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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물 속으로-2049화 (1,829/2,000)

< 2049화 > 2049. 아카데미의 구원자

유리아는 공간이 괴리된 결계 속으로 간단하게 넘어갔다. 공간을 넘어 시간의 개념까지 어느 정도 잡혀 있는 그녀에겐 공간 괴리의 허점이 뻔히 보였다. 유리아를 막으려면 허점 하나 남기지 않고 모든 공간을 괴리했어야 했다. 허나 그러기엔 효율적이지 못하고 결계 안쪽도 위험해진다. 결국 유리아는 공간의 틈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유리아는 조용히 움직였다. 그녀가 노리는 건 딱 하나. 츠쿠요미와 접신한 인간을 암살하는 것. 아니, 저것은 이미 인간이라 보기 힘들었지만 육신이 있는 이상 죽여버린다면 사태는 해결될 것이다.

기척을 완벽히 없애고 상대의 뒤로 다가갔다. 단검을 휘두르는 그 순간까지도 어떠한 기척도 없었다. 암제라고 불리는 그녀의 솜씨는 조금도 퇴화하지 않았다.

단검이 여자의 목을 갈랐다.

“…….”

응당 무언가를 베면 소리와 감각이 느껴져야 하는데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허공을 향해 칼을 휘두른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우드드득.

여자가 부엉이처럼 고개를 뒤로 돌렸다. 부엉이와 달리 목 근육이 끊어지고 뼈가 부서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유리아를 노려본다. 여자의 눈에는 어떠한 생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가 귀기 가득한 손을 뻗는다. 희다 못해 창백한 피부에 새까만 손톱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유리아는 뒤로 물러나며 최대한 집중했다. 마나와 그림자가 단검 끝에 조용히 맺힌다. 이어 단검은 휘둘러지고 공간이 갈라진다. 허나 이번에도 여자를 죽이지 못했다. 단검은 여자의 목을 지나칠 뿐이다.

팟.

단검에서 시작된 검은 참격이 지면으로 떨어졌다.

‘……공간 왜곡이군요.’

유리아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백환] 세계의 그녀였다면 왜곡된 공간 채로 베어버렸을 테지만, 지금 스펙으로는 불가능했다.

“아아아아아아.”

여자의 입에서 음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공간 괴리 결계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마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암살에 실패했군.

엘레나의 목소리가 귓가에 날아들었다.

“네. 죄송합니다.”

-아니, 널 탓할 생각은 없다. 저건 이미 반쯤 신이라 봐도 무방하니 말이다. 물리 공격이 아예 통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죽일 방법이 있나?

“이 자의 몸은 공간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왜곡된 공간 채로 없애는 건 힘듭니다. 방법은 왜곡된 공간을 계산해서 공격하거나… 전투 상황을 이어가 힘을 뺄 수밖에.”

-아니면 내 힘으로 공간의 개념과 법칙 자체를 비틀어 버리거나.

“…가능하십니까?”

-대량의 수명을 쓴다면. 다만 그게 끝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츠쿠요미는 신 중에서도 이름 높은 신이 아닌가. 성가신 힘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 저걸 상대하면서 힘을 알아낼 필요가 있겠지.

“동의 합니다. 일 처리는 확실하게 하는 편이 좋으니까요.”

마인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든다. 지성이 없어 보이는 그것들은 누가 봐도 조종당하고 있었다. 유리아는 망설임 없이 단검을 휘둘렀다. 검 끝에서 시작된 검은 참격은 마인을 반으로 갈라 죽였다.

엘레나와 유리아는 그들의 죽음에 무덤덤했다.

-생기가 빨리고 있는 학생 세 명은 내가 구하지. 시간 좀 끌어라.

“알겠습니다.”

유리아는 적당히 뒤로 물러나 검기를 날리며 적들의 시선을 끌었다. 하늘 위에서 푸른 나비 세 마리가 기절한 세 명의 학생들에게 팔랑팔랑 날아갔다.

