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3화 > 2043. 아카데미의 구원자
텐라이 나기사는 성하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상식적이군. 허나 상식적으로 행동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 마도정의 협박에 굴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최악의 상황만 불러올 뿐이다.”
“그게 애들이 나서야 할 이유는 아니잖아. 얘들은 아직 정식 히어로가 아니야. 하물며 아카데미 1학년이잖아.”
“여기 모인 학생들은 평범하지 않다. 당장 히어로 활동을 해도 좋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지.”
성하리가 학생들을 둘러봤다. 텐라이 나기사의 말대로 여기 모인 학생들은 당장 히어로 활동을 해도 좋을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래. 그건 인정할게. 하지만 마도정을 상대하는 임무는 A급 히어로도 부담스러운 임무야. 여기 학생들이 A급 히어로 수준이라고 생각해?”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 1학년들이 A급 히어로에 비빌 수는 없다.
전투 경험, 능력치 등의 모든 면에서 부족하다. 이런 학생들로 마도정을 상대하게 한다? 자살행이나 다를 바 없다.
“설마 내가 그런 것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학생들을 투입하려 했겠느냐? 일시적이지만 학생들의 잠재력을 끌어올릴 수단은 있다. 여기 모인 학생들의 잠재력은 A급 이상이다. 그건 너도 부정하지 못할 거다.”
“…A급 히어로에게 잠재력이 전부가 아닌 건 알잖아. 당신의 능력과 당신이 가진 아이템으로 잠재력을 끌어올리더라도 부족해. 마도정은 A급 히어로 몇 명이 쓰러뜨릴 수 있는 집단이 아니야.”
“우선 착각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겠구나. 너희는 마도정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다. 흔히 말하지. 마도정은 일본 정부와 결탁하고 일본의 뒷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존재라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허나 그게 일본 최고의 무력집단이라는 건 아니다. 그랬다면 은밀히 움직이지도 않았겠지. 그동안 마도정과 관련된 일에는 일본 정부 등에서 압박이 들어와 방해했지.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마도정은 선을 넘었다. 넘어도 너무 넘어버렸다.”
“일본의 S급 히어로들이 움직인다는 뜻이야?”
“이미 움직였다. 이 상황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더 이상하지. S급 히어로들이 마도정의 세력을 정리 중이다. 문제는 마도정의 진짜 목적이 테러가 아니라 강림 의식이지.”
“S급 히어로가 움직였다면 우리가 움직일 필요는 없어. 걔들보고 의식을 막으라 하면 되잖아.”
“정치인들에게 중요한 건 사회적 혼란을 최대한 빨리 수습하는 거다. 내가 의식을 막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호소하더라도 그들은 테러를 먼저 막을 것이다. 그들에겐 당장 눈에 보이는 위기가 더 중요하니 말이다.”
“…….”
성하리의 미간이 구겨졌다. 한국의 SS급 히어로의 그녀다. 히어로 활동과 정치의 관계를 모를 수 없었다. 히어로 협회도 결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곳임을 알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애들을 보내는 건 미친 짓이야.”
“나는 학생들에게 마도정의 처리하라는 임무를 부여할 생각이 없다. 의식을 방해해 주기만 하면 된다. 다른 히어로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아카데미에 설치된 폭탄들을 전부 해제할 수 있도록 시간만 끌어주면 된다.”
“글쎄. 꼭 그래야 하는 필요성은 못 느끼겠는걸. 의식이 끝난 뒤에 정리하면 되지 않아?”
“오만하구나. 하지만 그게 너답지. 신의 힘은 너와 나의 상상 이상의 힘이다. 혹시 스사노오의 힘을 생각했느냐? 스사노오의 힘은 의식을 통해 받은 힘이 아니다. 마도정 놈들이 왜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느냐? 의식을 성공적으로 끝낸 후에 모든 걸 정리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놈들의 의식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래도 성하리는 납득한 표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반발하기 전에 아라시 아카데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효도 유우키가 입을 열었다.
“저는 학장님의 말대로 저희가 움직여야 한다고 봅니다. 확실히 저희의 힘만으로 마도정을 이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방해하는 것만큼은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미에코가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의식만큼은 막아야해요.”
신보 레이카 또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저희는 아직 학생인 신분입니다만, 어린아이는 아닙니다. 학장님이 저희의 잠재력을 일시적으로나마 개화시켜 주신다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라 봅니다.”
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엄마. 우리를 너무 무시하지 마.”
“…….”
성하리가 당황한 듯 눈동자가 흔들린다.
솔직히 성하리의 말이 100번 옳다. 하지만 이 셋의 잠재력은 진짜다. 잠재력만 따지면 전원 S급 이상이다.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 하더라도 잠재력만으로 충분히 도움이 된다. 주인공 일행이 괜히 주인공 일행이겠는가.
‘성하리가 끝까지 반대하더라도 상관없어.’
나는 이미 하기로 했다. 학장의 말대로 진짜 일본이 끝장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만으로 만족하지 못할 테지. 일이 더 극으로 치닫기 전에 처리한다. 무엇보다 마도정에는 당한 게 있으니 되갚아 줘야지.
‘문제는 놈들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아마테라스의 곡옥이 후지산에 있다는 건 안다. 그러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저번에 마키나와 함께 후지산 근처를 뒤져봤는데 발견할 수 없었다. 마도정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의식을 진행 중인 지금은 찾을 수 있겠지.’
마도정의 수장인 사나다 켄시를 죽일 생각에 벌써부터 손이 근질거린다.
