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8화 > 2048. 아카데미의 구원자
푹.
자살 특공의 대가는 놈의 칼이 내 가슴에 꽂히는 것이었다. 불타는 칼이 내 심장을 비롯한 내장을 불태우기 시작한다.
“멍청한 놈. 그런 무기를 가지고도 그따위로밖에 사용하지 못하나? 내 인생에서 너 같은 머저리는 없었다.”
“크크크.”
내장에서 시작된 불꽃은 순식간에 두개골까지 불태운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뇌가 심장이 없어도 손을 움직일 수 있었다.
손에 쥔 낙일시로 놈의 왼쪽 어깨를 찍는다. 원래는 목을 찍어버릴 생각이었는데 몸이 흔들렸다.
태양의 일부가 부서진다. 태양은 다시 그 형태를 복구하려고 하나 속도가 느렸다. 사나다 켄시가 눈살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네놈의 특공도 겨우 여기까지다. 날 죽이지 못했다. 마지막에는 날 실망시키는군. 그만 죽어라.”
죽어? 내가?
성대가 타버려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 두개골을 덜컥대며 놈을 비웃었다.
곧이어 불꽃은 내 두개골을 먼지로 만든다.
[2,000 포인트를 사용해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을 구매합니다.]
[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을 사용합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육체가 회복되고 불꽃이 사그라들었다.
“죽는 건 너다.”
눈이 찢어질 듯이 커진 놈의 목을 향해 낙일시를 찌른다.
획.
빗나갔다.
사나다 켄시를 순식간에 뒤로 물러나 내 공격을 피했다. 그걸로도 모잘라 하늘을 향해 몸을 띄웠다.
“아, 짬밥 어디 안 가네. 반사신경 한번 엄청나네. 근데 지금 쫄았냐?”
“네놈은 대체…! 대체 뭐냐! 왜 죽지 않는 거냐?!”
“쫄았냐? 내려와서 싸우자고.”
“…닥쳐라! 네놈 같은 괴물과 치고받고 싸울 정도로 난 어리석지 않다. 재생? 부활? 어느 쪽이든 좋다! 이번엔 네놈의 영혼까지 불살라 주마!”
“크크. 완전히 겁먹었군.”
사나다 켄시의 얼굴에는 아까까지만 해도 만연했던 여유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이마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눈동자는 요동친다. 아마 머릿속에는 불길한 상상이 휘몰아치고 있겠지.
“닥쳐라!!!”
사나다 켄시가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그의 등 뒤에 태양이 있었다. 태양은 하얗게 변해 타오르기 시작했다.
내 주위로 새하얀 불꽃이 일어났다. 백염은 내게 달라붙어 내 영혼과 육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마나를 이용해 저항해도 완전히 떨쳐낼 수 없다. 영혼이 태우겠다니 정말로 나의 무언가가 타오르고 있었다.
“이게 영혼이 불살라지는 느낌인가? 뜨끈하구만.”
마키나.
역소환되었던 마키나를 다시 소환했다. 마키나는 비명부터 질렀다.
“아아악! 여기 뭐야?! 뜨거워어어어!!!”
“활.”
“우으으… 빨리 해!”
마키나는 내 마나를 가져가 활로 물체화했다. 허공에 만들어진 활을 손에 쥐었다. 기계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택티컬 롱보우.
롱보우를 잡고 열 번째 낙일시를 시위에 걸었다.
“화살은 본래 쏘는 것. 쏘기 좋게 거리 벌려줘서 고맙다. 머저리 새끼야.”
낙일시가 황금빛으로 빛난다. 그 촉에는 황금빛이 소용돌이치며 모여든다.
겨누는 것은 하얗게 타오르는 태양.
오사는 걱정하지 않는다. 낙일시는 반드시 태양을 맞출 것이다. 그렇게 정해져 있다.
나는 한계까지 시위를 당기고 시위를 놓았다.
핑.
다소 맥 빠지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황금빛을 흩뿌리며 태양을 향해 날아갔다.
화살은 경악하는 사나다 켄시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고 멈추지 않았다.
그저 태양을 향해.
새까만 밤하늘에 황금빛을 흩뿌리며 비상했다.
