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1화 > 2041. 아카데미의 구원자
카케마사는 전신에 마기를 휘감고 내 공격을 막아냈다.
충돌에 의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고 절과 땅바닥이 부서졌다. 나는 뒤로 빼서 자세를 다잡았다.
‘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전력을 다한 첫 번째 공격이 아무렇지 않게 막혔다. 카케마사에 대한 정보가 없는 만큼 신중해질 필요가 있었다.
마기를 몸에 휘감은 카케마사의 덩치가 3m 이상으로 커졌다. 그 외의 신체 부위도 변했다. 눈은 핏빛 같은 붉은색으로 이빨은 상어의 그것처럼 뾰족해졌다. 얼굴을 비롯한 주먹에 문신 같은 게 떠올랐다.
『악마 사냥꾼(S)이 마인의 죽음을 원합니다!!』
악마 사냥꾼(S) 특성이 격렬히 반응한다. 죽여라. 죽여라. 그렇게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무슨 악마와 계약한 거냐?”
느껴지는 기세만으로 알 수 있었다. 카케마사는 최소 백작급 이상의 악마와 계약했다.
“악마 사냥꾼에게 알려줄 정보는 아니라네.”
카케마사가 땅을 박찼다. 땅이 부서지고 충격파가 퍼진다. 카케마사의 커다란 육체는 그 덩치에 걸맞지 않게 한순간에 가속했다. 허나 내 눈에는 카케마사의 움직임이 전부 보였다.
‘내가 너무 놈을 과대평가했군.’
마도정의 간부를 상대한다고 이것저것 준비했었다. 마인이나 악마를 죽이면서 악마 사냥꾼(S)을 강화하기도 했었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그 안에 있는 건 별 볼 일 없는 것이었다.
‘저번에 마도정에게 한 번 당했다고 너무 경계했어.’
머리를 노리고 들어오는 주먹을 피하며 검을 휘둘러 반격한다.
뇌천류(雷天流) 뇌광(雷光).
대검은 카케마사의 몸을 깊숙이 베지 못했다. 육체가 다른 금속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단단했다. 검기를 썼는데도 불구하고 생채기만 날 정도로.
텁.
카케마사가 대검을 붙잡았다.
“자네의 공격은 빠르네. 내 눈으로도 온전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말일세. 허나 굳이 피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유성검.
하늘에서 거검이 생성되어 카케마사를 향해 낙하한다.
카케마사가 바로 반응했다. 주먹으로 떨어지는 거검을 후려친다. 유성검이 부서져 흩날렸다.
“과연, 강력한 신체와 다소 특별한 눈이 능력인가.”
“불존의 눈이라네.”
“악마의 눈이겠지.”
나는 카케마사에게 접근해 다시 대검을 만들어 휘둘렀다. 대검에 실린 번개와 폭풍이 놈의 오른쪽 어깨를 강타한다. 카케마사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다. 딱 2 방울.
카케마사는 표정 변화 없이 주먹을 휘둘러 대응했다. 나는 대검을 세워 주먹을 비껴냈다.
‘나름의 무술을 익힌 모양이지만, 허술하군.’
아니, 무술에 대한 내 눈이 더 높아진 걸지도 모른다.
뇌천류(雷天流) 뇌강인(雷?刃).
강기와 번개를 뒤섞인 힘이 검날에 서렸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것일까. 카케마사가 두 눈을 부릅뜨며 거리를 벌리려 했다. 그 전에 내 검이 먼저 휘둘러졌지만.
피가 튀었다.
그 단단한 몸에 균열이 일어나듯 검상이 쭉 그어졌다.
허나 치명상은 아니다. 강기를 썼음에도 커터칼로 쭉 그은 것 같은 상처뿐이다. 카케마사의 내구성은 미친 수준이다.
[우와. 저 몸이 슈트보다 더 단단할지도?]
‘뇌강인을 맞고도 저 정도 피해가 전부이니… 슈트보다 단단한 건 확실해.’
[일단 후퇴하고 대책을 세우는 게 어때?]