학생들 전원이 각오 서린 눈으로 성하리를 바라봤다. 성하리는 찌푸렸던 인상을 풀었다.
“…조건이 있어.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개화한다고 했지? 그 힘이 내 기준 밑이라면 허락하지 않겠어.”
“허락한다는 뜻이군.”
텐라이 나기사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여기서는 할 수는 없으니 따라오너라. 가면서 작전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겠다. 우선, 움직이는 건 너희뿐만이 아니다. 내게도 비장의 수는 있으니 말이야…. 그들로 하여금 움직이게 했다.”
“잠깐. 그럼 학생들이 움직일 필요는 없잖아.”
“그들은 힘이 부족하다. 그들만으로 마도정의 의식을 방해할 수 없다.”
“…….”
“마도정은 츠쿠요미의 곡옥과 아마테라스의 곡옥을 통해 의식을 진행하고 있다는 걸 알 것이다. 문제가 되는 건 그 장소다. 아마테라스의 곡옥이 있는 장소는 후지산이고, 의식을 진행하기 적합한 장소도 후지산이다만… 마도정 놈들은 효율 좋은 장소를 포기했다.”
나기사의 말을 가장 먼저 이해한 건 미에코였다.
“학장님의 말씀은… 의식이 다른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말이군요.”
“우리에게 혼란을 줘서 최대한 의식의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해서지. 놈들은 나를 너무 무시했다. 의식 장소를 바꾼다고 해서 이 몸이 모를 것 같으냐.”
텐라이 나기사의 말을 듣자 후지산을 뒤졌던 일이 헛수고였다는 깨달았다. 대충 4시간은 투자했던 것 같은데… 시간만 버린 꼴이다.
텐라이 나기사를 따라 도착한 곳은 지하의 어느 공간. 견고한 결계가 느껴진다.
“나의 공방 겸 참고 겸 수련실이다. 우선 너희의 잠재력부터 각성시키겠다. 이리로 오너라.”
바닥에는 마법진 비슷한 것들이 적혀 있었고, 한쪽에는 아이템을 비롯한 시약과 금속들이 쌓여 있었다.
잠재력 개화는 효도 유우키부터 시작했다.
‘시약과 아이템, 그리고 금속을 대가로 사용하는 건가? 그냥 봐서는 잘 모르겠군.’
마법진 같은 진법이 빛나고 준비한 물건들이 빛이 되어 사라진다. 이어서 효도 유우키에게 무언가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느껴진다. 효도 유우키의 힘이 아까보다 훨씬 더 강대해졌음을.
『이름: 효도 유우키
근력: S 체력: A+ 민첩: SS- 내구: A+ 마나: A+
특성: 무한검호(SS+)
스킬: 영라신도(S+), 질풍보(A+), 합기도(S)
신뢰도: 52』
‘…씨발?’
상태창을 확인하자마자 욕설이 나왔다. 효도 유우키는 한순간에 나보다 강해졌다. 아무리 주인공이라도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잠재력 개화가 유지되는 건 15시간 정도다. 그 이후에는 원래대로 돌아올 것이다. 자, 이건 널 위해 준비해 둔 칼이다.”
텐라이 나기사는 어딘가 불길한 기운을 흘리는 칼을 효도 유우키에게 건넸다.
『요도 무라마사
랭크: S
사용자를 파멸로 이끈다.
사용자의 검술을 한 단계 위로 이끈다.
사용자의 능력치에 따라 무라마사의 힘이 강해진다.
신체 능력을 강화한다.
만귀참을 사용할 수 있다.』
배 아파서 죽을 것 같았다.
효도 유우키는 홀린 듯이 요도 무라마사를 쥐었다. 사용자를 파멸로 이끈다는 저주는 미래의 대검호에겐 통하지 않았다. 효도 유우키의 특성 때문이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며 견적을 떠봤다.
지금 그와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일단 능력치로 내가 불리한 게 확실하다. S랭크 능력치는 폼이 아니니까. 내가 가진 것들을 십분 활용한다면?
전투 경험은 내가 더 우위에 있겠지만, 효도 유우키에게도 전투 경험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승리를 장담하긴 힘들군.’
성하리의 반응도 살펴봤다. 눈을 동그랗게 뜬 걸 보니 상당히 놀란 듯했다. 하긴 지금 효도 유우키에게서 느껴지는 힘만 보자면 S급 히어로에 필적하니까.
“음. 역시 날 실망시키지 않는군. 200억엔을 태운 보람이 있구나! 자, 다음은 미에코! 너다!”
미에코와 레이카의 잠재력이 개화된다. 효도 유우키만큼은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 그녀들도 텐라이 나기사로부터 뛰어난 아이템을 받았다.
“다음은 성유진! 이리 오너라!”
텐라이 나기사는 지친 기색을 애써 숨기며 나를 불렀다.
나는 어느 정도 강해질까. 기대감을 가지고 그녀의 앞으로 다가갔다.
텐라이 나기사가 술법인지 뭔지를 시작했다. 바닥에 그려진 진법이 한순간 빛났다.
“……어?”
텐라이 나기사가 당황하며 진법을 다시금 발동했다.
“이럴 리가 없는데… 잠재력 개화가 안 되는군. ……잠재력이 없다?”
나는 실망감을 느꼈으나, 바로 납득했다. 잠재력이란 건 일종의 재능이기도 하니까. 내게 잠재력이 없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거다.
“유진이에게 잠재력이 없다고? 그럴 리 없잖아! 제대로 해!”
성하리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했다.
“다시 해볼 테니 진정해라! 뭔가 실수가 있었던 게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