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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45화 (1,825/2,000)

< 2045화 > 2045. 아카데미의 구원자

화련비도에 쌓인 힘이 부족하다. 권역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기껏해야 30초. 하지만 30초면 충분하고도 남을 것이다.

원형으로 칼을 휘두른다. 칼날에서 붉은 번개가 뻗어 나와 주변을 휩쓸었다. 악마 사냥꾼(S)의 힘이 실려 있었기에 마인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몇몇은 내 공격을 견딘 모양이지만, 바로 반격할 정도로 멀쩡하지 않았다.

“헉!”

자기를 베타라고 한 놈은 괴상한 뒷걸음질로 나와 거리를 벌렸다. 나는 당연히 놈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콰지지지지지직!

거대한 붉은 번개의 칼날이 땅을 가르며 베타를 향해 날아갔다. 베타가 말뚝을 들며 번개를 쳐냈다. 번개가 방향을 틀어 하늘로 치솟아 사라진다. 온전히 쳐내지 못했는지 그의 어깨에 기다란 상처가 남아 있었다.

베타는 상처를 보면서 눈동자를 굴렸다.

“이해할 수 없어. 이게 대체 무슨 힘이야. 이런 힘을 써도 되는 거야? 이런 힘을 네가 쓰는 건 너무 불공평하잖아.”

나는 나대로 놀라고 있었다.

‘이걸 쳐낸다고?’

권역 상태에서 휘두른 화련비도의 칼날에서 나오는 거대한 붉은 번개는 일종의 평타였지만, 강기 이상의 힘이 실려 있다. 웬만한 놈들은 막지도 못하고 죽는다. 내 주위에 뻗어 있는 마인들이 그 증거다.

‘진짜 이 새끼 뭐 하는 놈이지?’

정말로 그 정체가 궁금할 지경이었다. 허나 남은 권역의 남은 시간은 10초 남짓. 놈과 어울려 줄 생각은 없었다.

하체에 힘을 주고 발에 힘을 준다.

[가속을 사용합니다. 10분 동안 유지됩니다. 남은 스택: 11]

달려 나갈 준비를 끝낸 순간이었다.

머리 위에서 보이지 않는 말뚝이 나를 향해 떨어진다. 권역을 사용하고 있었기에 그 기척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화련비도를 휘두른다. 붉은 칼날과 번개가 보이지 않는 말뚝을 쳐낸다.

“와. 그걸 또 이렇게 쳐내?”

감탄하는 놈을 향해 내달렸다.

뇌천류(雷天流) 비뢰신(飛雷神).

번개처럼 움직여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다. 그 짧은 순간 베타의 등 뒤에서 거대한 존재가 나타났다.

말라비틀어진 나무와 같은 피부, 눈두덩이에선 눈알이 없었고, 입은 실로 꿰매져 있었다. 하반신이 없는 놈의 양손은 각각 커다란 도끼와 중식도였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10]

베타의 복부를 발로 찼다. 베타가 옆으로 날아간다. 베타의 등 뒤에 있던 정체 모를 존재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래도 베타의 몸에서 멀리 떨어지지 못하는 모양이다.

‘열렸군.’

간이 신사 앞에서 기도하고 있는 마도정의 수장이 보인다.

베타를 죽이는 것? 그건 내 승리 조건이 아니었다.

‘마도정의 수장인 사나다 켄시만 죽이면 된다. 보스를 죽이면 이 사태도 끝나는 거지.’

허공에 붉은 뇌전으로 이루어진 꽃봉오리가 생겨난다. 꽃봉오리는 회전하며 점점 벌어진다.

뇌천류(雷天流) 만뢰개화(卍雷開花).

수십 개의 꽃봉오리가 일제히 만개하며 뇌전을 터트린다. 붉은 뇌전이 사방팔방 퍼진다. 땅에도, 하늘에도 붉은 뇌전이 꿈틀거린다. 숨을 내쉬고 들이마시면 찌릿한 뇌전이 함께 들어온다.

나는 권역의 힘으로 사방에 퍼진 붉은 뇌전들을 긁어모아 화련비도에 담았다.

뇌천류(雷天流) 뇌겁(雷劫).