‘몸이 단단한 것밖에 없는 놈인데 뭘.’
살짝 여유가 생겼을 때 놈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미사이즈 카케마사
근력: S+ 체력: A 민첩: B- 내구: SS 마나: B
특성: 불굴의 신체(A)
스킬: 약수권(B), 세 번째 눈(S), 전투 회복(C+)
신뢰도: 13』
역시 괴력과 내구가 괴이할 정도로 높다. 특성도 육체와 관련된 능력.
‘전투 회복은 전투 중에 회복하는 능력이겠지.’
아무래도 좋았다.
한계까지 두들기다 보면 이기는 건 내가 될 테니까.
보법을 밟으며 카케마사의 공격을 피하고 일방적으로 대검을 휘두른다. 어느새 전투는 무술과 무술의 싸움으로 이어갔다.
약수권(B)? 무슨 권법인지 몰라도 그 한계가 뚜렷했다. 뇌천류에 비하면 삼류 무공도 되지 못한다. 초식은 나름 체계적인데 어디서 보고 베낀 듯한 것들 뿐이다. 겉은 나름 볼만해도 내실이 없다.
이어지는 공방은 일방적으로 변했다. 카케마사의 권법을 모조리 파악했기 때문이다.
“크윽, 왜냐! 왜 내 주먹이 자네에게 닿지 않는 거지?!”
“내 움직임이 전부 보인다고 해도 따라잡는 건 별개지.”
강인한 육체와 뛰어난 눈.
어지간한 상대는 압도하겠지. 이 세상에서는 무술을 제대로 익힌 상대를 만나보지도 못했을 테니까.
“단지 눈에만 의존하는 이상 내 검은 못 피할 거다.”
내 입장에선 온갖 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놈들보다 육체를 주로 사용하는 카케마사가 더 상대하기 편했다.
40분.
그 단단하기 짝이 없는 육체를 대검으로 쉬지 않고 두들긴 시간.
카케마사의 육체가 점점 둔해지더니 힘이 풀린 듯 무릎이 바닥에 떨어졌다. 3m가 넘던 거대한 덩치는 줄어들어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런 최후를 맞이하게 될 줄이야. 전혀 예상도 못했네. 나는 자네의 기량에 쫓아갈 수도 없었군….”
“물어볼게 있다. 나머지 마도정의 간부는 2명. 그놈들은 어디에 있지?”
“역시 그걸 묻는가. 답하자면 나도 모른다네.”
“간부잖아. 그런데도 모른다고?”
“그 둘과 내가 맡은 업무는 다르다네. 그 둘은 의식에 집중하고, 나는 마도정의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네. 의식이 있기 전까지 문제가 생기면 안 되니 말일세.”
“짐작하고 있는 장소가 있을 텐데? 말해라.”
“하하. 내가 졌다곤 하나 입이 목숨 구걸할 생각은 없네.”
“살려준다고 말한 적 없어. 곱게 죽고 싶으면 말해.”
“말할 수 없네.”
심문 시간이 도래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고문기술을 동원해 카케마사를 심문했다. 결과는 내 패배였다. 놈은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어디 데려가서 하루종일 고문하면 정보가 튀어나올지도 모르겠지만… 유감스럽게 놈이 자살했다. 잠깐 한눈판 사이에 마나로 자기 심장을 터트려버린 것이다.
‘되살릴 수단이 있어도 이놈에게 쓰긴 아깝지.’
마도정을 관리하는 간부를 죽였다. 그것만으로 성과는 확실했다. 덤으로 카르마도 하나 올랐고.
[다른 마도정의 간부에 대한 정보는 못 얻었어도, 마도정 휘하에 있는 마인들에 대한 정보는 들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시간도 남았으니 처리해야지.’
마도정의 부하들이라면 마인일 것이다. 악마 사냥꾼(S)을 조금이라도 성장시키려면 가리지 않고 죽여야 한다.
[으엑. 피냄새가 나.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여도 아무렇지 않은 거야?]