그리고 화살은, 열 번째 낙일시는 태양에 관중 했다.
하얀 태양에 금이 쩍쩍 가더니 그대로 부서져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아마테라스가 비명을 지르며 소멸했다.
『카르마: 선(善)이 34 상승합니다.』
쿵.
나는 바닥에 쓰러졌다. 백염은 사라졌으나, 내 육체와 영혼을 이미 절반 이상 타버렸다.
죽음이 웃으며 다가왔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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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 재사용 대기시간 초기화권을 사용합니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죽음이 울면서 돌아갔다.
“완전 회복은 무적이고, 유희 생활 어플은 신이다.”
나는 바닥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봤다. 검은 하늘은 여전했다. 아직 츠쿠요미는 죽지 않은 모양이다.
‘엘레나와 유리아라 그런지 불안함이 하나도 안 드는군. 좀 쉬어도 되겠어.’
하늘에서 무언가가 떨어졌다. 슬쩍 보니 부서지고 돌멩이처럼 변한 곡옥이었다. 신의 힘도 뭣도 없는 쓰레기다.
“유진아! 넌 대체 정체가 뭐야? 영혼이 절반 소멸했는데 왜 멀쩡한 거야? 인간이 맞긴 해?”
“헛소리를 시작한 걸 보니 너도 멀쩡한 모양이군. 마키나, 대체 넌 언제 강해질 거냐?”
“정령옥 100개 정도 있으면 강해질지도?”
과연 그럴까.
마키나는 다른 정령과 본질 적으로 달랐다. 그 태생부터가 다른 정령과 다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고 할까. 그래도 정령옥에 환장하는 걸 보면 아예 다른 정령도 아닌 것 같고.
“전화 안 받을 거야? 지금 네 스마트폰에 오는 전화 전부 아줌마한테서 오는 건데.”
“……방금 아마테라스를 죽여서 스마트폰을 들 힘도 없어.”
지금 전화 받으면 욕과 잔소리 폭격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시간은 약이란 말도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성하리의 분노도 약간이나마 줄어들겠지.
“내가 대신 전화 받아줄까?”
“씁.”
나는 마키나를 역소환시켰다.
***
유리아와 엘레나는 공간 이동 주문서를 이용해 순식간에 교토의 어느 인적 드문 골목길에 나타났다. 그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건물 위로 올라갔다.
“호오. 제법 보는 맛이 있는 도시로군. 그렇지 않나?”
엘레나는 교토 전체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특히 일본 전통 가옥들이 그녀의 시선을 끌었다. 딱 봐도 관광할 맛이 나는 도시다.
“그렇군요.”
유리아의 목소리와 눈은 무감정했다. 고풍스럽고 단아한 전통 가옥? 그게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지? 교토든 뭐든 그녀의 관심 대상은 아니었다. 유리아는 그저 한 손으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까부터 신경 쓰였다만, 배탈이라도 났나?”
“아, 거슬렀나요? 실례했군요. 허전해서 그랬습니다.”
“……허전?”
“엘레나도 아시다시피 저와 주인님은 결혼했습니다. 따끈따끈한 신혼이지요. 임신 섹스를 몇 번이나 했는지 기억도 안 나는군요. 당연히 제 배에는 아이가 들어있었습니다. 12주차였지요.”
“……그렇군.”
“엘레나도 주인님과 결혼하셨나요?”
“…….”
“제가 또 실례를 범했군요. 죄송합니다.”
“원래 성격이 그랬나?”
“결혼과 임신은 인생의 변곡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입니다. 제 성격이 변해도 이상하지 않죠. 아니,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요. 그리고 저와 엘레나 사이지 않습니까. 부끄러워할 것도 없지요.”
유리아의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모성과 자애가 느껴지는 아름다운 미소였다. 엘네나는 왠지 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렸다.
발데르트 가문의 주인으로서, 제국의 환상공으로서 언제나처럼 여유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가 경련하듯 떨렸지만.
“음. 조금 걱정되는군. 네 칼이 무뎌진 건 아니겠지? 내 발목을 잡으면 곤란하다만.”
“걱정하지 마시길. 저는 주인님의 칼로써 항상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인님께선 태교에 안 좋다며 제게 휴식을 명하셨기에 12주 동안 칼을 든 적은 없습니다만, 겨우 그 기간 동안 제 감각이 무뎌졌을 리 없습니다.”