첫 번째 나비는 효도 유우키의 어깨에 앉았다. 효도 유우키가 산의 입구로 이동했다.

두 번째 나비는 신보 레이카의 머리에 앉았다. 마찬가지로 산의 입구로 이동했다.

세 번째 나비는 앞으로 고꾸라져 기절한 미야카도 미에코의 가슴팍에 앉았다. 팡! 나비가 터졌다.

-실패했다. 다른 힘이 적용해 방해했다. 아무래도 저 여자는 네가 직접 옮겨야 할 것 같군.

유리아는 검기를 날려 마인 하나를 썰어내며 미에코를 바라봤다.

평균 이상의 뛰어난 미모. 성유진의 눈에 들기에 충분한 외모였다.

“여기서 이탈시키겠습니다. 잠시 적들의 시선을 끌어주십시오.”

-이성 없이 본능만 남은 동물이라 하여 환술에 걸리지 않는 건 아니지. 시선 따윈 얼마든지 끌어주마.

유리아를 노리던 마인들은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엘레나의 환술이 적용된 것이다. 그녀의 환술이 가장 무서운 점은 환술의 발동 시점을 알 수 없다는 거였다. 깨닫고 보니 환술에 걸려 있었다. 상대하는 입장에선 미치고 팔짝 뛰는 상황이었다.

유리아는 미에코의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렸다. 기절한 미에코에게서 츠쿠요미의 힘이 느껴진다. 저기 귀신처럼 생긴 여자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츠쿠요미의 힘이 나뉘어 있군요. 어쩌면 저 여자는 추쿠요미의 뜻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게 중요한가? 아, 피해라.

귀녀가 유리아의 등을 노리며 달려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유리아는 귀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있었다.

촤르르르륵.

어둠 속에서 그림자 사슬 3줄기가 뻗어 나와 귀녀를 구속했다. 귀녀의 몸에 공간 왜곡이 걸려 있다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

귀녀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거칠게 움직인다. 빳빳하게 당겨진 그림자 사슬은 철커덕거리며 불안하게 흔들렸다.

유령도 구속할 수 있는 글레이프의 구속력은 유리아의 현재 능력치에 영향을 받았다. 지금 유리아의 힘으로는 귀녀를 오랫동안 구속할 수 없었다.

-그 사슬은 뭐지 개념 자체를 구속하는 건가? 터무니없는 물건을 가지고 있군.

“나름 쓸만한 물건이긴 합니다. 그런데 저 여자에겐 엘레나의 환술이 걸리지 않았나요?”

-환술이고 뭐고 아예 통하지 않았다. 이성도 본능도 없다. 육체는 살아 있으나, 정신은 죽은 거나 다를 바 없다. 저건 인형이다.

“츠쿠요미가 직접 손을 써서 조종하는 건 아닌 모양이군요.”

-저건 신도 뭣도 아니다. 내 생각엔 신의 힘과 귀신의 힘이 뒤섞이고 뒤섞인 끝에 만들어진 이질의 무언가다. 그래도 그 힘만은 무시할 수 없다.

“이 학생분을 안전한 곳에 데려놓고 오겠습니다. 저것의 상대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콰직!

그림자 사슬이 깨졌다. 허나 유리아는 이미 미에코를 들고 사라진 뒤였다. 귀녀는 유리아가 사라진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다리가 앞으로 움직이려는 순간, 땅이 뒤집혔다.

귀녀가 균형을 잃고 쓰러진다. 아무리 공간 왜곡이 걸려있다고 해도 중력의 법칙에선 완전히 자유로울 순 없었다.

환술에 걸린 마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귀녀에게 달려들었다. 허나 유의미한 피해를 줄 순 없었다. 귀녀의 공간 왜곡은 그 자체만으로 뛰어난 방어구이자 무기였다. 귀녀를 공격한 마인들의 이빨과 손이 왜곡되어 부서진다.

‘정말 성가신 힘이로군.’

정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직접적인 환술과 간접적인 환술이 걸리지 않는다.

딱.

엘레나가 손가락을 튕겼다.

