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50화 > 2050. 아카데미의 구원자
[죽음 저항이 발동했습니다. 앞으로 15초간 죽지 않습니다.]
심장이 꿰뚫렸다. 검날은 뒤로 빠져나갔다. 몸이 크게 휘청였다. 힘을 잃고 쓰러지려는 순간 누군가가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심장은 더 이상 튀지 않았다. 입에서 피가 올라온다. 이대로는 죽는다.
“나, 나는….”
잘은 모르겠지만, 죽고 싶지 않았다.
[완전 회복을 사용합니다.]
“…….”
엘레나는 환술을 이용해 스스로의 정신부터 보호했다. 한 겹, 두 겹, 세 겹. 정신 방벽을 세우고 나서야 한숨을 내쉰다.
“제가 괜한 짓을 한 걸까요?”
등 뒤의 유리아가 물었다. 그녀의 손에는 단검이 들려 있었다. 엘레나의 심장을 찌른 그 단검에는 아직도 선혈이 뚝뚝 흐르고 있었다.
“고맙다. 네가 아니었다면 추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를 뻔했다.”
엘레나는 한탄했다. 유리아가 없었다면 너무도 추한 짓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방심했구나. 상대를 너무 얕봤다. 은연중에 이 세계를 내 세계와 비교하며 너무 무시하고 있었어…. 신이란 이름은 절대 가벼워질 수 없는데도 잊었구나.”
철커덕! 철컥!
그녀들의 정면에는 그림자 사슬에 묶인 그것이 있었다. 그것은 머리가 떨어졌음에도 12개의 그림자 사슬에 저항하듯 몸을 흔든다.
스으으으으으으.
기묘한 소리에 그녀들의 시선이 그것의 뒤편으로 향했다. 희끄무레한 것들이 이곳으로 나오려 하고 있다.
“하늘을 검게 물들고 달을 띄운 이유가 있었군요.”
“그래. 죽은 것들이 날뛰기 좋은 환경이 된 거지. 아마테라스가 죽은 탓인지 태양도 점점 힘을 잃고 있으니… 이대로면 이 나라는 개판이 되겠군.”
“엘레나 님이 힘을 써주신 덕분에 저것의 공간 왜곡이 사라졌군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아니, 마무리는 내가 하지.”
엘레나가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손에는 아직 공간의 실타래가 남아 있었다.
파스스슷.
귀녀의 머리와 몸통이 지우개로 지운 것처럼 사라졌다. 그것을 구속하고 있던 그림자 사슬은 힘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더니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하늘은 점점 밝아지기 시작했고, 떠오른 달은 모습을 감추듯 내려간다.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온다. 엘레나는 가볍게 양손을 털었다. 손에 묻은 게 없었기에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지만.
툭.
그것이 있던 장소에 갑자기 곡옥이 나타나 떨어졌다. 츠쿠요미의 곡옥이다. 멀쩡하긴 하나 그 안에 서린 힘은 미약했다.
“일이 끝났으니, 학생을 챙겨서 그… 아카데미란 곳에 가면 되나?”
“일단 주인님에게 연락하도록 하지요. 아카데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연락은 어떻게 할 거지? 마법으로?”
이곳이 아틀란티스였다면 ‘바람에 묻히는 목소리’라는 특수한 소라고둥으로 연락했을 것이다. 허나 여긴 아틀란티스가 아니었다. 엘레나는 아공간에 소라고둥을 가지고 있었지만, 성유진이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마법을 걸어 주인님과 연결해 두었기에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죠.”
유리아는 능숙하게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굳이 전화할 필요도 없이 채팅앱에 들어간다.
문득 유리아는 시선을 느꼈다. 엘레나가 스마트폰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 이건 스마트폰이라는 연락기기입니다. 다른 스마트폰과 연락할 수 있고, 인터넷이나 게임 같은 것도 할 수 있습니다.”
“…나도 안다. 날 너무 촌년 취급하는군.”