“재수 없군.”
“네?”
“오늘 영 재수가 아닌 것 같군. 나 같은 환술사는 운수에 민감하거든.”
“덕분에 새로운 지식을 얻어 견문을 넓혔습니다. 음. 너무 제 얘기만 한 게 아닌가 싶군요. 엘레나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나야 뭐 평소와 같았다.”
“평소와 같으셨습니까? 그러시군요.”
“…….”
엘레나는 왠지 짜증 나기 시작했으나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짜증 난 모습을 보이는 순간부터 지는 거다.
‘결혼식…. 계획은 하고 있으나 날짜조차 잡지 못했다.’
[신의 아틀란티스] 세계는 유리아가 있는 세계만큼 평화롭고 안정된 세계가 아니었다. 상황이 특수하다 보니 결혼율이 무척 낮았다. 출산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엘레나 또한 임신 계획은 없었다. 아이에게 가혹한 세상이니까.
“그거 아시나요?”
“응?”
“요즘 주인님은 목줄 플레이에 빠진 듯 합니다.”
“목줄? 내가 생각하는 개 목줄은 아니겠지?”
“역시 엘레나는 눈치가 빠르시네요. 엘레나도 주인님의 암캐가 되어 알몸 산책을 하실 수 있겠군요.”
“그건 아니지. 난 귀족이다.”
“그렇습니까. 전 주인님을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만… 엘레나는 아니었네요.”
“…난 귀족이지만 유진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것쯤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
“주인님이 좋아하시겠네요.”
“…….”
엘레나는 진정하기로 했다.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너무 흥분했다. 유리아의 말에 하나하나 반응하며 초조해할 필요는 없다. 그녀가 냉정함을 되찾았을 때, 그녀들은 동시에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 푸른 산이 있었다.
“저곳이군.”
“네. 움직이죠.”
그녀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마법으로 츠쿠요미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츠쿠요미를 발견한 것이다.
그녀들은 산속에 있는 어느 나무 위에 섰다. 아래로 신사가 보였다. 죽은 자들의 시체가 보였고 좀비처럼 어슬렁거리는 마인들도 보였다.
“정신 지배 쪽인가. 조종당하고 있군.”
“신사에 결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엘레나는 지팡이를 살짝 흔들었다. 그녀의 눈에 마법이 깃든다.
“보이는군. 공간이 괴리되어 있군. 결계 중에서도 고등급이다. 용케 알아차렸어.”
“그림자를 살짝 움직였더니 왜곡되기에 알아차렸습니다. 저 안에 쓰러져 있는 세 명…. 아마 주인님의 학우분들이시겠지요.”
“생기를 빨리고 있군. 저 셋은 제물인가. 음? 신사 앞에 무릎 꿇고 죽어 있는 남자가 의식을 진행했던 것 같은데…. 정작 신의 힘을 받은 건 저 여자인 것 같군.”
신사 앞에 한 여자가 있었다.
피 묻은 새하얀 옷을 입은 여자. 새까만 머리카락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여자가 양팔을 벌린 채로 달만 올려보고 있다. 그 생김새는 판에 박은 듯한 여자 귀신이었다.
유리아와 엘레나는 소환되면서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을, 정확하게는 성유진이 가진 이 세계의 지식 중 일부를 얻었다. 따라서 저 여자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귀락곡이라 했던가? 그 조직의 인간이군.”
“츠쿠요미의 영향으로 수호귀령에 빙의 당한 것 같습니다.”
“반신반귀인가. 일이 꼬인 것 같군.”
엘레나의 주위에서 푸른 나비가 하나 나타났다. 나비는 유리아에게 날아가 스며들었다. 성유진에게 해준 것과 같은 현실을 비틀어 부여하는 버프.
“감사합니다.”
유리아의 발이 앞으로 걸었다. 발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기에 그녀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엘레나는 눈동자를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유리아를 찾을 수 없었다.
‘설마 내 눈으로도 찾을 수 없다니…. 말도 안 되는 은신술이군.’
끝까지 집중하고 나서야 유리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유리아는 이미 결계 속에 들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