허공에서 생성된 불꽃의 창이 귀녀에게 떨어졌다. 허나 공간 왜곡은 불과 그 열기마저 왜곡시켜 버렸다. 그야말로 무적의 방어였다.

엘레나는 귀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상한 기척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하늘에 떠 있던 태양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자연현상은 당연히 아니다.

‘아마테라스의 힘인가. 갑자기 힘을 쓰는 걸 보니 발악처럼 느껴지는군.’

황금빛의 선이 지상에서부터 하얀 태양을 향해 날아간다. 엘레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건 화살이었다. 황금빛을 흩뿌리던 화살은 마침내 새하얀 태양을 꿰뚫었다. 태양이 깨지고 부서지며 원래의 진짜 태양으로 돌아온다.

‘아마테라스가 죽고 유진이 승리했군.’

예측했던 일이기에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이쪽도 처리해 볼까.’

여차하면 완전 회복을 쓰면 된다. 그것도 안 되면 한계 돌파를 쓰거나.

엘레나는 언제나처럼 여유롭게 움직였다. 그녀의 몸이 귀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엘레나의 표정이 단숨에 구겨진다. 마주하고 나니 알겠다. 공간 왜곡? 저건 부산물에 불과하다. 저건 사람의 정신을 닥치는 대로 오염시키고 있다.

‘잘못 판단했군. 공간 괴리 결계는 저것을 지키기 위한 게 아니다. 저것을 봉인하고 있던 거다.’

미에코는 생기를 빨리고 있었다. 그게 귀녀에게 힘을 주는 게 아니었다면?

‘반대로 귀녀를 막고 있었다는 거겠지.’

과연 그 생각대로인지 귀녀의 몸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신기와 귀기가 뒤섞인 이질의 힘이 폭주하듯 터진다. 엘레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차가운 오한이 등을 스치고 지나갔다.

‘머리가 아프고 기분이 더럽군.’

유리아는 이것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어떻게 그리 멀쩡 했을까? 답은 바로 나왔다. 절대 정신. 그게 있는 한 유리아의 정신은 오염이고 뭐고 통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보다 더 위험한 것이었구나. 내가 한 번 죽더라도 지금 처리하는 게 맞겠지.”

푸른 나타났다.

땅에서, 허공에서, 하늘에서, 나무에서, 바위에서.

수십 마리의 푸른 나비들은 조용히 주변을 날다가 사라졌다.

세계를 속인다.

유려한 환술로 세계의 법칙을 비틀고 손에 넣는다. 이 주위의 공간은 그녀의 손안에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리되지 않은 실타래의 감각이 느껴졌다. 그녀는 약지에 걸린 실을 건드렸다. 공간이 수십 갈래로 찢겨나간다. 귀녀의 몸을 지키던 공간 왜곡도 예외는 아니었다.

공간 왜곡이 사라진 귀녀는 불길한 무언가였다. 이미 인간의 형상을 벗어났다. 엘레나는 마무리를 위해 검지를 까딱였다.

공간의 칼날이, 보이지 않는 단두대가 아래로 떨어져 귀녀의 목을 쳤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한순간 허공 위로 떠 올랐다가 떨어졌다.

“…….”

머리가 있던 장소에 그것이 있었다.

이해할 수 없다.

이성이 마비된다.

정신의 중심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자아가 서서히 붕괴한다.

나는 뭐였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지?

뭐지? 누군가를 위해 움직였었던 것 같은데?

질척한 무언가가 정신을 파먹고 있다. 기분 나쁘다. 떨쳐내야 한다. 어떻게? 떨쳐낼 수단이 없었다.

더 늦기 전에 마법을, 환술을….

……그게 뭐였지?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없나? 저 떨어진 머리가 왠지 탐스러운 과일처럼 보이는군.

과일을 향해 손을 움직인다.

푹.

격통이 엘레나의 머리를 뒤덮었다. 시선을 내리니 가슴팍에 단검이 빠져나와 있었다. 검날을 타고 선혈이 흐른다.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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