“엘레나의 세계에는 스마트폰이 보급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체적으로 보급된 건 아니지. 그러나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구역은 있다. 너도 잘 알 텐데? 직접 거기서 아이돌 노릇을 했으니 말이지. 그리고 스마트폰이 없어도 연락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은 건 네 세계도 마찬가지일 텐데?”
“주인님을 모시는 메이드들에겐 현대 기기가 보급된 상태입니다. 스마트폰도 그중 하나입니다. 여러 가지로 편리하니까요.”
유리아는 스마트폰 화면을 두들기며 메시지를 작성해 보냈다.
유리아: 주인님. 이쪽 일을 처리했습니다. (?????)
“…이모티콘? 어울리지 않게 그런 것도 쓰나?”
“주인님이 귀엽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저희 메이드들 사이에서 이모티콘을 쓰는 게 요즘 유행입니다. 메이드들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제가 유행에 뒤처질 수는 없습니다.”
유리아: 엘레나는 도중에 정신이 오염되어 한 번 죽어버렸습니다. (?????????) 그래도 완전 회복으로 부활해서 문제를 직접 해결하셨습니다. \(^o^)/
유리아: 주인님의 학우 세 분도 무사합니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O ? O。)
“아니, 잠깐. 내가 죽었다는 걸 그렇게 전할 필요가 있나?”
“간략하게 보고했을 뿐입니다.”
“이모티콘을 너무 자주 쓰는 것 같은데.”
“유행이라니까요.”
성유진: 음. 신분이 없더라도 도와줬으니 뭐라 안 하겠지. 공간 이동도 괜찮겠지만 괜한 의심을 피하려면 섣불리 행동하는 건 안 좋겠지. 거기서 좀 기다려. 텐라이 나기사랑 연락해서 쇼부 볼 테니까.
유리아: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 ♡
성유진: ㅋㅋ (??????)? ♡
유리아가 살짝 미소 짓는다. 엘레나는 그 모습이 살짝 눈꼴셨다.
“재밌게 노는군.”
“네. 재밌으니까요.”
“으음. 잠깐 스마트폰을 줘봐라.”
“……왜죠?”
“경계하기는. 나도 유진에게 보고해야 할 게 있다. 아까 정신이 부서지면서 느낀 것에 말이지. 그 감각을 잊어버리기 전에 전해야 한다.”
“특이한 경험이군요. 주인님에게 도움이 되겠죠.”
유리아가 조심스럽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엘레나는 스마트폰을 받았다. 그리고는 잠깐 하늘을 쳐다본다. 유리아의 시선이 하늘로 향했다.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환술을 걸었다.
유리아에게 직접 환술을 사용한 건 아니다. 애초에 절대 정신이 있었기에 직접 적인 환술은 통하지 않는다.
엘레나는 자신의 손과 스마트폰에 환술을 걸었다. 홀로그램을 현실에 덧씌우는 일종의 증강 현실 환술. 유리아가 방심하고 있었기에 통했다.
“잠깐, 환술?!”
10초 만에 환술을 알아차리고 스마트폰을 빼앗으려 들었지만.
푸른 나비가 유리아의 앞에 나타났다. 유리아의 몸이 그대로 저 멀리 사라졌다. 유리아를 멀리 공간 이동시키는데 3년 정도의 수명을 사용한 엘레나는 자리를 피하며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으음. 한글이나 터치가 익숙하지 않아서 간단한 문장을 쓰는 데도 오래 걸리는군.’
얼마 지나지 않아 나무 그림자 속에서 유리아가 튀어나온다. 그 손은 정확히 스마트폰을 노렸다.
촤르르르륵.
잠깐 유리아에게 시선이 팔린 사이, 발아래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사슬이 엘레나를 꽁꽁 묶었다. 엘레나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림자 사슬에 묶이니 몸이 무거워졌다. 힘이나 기운이 빠진 것이다. 마나의 움직임도 느려졌다.
“정말 곤란한 장난을 치시는….”
스마트폰을 확인한 유리아는 말문을 잃었다. 그녀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진다.
유리아: 씨발 발정난 개새끼야뒤져
성유진: ???