칼을 휘두른다. 사실 원래 위력의 절반도 나오지 않는다. 원래라면 조금 더 힘을 모아야 하지만, 권역을 유지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뇌겁은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칼이 되어 사나다 켄시를 향해 날아갔다.

신사와 사나다 켄시를 지키는 결계가 번쩍인다.

‘결계 따위가 막을 수 있는 공격이 아니야.’

결계는 거대한 붉은 칼날 앞에 찢겨나간다. 칼날은 결계 안으로 파고들었고, 아지랑이처럼 불안하게 흔들거렸다.

‘응?’

칼날의 형상이 비틀어지고 왜곡되어 부서지기 시작했다.

그 원인은 결계다. 결계의 힘이 붉은 뇌전의 칼을 없애고 있었다.

‘…저 힘은 뭐지? 무언가가 개입했어.’

강력한 어떤 힘.

마냥 낯설지는 않았다. 약간의 친숙함까지 느껴졌다. 잠시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그게 스사노오의 힘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다.

‘아마테라스가 개입한 건가.’

왜?

의식이 벌써 끝났나?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의식이 끝났다면 사나다 켄시가 움직였겠지.

‘아마테라스는 의식이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다. 자신의 강림을 원하고 있는 거다.’

화련비도를 움켜쥐었다. 권역은 이미 꺼졌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했다.

무언가가 날아온다.

정령안은 아슬아슬하게 그것을 포착했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9]

찰나를 써서 간신히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피했다. 나는 그것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베타가 기괴한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놈의 뒤에 있는 존재도 여전하다.

“예쁜 눈이야. 혹시 내 뒤에 있는 이것도 보여?”

“더럽게 생긴 놈이군. 귀신이냐?”

“귀신? 하하. 비슷해. 수호귀령이라는 건데 알려나?”

“귀락곡 놈이었나.”

“그것만으로 바로 알아차릴 줄이야.”

베타가 놀란 듯 눈을 치떴다.

귀락곡(鬼落谷). 일본에 마도정이 있다면 중국에는 귀락곡이 있다. 실제로는 귀락곡이 더 질이 나쁘다. 그놈들은 아무렇지 않게 인체실험을 진행하니까.

‘베타라는 이름과 수호귀령. 귀락곡의 실험체 중 하나군.’

수호귀령은 귀신을 사람의 몸에 강제로 이식해 수호령으로 만든 것. 원작에서 나온다.

“귀락곡이 왜 이 일에 끼어드는 거지?”

“글쎄. 난 지키라고 해서 지킬 뿐이야.”

“귀락곡인데 일본어를 잘하는군.”

“일본인이니까.”

보이지 않는 말뚝이 날아온다.

[찰나(刹那)를 사용합니다. 남은 스택: 8]

또 찰나로 말뚝을 피했다. 저 보이지 않는 말뚝은 귀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일 터. 최대한 맞지 않는 게 좋다.

‘선궁 박았는데도 쳐죽이는 건 실패했다.’

살짝 후회가 된다. 사나다 켄시가 아니라 베타를 죽이려고 했으면 성공했을 것 같으니까.

다행히도 내겐 다음 계획이 있었다.

나는 내게 날아오는 보이지 않는 말뚝을 피하면서 스스로에게 집중했다. 내 안에 있는 정령의 연결을 더듬는다.

그것은 총 세 개였다. 천둥부엉이 모카, 기계정령 마키나, 최상급 불의 정령 인페라.

나는 오래된 연결을 붙잡고 바다 아래로 흐르는 용암에 있을 그녀를 불렀다.

“와라, 인페라.”

쿠구구구구구구궁!

땅에서 지진이 일어난다. 사쿠라지마 화산 분화구에서 나오는 검은 연기가 더 많아졌다. 베타는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 와중에도 사나다 켄시는 기도를 멈추지 않고 이어간다.

땅이 갈라지고 치솟는 용암과 함께 한 여인이 튀어나온다.

불꽃 같은 붉은 머리카락에 새하얀 피부를 가진 미녀였다. 그녀에게서 느껴지는 열기와 달리 붉은 눈동자는 시리도록 차가웠다. 가슴은 폭유라 불리기에 모자람이 없었고 허리는 가늘고 엉덩이는 순산형으로 컸다. 사타구니 사이에 붉은 보지털이 바람에 흩날린다.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다. 저 불보지가 탐났다.

