

“아니. 그딴 저주가 있을 리 없잖아. 저주의 증상은?”

“놈이 절정하라고 했을 때… 절정했어.”

“하…?”

명지아는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괜히 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지영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해주 해줄 수 있지?”

“내가 알고 있는 저주 중에 그딴 저주는 없어. 새로운 저주라고 봐야 해. 너도 알겠지만 새로운 건 연구할 필요가 있어. 해주는 무턱대고 하는 게 아니니까.”

“네겐 저주 정화 스킬이 있잖아.”

“간단한 저주라면 그걸로 충분하겠지. 근데 딱 봐도 간단한 저주가 아닌 것 같잖아. 너도 그렇게 느끼지?”

명지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저주를 들어본 적 없는 건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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