엘레나는 난생처음으로 유리아가 울상을 짓는 걸 보았다. 유리아는 엘레나를 버려두고 엄청난 속도로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그거 스마트폰 중독이다.”
“닥치세요…!”
“…….”
눈빛이 너무 차가워서 입을 다물었다.
***
『카르마: 선(善)이 21 상승합니다.』
땅바닥에 누워서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카르마가 올랐다.
하늘이 점점 밝아지고 달이 떨어지는 것을 보니 성공적으로 츠쿠요미를 처리한 모양이다.
‘유리아와 엘레나를 내가 소환한 거라 카르마가 올랐나?’
어쨌든 카르마가 대량으로 오른 덕분에 카르마의 수치가 120에 달했다. 여전히 눈에 띄는 효과는 없었지만.
유리아: 씨발 발정난 개새끼야뒤져
성유진: ???
유리아: 아니에요!
유리아: 아닙니다!
유리아: 이건 엘레나가 멋대로 제 스마트폰을 뺏어서 쓴 거예요!
유리아: 엘레나가 저와 주인님의 사이를 이간질하려 했어요!
유리아: 명령만 하신다면 엘레나를 죽이겠습니다!“
성유진: 알겠으니 죽이진 말고.
엘레나의 장난.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엘레나는 가끔씩 장난을 친한 인물에게 장난을 치곤 하니까. 나도 몇 번 당한 적 있었다. 즉, 엘레나는 유리아를 친근하게 여긴다는 거겠지. 잘된 일이다.
‘…돌아가 볼까.’
바람의 최상급 정령 아레스트의 힘을 이용해 아라시 아카데미에 돌아가기로 했다. 공간 이동 주문서를 너무 남발하면 걸릴 테니까.
‘아이템을 사용해 이겼다고 둘러대야겠군. 유리아와 엘레나는 의심받겠지만… 일단 일본의 은인이라 할 수 있으니 적대 받지는 않겠지.’
뒤처리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졌다.
***
어쨌든 일은 좋게 끝났다.
텐라이 나기사와 성하리의 잔소리를 5시간 이상 들어야 했지만, 내 몸에 상처 하나 없었고 결과도 좋았다.
저녁이 되어서는 아카데미에 설치된 폭탄을 모두 제거하고 테러리스트도 제압했다.
그래도 일본 주요 도시가 테러 받았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마도정은 선을 넘어도 너무 넘어버렸다.
일본 정부와 일본 히어로 협회가 칼을 뽑아 마도정과 그 휘하의 범죄 세력에 휘둘렀다. 이미 간부도 전부 죽은 마도정이다. 저항할 힘이 없는 마도정은 어느 것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다.
테러에 의해 희생당한 사람들이 많긴 해도 결국은 일상이 이어질 것이다.
유리아와 엘레나는 히어로로서 칭송받기에 충분했지만, 텐라이 나기사와 이야기한 끝에 이번 일을 비밀로 하기로 했다. 텐라이 나기사는 그녀들이 영 의심스러운 듯했다. 그래도 그녀들이 아이들을 구하고 츠쿠요미의 곡옥을 가져왔으니 적대하거나 냉대할 수 없었다.
그녀들은 아라시 아카데미의 학장 권한으로 당분간 아카데미에 머무기로 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밤이 된 지금은 내 방에 머물고 있었다. 그것도 내 양옆에 껴서 침대에 누운 채로.
밤이 깊어진다. 엘레나의 뺨이 붉어지고 유리아의 숨이 뜨거워질 때였다.
똑똑똑.
노크소리와 함께 성하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유진아. 안에 있지? 아무리 그래도 오늘 행동은 너무 심했어. 잠시 엄마랑 대화 좀 해.“
말하면서 화가 난 건지 흥분한 성하리가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굳어졌다. 내 양옆에는 그녀들이 반쯤 헐벗은 메이드와 귀족이 있었으니까.
”누, 누구…?“
이런 말 하기 그렇지만, 당황한 성하리는 좀 많이 멍청해 보였다.