원래는 용암 거북이의 형태를 가졌으나, 내 영향을 받아 인간 여성의 모습으로 변한 최상급 불의 정령.

인페라는 알몸인데도 전혀 부끄럼이 없었다. 인간이 아니라 정령이기 때문이다.

인페라는 나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때 그 꼬맹이? 제법 잘 성장했잖아. 그래도 계약을 맺기에는 조금 애매한데.”

오랜만에 만나는 거라 좀 걱정했지만, 다행히 날 향해 적대적이지 않았다.

“도와주라, 인페라.”

“흐음. 급한 상황인 모양이지? 좋아. 오랜만이니 도와줄게. 마침 괜찮은 곳이기도 하고.”

다행히 인페라가 협조적으로 나왔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다면 확실하게.

한 손을 올린다. 무지개 속으로 빛나는 팔찌가 햇빛을 받아 번쩍였다.

『아레스트의 팔찌

랭크: S

정령 친화력이 상승한다.

일주일에 한 번 아레스트를 소환할 수 있다.』

“나와라, 아레스트.”

인페라를 소환했을 때와 달리 마나 소모가 없었다. 대신에 팔찌가 빛을 잃었다.

내 앞에 바람이 모여들었다.

함줌도 되지 않는 바람은 회전을 계속하며 그 크기를 키워갔다. 눈깜빡이는 순간에 토네이도가 되는가 싶더니 범고래의 형상을 취한다.

범고래는 날 물끄러미 쳐다봤다.

“원하는 걸 말해라.”

감정이 거의 담겨있지 않은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였다.

“계약을, 네 힘을 원한다.”

인페라가 내 어깨를 잡고 끼어들었다.

“날 불렀으면서 이딴 거랑 계약을 맺겠다고?”

눈살을 잔뜩 찌푸리고 분개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녀의 폭유를 바라보다가 주머니에서 정령옥을 꺼내 건네줬다. 그녀는 대뜸 정령옥을 입에 넣고는 오물거렸다. 얼굴은 이미 행복하게 풀어져 있었다.

아레스트는 그때까지도 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네게서 폭풍의 힘이 느껴지는군. 계약하겠다.”

새로운 연결이 늘어났다.

계약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아레스트가 생각했던 것보다 협조적이라 다행이었다. 물론 계약했다고 해서 내 말에 무조건 따르지는 않는다.

“저것에게 준 걸 내게도 달라.”

아레스트가 말하는 저것은 인페라였다. 나는 정령옥을 하나 꺼내 아레스트에게 줬다. 아레스트는 정령옥을 받아 먹었다. 표정은 알 수 없었으나 범고래의 꼬리가 만족스럽게 흔들렸다.

‘설마 정령옥 때문에 계약한 건… 아니지?’

정령옥을 먹고 실실 웃고 있는 인페라를 보면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았다.

키이이이이잉!

보이지 않는 말뚝이 내게 날아왔으나 바람 장벽을 뚫지 못하고 사라졌다.

“아레스트, 저 귀신 붙은 새끼를 죽여. 인페라, 사나다 켄시를 죽여.”

최상급 정령 둘이 움직였다.

흔히들 최상급 정령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자연재해라고 한다. 그 말은 반만 맞고 반만 틀렸다. 최상급 정령이 온전히 자신의 힘을 발휘하려면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자신의 영역이어야 한다는 것. 그 외의 장소에서 힘을 사용하는 것에는 많은 제약을 받는다. 그 제약을 조금이나마 해제하려면 계약자의 마나가 필요하다.

인페라가 용암으로 땅을 불태웠다. 아레스트는 막대한 바람의 질량으로 땅 위를 휩쓸었다.

모카는 먹구름 속에 숨어 벼락을 쉬지 않고 떨어뜨렸다. 사이버 드래곤 마키나는 마인들을 향해 미사일을 폭격하고 있었다.

사쿠라지마 섬은 자연재해로 인해 엉망진창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덤으로 내 안의 마나도 썰물 빠지듯 사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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