‘그럴 리가. 꿈에서도 내가 죽인 놈들이 떠오른다고. 하지만 정의를 위해서 행동해야지.’
[입에 침이라도 바르고 거짓말해.]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다른 놈들을 죽이기 위해 움직였다.
***
아라시 아카데미와 마루한 아카데미의 3차 교류전 당일이 되었다. 그 말은 아라시 아카데미의 문화제가 열리는 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아라시 아카데미는 문화제에 진심이었다. 아니, 일본 전체가 문화제에 진심이었다.
꼭두새벽부터 아카데미 입구에 사람들이 대기하는 걸 보고는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게다가 방송국에서도 나왔는지 전문적인 카메라를 든 사람도 여기저기 보인다.
아카데미 학생들이 오랫동안 문화제를 준비한 이유도 알겠다. 망신 당하지 않으려면 제대로 준비해야 하니까.
그래서 문화제 당일인 나는 뭐하고 있느냐면… 집사복을 입고 있었다. 원래 1학년 4반은 다른 걸 준비했지만, 중간에 일이터지는 바람에 급히 메이드 & 집사 카페로 바꿔버렸다. 메이드복과 집사복을 구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나도 집사복을 입고 점소이 역할을 맡기로 했었는데… 중간에 귀찮아져서 도망쳤다. 그래도 여자들의 메이드복을 보는 맛은 있었다.
‘솔직히 내가 집사 노릇을 할 짬은 아니잖아.’
교류전은 오후에 열린다. 그마저도 내가 출전하는 날은 문화제 마지막 날이라 오늘과 내일은 널널했다. 시간부터 죽일 생각을 해야했다.
사람이 오지 않는 옥상 구석에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으려니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찾았어.”
메이드복을 입은 최다연이었다.
긴 검은색 머리카락과 차가운 얼굴. 메이드복을 입고 있어도 아가씨 특유의 기품이 느껴진다. 역시 재벌 3세라고 해야할까.
“오전 근무 땡땡이 치고 뭐하는 거야?”
“솔직히 내가 거기서 일할 짬은 아니잖아.”
“…애들이 널 욕하고 있어.”
“그래?”
손가락으로 귀를 후볐다. 일단 내가 먼저 잘못한거긴 하니 욕 정도는 무시해주기로 했다. 내 앞에서 대놓고 하는 욕도 아니니까.
“지금도 늦지 않았어. 돌아가자.”
최다연은 이런 부분에서 묘하게 성실했다. 나는 그녀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섹스.”
“푸흡.”
최다연이 양손으로 입을 가렸다. 이미 처녀도 아닌데도 간단한 음담패설에도 웃음을 터트리는 건 여전했다.
한손으로 검지와 엄지로 원을 만들고, 다른 손의 검지로 원을 쑤셨다. 최다연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몸은 부들부들 떨린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았다.
‘볼 때마다 놀랍다니까. 이게 왜 웃긴 거지.’
몇 번을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웃음 코드였다.
최다연은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정리했다.
내가 계속 요지부동 앉아 있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것일까, 내 손을 잡고 강제로 날 일으키려고 한다.
“언제까지 여기에 앉아 있을 거야? 하기로 했으면 해!”
습관적으로 그녀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최다연
근력: C- 체력: D+ 민첩: C+ 내구: D- 마나: B-
특성: 아폴론의 태양시(SS)
스킬: 궁술(A), 공중기동(C), 충격파(C)
심리: 빨리 데려가자. 한국인으로서 수치를 보일 수는 없어.
호감도: 74』
예전에 봤을 때보다 능력치가 올라가 있었다. 그녀 또한 시간이 지나며 성장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근력은 C- 랭크. 날 강제로 끌고갈 수준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역으로 그녀를 내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
품안에서 움찔 대는 그녀의 몸을 만지작거린다. 내 손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치마속 허벅지로 향했다.
“메이드복 잘 어울리네.”
“뭐? 그, 그만. 여기선… 읍.”
강제로 입을 맞춘다.
다행히도 사람들의 시선은 이곳에 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